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이안이 리아나에서 벌인 전투를 통해 획득한 전리품의 양은 상당했다.
박살난 유사 MK.1 전차 열 다섯 대와 일곱 용의 조직원이 지니고 있던 개인무장들.
그리고 그 모든 물자를 리아나까지 실어나른 다섯 척의 수송선까지.
고철로 팔아치워도 제법 값이 나갈 만한 양이었지만.
“자, 이만하면 어때?”
이안에게는 고철도 금값에 사줄 호구가 하나 있었다.
“이, 이건?”
아슈타르의 해안도시 라프트.
이안의 부름을 받고 라프트의 부두에 나타난 난쟁이, 바몬트는 눈을 부릅떴다.
“배를 강철로 만들었는데, 물 위에 떠 있다고?”
강철이 물에 가라앉는다는 것은 어린 아이도 알고 있는 상식.
물론 마법의 힘을 빌린다면 물 위가 아니라 하늘 위로도 띄울 수 있겠지만.
‘마력의 힘으로 떠 있는 것은 아냐.’
마력이 느껴지긴 했지만, 이토록 거대한 강철의 배를 물 위에 뜨게 만들기엔 터무니없을 만큼 적은 양.
바몬트는 흥분해 벌개진 얼굴로 이안을 바라봤다.
“인간, 설마….”
“너희에게 딱 필요한 물건인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
이안이 씨익 웃으며 입을 연 순간.
꿀꺽
군침을 삼킨 바몬트의 눈이 욕망으로 붉게 달아올랐다.
‘배를 만들어서 띄울 수 있을 만큼 얇은 강판이라니.’
그 정도의 강도와 가공기술을 쉽게 얻을 수는 없겠지만, 단순히 가지고 연구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
거기다,
‘고철이긴 하지만, 저 강철괴물은….’
눈앞의 인간이 페르소나로 구현해 부리던 녀석과 비슷하게 생기지 않았는가.
분명, 새로운 병기를 만들고자 했던 자신들에겐 둘도 없는 보물이었다.
단지.
“…공짜는 아니겠지?”
“당연하지. 설마 맨입으로 가져갈 생각이었어?”
역시나.
이안의 말을 들은 그는 김샌 표정을 지었다.
“전투에 데려가 준다는 약속도 지키지 않아놓고선…!”
“그건 네가 거부한 거잖아. 전투를 벌일 때마다 기절해버리는데 뭘 보겠냐마는….”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이안의 말에 발끈한 바몬트는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아, 걱정 말라고. 어차피 내가 원하는 건 별 게 아니니까.”
이안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그래?”
“오히려 너희가 원하는 걸지도 모르지.”
이안은 의심스러워하는 바몬트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고철이라 말하기에도 민망할 만큼 박살난 전차를 가리켰다.
“복원해 봐.”
“…뭐?”
순간, 이안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바몬트는 굳어버렸다. 이안이 설명을 이어나갔다.
“알아서 잘 복원해 보라고. 복원과정에서 알아낸 정보들은 모두 나와 공유하고.”
“정말, 그것만으로 되는 것인가?”
너무나 좋은 조건이었다.
강철의 괴물들을 만들어낸 기술을 습득해야하는 난쟁이들에게, 저 고철덩어리를 복원하는 것은 천금과도 같은 기회였으니까.
그 과정에서 알아낸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곤 하지만, 그들이 얻을 이익에 비하면 수수료 수준도 아니었다.
“그렇다니까? 뭐, 내 쪽에서 지원해줄 일은 없겠지만. 그 정돈 너희끼리 해결할 수 있지?”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만….”
그들이 아슈타르에 돈이라도 쥐어줘야 할 판인데, 그깟 복원비용쯤이야.
이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몬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라도 이안의 맘이 변하기라도 한다면 곤란했으니까.
하지만.
“아, 그리고 하나 더.”
“또, 뭘 원하는 건가.”
이안이 깜빡했단 표정으로 손가락 하나를 더 펴자, 바몬트가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본 이안은 씨익 웃고는.
“혹시, 남는 광산 없어?”
또 다른 제안을 꺼내 들었다.
***
바몬트와의 이야기는 순조로이 끝을 맺었다.
서로가 원하는 것을 얻은, 만족스러운 거래를 마친 이안의 표정은 한결 여유로워진 상태였다.
그리고.
끼이익
이안은 다음 거래 상대를 찾아 지하감옥 독방의 문을 열었다.
“어때, 지낼만 하지 않아? 나름 독방 중에선 괜찮은 편인데.”
이안의 말 대로, 알자스 성에 새롭게 마련된 지하감옥의 독방은 일반적인 감옥의 형태와 달랐다.
질 좋은 가구와 침대로 꽉꽉 채워진 독방은, 제 의지대로 나가지 못한다는 점을 뺀다면 사람 하나 살기에 부족함 없는 곳.
이안의 말에, 탁자에서 책을 읽고 있던 중년의 사내가 책을 덮곤 고개를 돌렸다.
강철의 함대를 지휘하던 제독, 메놀르프였다.
“무슨 일이오?”
“얘기나 해볼까 해서.”
“허.”
이안의 말을 들은 메놀르프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처음 조우했을 때의 분위기와는 달리, 이안은 그들에게 어떠한 고문도 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그들을 지하감옥에서 밥이나 축내게 할 리 없지 않은가.
“…일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어떠한 정보도 제공하지 않을 거요. 난 조직을 배신할 생각이 없으니까.”
말을 마친 그는 단호한 표정과 함께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 말에 이안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주인인 양 침대에 걸터앉았다.
“너희 정보를 캐겠단 건 아냐. 그냥 역사 이야기나 좀 하자는 거지.”
“역사?”
뜬금없는 이안의 말을 들은 메놀르프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이안은 곧장 떡밥을 던졌다.
“너희 조직은 제작자와 관련이 깊지. 안 그래?”
상대가 물지 않을 수 없는 떡밥을.
“그걸 어떻게….”
예상대로였다.
이안의 말에, 메놀르프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설마, 너희 조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거라고 생각한 거야?”
“…우리 조직의 정체를 아는 자는 대륙 전체를 뒤져도 몇 되지 않을 테니까.”
자신들의 뒤에 제작자가 있다는 사실은, 조직의 정보들 중에서도 극비 중의 극비.
그 비밀정보를, 어째서 조직에 속하지도 않은 아슈타르 공작이 알고 있단 말인가.
그 의문을 해소할 시간도 없이, 이안의 질문은 계속되었다.
“그래서, 너희는 제작자와 무슨 관련이 있는 건데?”
이안이 제작자가 남긴 책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일곱 용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았다.
왜 일곱 용인지, 어째서 제작자를 추종하는 것인지에 대해선 이안도 알 도리가 없었으니, 그 정보를 가진 자에게 물어보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지 않은가.
“그건….”
제독은 순간, 이야기를 해도 되는 것인지 고민했다.
별 이야기는 아니다.
이미 자신들이 페르소나의 제작자와 관련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거기에서 유추하기는 쉬운 일이었으니까.
“내 생각이 맞다면, 너희는 제작자가 남긴 유산들을 찾고 있어.”
그의 생각대로, 이안은 자신이 짜맞춰낸 사실들을 밝혀내기 시작했다.
“지난번 제국에서도 그렇고, 리아나에서도 그렇고. 어쩌면 알자스 지하에 보관되어있던 셰도우베인도 그중 하나였을지 모르겠는데?”
“….”
“그럼, 너희의 목적은 뻔하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메놀르프를 향해 이안은 잠시 말을 멈추곤 미소를 지었다.
“제작자의 모든 것을 계승하는 것.”
그렇게 생각한다면, 일곱 용이 지금껏 벌여온 일들을 납득할 수 있었다.
“계승해서 뭘 하려는 지까진 모르겠지만, 이 정도는 어린아이라도 추측할 수 있어. 굳이 입 다물고 있을 필요도 없다고.”
자신의 말을 끝낸 이안은 침대에 앉은 채로 팔짱을 꼈다.
말이 끝나고, 입을 다물고 있던 메놀르프는 간신히 한 마디를 꺼낼 수 있었다.”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군. 굳이 내게 물어볼 필요도 없어 보이는데.”
“확인 차원에서지. 그쪽 반응을 보니 내 말이 얼추 맞는 것 같고.”
체념한 표정을 짓는 메놀르프의 앞에서 이안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럼, 너희는 제작자와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있는 것일 테고….”
이제부터는, 이안도 모르는 영역을 파고 들어가야 한다.
그것을 위해.
“너흰, 관리자의 권한을 얻으려고 하는 건가?”
이안은 다시 한번 미끼를 던졌다.
그리고.
“…그걸 어떻게?”
제독은 미끼를 물어버렸다.
“제작자의 뒤를 이으려면, 당연히 제작자가 남긴 시스템을 장악하는 게 먼저겠지.”
페르소나의 제작시스템은, 제작자가 남긴 어떠한 유산들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것이니까.
“그것을 위해선, 페르소나 시스템을 직접 통제할 수 있는 관리자의 권한이 필요할 테고.”
“어떻게, 그렇게 자세하게 알고 있는 것이지? 이건 조직의 최상위 계층만 알고 있는 사실인데….”
이안이 쏟아낸 말을 귀에 담은 제독은 경악했다.
아슈타르 공작이 지금껏 말한 이야기들은, 조직의 조직원들도 잘 알지 못하는 사실들.
‘나 역시 리아나를 탈환하기 위한 작전에 투입될 때 겨우 들었던 이야기들인데….’
조직의 탄생과 관련된 비밀들이 신검의 주인 입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으니, 그로서는 놀랄 수밖에.
그리고.
“서, 설마.”
메놀르프의 머릿속에, 조직의 숨겨진 비사 하나가 떠올랐다.
“공작, 모친은 잘 계시오?”
“…그건 왜 물어보는데?”
여기서 부모님 안부를 묻는다고?
갑작스런 메놀르프의 물음에, 이안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어머니는 돌아가셨지, 오래전에.”
전생이건, 현생이건 그 사실은 마찬가지였다.
갑작스런 인신공격을 받은 이안의 오른손은 어느새 허리춤의 홀스터를 향해 슬금슬금 움직였다.
“혹시, 모친의 성함이 에밀리이지 않소?”
하지만 말을 꺼낸 메놀르프의 표정은 진지하기 짝이 없었다.
‘뭔가 있어.’
순간, 이안의 촉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맞는데. 그건 왜 물어보는 거야?”
굳은 표정으로, 그는 천천히 대답했다.
그리고.
“오, 맙소사.”
이안의 대답을 듣자마자, 그의 입에선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뭐야, 갑자기.”
타지에서 동향사람이라도 만난 것 같은 메놀르프의 반응에서 찝찝한 무언가가 느껴지자, 이안은 미간을 찌푸렸다.
놀란 표정으로 메놀르프가 입을 열었다.
“그럼, 당신은 모친이 어떤 분이었는지도 모르겠군.”
“우리 어머니는 평민이셨어. 당신, 우리 어머니를 잘 아는 것처럼 말하는데….”
“잘 알고 말고. 이제야 좀 어떻게 된 일인지 이해가 되는군.”
이안의 말을 끊은 메놀르프의 표정은 경악과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반갑소, 동지.”
“동지? 그게 무슨 개소리야?”
메놀르프의 헛소리를 들은 이안의 표정이 굳어졌다.
‘설마….’
그의 머릿속에서, 여태껏 생각해본 적 없는 가능성 하나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직도 모르겠소?”
이안의 말에 제독, 메놀르프는 코웃음을 치고는.
“당신은, 우리 일곱 용의 핏줄을 이었단 말이오.”
가능성을 확정으로 만들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