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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136화 (137/224)

#138화

에밀리 아슈타르는 이안의 주 관심사 바깥에 자리한 존재였다.

진짜 이안에겐 자신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준 감사한 존재였겠지만, 이안의 몸을 차지한 민혁에겐 그저 남의 어머니일 뿐이었으니까.

그녀가 단순히 평민의 딸이 아니고, 그 뒤엔 무언가 숨겨진 이야기들이 있다는 사실은 그동안의 일들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지만.

“허.”

메놀르프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이안은 생각조차 하지 못한 말들이었으니까.

“이봐, 증거 정도는 갖고 그런 말을 하는 거겠지?”

그 말을 들은 이안의 첫 반응은 싸늘했다.

“여긴 아슈타르고, 당신은 아슈타르의 주인이 가진 핏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으니, 당신 목 하나 정도로 끝날 이야기는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을 테고.”

꿀꺽

그 말을 들은 메놀르프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여기서 잘못 이야기했다간.’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과 함께 지하감옥에 수감된 조직원들까지 죽게 될지도 모른다.

메놀르프가 말을 꺼낸 순간, 그는 목숨을 건 도박판에 앉은 것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내 생각이 맞다면.’

이안 폰 아슈타르.

신검의 주인이자 마왕토벌자를 조직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 희박한 가능성을 위해, 메놀르프는 마음을 진정시키곤 입을 열었다.

“증거는 없소.”

“…뭐?”

“당연한 소리 아니오? 그건 조직에서도 일종의 소문 같은 것이니, 증거가 있을 턱이 없지.”

“너무 당당한 거 아냐?”

당당하다 못해 뻔뻔하기까지 한 메놀르프의 말에, 이안은 어처구니가 없어 쏘아붙였다.

“증거는 내가 아니라 공작, 그대가 가지고 있겠지.”

하지만 메놀르프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대의 어머니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을 한번 찾아보시오. 내 말이 확인이 된다면, 그때 다시 이야기하지.”

말을 마친 메놀르프는 애써 여유로운 웃음을 지었다.

이안은 잠시 생각에 잠겼지만.

‘확인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자신을 교란하기 위한 술책일 수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칼을 쥔 자는 이안 자신이었으니까.

“사실이 아니라면, 그 책임은 너희 모두가 져야 할 거야.”

“우선 확인부터 하고 오시오. 어차피 나는 도망갈 수도 없지 않소?”

말을 마친 메놀르프는 출입문의 쇠창살을 가리키며 웃었다.

[이안, 누가봐도 시간을 끌기 위한 술책이다. 굳이 넘어가 줄 필요는 없어.]

“나도 알아.”

독방을 나선 이안의 옆을 걷던 미미르가 걱정스런 투로 입을 열자, 이안은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어차피, 확인하는 건 그리 오래 걸리는 게 아니니까.”

말을 마친 이안은 바깥으로 연결된 계단을 향해 발을 바삐 옮겼다.

“공작 전하를 뵙습니다!”

이안이 지하감옥을 나서자, 입구를 지키던 경비병들이 무릎을 꿇고 예를 갖췄다.

“됐고.”

이안은 귀찮은 표정으로 손을 내저어 예를 거두게 하고는, 손가락을 뻗어 경비병 하나를 가리켰다.

“너.”

“네, 전하.”

“가서 오베르트 형님을 불러와. 내 집무실로.”

오베르트 아슈타르.

이안의 의문을 해소시켜 줄 사람은 그뿐이었으니까.

***

“그 얘기를 한 지가 언젠데, 이제야 찾아올 줄은 몰랐구나. 동생아.”

이안의 부름을 받고 찾아온 오베르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안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워낙 바빴으니까요.”

영웅제, 마왕과의 싸움, 제국에서의 수 많은 싸움들까지.

남의 어머니의 배경까지 뒤적거릴 만큼 한가한 시간은 분명 아니었으니까.

“아무리 바빴다지만,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궁금해하지도 않더냐? 이럴 줄 알았다면 애당초 말해주지도 않았을 터인데….”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오베르트의 눈엔 이안이 이상한 놈으로 보일 뿐.

이안의 마음을 흔들기 위해 던졌던 말이긴 했지만, 이토록 아무런 효과도 거두지 못할 줄은 그 역시 상상조차 하지 못했으니까.

“뭐, 이왕 하신 말씀인데 마저 해주시죠.”

하지만 이안은 그게 뭐 어떻냐는 투였다.

‘나도 우리 어머니가 마음에 안 들긴 하다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정이라고는 눈곱 만큼도 없어 보이는 이안을 보며 오베르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너희 어머니, 에밀리 공작부인은 제작자의 혈통을 가지고 있다.”

첫 마디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건 어떻게 안 겁니까?”

제작자의 그림자는 연합공국에, 아니 전 대륙에 깊게 드리워져 있다.

그만한 영향력을 지닌 존재가 자신의 후손도 남기지 않고 죽었을 리 없다만은.

“나도 아버지께 들은 말이다. 아버지께서 공작부인을 처음 만났을 때 공작부인께서 하신 말이라더군.”

“그걸 아버지께서 곧이곧대로 믿을 리가 없어보입니다만.”

처음 보는 여자가 자신이 제작자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데, 믿는 사람이 이상한 일 아닌가.

이안의 말에 오베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아버지께서는 곧장 검증 절차에 들어가셨다.”

“검증?”

“공작부인을 리아나로 데려가셨지.”

“허.”

오베르트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들은 이안은 헛웃음을 지었다.

고작 핏줄을 검증하기 위해, 자신의 어머니를 페르소나의 자격자로 선발했다는 말이 아닌가.

“공작부인의 말이 사실이라면, 구현의 방에서 무언가 변화가 일어날 테니까. 검증 방법으로는 이만한 게 없었지.”

“용케 소문이 나지 않았군요. 그거, 믿어도 되는 이야기입니까?”

형의 말을 모두 들은 이안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만큼, 오베르트의 이야기엔 너무나 많은 허점들이 있었다.

하지만 오베르트는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의 입으로 직접 들은 이야기다.”

“아니, 형님은 그 핏줄을 이은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 말에 이안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오베르트의 말이 사실이라고 쳐도, 이렇게 중요한 이야기를 자신만이 모른다는 게 말이 되는가.

‘어쩌면.’

그의 이야기 역시, 이안을 혼란스럽게 하기 위한 술책일지도 모른다.

“그때의 네겐 이 이야기를 들을 자격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이안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오베르트는 코웃음을 쳤다.

“이건 가문 내에서도 아는 자가 몇 없는 사실이다. 조세핀도 말이지.”

“이제 조금 납득이 되는군요. 그래서 비밀서고의 기록도 모두 지워버린 겁니까?”

“그건 나도 모르겠다만, 그랬다면 아마 아버지의 뜻이었겠지.”

말을 마친 오베르트는 에드너를 떠올리곤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안은 그 말을 듣곤 납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형님. 그럼 다음에 또 뵙죠.”

“멋대로 불러놓고선, 볼일이 끝나니 가라는 게냐?”

이안의 축객령을 들은 오베르트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안은 미안해하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바쁜 일이 좀 생겨서요.”

오베르트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순간.

그의 머릿속에 한 가지 떠오르는 게 있었으니까.

***

“이틀이라. 생각보다는 금방 돌아왔구려, 공작.”

메놀르프는 이틀 만에 지하감옥으로 돌아온 이안을 반갑게 맞이했다.

“그래, 확인은 끝냈소?”

“물론.”

“그럼….”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자, 메놀르프는 기대 어린 눈빛으로 이안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기대는 배신당하지 않았다.

“그쪽의 말이 사실이란 건 확인했어.”

오베르트와의 대화를 마친 이안은 곧장 공작의 권한을 사용해 비밀서고를 다시 뒤져보기 시작했다.

물론 그의 생물학적 어머니인 에밀리 아슈타르에 대한 기록은 대부분 지워져 있었지만.

‘지워진 부분들을 맞춰보면, 연관성이 있어.’

지워진 정보와 오베르트의 말을 엮어본 이안은, 곧 형의 말에 신빙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최소한 거짓말은 아닌 것 같더라고. 거짓말이었으면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들었을 텐데 말야.”

마지막 확인을 위해, 이안은 일부러 싸늘한 목소리로 위협했지만.

“그럼, 이제 우리 조직에 대해 한번 이야기해 보는 게 어떻겠소?”

메놀르프는 여유로운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속내는 달랐다.

“공작과 우리 조직이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게 아니란 사실을 알았으니, 이제 공작께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어 보이오만.”

메놀르프가 이 지하감옥에서 살아날 길은, 결국 이안을 조직에 포섭하는 것뿐이었으니까.

“그대의 어머니께서는 조직에서 특별히 키운 관리자의 후보 중 하나였다고 들었소.”

“후보 중 하나라.”

자신 외에도, 관리자의 자리를 탐내는 자들이 꽤나 있다는 말이었다. 메놀르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작자의 혈통을 가진 자들 중에서도 특히 뺴어난 자질을 가진 자들이었지. 개중 관리자의 권한을 얻는 데 성공한 자는 단 하나도 없었지만.”

‘나만 빼고 말이지.’

그 말을 듣고있던 이안은 웃음을 억지로 참아냈다.

오러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그에겐 이미 1급 관리자의 권한이 주어져있었으니까.

“그래?”

하지만 이안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눈을 끔뻑였다.

메놀르프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설명을 이어나갔다.

“제작자는 자신의 혈통을 가진 자들만이 관리자로 선발될 수 있도록 제약을 걸어놓았소.”

자신이 직접 낳고, 기른 자들만이 자신의 유산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당연히, 우리 조직의 최상위층은 모두 계약자의 혈통을 타고난 자들이지, 공작 그대처럼.”

순간, 메놀르프는 이안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제작자의 혈통을 가진 그대라면, 조직에서도 분명 환영할 거요. 운이 좋다면, 관리자의 권한이 그대에게 갈 지도 모르는 일이지.”

손을 내민 순간, 메놀르프는 긴장했다.

연합공국의 일곱 공작 중 하나이자, 마왕토벌자인 공작이 조직에 합류한다면.

‘조직에겐 큰 행운이 될 것이다.’

그리고, 공작을 조직에 포섭하는 데 성공한 메놀르프의 영향력 역시 더욱 높아질 터.

일생일대의 기회 앞에서, 메놀르프는 애써 초조함을 숨긴 채 이안의 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이안의 입에서 나온 것은 답이 아니었다.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말이야.”

“무엇이오?”

“관리자의 권한을 얻게 된다면, 조직에선 어떤 대우를 받을 수 있지?”

‘관심이 생긴 모양이군.’

이안의 질문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메놀르프는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어쩌면, 조직의 우두머리를 노릴 수도 있겠지. 관리자의 직책을 얻었다는 것은, 곧 제작자의 모든 것을 이은 후계자라는 의미이니까.”

메놀르프는 이안의 구미가 당길만한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그렇단 말이지?”

그 말을 들은 이안이 씨익 웃은 순간.

‘뭐지?’

그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프레이야.”

그는 곧 불안감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저, 정령?”

신검의 주인이, 정령까지 부릴 줄이야.

이안의 부름과 동시에, 허공에서 나타난 정령을 본 메놀르프는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그건 둘의 대화에 비하면 매우 사소한 일일 뿐이었다.

[네, 관리자님.]

“내가 누구지?”

[페르소나 제작시스템의 1급 관리자 권한을 가지고 계신 이안 폰 아슈타르 님이십니다.]

“뭐, 뭐라고….”

메놀르프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둘이 나눈 대화는 그만큼 충격적이었으니까.

“메놀르프, 선택해.”

놀란 제독의 얼굴을 마주한 이안은 제안했다.

“일곱 용을 섬길 것인지, 나를 섬길 것인지.”

적이라 할지라도, 이용할 수 있다면 이용한다.

계획을 깔끔히 정리한 이안의 미소가 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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