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제국과 피튀기는 전쟁을 벌이고 있던 아인 연방에선, 얼마 전부터 이상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시체들이 만년빙하를 건너오고 있다고?”
호인족의 장이자 아인 연방군의 총사령관, 보리스는 삼 일 동안 한숨도 못 잔 눈으로 받아든 보고서를 노려보고는, 부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자넨 이게 무슨 소리인지 알아 먹겠나?”
“잘 모르겠습니다.”
“누가 견인족 아니랄까봐, 보고서에도 개소리만 써놨군.”
파삭
부관의 말을 듣자마자 받아든 보고서를 단숨에 구겨버린 보리스는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집어 던졌다.
“젠장, 들어오는 보고서의 절반이 이런 쓰레기들 뿐이라니, 도대체 이게 군대인지, 돼지우리인지 구분이 안 간단 말이지.”
문제는, 이런 쓰레기같은 보고서가 그의 손까지 날아오는 게 한 두 번이 아니란 것이었다.
주로 연방의 북쪽에서 보내온 보고서들에는, 이 시체들의 무리가 연방의 경계 너머에서 포착되었고, 사냥했다는 이야기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지금이 신마전쟁 시대도 아니고, 북쪽에서 언데드라니.”
그래, 그게 문제였다.
언데드는 흑마법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는 존재.
그리고, 그 흑마법의 주인은 결국 마족들이다.
“저 칠영웅의 후손 놈들이 인계를 배신한 것도 아닐테고, 이 얼어붙은 땅에서 언데드가 갑자기 나타날 리 없지 않나.”
마족들에게 날개가 달렸다 한들, 바다와 육지는 이미 봉쇄되어있다.
마족과의 접촉이 끊긴 지 오래되어, 이제는 흑마법을 부리는 법을 아는 자들 자체가 사라진 연방에서 어떻게 저주받은 존재, 언데드가 나타날 수 있단 말인가.
“저….”
상관의 말에, 부관 드미트리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최근 에리히만 의장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케니스 의장의 갑작스런 실종 이후, 새롭게 추대된 에리히만 의장.
연방을 구성하는 수많은 종족 중에서도 빼어난 힘을 지닌 인간들의 대표자이자, 그 자신이 3급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대마법사인 존재.
“총사령관님께서도 아시다시피, 대마법사의 경지에 이른 자들은 대부분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지 않습니까?”
총사령관인 보리스를 대신해 정보를 취합하는 드미트리의 눈에, 의장의 실종은 분명 석연찮은 점이 있었다.
하지만.
“자네, 정치에도 관심을 두나?”
“예?”
돌아온 것은 총사령관의 냉소뿐이었다.
“진실인지 아닌지도 모를 언데드의 출몰을 의장과 엮는다니, 그것도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연방군의 군인이 말이야.”
“저, 저는….”
“그런 소문이나 확인할 시간에, 어떻게 하면 저 제국놈들을 이 땅에서 쫓아낼 것인지나 궁리하게.”
연방군의 장병들의 목숨을 쥔 녀석이, 정치 따위에나 관심을 두고 있다니.
보리스는 당황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부관을 한심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혀를 찼다.
‘이번 기회에, 싹을 확실히 잘라놔야겠어.’
전쟁이 끝나면 부관에게 군인정신을 다시 심어줘야겠다고 결심한 보리스는, 또 다시 쓰레기같은 보고서들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쐐애애액-
하늘에서 처음 듣는 소리가 들려오기 전까지는.
“…부관?”
“저도 보고를 들은 바가 없습니다.”
드미트리를 향해 고개를 돌려봤지만, 부관 역시 모르는 눈치.
그렇다면….
순간, 불길한 예감이 보리스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땡땡땡땡-
“적습! 적습이다!”
그의 예감은 적중했다.
“총사령관님, 피하셔야 합니다!”
“빌어먹을 놈들, 이젠 공중에서까지….”
부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그는 급히 막사를 빠져나갔다.
물론, 부관의 말대로 적습을 피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분명, 제국 놈들의 비행함이겠지.’
오직 제국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하늘을 나는 배.
하늘에서 이런 굉음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달리 있을 리 없지 않은가.
“뭣들하나! 어서 요격준비를 하지 않고!”
주변에서 당황해 뛰어다니는 병사들과 장교들을 향해 호통친 보리스는, 고개를 하늘로 향해 들었다.
적의 저주받을 병기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
하지만.
“뭐야, 저게.”
하늘을 올려다본 그의 머릿속엔 의문이 들어찼다.
쐐애애액-
하늘에서 굉음을 내뿜는 것은, 비행함이 아니었다.
배가 아니라, 마치 새처럼 날개를 단 조그만 무언가.
정체불명의 비행체가, 흰색 연기를 내뿜으며 그의 머리 위를 지나가고 있었다.
“비행체의 고도가 높아서 요격에는 무리가 있다는 마법사들의… 총사령관님?”
부관의 말에 정신을 차린 총사령관은 굳은 표정을 지었다.
“…빨리 의회에 보고해. 수도를 향해 정체불명의 비행체가 날아가고 있다고.”
격추할 수도 없는 높이를 자유롭게 나는 비행체라니.
저런 게 수도에 도착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보리스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정체불명의 비행체가 수도를 공격하는 일은 없었다.
연방의 수도 페르난부르크를 그대로 지나친 비행체는, 빠른 속도로 북쪽을 향해 사라졌으니까.
***
마경의 군주 중 하나, 마르바스의 화신이 불러낸 언데드 군단은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남쪽을 향해 내려가고 있었다.
“이만하면, 놈이라도 결코 무시할 수는 없겠지.”
끝없이 밀어닥치는 시체의 파도를 아래에서 내려다보며, 에리히만은 확신을 가졌다.
마기와 상극인 신성력을 사용하지 않고선 완전히 쓰러트릴 수 없는 것이 언데드이다.
‘제작자의 병기, 페르소나를 구성하는 힘 중 하나가 신성력이긴 하다만.’
죽음의 파도를 이루고 있는 언데드들 중에선 신성력에 저항할 수 있는 고위급의 언데드들 역시 존재했다.
아무리 적이 페르소나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수많은 언데드들을 모두 쓰러트릴 수는 없으리라.
‘무한히 살아나는 언데드로, 놈의 발을 묶어버리면 돼.’
계약에 따라, 마르바스의 영지에서 보내진 언데드들은 소멸할 때까지 남쪽을 향해 내려갈 터.
거기에, 언데드들에게 죽은 자들은 다시 언데드로 태어난다.
사실상 보급과 증원이 필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무리 네놈이 강하다 할지라도, 죽지 않는 자들을 상대론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다.’
생각을 마친 에리히만은 이안의 얼굴을 떠올리곤 입꼬리를 슬쩍 뒤틀었다.
하지만.
쐐애애액-
그의 생각이 착각이란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뭐지?”
하늘을 찢어놓을 듯한 굉음이 그의 귀를 가득 메웠다. 에리히만의 고개가 저절로 하늘을 향했다.
“새?”
굉음의 주인은, 아주 조그맣게 보이는 한 마리의 새.
저렇게 조그만 새가, 어떻게 이토록 우렁찬 굉음을 내뿜을 수 있는 것일까.
‘아, 아냐.’
하지만 에리히만은 곧 알 수 있었다.
‘작은 새가 아니라, 너무 높이 떠있어서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야!’
에리히만은 급히 마력을 움직였다.
우웅
클레이보이언스.
7급 마법 중 하나인 시각확장마법을 사용한 그의 눈에 나타난 것은, 두 마리의 강철로 만들어진 새.
‘틀림없다. 놈이야.’
감히, 조직의 손에 들어와야 할 관리자의 자격을 강탈해, 제작자의 유산을 손에 넣은 놈.
이안 폰 아슈타르 공작.
그 작자만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상상하지도 않은 병기들을 부릴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저건, 뭐지?’
강철새의 옆구리에 삐죽 튀어나온 무언가를 발견한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번쩍
강철새의 옆구리에 달린 막대기가 불을 뿜은 순간.
‘마력포?’
틀림없이, 옆구리에 달린 저것은 적의 병기이리라.
‘아마도, 마력포겠지.’
물론, 대마법사인 그가 가만히 손 놓고 적의 공격이 떨어질 때까지 바라볼 리 없었다.
“생추어리.”
우우웅
에리히만이 방어마법의 시동어를 외친 순간, 그의 심장에 가득 채워진 마력이 거세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곧이어 그의 손에서 뻗어 나온 것은, 언데드군단 대부분을 가릴 수 있을 만큼 거대한 크기의 결계.
대마법사만이 부릴 수 있는 3급마법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방어마법이, 그의 손에서 펼쳐졌다.
‘마력포 정도로 나를 어찌하려 하다니, 너무 쉽게 본 게 아닌가?’
마법으로 공격은 할 수 없지만, 그것은 적 역시 마찬가지다.
마력은 시전자로부터 거리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흩어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것은, 마력을 응축해서 쏘아내는 마력포 역시 마찬가지.
범위를 넓히느라 방어마법의 위력 자체는 원래보다 약해지긴 했지만.
‘어디, 뚫을 수 있을 테면 뚫어봐라.’-
결계를 펼친 에리히만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콰과과광-
강철새의 옆구리에 달린 병기는, 마력포가 아니라는 사실을.
콰과과과광-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십, 수백의 폭발이 펼쳐진 결계 위를 강타했다.
분명, 그 폭발 하나하나는 큰 위력을 가지지 못했지만.
“커, 커헉…!”
수백의 폭발이 만들어낸 충격을 홀로 감당하는 에리히만의 입에서 한 줄기 핏물이 새어 나왔다.
‘어떻게, 저 거리에 이런 위력의 공격을…!’
적이 이만한 위력의 공격을 가할 줄 알았다면, 그는 절대로 결계를 무리해서 펼치지 않았을 것이다.
적의 공격을 모두 막아내기 위해 결계를 넓게 펼쳐낸 것이, 상황이 바뀐 지금에 와선 오히려 큰 부담을 주고 있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어째서, 공격이 끝나지 않는 것이지?’
콰과광-
일반적인 마력포라면 사격과 사격 사이에 대기시간이 존재하는 것이 보통.
하지만 적의 공격은 달랐다.
마력충전시간도, 냉각시간도 없이 무한히 쏟아내는 포격 앞에서, 그는 조금씩 지쳐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콰아아앙-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한 폭발이 결계를 강타한 순간.
쨍그랑-
에리히만의 남은 마력과 함께, 펼쳐낸 결계가 조각조각 깨져나갔다.
***
[적은 공격조차 할 수 없는 거리에서, 나 혼자 강력한 공격을 쏟아붓는다니. 정말이지 무서운 무기다.]
“상황이 잘 맞았을 뿐이야.”
머릿속으로 들려오는 미미르의 말에 이안은 고개를 저었다.
AC-130은 분명 지상의 존재들에겐 악마와도 같은 병기지만, 공중에서는 거대한 표적에 불과했으니까.
이번엔 적들의 대공능력이 약했기에 통했을 뿐, 다음에도 통할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네가 마르콘의 신성력을 얻은 덕에 언데드들은 금방 정리할 수 있을 것 같군.]
“그럼, 빨리 정리하고 다음으로 넘어가야지.”
셀 수 없이 많은 폭발로 가득찬 화면을 들여다보며, 이안은 눈을 빛냈다.
[다음?]
“놈들에게 역지사지가 무슨 뜻인지 알려줘야 할 거 같아서.”
[그게 무슨 소리냐?]
주인이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내뱉자 미미르가 의문을 표했다. 이안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니까, 지금 저놈의 영토로 향하는 직통 통로가 뚫려있단 거 아냐?”
그렇다면.
“길을 열어줬으면, 들어가 줘야지. 안 그래?”
죽은 자들의 왕이 살고 있는 성으로.
벌써 세 명의 마왕을 소멸시킨 이안에게, 더이상 거칠 것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