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너무 과격했다, 이안.]
통신이 끝나고, 미미르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이안을 바라봤다.
[이렇게까지 강하게 나가지 않았더라도 충분했을텐데. 이번엔 너답지 않았다.]
그의 눈에, 이안의 행동은 너무나 무모했다.
[네가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다고는 하지만, 저들 역시 마스터, 혹은 마스터와 동등한 힘을 지닌 강자이지 않으냐.]
그의 주인이 아무리 강한 힘을 지녔다 한들, 저들이 모두 이안을 적대시한다면 곤란해지는 것은 결국 이안 본인이니까.
“아니, 전혀”
하지만 미미르의 말을 들은 이안은 고개를 저었다.
“이 정도로도 부족해.”
[부족하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이안의 이해할 수 없는 말에 미미르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안은 한마디를 던졌다.
“원래, 미친개가 가장 껄끄러운 법이야.”
미친개는 예측할 수 없고, 예측불가능한 상대는 공포심을 불러일으킨다.
참룡공과 구스타프 가문을 박살 낸 자가 다음엔 자신을 노릴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 저들의 발목을 잡으리라.
‘망나니 돼지 노릇도 했는데, 미친개쯤이야 쉽지.’
약해진 아슈타르와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이안은 얼마든지 미친개가 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럼, 여기서 더 부족할 게 없지 않느냐. 네 말이 정말이라면, 저들은 널 함부로 여기지 못할 텐데.]
“말은 결국 허상일 뿐이니까.”
미미르가 이상하다는 듯 물었지만 이안은 고개를 젓고는 말을 이었다.
“다른 공작들이 힘을 합쳐서 나를 제압하려고 한다면, 지금의 내 힘으로는 막아낼 수 없어.”
그렇기에.
“프레이야.”
이안은 자신의 힘을 강화해 줄 자를 불러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관리자님.]
“그래, 나도 오랜만이야.”
페르소나 제작시스템의 제어정령, 프레이야가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자,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화사한 미소를 만면에 지었다.
[페르소나를 조정하려고 부르신 건가요? 지금 바로 준비를….]
“아니.”
하지만 그녀의 말을 들은 이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가 오늘 할 일은, 고작 조정하는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그럼….]
이안의 말에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때.
[서, 설마!]
이안에게서 무언가를 느낀 그녀는 놀라 입을 벌렸다.
[오러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셨다고요, 벌써?]
오러 마스터.
궁극의 절삭력을 가진 오러블레이드를 사용할 수 있는 존재이자.
모든 오러 사용자들이 원하는 꿈의 경지.
일평생을 투자해도 그 벽을 넘지 못하는 이가 바다의 모래알만큼 많을진대, 채 오 년도 되지 않아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다니.
[관리자님은… 정말이지, 절 언제나 놀라게 만드시는군요.]
“그래.”
[그럼, 페르소나를 업그레이드하러 오신 거겠군요? 세상에. 제작자님께서도 이렇게 빠를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을 텐데….]
이안이 자신을 부른 이유를 깨달은 제어정령이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다 놀랐어?”
하지만 이안은 무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그에겐 할 일이 있었으니까.
“그럼 이제 일이나 하자고.”
영웅급 페르소나를 만드는 일.
[아, 알겠습니다, 관리자님. 제작시스템을 가동하겠습니다.]
프레이야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우웅
거대한 스크린이 이안의 눈앞을 가득 메웠다.
***
일곱 용의 본부는 바다 너머에 있다.
“허어.”
길고 힘든 항해 끝에 본부에 도착한 교수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감탄사를 내뱉는 것이었다.
“정말이지, 이게 얼마 만인지.”
통신으로는 간간이 연락했지만, 직접 방문한 것은 어릴 적 이후 무려 40년 만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린 교수는 응접실의 벽을 쓰다듬으며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오셨군요, 교수님.”
그를 부르는 생소한 목소리에, 교수는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자신이 만나기로 한 사람이 아닌, 처음 보는 젊은 사내가 서 있었다.
“자네는….”
“이번에 새로 임명된 발굴자입니다. 교수님의 위명은 많이 들어왔습니다.”
탐험가 차림의 젊은 사내가 교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 말을 들은 교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자네가 새 발굴자로군. 그럼, 전대 발굴자는?”
“작업중 사고로….”
신임 발굴자는 말을 하다 말고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발굴자의 자리가 좀 위험하기는 하지. 제작자를 대신해야 하는 일이니.”
교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발굴자의 일은 제작자가 남긴 개념과 유산을 복원하는 것.
당연히, 고대의 기술을 복원하는 일은 위험이 뒤따랐다.
하지만 그 말에 청년은 고개를 내저었다.
“교수님에 비하면 아주 편한 일입니다. 최소한 본부에 머물 수는 있으니까요.”
“말만이라도 고맙군.”
씁쓸한 미소를 지은 교수는 품에서 수정구슬을 꺼내 들었다.
“이건…?”
“보면 알 걸세.”
우웅
의아한 표정을 지은 발굴자를 향해 구슬을 들이댄 교수는 마력을 불어넣었다.
지잉
곧, 구슬 위로 영상이 떠올랐다.
정체불명의 강철괴물이 고대병기, 고렘을 박살 내는 장면이.
“고렘을 단번에 박살 내다니, 무시무시한 무기로군요.”
“페르소나에 의해 구현된 것이긴 하네만,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나?”
“네.”
교수의 말을 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저희가 이번에 복원해 낸 유산과 닮았습니다. 형태는 좀 다르게 생겼습니다만.”
“복원해 냈다고? 이 괴물을?”
발굴자의 말을 들은 교수는 깜짝 놀라 외쳤다.
“보시겠습니까?”
말을 마친 청년은 자신의 공방으로 노인을 안내했다.
그리고, 공방에 도달한 노인은.
“허, 허어.”
그가 영상에서 본 강철괴물과 닮은 쇳덩어리를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자네들이 정말로 큰 일을 해 주었군.”
“별말씀을요. 다 교수님께서 물자를 지원해 주신 덕택입니다.”
“지휘자께서도 만족스러워하시겠군.”
교수의 칭찬에 발굴자는 뿌듯한 표정을 짓고는 괴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녀석은 고작 하나의 무기를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만, 저희가 제작자의 스케치를 바탕으로 복원한 녀석은 양쪽에 하나씩, 두 개의 무기를 지니고 있지요.”
“그래, 무기가 하나인 쪽보다는 두개인 쪽이 더욱 강력하겠지. 이거라면….”
놈을 상대할 수 있겠어.
조직의 비밀병기를 마주한 교수는, 그제야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
“후우.”
뚜둑 뚜두둑
작업을 마친 이안은 근육을 움직여 굳어 있던 몸을 풀었다.
‘만만치 않은데.’
기나긴 작업이었다.
영웅급 페르소나의 출력에 걸맞는 병기들을 데이터베이스에서 새롭게 추려냈다.
병기들의 부품 하나하나를 구현해내서 재조립하는 일이었으니, 당연히 쉬울 리 없었다.
설계도의 모든 부품 하나하나를 전부 기억할 수 있는 이안이 아니었다면 시도조차 하지 못했을 일.
[정말로 얻었군, 이안.]
[영웅급 페르소나를 다루시게 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관리자님.]
작업을 마친 이안을 향해 프레이야와 미미르가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이안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3일 13시간 21분입니다.]
“어쩐지, 몸이 찌뿌둥 하더라니.”
제어정령의 말을 들은 이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오러마스터에 이르러 새로운 육체를 얻게 된 이안이었지만, 3일 넘게 한 자리에 가만히 서 있으니 몸이 굳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필요하시다면, 식사를 좀 가져다드릴까요?]
“아냐, 괜찮아.”
프레이야가 허공에서 샌드위치와 차를 만들어냈지만 이안은 고개를 저었다.
오러마스터의 육체는 먹지 않아도 수개월을 견딜 수 있다.
[그럼.]
이안의 말에 프레이야는 조금 실망한 기색이었지만, 애써 표정을 감추고는 다음으로 넘어갔다.
[관리자님께서 영웅급 페르소나를 획득함에 따라, 1급 관리자의 자격을 부여합니다.]
“좋아.”
이안이 그토록 얻고자 했던 것을.
프레이야의 말에, 이안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그녀 역시 만면에 웃음을 띄웠다.
[관리자님께서 이렇게 빨리 영웅급 페르소나를 획득하시다니, 제작자님께서도 기뻐하실 게 분명해요.]
“제작자가?”
[네, 물론이죠.]
제어정령의 말에 이안은 고개를 갸웃하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설명을 이어나갔다.
[제작자님의 유산을 물려드리기 위해선, 영웅급 페르소나를 얻으신 다음 1급 관리자권한을 획득하셔야 하니까요.]
“잠깐.”
그녀의 설명이 끝난 순간, 이안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제작자가 나한테 남긴 게 있다고?”
이미 제작자에게 가이드를 받은 그다.
‘별 쓸모는 없긴 했지만.’
최소한, 일곱 용의 정체를 알려주었다는 사실 만으로도 제법 가치 있는 물건이었지 않은가.
거기다.
‘제작자는 내 정체를 알고 있었지.’
어떻게 수백 년 전의 사람이 자신의 진짜 이름과 정체를 알고 있는지는 모를 노릇이었지만.
이안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른 채, 프레이야는 설명을 계속했다.
[정확히는, 1급 관리자 권한을 얻은 자에게 자동으로 귀속되는 물건이지만요.]
“그거, 기대되는걸.”
제작자가 자신에게 무언가를 남겼다니, 이안은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대하셔도 좋으실 거예요. 아마 평생 상상해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물건일 테니까요.]
그 말에 프레이야는 미소를 짓고는 눈을 감은 채 정신을 집중했다.
우우웅
그녀가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하자, 주변의 마력이 움직이면서 공기가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연결 및 권한 이양을 시작합니다.]
그녀의 말이 끝난 순간.
“흡.”
등에 새로운 팔이 돋아난다면 이런 기분일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가 이안의 등에서 하늘을 향해 솟아나기 시작했다.
전생과 현생을 합쳐 처음 느껴보는 감각.
‘미쳤어.’
온 세상이 자신과 연결되는 것 같은 고양감이 그를 전율케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연결이 완료되었습니다.]
“헛.”
프레이야의 말에 이안은 정신을 차리곤 등을 더듬거렸다.
‘뭐야, 아무것도 없잖아?’
손에 잡히는 것이 없자 이안은 눈살을 찌푸렸다.
무언가가 자신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은 감각은 여전히 존재했다.
하지만 정작 연결되어 있어야 할 무언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미미르, 내 등에 뭐 달린 거 없어?”
[아무것도 없으니 바보같은 짓은 그만해라.]
이안은 미미르를 향해 물었지만, 돌아온 것은 한심한 시선뿐.
“젠장, 이게 뭐지?”
이안은 등에서 느껴지는 이물감에 찝찝함을 느꼈다.
갑자기 등에 보이지 않는 팔이 솟아났는데, 당황하지 않을 자가 어디 있겠는가.
[유산과의 연결을 위해 마력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선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결국, 이안이 등을 더듬대는 걸 보다못한 프레이야가 입을 열었다.
[아직은 어색하시겠지만, 적응이 끝나면 익숙해지실 겁니다.]
그 말을 듣고서야 이안은 등을 더듬대는 것을 멈췄다.
하지만 그의 의문은 아직 풀리지 않았다.
“뭐랑 연결된 건데? 공중도시라도 되나?”
그의 등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맞다면, 이 기다란 선의 끝은 하늘로 향해있었다.
이안은 전생의 케이블티비에서 봤던 애니메이션을 떠올리며 물었다.
하지만.
[마도위성입니다, 관리자님.]
“…뭐?”
관리자의 대답을 들은 이안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현 지점을 기준으로 상공 35,800KM에 위치한 정지궤도위성입니다.]
위성? 달을 말하는 건가? 설마 내가 아는 그 단어는 아니겠지.
[지금부터, 1급 관리자 이안 폰 아슈타르님께 마도위성 아스가르드의 권한 이양작업을….]
프레이야의 말이 계속 이어졌지만, 이미 충격을 받은 이안의 귓가엔 들려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