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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131화 (132/224)

#131화

“오랜만이야. 벌써 두 번짼가?”

이안이 응접실의 문을 열자마자 마주친 건, 지난번 집무실에서 만났던 리자드맨이었다.

‘일곱 용의 하수인.’

연방의 사절로 가장해, 이안에게 일곱 용의 문장을 심어주려 한 장본인.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공작 전하.”

이안의 말에, 도마뱀답지 않게 사절의 예복을 차려입은 상대가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조금 전까진 잘 지내고 있었지. 근데, 누구 때문에 잘 못 지내게 되어버렸지 뭐야?”

하지만 이안은 상대를 향해 코웃음칠 뿐이었다.

해안에서 아슈타르를 위협하고 있는 강철 괴물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는, 불을 보듯 뻔하지 않은가.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군요.”

하지만 리자드맨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시치미를 뗐다.

“저는 그저, 저희의 입장을 다시 한번 전달하기 위해 왔을 뿐입니다.”

“연방에서는 입장 전달이란 단어가 협박이랑 같은 말로 쓰이나 보지?”

“협박이라니요?”

그 말에 리자드맨이 혓바닥을 내밀며 눈을 깜빡였다.

철판이라도 깐 것 같은 리자드맨의 태도를 본 이안은 비릿하게 웃었다.

“공작령 해안에 갖다 놓은 녀석들. 이렇게 말해도 계속 시치미 뗄 셈이라면, 더 할 말은 없을 것 같은데.”

“아, 벌써 도착했습니까?”

‘역시.’

마치 잊고 있었다는 투로 입을 여는 리자드맨을 보며, 이안은 확신했다.

이제 그가 할 일은, 놈들에 대한 정보를 캐는 것뿐.

“놈들은 뭐지?”

이안은 짐짓 두려운 표정을 지었다. 그와 눈을 마주친 리자드맨의 미소가 점점 진해졌다.

“연방의 신병기…라고 해두겠습니다. 언젠가는 연방군에서도 모습을 보일테니까요. 어떻습니까, 저희의 신병기를 마주하신 소감이?”

말을 마친 리자드맨의 입가에 호선이 그어졌다.

자신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쩔쩔매는 공작의 모습이, 그렇게 통쾌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연방이 아니라, 일곱 용이겠지. 말은 바로 하자고.”

“…무슨 소리신지.”

상대의 입에서 조직의 이름이 흘러나온 순간, 도마뱀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본 이안은 씨익 웃었다.

“너희 조직에 대해선 알자스를 점령할 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지. 어쩌면 그 전부터였을지도 모르고.”

“…그렇군요. 모략자께서 흔적을 남길 줄이야.”

“모략자?”

새로운 단어가 나오자 이안은 호기심이 생겨 물었다.

“공작 전하께선 굳이 모르셔도 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안의 말에 사절은 고개를 젓고는 대화의 화제를 돌렸다.

“저희 조직에 대해 알고 계시다니, 이야기가 쉽겠군요. 그럼….”

“말 돌리긴 이제 그만하고, 짧게 끝내자고. 이미 서로 알 건 다 아는 사이잖아?”

이안이 핀잔을 주자, 리자드맨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렇다면,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안의 무례에 항의하는 대신, 표정을 고치곤 제안을 꺼내 들었다.

“저희 조직은 공작 전하와 함께하고자 합니다.”

“나랑?”

“마왕토벌자인 공작 전하의 위명은 이제 전 대륙에 널리 퍼져있습니다. 마경의 마족들을 몰아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조직의 이념과도 부합하지요.”

말을 마친 도마뱀은 존경의 의미를 담아 이안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래, 연합공국의 일곱 공작 중 하나이자 오러마스터를 모셔가려면, 협박 정도는 필수겠지. 그 조직도 참 대단해.”

하지만 이안의 빈정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협박이 아니라, 저희의 힘을 보여드리고자 할 뿐입니다.”

이안의 도발이 이어지자 사절의 얼굴엔 서서히 노기가 솟아나기 시작했다.

“아무리 전하께서 마스터의 경지에 이르셨다지만, 저희의 수 많은 신병기들을 홀로 상대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공손한 말과는 달리, 그의 세로로 길게 찢어진 눈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래?”

“저희의 신병기에 두른 장갑은, 마스터의 오러블레이드로도 감히 뚫어내기 힘들 것입니다.”

대륙에 몇 명 존재하지 않는 강자인 오러마스터의 상징, 오러블레이드.

‘전차의 장갑 정도인가?’

이안이 신병기의 위력을 가늠하는 동안에도, 리자드맨의 자랑은 이어졌다.

“공작 전하는 모르시겠지만, 이 공작령의 병력으로는 감히 저희의 신병기와 맞서 싸울 수 없을거라 확신합니다.”

말을 마친 사절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손깍지를 꼈다.

‘이 정도 설명했으면 알아들었겠지.’

공작이 일인군단이라 할만한 강력한 힘을 지녔다고는 하지만, 결국 개인이다.

제 각기 다른 방향으로 쪼개져 공격해오는 신병기의 공세를 혼자의 힘으로 막아낼 수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짝짝짝

“그것 참 대단하군. 이름이 뭐지? 설마, 그냥 신병기라고만 부르지는 않을 거고.”

하지만 박수를 치는 이안의 표정은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탱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탱크?”

사절의 입에서 신병기의 이름이 흘러나올 때까지는.

‘그게 왜 여기서 나와?’

이안이 아는 병기 중, 탱크란 이름이 붙는 병기는 오직 하나뿐이다.

말 대신 무한궤도를, 창 대신 주포를 휘두르는 기사의 후예.

전차.

그러나.

‘탱크란 이름을 붙일 이유가 없을텐데.’

탱크란 이름의 어원은, 1차대전 당시 영국에서 신병기의 개발을 숨기기 위해 붙인 암호명이 아니던가.

아무런 역사적 맥락 없이 붙을만한 이름이 아니었다.

“예, 과거의 문헌에 적힌 병기의 이름을 그대로 차용했지요.”

이안이 무슨 생각을 하는 지도 모른 채, 사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이안은 확신했다.

‘지구인이다.’

그 출처가 고대문헌인지 뭔진 모르겠지만, 지구인의 발상이 아니고서는 병기에 물탱크라는 이름이 붙을 리 없지 않은가.

이제 남은 것은 하나뿐이었다.

‘병기의 정체를 확인하는 것.’

저들이 신병기라 자랑하는 ‘탱크’의 위용을 눈으로 확인한다면, 일곱 용의 힘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확인할 수 있을테니까.

삐이-

확인의 시간은 그리 오래지 않아 찾아왔다.

“급한 연락인 것 같군요, 전하. 어서 받아보시는 게 어떨런지요.”

탁자에 놓인 구슬에서 알람이 울리자, 무슨 일인지 짐작한 리자드맨이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안은 통신마법기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공작전하.

구슬 위로 나타난 얼굴은, 조금 전 자신에게 연락했던 파비안이었다.

-지금 해안에 나타난 강철괴물무리와 전투중입니다만, 아군의 공격이 먹히지 않습니다. 지원이 필요합니다.

아군의 공격이 먹히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순간, 이안의 표정이 굳어들어갔다.

이안은 급히 물었다.

“상대의 생김새나, 정보는?”

자신이 가야할지, 아닐지를 파악하기 위해서.

-지금 전투영상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이안의 말을 알아들은 파비안은 고개를 끄덕이곤 통신마법기를 전장 방향으로 향했다.

그의 얼굴 대신 나타난 것은, 격렬한 전투의 현장.

쿠르르릉

그곳에서, 이안은 강철괴물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안의 예상대로, 그것은 전차가 맞았다.

두 개의 무한궤도를 가진 전차들이 해변을 넘어 영지를 향해 진격했다.

놈들의 무장은, 몸체 양 옆에 달린 포.

포에서 쏘아져나오는 불꽃이 해안요새의 보호막을 맞출 때마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보호막의 두께가 눈에 띄게 얇아져 나갔다.

“어떻습니까, 전하. 이제 저희와 이야기를 좀 해보실 생각이 드셨는지요?”

이안이 말 없이 전투영상만을 보고있자, 자신들의 전략이 통했다고 여긴 리자드맨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희 조직과 손을 잡고, 마경 전체를 토벌하는 영웅이 되시는 겁니다. 전하께서 가진 무력과 저희 조직의 지원이 함께한다면….”

하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뭐야, 저거.”

이안이 이미 신병기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저 골동품이 여기 왜 있어?”

“저희의 신병기를 보고 골동품이라니요. 농이 과하시군요.”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리자드맨은 순간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안은 어이가 없어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저런 걸 믿고 협박한 거야?”

“저, 저런 거라니요!”

이안의 한숨섞인 말을 듣고 리자드맨이 발끈했지만,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하다못해 티거 정도면 모를까, 마크 원이라니.”

Mk I.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지구 최초의 전차를 이세계에서 마주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마크원이라니, 그게 무슨….”

이안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그가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안은 대답 대신 마법밧줄을 꺼내 사절을 묶기 시작했다.

“무, 무슨 짓입니까!”

당연히 사절은 항의하며 몸을 비틀었지만, 오러 마스터에 이른 이안의 완력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아무래도, 봐야 믿을 거 같아서.”

리자드맨의 항의에 이안은 천연덕스레 대답하고는

“네놈들의 신병기가 얼마나 허접한지.”

조금 전 사절이 그랬던 것처럼,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

아슈타르 공작령의 남쪽에 위치한 해안도시, 라프트.

쿠르르릉

그곳의 해변과 뻘 위를, 강철의 괴물들이 기어오르고 있었다.

양 쪽에 두 개의 포를 장비한 일곱 용의 신무기, 탱크.

콰앙 콰아앙

놈들의 양 쪽에 달린 포가 아슈타르의 해안요새, 녹스부르크를 향해 불을 뿜었다.

쩌저적

‘보호막도 이제 한계다.’

요새를 지키던 지휘관, 마지크는 금 간 보호막을 보곤 인상을 찌푸렸다.

‘많아야 두 번, 아니 한 번 정도.’

그는 적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횟수를 계산하다 말고 인상을 찌푸렸다.

“젠장, 마력포는 뭐 하는 거야!”

“아직 충전중입니다! 앞으로 5분 26초!”

그나마 요새에 설치된 마력포는 놈들에게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지만, 충전시간이 너무 길었다.

다음 충전을 하기도 전, 요새는 놈들에게 박살날 게 뻔했다.

“지원은? 사냥단장님께서 오시는 건가?”

요새의 병력만으로는 막아낼 수 없는 괴물.

마지크가 부관을 향해 묻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부정적인 의미는 아니었다.

“공작 전하께서 직접….”

“전하께서?”

그 말을 들은 순간, 마지크의 표정에 화색이 돌았다.

마왕토벌자인 이안 폰 아슈타르 공작이라면, 저 강철괴물을 막아낼 방법이 있을 터.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전하께서 오시기엔 너무 먼 거리인데….”

여기서 아슈타르의 새로운 수도인 알자스까지는 제법 먼 거리.

운이 없다면, 공작이 도착하기 전 요새가 먼저 함락되리라.

하지만 그의 걱정과는 달리.

딸깍

제 시간에 도착한 이안은 조종간의 방아쇠를 당겼다.

쐐애애액-

아파치의 두 날개에서 쏘아져 나간 것은, 열 여섯발의 AGM-114 헬파이어.

전차 사냥꾼 열 여섯이 해안을 휘젓던 골동품들의 장갑에 정확히 명중한 순간.

콰아앙-

해안을 뒤덮은 전차들은 모두 불덩이로 화했다.

“어때, 너희 신병기의 위력을 눈으로 확인한 소감이?”

“아, 아니….”

결박당한 채 아파치의 사수석에 앉아 전장을 내려다보던 사절은, 이안의 물음에 차마 답하지 못했다.

오러블레이드도 뚫을 수 없을거라 자랑하던 신병기는, 공작의 페르소나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침묵했으니까.

“너희의 신병기는 우리 쪽에서 압류하도록 하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이안은 미소를 짓고는 자신의 계획을 말하기 시작했다.

“아, 그리고 너한테도 물어볼 게 많아.”

“그, 그건….”

“걱정하지 마, 말하기 싫어도 말하게 될 테니까. 같이 가줄 거지, 당연히?”

서슬퍼런 이안의 말에, 도마뱀의 비늘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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