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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146화 (147/224)

#148화

전쟁은 끝났다.

아인 연방이 제국을 향해 일으킨 전쟁을 끝낸 것은, 우습게도 연방 자신이었다.

‘아인 연방은 제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킨 것에 대해 사죄하며, 전쟁으로 인해 제국이 입은 피해에 대해 배상금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

제국의 입장에선 병주고 약주는 식의 어처구니 없는 대처였지만, 연방에겐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대로 가면, 연방에 남는 것은 멸망뿐입니다.”

연방의회를 구성하던 의원 중에서도 주전파에 속했던 에리히만이 실종됨과 동시에, 죽은 것으로 알려진 연방의 전 의장 케니스가 돌아온 것이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제국과의 전쟁은 끝내야 합니다. 반드시.”

케니스는 처음부터 제국과의 전쟁을 반대하던 자.

주전파의 우두머리이자 연방의 강력한 전력 중 하나였던 에리히만이 실종된 상황에서, 주전파들은 더이상 자신들의 주장을 유지할 수 없었다.

“그 녀석 덕분이지.”

의장실 의자에 앉은 케니스는 한 사내를 떠올렸다.

신검 레온하르트의 주인, 이안 폰 아슈타르 공작.

“분명, 만년빙하 너머의 언데드들을 소멸시킨 것도 놈의 짓일 테지.”

정체불명의 비행체가 수도를 지나 북쪽으로 날아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언데드들은 모두 소멸했다.

그것도, 에리히만이 실종 당한 시점과 거의 동시에.

‘그렇다는 건, 언데드를 불러온 것은 에리히만의 짓이란 소리일 거고.’

자신을 납치해 죽이려고 한 빌어먹을 대마법사를 떠올린 그녀는 인상을 쓰며 발톱을 세웠다.

이미 죽어버렸을 게 분명했지만, 그때 당했던 고통과 공포는 아직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 남아있었으니까.

‘어찌되었건, 연방의 모든 일은 해결되었고….’

다행히, 제국은 연방의 항복요청을 받아들였다.

알론소 황태자의 주도 하에 벌어진 협정에서는 제법 관대한 조건의 배상금을 요구했으니, 패전국인 연방으로서는 다행인 일.

‘이것도, 놈의 도움이겠지.’

알론소 황태자는 평소 아슈타르 공작과 친밀한 사이에 있다 들었다.

연방이 맺은 관대한 항복조약에 공작의 입김이 들어있다는 건, 그녀의 머리 속에선 이미 기정사실화되어있었다.

단지.

‘어째서 이런 짓을 벌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연방에게 물리는 배상금을 줄이는 것이, 공작과 연합공국엔 무슨 의미가 있었던 것일까.

‘흠….’

새로운 연방의회에 출석하기 전까지, 케니스는 의장실에 앉아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

“그야, 연방이 멸망해서 좋을 게 없으니까.”

이안이 알론소 황태자와 나눈 대화에 대해 미미르가 묻자, 이안은 당연하다는 투로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연방, 공국, 제국. 인계를 갈라 먹는 세 개의 세력이지.”

미미르가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하자, 한심한 눈빛을 보낸 이안은 손가락 세 개를 폈다.

“덩치야 제국이 가장 크지만, 공국과 연방은 그 위치 때문에 제국의 힘을 분산시킬 수 있어.”

어찌되었건, 연방은 제국과 사이가 좋지 않은 나라다.

비록 연방의 국력은 제국에 한참 미치지 못하지만, 제국이 신경조차 쓰지 않을 만큼 약한 나라도 아니었으니까.

결국, 제국은 연방의 침공을 막기 위해 얼마간의 병력을 국경에 배치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연방이 괜히 멸망이라도 해버리면?”

[연방에 있던 병력이 공국을 향하겠지.]

“이제 좀 알아듣네.”

미미르가 납득한 표정을 짓자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직 이해하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러면, 제국은 어째서 그 조건을 받아들인 것이지? 아무리 네가 황태자와 친하다곤 하지만, 제국의 정치에 관여할 수는 없을 텐데. 게다가.]

미미르의 앞발이 이안을 가리켰다.

[공국에는 어차피, 네가 있지 않느냐?]

마왕토벌자 이안.

제국의 수호자인 오러마스터 멤피스 후작조차도 당해낼 수 없는 강자.

그와 다른 여섯 공작이 공국을 지키고 있는 한, 제국은 함부로 움직일 생각을 하지 못할 것이 아닌가.

“내가 계속 생각해봤는데.”

하지만.

“내가, 앞으로도 계속 공국에 붙어있을 순 없을 것 같거든?”

이안의 입에서 나온 말은 충격적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아슈타르를 버리기라도 할 셈이냐?]

아슈타르 성과 슈바이크가 마왕과 함께 소멸한 순간, 아슈타르 공작가는 사실상 반쯤 무너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거기에, 마왕토벌자이자 신검의 주인인 이안까지 사라진다면.

[아슈타르는 끝장이나 다름없다.]

애오오옹.

그 결과가 어떨지, 미미르의 눈에는 뻔히 보이는 것 같았다.

“뭐. 가정이야, 가정. 이렇게 될 가능성은 매우 적지. 단지….”

[단지?]

“보통, 못이 튀어나오면 망치를 맞는 법이거든.”

말을 마친 이안은 주변을 둘러봤다.

폭탄이 터진 크레이터를 중심으로 세워진 기지는, 크레이터가 터지면서 쌓인 흙더미를 자연방어물로 삼고 있었다.

그리고, 그 흙더미 위에 쌓인 것은 수 많은 마수들의 시체들.

마수들에게서 흘러나오는 보라색의 피가 크레이터를 따라 강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정상적인 능력은 아니지.’

마도위성 아스가르드를 원상태로 복구해낸 이후, 이안의 능력은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

위성이 가진 본연의 정찰기능은 물론, 위성이 가지고 있는 기능 중 하나인 마력 충전과 방출기능은 이안의 페르소나가 가진 제약을 반쯤 풀어헤쳤다.

‘나머지는 저 녀석이 해결해줬고.’

이안은 지금 이 순간에도 위성을 향해 마력을 보내고 있는, 한 때는 마왕이었던 살덩이를 잠시 바라봤다.

이제 이안은 영웅급 페르소나가 요구하는 마력을 얼마든지 공급할 수 있다.

자신이 직접 사용하는 페르소나 뿐만 아니라, 새롭게 구현해내는 페르소나와 미미르의 분신들까지.

지금 이안이 가지고 있는 힘은, 비유적 의미가 아니라 실제로 일인군단이었다.

아무리 강자라 하더라도, 손가락 하나만 까딱이면 생물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군대를 당해내긴 쉽지 않다.

그리고.

‘내 힘이 강해질수록, 적 역시 강해지는 법이지.’

주머니 속 송곳처럼 튀어나온 그를 눌러버리기 위한 자들이 속속 튀어나올 게 분명했다.

굳이, 피아를 구분하지 않더라도.

[…비약이다. 너무나 큰 비약.]

“네 눈엔 비약일 지 모르지만, 내 눈엔 현실이야.”

이안은, 강민혁은.

전생에서 그러한 사례들을 숱하게 보고 배우며 자라왔으니까.

살아남기 위해 힘을 탐했지만, 자신에게 돌아온 위협은 별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할 뿐.

“의도한 건 아니긴 하지만, 이참에 여기에 내 살림이나 차려볼까 하고.”

첨벙

어느새 발밑까지 차오른 보라색 핏구덩이를 넘어가며, 이안은 어깨를 으쓱했다.

[언제나 말은 쉬운 법이지.]

하지만 미미르의 눈에, 이안의 생각엔 문제점이 하나 있었다.

[여긴 마경이다. 마경의 군주들이 너를 가만히 둘 성 싶더냐?]

마왕들은 호구가 아니고, 자신들이 지배하던 땅에 찾아온 불청객을 가만히 내버려 둘 리 없다는 명백한 사실.

기지의 외곽에 쌓인 수 많은 마수들의 시체들이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글쎄, 나라면.”

그러나, 미미르의 말을 들은 이안은 피식 웃었다.

“총 든 강도한테 칼 들고 덤비진 않을 거 같단 말이지.”

강도의 총에 자기 집 개가 모두 당한 걸 봤다면 더더욱.

이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마왕토벌자.

그의 귓가에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으으-

사내의 굵은 목소리에 섞인 것은 고농도의 마기.

평범한 사람이라면 사내의 한 마디에 죽거나 마수로 화했을 테지만, 영웅급 페르소나의 보호를 받는 오러마스터에겐 큰 효과가 없었다.

하지만 사내 역시 그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대화를 하러 왔다.

[…대화라고?]

사내의 말뜻을 이해한 미미르는 당황해 입을 벌렸지만.

“봤지?“

이안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씨익 미소를 지었다.

마수들의 산 위에 선, 뿔 달린 사내를 바라보며.

***

마왕중의 마왕.

메피스토가 마왕토벌자의 앞에 서게 된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이대로라면, 정말로 마경이 파멸할지도 모른다.’

그가 시험 삼아 마왕토벌자를 향해 보낸 마수들이 처참하게 찢겨나가는 광경을 본 순간, 메피스토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허.’

과거, 이제는 600년도 더 지난 신마대전을 떠올리게 만드는 상대의 병기들은, 분명 자신이나 다른 마왕에겐 큰 효과가 없어 보였지만.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메피스토는 알 수 있었다.

마왕토벌자와, 마왕토벌자가 구현해 낸 병기들의 위력은 정확히 마수들을 처리할 수 있는 수준.

다시 말해서.

‘상대의 전력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강자라는 의미지.’

상대는 마왕을 셋, 아니 넷이나 잡아먹은 강자다.

분명, 마왕을 상대로는 더욱 강력한 무언가를 보여줄 테지.

“마경에서 나가라. 이곳은 인계의 존재가 있을만한 곳이 아니다.”

그것이, 메피스토가 이안과 협상을 하려 한 이유였다.

“나가라, 하면 내가 나가줄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하지만 이안은 메피스토의 말을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안 나간다고 하면?”

“나와, 다른 여섯 군주들의 분노를 맛봐야 할 것이다. 너 뿐만 아니라, 인계 전체가.”

스으으-

이안의 장난스런 물음에 서늘한 목소리로 대답한 메피스토는 마기를 끌어 올렸다. 마왕이 끌어올리는 고농도의 마기가 주변의 공기를 무겁게 바닥으로 끌어내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마왕의 손에 쥐어진 것은, 자줏빛으로 번들거리는 한 자루의 장검.

파직 파지직

“협약을 어길 수 있는 건 네놈들 뿐만이 아니란 걸 기억해라.”

보랏빛 스파크가 튀기는 검을 쥔 메피스토는 으름장을 놓고는 이안을 노려봤다.

“협약?”

하지만 메피스토에게 돌아온 것은 의문 섞인 시선뿐.

“협약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메피스토가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건지, 이안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모습에 메피스토는 씹어뱉듯 말했다.

“모르는 척 하지 마라. 네놈은 분명, 바다를 통해 마르바스의 영지까지 들어왔을 터. 넵튠의 허락이 없다면 불가능한 이야기지.”

말을 마친 메피스토는 차가운 눈으로 이안을 바라봤다. 어서 숨겨왔던 진실을 밝히라는 듯.

그러나.

“뭔 개소리야?”

이안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내가 왜 바다로 왔다고 생각하는 건데?“

“바다를 통하지 않고 마경을 가로질러왔다면, 내가 눈치채지 못할 리 없으니까.“

메피스토는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미안한데, 난 바다로 온 게 아니거든?”

“…뭐라고?”

마왕토벌자의 말을 들은 메피스토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안은 말을 멈추고는, 고양이가 쥔 대검이 꽂힌 살덩이를 가리켰다.

“난 저 녀석이 만들어 낸 마법을 이용했을 뿐이야. 바다랑은 아무런 관련이 없어.”

“그럴 리가 없다. 인간의 몸으로 어찌 흑마법을….”

자신의 생각과는 완전히 다른 전개에, 메피스토는 벙찐 표정을 지었지만.

“그보다.”

이안에겐 먼저, 확인해야 할 일이 하나 있었다.

“그 협약인지 뭔지에 대해서 좀 듣고 싶은데 말이지.”

마왕과 신 사이의 협약이라니.

수상한 냄새가 풀풀 풍기지 않는가.

냄새를 놓치지 않은 이안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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