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143화 (144/224)

#145화

죽은 자들의 왕이자 마경의 군주 중 하나, 마왕 마르바스.

그의 영지이자 모든 것이 담긴 곳, 시타델로 귀환한 마르바스의 화신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꾸드득

자신의 본신과 다시 융합하는 것이었다.

“그래, 이렇게 되었단 말이지.”

화신을 흡수함과 동시에 그의 기억을 모두 이어받은 마르바스는 손에 쥔 영혼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나쁘지 않은 판단이야. 나라도 똑같이 했을 테니까.’

마왕토벌자는 어차피 자신의 영지를 공격할 수 없다.

벌써 세 명의 마왕이 대륙에서 사라졌지만, 그의 영지 앞에는 아직도 일곱 명의 마왕이 남아있었으니까.

자신의 영지를 공격하고 싶다면, 그 전에 마경 전체를 상대해야 하리라.

‘그리고, 난 질 좋은 영혼을 얻었지.’

그것도, 아크리치로 되살릴 수 있을 만큼 강력한 대마법사의 영혼.

이것 하나만으로도, 메피스토를 거스르는 위험을 무릅쓰고 인계로 나선 보람은 충분했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다.

‘할 거면 확실히 했어야 했는데, 쯔쯧.’

마르바스가 인계에 보낸 화신은 힘의 양을 제외하면 그와 동일한 지성을 가진 존재다.

하지만, 화신의 판단은 그와 조금 달랐다.

‘마법진을 그대로 내버려둔 건 나답지 않은데.’

화신이 아니라 그가 직접 움직였다면, 그는 탈출하기 전에 궁극마법을 이루고 있던 마법진을 모두 부숴버렸을 것이다.

비록, 상대가 흑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 할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화신을 흡수한 그는 화신의 생각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디아블로와 그 권속들은 어차피 마기를 포기했을 터. 마법진을 다시 구동할 수 있을 리 없다.’

설사 마법진을 가동할 수 있다손 쳐도, 이곳은 자신의 영지다.

‘아무리 마왕토벌자라도, 내 영지 한복판으로 쳐들어올 생각은 못 할 터.’

마법진을 이용해 쳐들어온다면, 미리 모아둔 언데드 군단으로 포위 섬멸해버리면 그만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마르바스는 마음이 조금 놓인 듯 굳은 표정을 풀었다.

그리고, 그가 마음을 놓기 무섭게.

우우우웅

거대한 마력이 움직이면서 생기는 기파가 그의 고막을 뒤흔들었다.

“이, 이건!”

기파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파장에, 마르바스는 급히 왕좌에서 몸을 일으켰다.

분명, 이 마력의 흐름은.

‘다크포탈…!’

자신이 알고 있는 궁극마법의 그것과 거의 비슷했으니까.

‘마기를 마력으로 대체하다니, 디아블로의 짓인가?’

믿을 수 없었다.

배반자 디아블로가 흑마법을 다루는 마경의 군주들 중, 마법의 극의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존재라고는 하지만.

‘마기와는 전혀 성질이 다른 마력을 가지고 흑마법을 구동시킬 줄이야….’

순수한 마법 실력으로는 한 수 쳐진다는 평가를 받았던 그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

배반자의 마법 실력에 잠시 혀를 내두른 마르바스는, 급히 마법진이 설치된 곳으로 향했다.

‘좋아.’

죽음의 군대가 머무는 곳, 카타콤.

거대한 공동묘지 한가운데에 그려진 거대한 마법진과, 그 주변을 둘러싼 자신의 군단들을 확인한 마르바스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올 테면 와 봐라. 나는 이미 준비가 되어있으니.”

죽여도 죽지 않는 불사의 군대.

사기와 마기로 범벅된 영지 안에서는 신성력의 영향조차 감소한다.

제 아무리 마왕토벌자의 힘이 강력하다 한들, 불사의 군단 앞에선 살아남을 수 없으리라.

우우우웅

검은 포탈이 열리는 것을 지켜본 마르바스는 명령을 내렸다.

“포탈에서 나오는 모든 것들을 죽여라.”

키이이- 크에에-

주인의 명령을 듣자마자, 카타콤에 모여있던 언데드들이 손에 쥔 무기를 들며 울부짖었다.

이윽고.

피슈우웅

포탈 안에서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솟아 나왔다.

“공겨….”

그것이 적일 거라 짐작한 마르바스는 곧장 공격 명령을 내리려 했다.

하지만.

포탈 밖으로 튀어나온 것은 적이 아니었다.

‘원통?’

온통 녹색으로 칠해진 기다랗고 거대한 원통.

쐐애액

빠른 속도로 튀어나온 원통은 포탈을 벗어나기 무섭게 하늘 위로 높이 솟아올랐다.

“저건 대체….”

당연히 적의 병력이나 마왕토벌자가 등장할 거라고 생각했던 그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그에겐 더 이상의 여유가 허락되지 않았다.

시타콤의 위로 떠오른 것은, GBU-43 대형공중폭발폭탄.

모든 폭탄의 어머니(Mother Of All Bomb, MOAB).

콰아아아아아아앙-

TNT 11,000톤급.

토마호크 미사일 20,000발과 맞먹는 거대한 폭발이 시타델 전체를 뒤덮었다.

콰아아아-

전술핵과도 비교할 수 있을법한 강력한 폭발력은 곧 성을 뒤덮을 만큼 커다란 버섯구름을 만들어냈다.

성, 건물, 언데드, 마법진.

그 범위 안에 존재하던 모든 생명과 사물은, 천문학적인 폭발력이 만들어낸 압력 앞에 산산이 찢기고 부서져 나갔다.

불사의 군단이라 해도 감히 저항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물리력.

거기에, 마기를 약화시키는 신성력까지 함께 깃들어있었으니.

콰과과과-

폭발의 후폭풍이 지나간 뒤의 시타델은 그야말로 참담한 모습이었다.

마르바스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불사의 군단은 대부분 시체조차 건질 수 없을 만큼 가루가 되었다. 마르바스의 영지를 상징하는 성이 있던 자리엔, 대신 거대한 구덩이만이 남아있었다.

“크, 크으으윽….”

키이이-

그 와중에도 폭발의 중심에서 가까웠던 마르바스와 일부 언데드들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마석을 봉인해두었길 망정이지, 하마터면 그대로 소멸당할 뻔 했다.’

가루로 변해버린 육체를 천천히 복원하기 시작하면서, 마르바스는 이를 갈았다.

자신이 개발해 낸 비술을 이용해 마석을 분리해내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육체를 수복할 수조차 없었을 터.

하지만.

‘빌어먹을 마왕토벌자놈.’

그렇다 해도, 마르바스가 언데드 군단의 대부분을 잃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거기에 자신이 온갖 비술과 흑마법을 덧대 완성한 죽은 자들의 성, 시타델까지 소멸해버렸으니.

‘이렇게 되면, 메피스토의 분노를 감당하는 게 문젠데….’

마왕 중의 마왕, 메피스토를 떠올리자 복원을 거의 끝낸 그의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그 메피스토가 직접 전한 경고를 정면으로 무시한 자신을, 과연 가만히 내버려 둘까?

“일단은 남은 병력을 추스른 다음, 숨어서 힘을 되찾아야겠어.”

마석을 봉인해놓은 곳까지만 갈 수 있다면, 자신이 준비해 둔 안배를 모두 이용할 수 있다.

그곳을 새로운 자신의 영지로 삼는다면, 충분히 재기할 수 있으리라.

“육체를 모두 수복하는 대로, 움직인다.”

가루가 난 육체를 천천히 원상태로 되돌리면서, 마르바스는 마왕토벌자 이안에 대한 복수심을 활활 불태웠다.

하지만 그의 바람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가면 뭐가 어떻게 되는데?”

“누, 누구냐!”

어딘가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마르바스는 급히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상대를 확인한 그는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마, 마왕토벌자!”

“뭐야, 살아있었잖아?”

놀란 것은 이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거대한 구덩이 말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이 폐허에, 살아남은 존재가 있을 줄이야.

[죽은 자들의 왕, 마르바스는 자신의 마석을 뽑아냈다지. 신마전쟁 때도 그 때문에 살아남았을 수 있었다고 한다.]

“호오, 그래? 마석을 뽑아냈다고?”

우웅

어깨에 앉은 미미르의 설명을 들은 이안은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마력을 움직였다.

파아앗

그의 몸을 감싼 거대한 마력이 만들어낸 것은, 자주대공포, 비호.

기이이잉

호랑이의 머리에 달린 두 정의 30mm 기관포가, 몸을 회복하고 있던 마르바스와 언데드들을 향해 움직였다.

“빌어먹을,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지?”

“어떻게 왔긴, 너희가 온 대로 왔지.”

먼저 등장한 폭탄에 적들의 모든 시선이 쏠린 사이 재빨리 몸을 피하긴 했지만, 굳이 그것까지 설명해줄 필요는 없었다.

이안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입을 열자, 아직 힘을 회복하지 못한 마르바스는 표정을 굳혔다.

‘조금만 시간이 있었더라면….’

힘을 모두 회복한 다음, 언데드들과 함께 이곳을 빠져나갔으리라.

이젠 아무 소용없게 되었지만.

‘이, 일단 시간을 끈다.’

지금의 마르바스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었다.

“나는 죽은 자들의 왕, 마르바스!”

지상에 뿌리박힌 마기를 충분히 흡수할 시간을 버는 것.

“내가 비록 지금 널 상대할 힘은 없지만, 너 또한 날 죽일 수는 없어!”

“그래?”

간신히 육체의 수복만을 마친 마르바스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이안은 제법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거 잘됐네.”

“…뭐?”

이안의 비릿한 미소에서, 마르바스는 알 수 없는 불길함을 느꼈다.

그리고.

“죽지도 살지도 못한다는 말, 뭔지 알아?”

부아아아아앙

자신의 육체가 수천 발의 기관포 세례 앞에 네 번째로 갈려 나갈 때 즈음.

마르바스는 상대가 지은 비릿한 미소의 의미를 깨달았다.

***

아슈타르 공작령의 새로운 수도, 알자스 성.

신검의 주인이 자리를 비운 지금, 성과 공작령의 관리를 책임지는 것은 행정관인 베티였다.

하지만 수많은 서류들 사이에서 씨름하고 있어야 할 그녀는 지금, 경악 어린 표정을 지었다.

“슈바이크가, 정화되었다고?”

-전부는 아니지만, 반쯤은.

“아니, 아무리 반이라지만….”

그의 직속상관이자 아슈타르의 주인, 이안의 통신을 받은 그녀의 표정은 의구심으로 가득했다.

슈바이크에 쳐들어왔던 두 마왕은 소멸한 지 오래였지만, 그들과 그들이 이끌고 온 마족들이 대지에 남긴 마기는 그대로 남아있었으니까.

못해도 수십 년 동안은 죽음의 대지로 남아있어야 할 땅이.

‘이렇게 빨리 정화되었다고?’

-믿기 싫으면 파비안한테 말해서 정찰이라도 보내보던가.

이안은 의심으로 가득찬 베티를 보곤 코웃음쳤다.

뭐, 굳이 자신이 보여주지 않더라도 곧 알게 될 사실이었으니까.

-확인되면, 슈바이크에 용들과 병력을 보내서 도시재건을 시작해. 그래도 아슈타르의 수도였었는데, 황무지로 내버려 둘 순 없잖아?

“알았어. 사냥단장에겐 내가 얘기해보지.”

베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안의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확인해보면 될 일.

그리고, 그녀에겐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영지엔 언제 돌아올 거야?”

-영지에?

“이 영지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공.작.전.하.라고.”

이안이 고개를 갸웃하자, 베티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러다가 내가 반역이라도 일으키면 어쩌려고 그래?”

-뭐, 누구 머리에 바람구멍 하나 나는 거지. 그럼 알아서 잘 돌아갈거고.

“바람구멍 날 사람한테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태평하게 답하는 이안을 잠시 노려본 베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모습을 본 이안이 한 마디를 던졌다.

-나, 당분간은 못 돌아간다.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 어딘데 그래?”

도대체 어디에서 뭘 하길래, 마왕토벌자 이안의 입에서 돌아갈 수 없다는 소리가 나온단 말인가.

그리고.

-마경.

이안이 자신의 위치를 밝힌 순간.

“이 개자식이….”

반역이란 두 글자가 베티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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