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멍청한 짓이다.]
이안의 말을 듣자마자, 미미르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독설을 쏘아댔다.
[그 리자드맨의 말 대로라면, 놈들의 근거지는 적진 한복판에 있지 않느냐.]
“정확히는, 연방에 위치한 본거지지만. 놈들의 본부 위치를 알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이안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본부가 존재한다는 사실까지는 리자드맨에게 확인했지만, 그곳의 위치까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본부의 위치를 알 수 있다면 곧장 놈들의 본부로 날아가서 놈들의 머리통에 큰 거 한 방을 꽂아 넣을 수 있을 테니, 이안으로서는 아쉬울 수밖에.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연방은 지금 전시상태란 말이다.]
이미 전시상태에 돌입한 국가라면, 당연히 후방침입에 대한 대비도 해둔 지 오래일 터.
[네가 대륙에서 손꼽히는 강자가 된 것은 사실이다만, 놈들 역시 숨겨놓은 한 방 정도는 가지고 있을 터.]
어쩌면, 이안이 찾아올 거란 사실을 이미 예상했을 지도 모른다.
[맨몸으로 놈들의 본진에 찾아가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일이지 않겠느냐.]
말을 마친 미미르가 걱정스런 눈으로 주인을 바라봤다.
이안이 괜히 사지로 걸어들어갔다가 죽기라도 한다면.
‘끝장이지.’
미미르는 물론, 아슈타르 전체가 위험에 처할 것이다.
“미미르.”
그러나 이안의 생각은 달랐다.
“나한텐 영웅급 페르소나가 있잖아.”
[…그게 어쨌단 거냐.]
“그리고, 마력을 저장하고 전송할 수 있는 고철덩어리도 하나 있고.”
이안은 이미, 고철덩어리를 이용할 방법을 생각해놓은 상태였다.
“내가 위험에 처할 일은, 조금도 없어. 넌 어떨지 모르겠지만.”
말과 함께 이안은 씨익 웃었고.
[…뭐?]
불길한 미소를 마주한 미미르는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
연방의 수도인 페르난부르크는 높은 산맥 사이에 위치했다.
도시를 겹겹이 둘러싼 산맥 때문에 교통은 매우 불편했지만, 연방이 이곳을 수도로 삼은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이유 중 하나는, 제국의 침공을 손쉽게 막아내기엔 이만한 곳이 없었기 때문.
그리고 또 다른 하나의 이유는. 일 년 내내 용암이 흐르는 벌칸 화산이었다.
화산의 지열로 인해 얼지 않고 비옥한 페르난부르크의 땅은, 불모지투성이인 연방에서 몇 안 되는 거주 가능한 공간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안, 제대로 가는 게 맞긴 한 거냐?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앞이 안 보이니까 화산이 맞겠지! 왜 하필 오늘 분화하는건데?”
연방에 비옥한 땅을 선사해주는 벌칸화산 덕분에, 이안과 미미르는 죽음의 비행을 경험하고 있었다.
해발 5,000미터.
그리고 화산의 화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죽음의 연기.
새는 커녕, 어지간한 비행형 괴수들도 지나가지 못할 만큼 유독한 연기를 한 대의 프롭기가 위태롭게 지나가고 있었다.
“더 이상은 무리야! 준비해!”
[준비? 무슨 준비 말이냐!]
기체 상태를 확인한 이안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외치자 미미르가 고개를 갸웃했다.
“뭐긴.”
그 순간.
“날아갈 준비지!”
이안은 말과 동시에 비상 탈출 레버를 잡아당겼다.
콰앙!
캐노피가 날아감과 동시에, 이안과 미미르는 좌석째로 전투기에서 사출되었다.
애오오오옹!
의자가 날아오르면서 일어난 압력에 미미르가 경기를 일으켰지만, 이안의 모든 감각은 아래를 향했다.
이윽고.
파앗
상공에서 좌석의 구현을 해제한 이안은 자유낙하를 시작했다.
애오오옹!
[이안, 이게 무슨 미친 짓이냐! 으아아악!]
대마법사라면 모를까, 오러마스터의 몸뚱이가 아무리 튼튼하다해도 수천 미터 하늘 위에서 떨어진다면 살아남을 수 없다.
하물며, 지금의 이안이라면 더더욱 불가능한 일.
하지만 이안은 조금도 긴장하지 않고 다음 장비를 구현해냈다.
우웅
곧, 그의 등에 거대한 배낭 하나가 생겨났다.
동시에 그의 몸을 뒤덮은 것은, 날다람쥐처럼 생긴 옷 한 벌.
구현이 끝나자마자, 이안은 사지를 사방으로 쭉 펼쳤다.
그러자, 옷에 달린 피막이 한없이 아래로 떨어지던 그의 속도를 줄여주기 시작했다.
쐐애액
이윽고, 그는 마법의 도움 없이 하늘을 날기 시작했다.
애오오오오옹!
[으아아아악!]
주인의 등에 간신히 매달린 고양이가 공포에 떨며 울부짖었지만, 시끄러운 바람소리에 모두 묻혀버렸다.
‘저기인가?’
방향을 가늠한 이안은 착용한 윙슈트를 이용해 화산 구름 아래에 있을 도시를 향해 내려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았다.’
검은 구름을 뚫고 내려온 이안은, 도시의 환한 불빛을 보곤 입꼬리를 올렸다.
하늘의 검은 구름과는 대조적으로, 화려한 조명들이 가득 들어찬 불야성의 도시.
페르난부르크가 그곳에 있었다.
‘놈이 말한 대로라면… 저기다.’
리자드맨이 알려준 정보를 떠올린 이안은 쉽게 일곱 용의 근거지를 찾아낼 수 있었다.
씨이잉-
목표를 확인한 이안은 몸을 기울여 비행방향을 조절했다.
마치 날다람쥐처럼 빠르게 날아간 이안과 미미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저택의 상공에 도착했다.
리자드맨이 스승이라 부르는 자의 본거지.
쌔애앵
이안은 그대로 저택을 지나치면서.
“옛다, 받아라.”
손에 미리 준비해둔 묵직한 선물을 저택 지붕 위로 집어던졌다.
선물을 뿌린 이안의 몸뚱이가 저택을 완전히 지나친 순간.
콰과과광!
저택은 폭발에 휩싸였다.
“휘유.”
저택을 지나치자마자 급선회한 이안은 타오르는 저택을 보며 휘파람을 분 다음, 배낭의 줄을 잡아당겼다.
펄럭!
거대한 낙하산이 펼쳐지면서 이안의 몸을 잡아당겼다.
[으으, 으으으….]
반쯤 넋이 나간 미미르를 품에 조심스럽게 안아 올린 다음, 이안은 낙하산을 조종해 서서히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늘을 몽땅 가려버릴 만큼 거대한 낙하산이었지만, 하늘처럼 어두운 계열의 색이었으니, 지상의 적이 알아보기는 어려울 터.
게다가.
“불이야!”
“빨리빨리 움직여!”
거대한 화염이 일으킨 소란은, 고작해야 낙하산 따위에 신경을 돌릴 여유를 주지 않았다.
타앗
적당한 높이에 도달한 이안은 그대로 낙하산 줄을 끊어버린 다음 바닥에 착지했다.
어느새 그의 몸을 뒤덮고 있던 윙슈트는 전투장비들로 바뀐 지 오래.
“정신 차려.”
[으, 으으….]
툭툭
몸을 낮춘 이안은 아직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미미르의 뺨을 쳤다.
[으,으으. 여긴….]
“적진이야. 빨리 안 오면 버리고 간다.”
[적진? 그게 무슨 소리냐! 처음과는 말이….]
애오옹!
적진이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정신을 차린 미미르는 작게 외쳤지만.
“네 부하들이랑 이거나 들고 조용히 따라와.”
휙
이안은 대답 대신 총 한 자루를 던져주곤 사라졌다.
“자, 잠깐!”
애옹
재빨리 고양이들을 소환해 총을 받아든 미미르는 급히 이안의 뒤를 쫓았다.
“자, 저기 보이지? 저기 위로 가서 시간을 끌어.”
혼란을 틈타 저택 가까이에 접근한 이안은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족히 백 년은 넘게 묵어 보이는 거대한 나무.
그 말을 들은 미미르와 고양이들은 이안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럼, 넌 어쩔 셈이냐?]
“뭘 당연한 걸 물어봐?”
그 말에 이안은 피식 웃고는.
“들어가야지.”
빠르게 불타는 저택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
연방의 핵심 중 한 사람.
에리히만 의원의 저택경비업무를 맡은 헤스콕의 일진은 썩 좋지 않았다.
“젠장, 대체 어떤 놈들이…!”
하필이면 그가 근무를 서는 날 습격을 당할 줄이야.
폭발과 함께 불타오르는 저택을 본 순간, 그의 눈앞이 아찔했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야 이 자식들아, 빨리빨리 안 움직여?”
조직에게 문책당하지 않으려면, 최소한 사고를 수습하려는 노력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왜애애앵-
저택 앞 초소에서 함께 근무를 서던 경비병들을 저택으로 쫓아 보낸 헤스콕은 경보장치를 켜고는 초소 밖으로 나갔다.
아니, 나가려고 했다.
투타타타타타-
굉음과 함께, 초소 밖으로 뛰쳐나간 부하들의 몸뚱이가 바닥에 쓰러지기 전까지는.
“뭐, 뭐야!”
자신이 내보낸 부하들이 전멸해버리자, 헤스콕은 그대로 얼어붙은 채 움직일 수 없었다.
‘적이 어딘가에 숨어있다.’
그의 머리와 눈은 숨어있는 적을 찾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곧.
‘나무다.’
나무에서 수상한 기척을 눈치챈 헤스콕은 허리춤에서 신무기를 꺼냈다.
조직의 일원들, 그리고 얼마 전 연방군에 배치된 휴대용 마력포.
일회용이었지만, 적을 격살하기엔 충분한 위력이리라.
‘부하들의 복수를 해주마.’
마력포를 손에 쥔 헤스콕의 눈이 희번득거렸다.
적의 정체를 알아차리기 전까지는.
애오옹
‘고, 고양이?’
나무 위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몇 마리의 고양이들을 본 순간, 그는 어이가 없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영원히.
투타타타타타-
고양이들이 올라타 있던 나무에서 들려온 굉음과 동시에, 그의 의식은 끊어져 버렸다.
***
투타타타타-
“생각보단 잘해주는 모양인데.”
바깥에서 들리는 총성을 들은 이안은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걸어 나섰다.
“누구…!”
퓨퓨퓻
“네놈…!”
퓨퓻
그의 앞을 막는 몇 명의 적들이 있긴 했지만, 소음기를 장착한 글록18C 앞에선 불구덩이에 달려드는 나방일 뿐.
“생각보단 저항이 약한데?”
이안은 의아해하면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어차피 실패한다 한들, 손해 볼 일은 없었으니까.
“자, 여기도 한번.
쿵 끼익
저택의 지하까지 내려온 그는, 여태까지와 마찬가지로 자물쇠를 부수곤 문을 열어젖혔다.
‘중요한 물건은 보통 지하에 숨겨두는 것이 사람의 습성이지.’
거기에, 자물쇠까지 걸려있지 않은가.
분명, 무언가 중요한 것이 있음에 틀림 없었다.
하지만.
이들이 지하에 숨겨놓은 것은 물건이 아니었다.
캬오오옹!
방 안에서 튀어나온 것은 거대한 고양이 한 마리.
이안이 갑작스레 튀어나온 고양이에 반응하기도 전.
서걱!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이안의 목을 그어나갔다.
툭
그의 몸과 분리된 머리는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져나갔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몰랐는지, 이안의 표정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미안해요.”
바닥을 구르는 이안의 머리를 보며 갇혀있던 묘인, 케니스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잘린 목에서 피가 흐르지 않는 것이 조금 이상하기는 했지만, 목이 잘린 사람이 살아있을 수는 없으니까.
“연방을 위한 일이야.”
전쟁을 막아야만, 연방이 살아남을 수 있다.
그녀는 애써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면서, 쓰러진 이안의 몸을 뒤지려했다.
하지만.
“젠장, 방심했네.”
아무도 없을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고개가 순식간에 뒤로 돌아갔다.
그리고.
“뭐, 뭐?”
그녀는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하곤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목소리는 다름 아닌, 머리만 남은 인간의 입에서 흘러나왔으니까.
“뭐는, 뭐야.”
“어, 언데드…?”
하지만, 언데드라기엔 너무나 혈색이 좋지 않은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 혼란에 빠진 그녀는 뒷걸음쳤고.
퍽
둔탁한 충격과 함께 의식을 잃었다.
터벅터벅
고양이 인간을 기절시킨 이안의 몸뚱이는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서는 바닥에 떨어진 머리를 주워 제 자리에 붙였다.
공포영화에서나 볼 법한 그로테스크한 광경이었지만.
“이 정도면, 대충 30% 수준인가? 너무 약한데.”
정작, 공포영화의 주인공인 이안의 표정은 태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