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놈들의 목표는 리아나야.’
이안이 이렇게 판단한 것엔 이유가 있었다.
‘일곱 용은 제작자와 관련되어있어.’
그가 알고 있는 정보를 모두 조합해보면, 일곱 용은 시스템 제작자를 추종하는 자들이다.
그렇다면, 놈들에게 가장 가치있는 목표가 무엇인지는 뻔하지 않은가.
‘제작자가 직접 만들어낸 페르소나의 제작시스템.’
설사 놈들의 목표가 그것이 아니더라도, 확인해볼 필요는 있었다.
이안은 팔짱을 낀 채 눈을 감은 프레이야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관리자님.]
프레이야의 입이 열렸다.
[리아나 주변에서 수상한 움직임이 감지됐어요.]
“규모는?”
[다섯 척이 바다를 통해 오고 있어요.]
“바다?”
프레이야의 말을 들은 이안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리아나는 바다로 침입할 수 없는 곳이잖아?”
리아나를 둘러싼 수많은 암초와 소용돌이들은, 바다에서의 어떠한 접근도 허용하지 않았으니까.
그렇기에, 아슈타르 공작가에서도 리아나에 진입하기 위해 굳이 비행함을 이용하지 않았던가.
“저 놈들이 그걸 모르고 접근할 리는 없을 거고.”
단체로 자살하러 오는 게 아닌 이상에야, 무언가 방법을 가지고 왔을 터.
“프레이야, 리아나쪽 화면을 띄워줄 수 있어?”
[네, 관리자님. 잠시만요.]
이안의 요청을 받아들인 프레이야는 손을 휘저었다.
팟
그러자, 이안의 눈앞에 리아나의 바다를 보여주는 영상이 떠올랐다.
바다 위에서 다가오는 것은, 검게 칠해진 배.
[강철로 만든 배라니, 저게 어떻게 떠 있을 수 있는 거지? 마법을 사용한 것 같지도 않은데….]
이안과 함께 화면을 바라보던 미미르는 배의 정체를 깨닫고는 눈을 부릅떴다.
마법도 없이, 강철로 만든 배가 어떻게 바다 위를 떠다닐 수 있는 것인지 그의 상식선에선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안은 놀라지 않았다.
‘수송선처럼 보이는데, 저런 게 있었나?’
앞으로 열리도록 설계된 평평한 함수는 전형적인 상륙함의 모습이었지만, 그 형태는 이안이 알고 있는 어떤 국가의 상륙함들과도 달랐다.
‘독자적인 설계인가.’
이안은 일곱 용에 대한 평가를 조금 높였다.
지구의 병기들과는 다른 독자적인 형태의 병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은, 새로운 위험요소가 되기에 충분했으니까.
‘자, 이제 어떻게 상륙할 셈이지?’
이안은 영상의 수송선들을 향해 집중했다.
그리고.
우우웅
방법이 있을 거란 이안의 예상은 적중했다.
파앗
마력의 푸른 빛으로 뒤덮인 강철의 군함들은, 마치 날치처럼 하늘로 도약해 소용돌이를 뛰어넘었다.
“뭐야, 저럴 거면 왜 바다로 온 거야?”
물론, 이안이 보기엔 굉장히 비효율적인 방법이었지만.
[마력엔진의 출력이 부족한 것일 테지. 비행함에 들어가는 엔진을 직접 만들어낼 수 있는 나라는 오직 제국과 공국뿐이니까. 그래도 나름 머리를 썼군.]
그 모습을 본 미미르는 이해할 수 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곤 이안을 바라봤다.
[그보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생각이냐? 이대로라면 구현의 방이 위험하다.]
구현의 방과 그 안에 탑재되어있는 페르소나 제작시스템은 공국, 아니 인계 전체의 보물.
자칫 부서지거나 빼앗기기라도 한다면, 인계는 멸망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질 게 분명했으니까.
“그럴 리가.”
이안은 고개를 내젓고는 마력을 끌어올렸다.
우웅
신검 레온하르트의 주인만이 내뿜을 수 있는 황금색의 오러가 이안의 몸을 뒤덮었다.
“오라.”
이안은 그대로 페르소나의 시동어를 외웠고.
“미미르.”
집무실은 곧 환한 빛에 휩싸였다.
***
“됐어.”
강철의 함대가 하늘로 날아오른 순간, 함대의 제독인 메놀르프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조직의 숙원이었던 페르소나의 제작시스템이 잠들어있는 섬, 리아나.
제작자의 유지를 잇는 자들의 모임인 조직이, 제작자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을 탐내지 않을 리 없지 않은가.
‘하지만, 장애물이 너무 거대했지.’
가장 문제는, 리아나를 보호하듯이 둘러싼 소용돌이들.
아무리 강철로 만들어진 배라고 한들, 배를 단숨에 뒤집어버릴 힘을 가진 소용돌이 앞에선 꼼짝없이 침몰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돌아가면, 발굴자에게 고맙다는 말이나 전해야겠군.’
제독은 발굴자를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제작자가 남긴 기술과 제국으로부터 훔쳐 온 기술을 응용해 만들어 낸 마력엔진.
녀석의 도움으로 도약한 강철의 함대는, 거대한 소용돌이를 너무나 손쉽게 뛰어넘지 않았는가.
“총원 상륙준비.”
“총원 상륙준비!”
제독이 입을 열자, 함교의 부관들이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바쁘게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장애물을 뛰어넘었으니, 시스템을 확보하는 것은 자신들의 차례였다.
쿵
소용돌이를 뛰어넘은 수송선들은 암초로 가득한 해안 위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배 바닥을 그대로 드러낸 상태이니, 다시 바다로 돌아가기는 어려워보였지만.
‘시스템을 차지할 수 있다면, 그런 건 아무런 상관도 없지.’
그리고, 그들이 데려온 병력엔 그만한 힘이 있었다.
“전 함, 상륙준비 완료했습니다.”
“좋아.”
부관의 말이 끝나자, 제독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지금부터, 그가 내릴 명령은 대륙의 역사에 길이길이 새겨질 한 마디였으니까.
“전 함, 상륙 개시.”
애써 흥분을 가라앉힌 제독이 진중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린 순간.
“상륙 개시!”
기이잉
뱃머리에 달린 평평한 해치가 굉음과 함께 열리기 시작했다.
활짝 열린 함수 위로 보이는 것은, 육지에 발을 딛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전차와 병사들.
쿠르르릉-
제독의 상륙 명령과 함께, 일곱 용의 신병기, 탱크들이 섬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울퉁불퉁하고 날카로운 암초로 가득한 지형이었지만, 바퀴 대신 달린 무한궤도는 그 모든 것을 짓밟으며 앞으로 천천히 전진했다.
와아아아-
그 뒤를 이어 조직원들이 상륙을 시작했다. 개중에는 시스템을 장악하기 위해 소집된 마법사들 역시 포함되어있었다.
아무도 없는 섬의 중앙을 향해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가는 그들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어 보였다.
‘되었다.’
제독은 시스템을 향해 돌진하는 병사들을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제작자여, 당신의 유지는 우리가 이어나가겠습니다.’
그가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제작자를 떠올리던 그 때.
“음?”
하늘을 바라보던 그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처음에는 새라고 생각했지만.
쐐애애액-
새의 울음소리와는 너무도 다른 굉음이 그와 부관들의 귓가를 가득 메웠다.
“전원 요격준비!”
순간, 불길한 낌새를 눈치챈 메놀르프는 급히 명령을 내렸다.
“요격준비!”
왜애앵-
시끄러운 경보음과 함께 부관들이 하늘의 무언가를 요격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제독의 굳은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용인가?’
본래 시스템의 수호자 역할을 맡은 자들이었지만, 현재는 아슈타르 공작령에 몸을 의탁한 불멸자들.
그들이라면, 대공능력이 부족한 함대에 충분히 위협적인 존재이니까.
하지만.
“저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은 용이 아니었다.
생전 처음 보는 괴조가 점점 거대해지는 것을 확인한 메놀르프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들어찼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콰과과광-
지상에서 울려 퍼지는 굉음에, 하늘로 향했던 그의 시선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아, 아니.”
활활 타오르는 불덩이로 변해버린 전차들.
잠시 눈을 뗀 사이 잘 타는 장작으로 변해버린 신무기들을 본 그는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지만 놀랄 일은 지금부터였다.
부아아아앙-
거대한 벌이 날개짓을 한다면 이런 소리가 나지 않을까.
하지만, 그 날개짓의 후폭풍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처참했다.
콰과과광!
굉음과 함께 날아든 괴조가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함성을 지르며 돌격하던 조직원들의 잔해뿐.
“무, 무슨.”
눈 앞에 펼쳐진 처참한 광경 앞에서, 메놀르프는 말을 잊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일 리 없었다.
부아아아앙-
다시 돌아온 괴조가 예의 그 굉음과 함께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순간.
“차라리 용이 나았겠군.”
메놀르프는 눈을 질끈 감았다.
***
[이건… 대단하군.]
이안의 어깨 위에 올라탄 미미르는 그 한마디를 끝으로 침묵했다.
그가 보기에, 기체에 올라탄 이안이 한 것은 적들의 머리 위를 날아가며 몇 개의 버튼을 누른 것뿐.
하지만 그 결과를 보라.
[상륙하던 적들 모두 전멸했다. 더 이상의 위험요소는 없어 보이는데.]
“저 배들은?”
[무장이 달려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이 녀석을 위협할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좋아.”
미미르의 답을 들은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곤 기수를 아래로 내린 다음 속도를 줄였다.
A-10 썬더볼트.
날개 달린 기관포에 덕지덕지 붙은 장갑이라면, 어지간한 공격쯤은 몸으로 맞아줄 수 있을 테니까.
이안의 기수가 적의 기함으로 보이는 수송함의 바로 오른쪽으로 향했다.
“우선 위협사격을 한 번 해주고.”
딸깍
조준을 마친 다음, 이안은 조종간의 방아쇠를 가볍게 잡아당겼다.
그 순간.
부아아아앙-
GAU-8의 30mm 기관포탄 수백 발이 쏘아져 나갔다.
쏘아져 나간 기관포탄들이 바닥에 닿자, 폭발과 함께 흙먼지를 사방으로 흩날렸다.
이윽고.
[이안, 저들이 백기를 들었다.]
“역시.”
미미르의 말에,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병력을 잃은 데다, 돌아갈 곳도 없어졌으니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았다.
파앗
지상으로 내려온 이안은 A-10을 다시 마력의 형태로 되돌렸다. 손에 HK416을 쥔 그의 발걸음이 문을 활짝 연 중앙의 수송선으로 향했다.
본래는 병력들이 타고 있어야 할 자리에 모여있는 것은, 함선을 움직이는 수병들과 장교들.
[표정이 썩 좋지 않아 보이는데.]
‘항복했으니까.’
조직을 배신하려는 게 아니고서야, 자신이 원해서 항복하는 자가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일단 전의는 잃은 것 같고.’
상대의 침울한 표정을 확인한 이안은 판단을 내렸지만, 긴장을 완전히 놓지는 않았다.
곧, 가장 계급이 높아 보이는 자가 앞으로 나섰다.
“그대는 누구요?”
“이안.”
“신검공이 직접 나설 줄이야….”
애초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계획이었던 것이 아닌가.
이안의 답에, 제독의 입에선 헛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항복하겠소. 나를 제외한 다른 부하들의 목숨은 살려주시오.”
탈색된 것처럼 하얘진 장년 사내의 얼굴엔 공허한 슬픔만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이안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너희들이 얼마나 잘 협조해주느냐에 따라 달렸지.”
“항복한 자를 살려두고 몸값을 받아내는 것은 옛부터 있어온 관례요. 그대가 신검공이라면 잘 알고 있을텐데?”
이안이 거절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제독의 눈썹이 꿈틀했지만.
“그건 너희가 정상적인 나라일 때 얘기고.”
이안은 콧방귀를 뀌고는.
“난 너희에게 물어볼 게 많거든.”
말을 마친 이안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