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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139화 (140/224)

#141화

콰아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뜨거운 화염이 시야를 가렸다. 후끈하게 달궈진 바람이 이안의 피부를 할퀴고 지나갔다.

하지만 이안은 제 자리에 가만히 서서는.

“병신.”

흩어져가는 화염을 향해 중지를 뻗었다.

[운이 좋았다, 이안. 설마 마왕씩이나 되는 녀석이 저렇게 쉽게 당해줄 줄이야.]

“동감이야.”

미미르의 말에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가 조금이라도 이안을 조심스럽게 상대했다면, 그래서 이안의 공격에 정면으로 맞받아치지 않았다면.

‘패배한 건 나였겠지.’

지금의 이안이 가진 힘은 본신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허약했으니까.

그라니트 대함미사일을 구현해낼 수 있었던 것도, 위성에 저장되어있는 막대한 마력을 소모한 결과일 뿐이었으니까.

‘덕분에, 마왕 하나를 확실히 끝내버릴 수 있었지만.’

영웅급 페르소나를 손에 쥔 오러마스터는 홀로 마왕을 대적할 수 있다.

영웅급 페르소나가 낼 수 있는 최대 출력의 힘을 정면으로 받아냈으니, 아무리 마왕이라도 막아낼 수 있을 리가.

우웅

이안은 손에 쥔 표적지시기를 다시 야전삽의 형태로 바꿔나갔다.

이미 과부하의 시간은 끝나가고 있었고, 그 안에 최대한 많은 양의 마기를 땅으로부터 흡수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안이 땅 아래에 다시 삽날을 꽂아 넣으려는 순간.

‘어?’

그는 폭발이 걷힌 대지 위에 남은 보석을 발견했다.

“미미르, 저건….”

[그래, 마석이다.]

혹시나해서 이안이 묻자, 미미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 소멸한 마왕이 가진 마석인 것 같다. 용케 저 폭발 속에서도 형태를 유지했군.]

“반토막나긴 했지만.”

조각난 마석을 확인한 이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족의 근원은 마석.

마석이 무사히 남아있었다면, 마왕은 죽지 않았을 테니 차라리 다행이었다.

이안은 빠른 걸음으로 폭심지를 향해 나아갔다. 큼직하게 파인 구덩이 아래로 미끄러지듯 내려간 이안은 바닥을 굴러다니는 마석조각을 집어 들었다.

마왕이 품고 있던 마석이기 때문일까, 반으로 쪼개졌음에도 성인의 주먹만한 크기를 자랑하는 마석을 손에 쥔 이안은.

“흡마.”

넝쿨째 들어온 호박을 손아귀에 쥐곤 입꼬리를 올렸다.

***

아인 연방이 위치한 곳은 대륙 북쪽의 얼어붙은 대지.

그중에서도 가장 끝, 대륙의 북단에 위치한 곳.

“세상의 끝이란 말이 참 어울리는 곳이야. 수백 년 동안 얼어 붙어있는 땅이라니, 에잉.”

두꺼운 털코트를 껴입은 노신사가 손에 쥔 지팡이로 얼어붙은 바닥을 두드리며 툴툴댔다.

대륙이 생겨난 이래 한 번도 녹지 않았을 대지에 마법진을 새로 그리는 일은, 생각만큼 만만치 않았다.

일곱 용 중 가장 마법을 잘 다루는 그로서도 난색을 표할 수밖에 없는 고된 작업.

하지만 그 작업도 이제 마지막이었다.

끼기기긱

“이만하면 되었지 않나, 마왕?”

666개의 마법진 중, 마지막 마법진을 완성한 노인은 허리를 펴고는 옆에 선 마왕을 바라봤다.

마왕은 소년과 소녀의 경계 어딘가에 자리 잡은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마왕은 노인의 말에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부족해. 내 궁극마법을 완성시키기엔 아직 부족해.”

3급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대마법사가 직접 손으로 그린 마법진이었지만, 마경을 다스리는 군주들 중에서도 마법을 주로 다루는 마왕, 마르바스의 마음에는 영 차지 않았으니까.

“그럼 직접 하지 그러나?”

“그건 또 귀찮거든.”

말을 마친 마왕, 마르바스는 불만 어린 표정으로 손에 마기를 가득 끌어모았다.

그가 밟은 대지가 마기의 보라색으로 얼룩덜룩하게 물들어가고 있었지만, 노인은 거기에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애초에, 이렇게 될 것을 알고 불러온 것이었으니까.

스으으-

“그래도… 이 정도면 절반 정돈 뽑아낼 수 있겠어.”

마기를 힘껏 끌어낸 마왕은 눈을 살며시 감고는.

“일어나라.”

궁극마법을 시전할 준비를 마쳤다.

스으으

마왕이 가득 머금고 있던 마기가 주문의 흐름에 따라 666개의 마법진으로 뻗어나갔다.

이윽고, 거대한 원 안에 자리 잡고 있던 마법진들이 한 몸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의 백성들이여.”

우웅

그는 부정한 방법으로 불멸자의 자리에 오른 존재.

생명의 흐름을 정면으로 거스른 끝에, 삶과 죽음의 경계를 살아가는 자들의 왕.

그의 마법이 완성된 순간.

쿠구구궁

수천 년간 얼어붙어 있던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니, 그것은 흔들리는 것이 아니었다.

‘빨려 들어가고 있다.’

불길한 보라색 기운이 넘실대는 마법진 한 가운데 뚫린 검은 구멍.

그 구멍을 향해 땅거죽이 빨려 들어가는 것을 발견한 노인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궁극마법, 그중에서도 마족이 다루는 흑마법 계열의 궁극마법은 그가 쉽게 마주할 수 있는 마법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고작 땅에 구멍을 파는 것이 이 마법의 효용이었다면 궁극 마법일 리 없다.

이 마법의 진정한 효용은.

‘다른 세계와의 통로를 여는 것.’

꾸드드득

점차 크기를 넓혀가던 구멍은 곧 성장을 멈추곤 지상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마치 광산의 입구와도 같은 모습을 한 검은 통로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마기와 비슷하지만 더 싸늘한 기운.

죽은 자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사기(死氣)였다.

‘결국, 이렇게 되어버렸군.’

그 기운을 느낀 순간, 에리히만은 되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왕을 끌어들였으니, 조직에서의 내 입지도 위태로워지겠지.’

아니, 이미 그는 마왕과의 계약에 의해 영혼을 저당 잡힌 상태.

그가 죽는 순간, 그의 강인하고도 아름다운 영혼은 지루한 표정으로 마법진을 바라보는 흡혈귀의 것이 되리라.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시스템 탈취 작전이 실패한 순간, 그는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그가 가진 모든 능력을 총동원해 마왕의 화신을 이 얼어붙은 땅에 불러들인 다음, 그의 지시대로 궁극마법에 필요한 재료를 모아냈다.

이제 남은 것은.

‘이 정도에서 관리자, 그놈을 막을 수 있길 기도할 뿐.’

에리히만은 간절한 바람을 담아, 마법진에서 생겨난 통로를 향해 뜨거운 눈빛을 보냈다.

그 기대에 응답한 것일까.

쑤욱

검은 통로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아니?”

하지만 통로에서 튀어나온 존재를 확인한 에리히만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양 손에 녹슨 무기를 쥔 채 걸어 나오는 앙상한 뼈다귀.

언데드 중에서도 가장 하급의 존재, 스켈레톤이었으니까.

“이보게, 마왕! 얘기한 것과 다르지 않나!”

비록 그 숫자가 수백, 수천으로 늘어나곤 있었지만 그래봐야 스켈레톤이다.

익스퍼트, 아니 평범한 병사조차 이겨내기 힘든 최하급 중의 최하급 언데드.

궁극마법으로 불러낸 존재라고 말하기엔 너무나 초라하지 않은가.

그러나.

“귀찮게.”

“뭐?”

“잔말 말고 보고 있기나 해, 궁극마법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으니까.”

에리히만의 말을 들은 마왕은 설명 대신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볐다.

“난 영혼을 걸었네!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순간, 자신을 놀리는 것으로 받아들인 에리히만의 머릿속에 분노가 차올랐다.

하지만, 통로에서 나타난 새로운 언데드를 확인한 그는 입을 다물었다.

“리치…?”

언데드 중에서도 꽤나 고위급의 마수를 발견한 에리히만의 머리가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리치뿐만이 아니었다.

척 척

죽은 검사의 원혼이 되살아난 데스나이트와 듀라한.

타락한 영혼으로만 이루어진 몸뚱이를 지닌 스펙터와 쉐이드.

마르바스의 직계후손이라 칭할 수 있는 밤의 귀족, 뱀파이어 무리까지.

“나는 나름 진심을 다해서 도와주는 거라고. 인계를 점령했다는 업적은 마왕이라고 해서 아무나 얻을 수 있는 게 아니거든.”

통로에서 쏟아져나오는 언데드 무리를 보고 멈칫한 노인을 향해, 마르바스는 코웃음 쳤다.

‘대마법사씩이나 되는 노인네가 영혼을 맡겼으니, 나도 그만큼은 해줘야지.’

강인한 대마법사의 영혼을 대가로 그가 내어준 것은, 그를 대신해 힘을 써줄 화신과 자신의 영토로 향하는 통로.

‘절대, 인계의 일에 나서지 마라. 모든 준비가 끝날 때까진, 절대.’

비록 마경의 군주 중 가장 강한 자, 메피스토가 으름장을 놓긴 했지만.

‘대마법사의 영혼에 비하면, 그쯤이야.’

대마법사가 스스로 자신의 영혼을 마왕에게 맡기는 경우는 없다.

가만히 있으면 영혼이 저절로 굴러들어올 상황에서, 메피스토의 경고쯤은 충분히 감수할 만한 위험이었다.

‘그래, 계약대로만 하는 것일 뿐이잖아?’

곧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올 대마법사의 영혼과, 인계를 짓밟을 죽음의 군대를 떠올린 그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하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저 하늘 위, 눈으로는 볼 수도 없을 만큼 먼 곳에서.

삐- 삐-

그들을 지켜보는 눈이 있다는 사실을.

“이런 미친놈들이.”

알자스 성의 공작 집무실.

집무실 벽면에 펼쳐진 영상을 확인한 이안은 어이가 없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느 정도 기능을 복구하는 데 성공한 마도위성, 아스가르드가 보내온 영상은, 온통 살아 움직이는 뼈다귀와 시체로 가득 차 있었다.

분명, 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아야 할 부정한 존재, 언데드들이었다.

[저만한 숫자의 언데드를 부릴 수 있는 자는, 마경의 군주들 중에서도 몇 되지 않는다.]

함께 소파에 앉아 영상을 보던 미미르가 상대의 정체를 알아채곤 입을 열었다.

“예를 들면?”

[혈마왕 마르바스가 가장 유력하지. 죽은 자의 몸으로 마왕의 자리에까지 올라왔으니까.]

이안의 물음에 답한 미미르의 시선이 마법진의 중앙으로 향했다.

[저 바닥에 펼쳐진 마법진은 놈의 영토와 연결된 통로로 보인다. 중앙에 만들어진 통로에서 언데드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어.]

그리고, 그 숫자는 이미 만을 넘어선 상황.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저 시체들은 얼어붙은 땅을 넘어 인계를 향해 파도처럼 내려오리라.

[어찌할게냐, 이안.]

“막으러 가야지, 뭘.”

미미르의 물음에 가볍게 답한 이안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위성을 통해 상대의 전력은 파악한지 오래.

지금 이 순간에도 적의 숫자는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으니, 조금이라도 빨리 움직이는 게 좋으리라.

그리고.

“이러다간,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것 같긴 하지만.”

[그게 무슨 소리냐, 이안.]

“무슨 소리긴.”

이해할 수 없는 소리에 미미르가 고개를 갸웃하자, 이안은 피식 웃고는.

“연방이랑 전쟁을 벌이기 전에, 마경 정벌부터 하게 생겼단 소리지.”

전신의 마력을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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