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137화 (138/224)

#139화

지하감옥에서 나온 이안은 곧장 여섯 공작들을 통신기 앞으로 불러모았다.

-요즘 들어 너무 자주 만나는 것 같은데. 우리가 원래 이렇게 친밀한 사이는 아니지 않아?

심안공, 메네스 이그드라실은 짜증섞인 표정으로 턱을 매만졌다.

불만에 찬 것은 그녀 뿐만이 아니었다.

-신검공, 정말 다급한 일이 아니라면 이런 소집은 자제해주었으면 좋겠네. 우리 사이의 은원은 이미 지난번에 해결되지 않았나.

-누구 하나 죽일 것처럼 굴 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도움이라도 바라는 것인가?

그녀의 말에 동의한 것은 성광공과 폭권공 역시 마찬가지.

“부를 만한 일이니 불렀다는 생각은 안 하시나 봅니다?”

하지만 이안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가 할 일이 하나 있는데, 괜히 말도 안 하고 저질렀다간 뒷말이 나올까 싶어서요.”

-허어.

이안의 말을 들은 성광공, 엘로임은 질린 눈빛을 보냈다.

-지난번에는 참룡공가를 박살내더니, 이번에는 또 무엇을 하려고….

“제국과 연방이 요즘 시끄럽더군요.”

이안의 대답은 짧았다.

하지만, 그 파장은 결코 작지 않았다.

-설마, 전쟁에 개입할 생각인가?

“예.”

-끄응….

이안의 답을 들은 성광공은 분노로 붉어진 얼굴을 식히기 위해 심호흡했다.

-미친 거 아냐?

엘로임 대신 버럭 화를 낸 것은 메네스였다.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그녀는 어처구니없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그 전쟁에 끼어들어서 얻을 게 뭔데? 마족들이 아슈타르 덕에 움츠러든 것은 인정하지만, 놈들도 바보는 아니라고. 빈틈이 생겼다는 것을 아는 순간, 놈들이 다시 공국을 공격할 거란 건 뻔한 거 아냐?

-심안공의 말이 맞네, 신검. 하물며, 지금은 참룡공가도 예전 같지 않지 않은가. 누구 때문에 말이야.

심안공과 폭권공이 사이좋게 이안을 향해 질타를 쏟아냈다.

구스타프 공작에 오른 라이덴은 어쩔 줄 몰라하며 침묵을 지켰고.

-나도 그렇지만, 마족들은 끈질기고 집요하지. 이렇게 분열된 모습을 보였다간 좋지 않을 거야.

-인계의 다툼보단, 마족의 발호를 막는 게 더 중요한 일이지 않겠나?

탈마공 디아블로와 성광공 역시 이안의 말에 반대하는 것은 마찬가지.

-거, 일단 이유나 좀 들어나 보고 얘기하세나.

하지만 마르쿠스 폰 가울드, 환세공은 달랐다.

-신검공에게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안 그런가?

“맞습니다.”

이안은 자신의 편을 들어준 마르쿠스를 향해 고개를 까딱이고는.

“마경을 정벌하기 위해선, 우선 인계가 하나로 뭉쳐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니까요.”

그가 준비해 둔 주장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마경을….

-정벌한다고?

순간, 여섯 공작 모두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마경을 정벌한다.

대륙의 삼분지 일을 차지한 마족들을 몰아내고, 대륙을 온전히 인계의 것으로 만든다.

이 자리에 있는 공작들 중 그 생각을 해보지 않은 자는 한 사람도 없겠지만.

-그걸, 이유라고 하는 말인가?

-마경 정벌이라니, 터무니없는 소리.

-아슈타르 하나를 희생해서 간신히 마왕 둘을 소멸시켰어. 그러고도 아홉이나 남았다고. 정말이지 정신이 나간 거 아냐?

그 생각이 허황된 것이란 사실을 모르는 자도 없었다.

당연히, 이안의 선언을 들은 공작들의 반응은 차가울 수밖에 없었다.

이미 예상한 반응이었다.

“연합공국이 언제부터 이렇게 겁쟁이였습니까?”

그렇기에, 이안은 예상답변을 내놓았다.

-다시 말해봐, 뭐라고?

-용기와 만용은 전혀 다른 개념이라네. 그대가 부리고 있는 것은 만용이야.

-우리의 의무는 공격이 아니라 방어란 걸 아직도 모르겠나? 신들 역시 우리의 계획에 동의하지 않을 거란 말일세.

순간, 분위기가 기름부은 장작마냥 타올랐다.

그만큼 이안의 말은 참기 어려운 모욕이었으니까.

“사실 아닙니까?”

하지만 이안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마족으로부터 인계를 지킨다는 칠영웅의 후손들이, 성벽 밖으로 나가길 무서워하는 겁쟁이들이었을 줄이야. 이러니 전대 신검공께서도 홀로 마족과 맞서 싸운 게 아닙니까.”

이미 연방과의 전쟁에 대해 결정해야한다는 사실은 모두의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여러분이 칠영웅의 후손이라면, 의무 뒤에 숨지 말고 앞에서 마족들과 맞서 싸울 생각부터 하는 게 먼저 아닙니까?”

그 대신 남은 것은,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이 겁쟁이인지 아닌지 증명하는 것뿐.

-이야기가 많이 벗어난 것 같네. 우리는 지금 연방과 제국 간의 전쟁에 참여할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

“결국, 그것 역시 마경 정벌을 위한 징검다리일 뿐입니다.”

이안은 엘로임의 말을 거칠게 끊은 다음, 자신의 말을 이어나갔다.

“장벽 뒤에서 겁쟁이로 남을 것인가, 우리의 조상인 칠영웅처럼 마족들과 용감하게 싸울 것인가.”

연방과의 전쟁을 마족과의 성전으로 포장해버린 이안은, 구겨진 여섯 공작들의 눈을 차례로 마주하며 미소 지었다

“선택하십시오.”

이안의 말에 반대는 없었다.

***

일곱 공작이 동의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연합공국은 아인 연방을 향해 선전포고를 날렸다.

하지만 선전포고를 한 다음에도, 한동안 연합공국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공국과 연방 사이의 물리적인 거리도 문제는 문제였지만.

“벌써 항복해 버릴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말야.”

공국의 참전 선언을 듣자마자, 연방이 꼬리를 내릴 것이라곤 이안도 미처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연방의 힘으로는 제국 하나도 감당할 수 없지 않느냐.]

소식을 전해 들은 미미르는 책상 위에서 기지개를 펴며 말했다.

[거기에 연합공국까지 참전한다 하니 저들에겐 다른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미미르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다 국가가 멸망할 바에는, 항복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할 수도 있으니까.

단지.

“그 뒤에 일곱 용이 없다면 말이지.”

애당초, 일곱 용은 연방의 안위에 관심이 없었다.

그들의 목적은, 세상의 눈을 전쟁으로 돌린 다음 원하는 목표를 쟁취하는 것이었으니까.

공국이 참전한 지금이야말로, 그들이 원하는 페르소나의 제작시스템을 얻어내기 가장 좋을 때가 아닌가.

‘뭔가 있어.’

하지만, 아무리 이안이라도 심증만으로 항복하려는 적에게 총을 들이댈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결국, 국제관계도 신의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니까.’

신의를 배반한다면, 세계를 적으로 돌리게 된다.

아무리 그가 강하다지만, 세계를 적으로 돌리고도 무사할 수 있다고는 장담할 수 없었다.

[어쩌면, 저들이 너와 화해하기 위해 먼저 항복을 청한 것일 수도 있지 않느냐? 꼭 나쁜 방향으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주인의 표정이 심상찮은 것을 알아챈 미미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라면 곧 사절을 보내겠지.”

그리고, 일은 그의 예상대로 진행되었다.

우웅

-공작 전하, 아인 연방에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역시.”

통신마법기를 통해 들려온 소식에, 이안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안을 찾아온 것은 일곱 용의 사절이 아니었다.

-자신이 아인 연방의 의장이라고….

“뭐? 이름이 뭔데?”

-케니스라는 이름의 묘인족입니다. 들여보낼까요?

“들여보내. 지금 바로.”

그가 분신을 연방에 보냈을 때, 에리히만의 저택 지하에서 만난 묘인족.

시녀의 말을 듣자마자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고, 곧 묘인족 하나가 그의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오랜만이야.”

무사히 살아 돌아온 케니스를 향해, 이안은 가볍게 인사를 건넸지만.

“맙소사, 정말 마왕토벌자였을 줄이야.”

그에게 돌아온 것은 감사 대신 경악이었다.

“알고 찾아온 것 아니었나?”

이안은 놀라 입을 떡 벌린 케니스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봤다. 그녀가 정신을 차리곤 고개를 저었다.

“확신한 건 아냐. 당신의 예전 초상화랑 그때 만났을 때 모습은 너무 달랐으니까.”

[또 시작이로군. 차라리 초상화를 새로 그려서 대륙에 뿌리는 게 낫겠어.]

애오옹

케니스의 말에 미미르가 안타까운 듯 울어댔지만, 이안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래서, 날 찾아온 이유는? 설마 얼굴이나 보자고 온 것은 아닐 거고.”

그의 관심사는, 그녀가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에 대한 것일 뿐.

‘뭐, 뻔하지.’

권력을 잃은 권력자가 타국에 와서 부탁할 게 얼마나 있겠는가.

그리고 예상대로.

“연방을 구해줘.”

답을 들은 이안은 피식 웃었다.

“난 솔직한 걸 좋아하는데.”

“뭐?”

“그냥, 빼앗긴 의장 자리를 다시 차지하고 싶은 거잖아? 연방을 구해주긴 무슨.”

권력에 대한 권력자들의 집착은 추악할 정도로 집요하고 강렬하다.

그 집착을 전생에서부터 마주해온 이안에게, 케니스의 말은 그저 가면처럼 여겨질 수밖에.

“그렇게 말해도 상관없다.”

하지만 케니스는 고개를 젓고는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이대로 있다간, 연방의 국민들은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 테니까.”

“그건 또 무슨 개소리야?”

상대의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이안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연방의 의장이 항복문서에 서명만 한다면, 연방은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에리히만의 짓인가?”

그녀의 심상찮은 눈빛을 본 이안은 일곱 용의 하수인을 떠올렸다.

“그걸 어떻게…, 맞아.”

에리히만의 이름이 나오자, 케니스는 놀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항복선언은 연막일 뿐이야. 지금 연방에선 최후의 공격을 준비하고 있어.”

“그럴 거면 굳이 항복 따윈 하지 않아도….”

케니스의 말에서 이상함을 느낀 이안은 즉각 반박하려 했지만.

‘잠깐.’

순간, 그는 깨달았다.

“…시간을 벌 필요가 있는 거군. 절대 막을 수 없는 한 방을 준비하기 위해서.”

그렇다면, 이안도 납득할 수 있었다.

항복선언은 단지 그 무언가를 준비하기 위해 시간을 벌려는 수작일 뿐이란 소리였으니까.

하지만 놈들이 무엇을 준비하는 지에 대해선, 이안 역시 예상하지 못했다.

“맞아, 놈은 흑마법을 준비하고 있어.”

“…흑마법? 마족도 아닌 주제에?”

흑마법은 마법의 신으로부터 마법을 훔쳐 배운 마족들이 마력 대신 마기를 사용하는 것.

선천적으로 몸에 마기를 가진 마족만이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을, 어찌 한낱 인간이 사용할 수 있단 말인가.

그의 의문에 케니스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난 지하에서 마족을 봤어. 아니, 어쩌면 마왕일지도.”

“맹세할 수 있어?”

“물론. 마왕인지까진 모르겠지만, 마기를 풀풀 뿌려댔던 건 확실히 기억하고 있으니까. 내가 당신을 괜히 언데드라고 생각했던 게 아니라고.”

“허.”

말을 마친 묘인족이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이안은 황당한 표정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저 말이 사실이라고?’

설마, 일곱 용이 진짜로 마족과 관련되어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물론.

“나쁘진 않네.”

이안에게 문제 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