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드르르륵!
페르소나를 개방한 이안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가장 가까이 있던 보초를 향해 UMP45의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었다.
“커, 커헉.”
황금빛으로 물든 총알에 격중당한 문지기는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물론, 그것으로 모든 일이 마무리된 것은 아니었다.
구스타프 공작가.
연합공국을 구성하는 일곱 가문 중 하나이자, 용의 권능을 빼앗아 자신의 힘으로 사용하는 자들.
“쳐라!”
“아무리 마스터라지만, 상대는 혼자다!”
“공작 전하의 원수를 갚아라!”
관문 너머에서 달려오던 구스타프 가문의 식솔들은, 모두 보통 인간과는 어딘가 다른 구석이 있었다.
눈동자가 파충류처럼 세로로 쪼개진 것은 예사였다. 머리카락이 있어야 할 자리에 비늘이 돋아난 사내부터, 날개뼈에 진짜 날개가 돋아난 여인까지.
[모두가 용혈의 힘을 미약하게나마 깨우친 자들이다. 조심해라, 이안.]
평범한 병사 정도는 홀로 열 명도 상대할 수 있는 초인들의 군대.
“오라, 이무르!”
“오라, 베르무트!”
파아앗
그 사이에 드문드문 섞여 있는 페르소나의 자격자들까지.
인간을 초월한 힘을 가진 자들이 모인 군대가, 이안을 죽이기 위해 눈에 불을 켠 채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두 가지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
우우웅
하나는, 이안이 홀로 군대를 상대할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는 사실이었고.
파아앗
또 다른 하나는. 이안이 다루는 병기들이, 다수를 상대하는 데 특화되었다는 것.
그가 구현해낸 것은, 자주대공포 비호.
“발사.”
부나방처럼 달려드는 참룡공의 무리를 지켜보던 이안은 명령을 내렸다.
그 순간.
부아아아앙-
비호의 머리에 달린 두 개의 뿔이 불을 뿜었다.
공중의 적을 상대하기 위해 달린 두 정의 30mm 기관포였지만.
콰과과광!
고폭탄을 초당 600발의 발사속도로 쏘아내는 것만으로도, 지상의 적을 찢어발기기엔 충분했다.
“끄아아악!”
“산개, 산개해라!”
이안이 구현해 낸 병기의 위력을 깨달은 구스타프 군의 지휘자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다들, 죽었다고?”
그 명령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채 열 명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나마 살아남은 자들은 페르소나를 다루는 자격자들뿐.
“크윽, 내 신창이….”
“내 팔, 내 팔!”
하지만 고작해야 병기급에 불과한 그들의 힘으로는, 가고일을 종잇장처럼 찢어버리는 위력의 병기 앞에서 목숨만 겨우 건지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사실상, 전멸이었다.
공작령의 관문 도시인 타이런트의 병력은, 채 오 분도 지나지 않아 사라져버렸다.
“지금 살아남은 자들은 잘 들어라.”
비호의 구현을 해제한 이안의 외침이, 절망에 빠진 지휘자의 고막을 파고들었다.
“오늘 하루 동안, 나는 여기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을 거다.”
이안은 오늘, 참룡공가와 쌓인 은원을 모두 끊어버릴 작정이었다.
“그러니 선택해라.”
은원을 끊어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지원군을 불러서 참룡공의 복수를 하든, 항복을 하든. 아니면 도망치든.”
상대가 복수할 생각도 못 할 만큼,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
“선택의 결과는 너희가 책임져야겠지만.”
말을 마친 이안의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
용의 피를 몸에 품고 있기 때문일까.
구스타프 공작가의 저항은 이안의 생각보다 끈질겼다.
“공작 전하의 복수를!”
“구스타프여, 돌격하라!”
항복하거나 도망치는 대신, 더 많은 병력을 불러오는 것을 선택한 그들은 이안의 수급을 취하기 위해 이를 악물고 달려들었다.
와아아아-
개인과 집단의 싸움.
아무리 오러 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자라 할지라도 하루종일 수천 명의 적을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하지만,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지속하던 전투는 결국 결말을 냈다.
“어떻게, 어떻게….”
라이덴 구스타프.
아니, 전대 참룡공이 세상을 떴으니 이젠 구스타프 공작이라고 불러야 할까.
손에 반 토막 난 창을 쥔 채, 붉은 머리 사내는 멍한 표정으로 이안을 바라봤다.
“아무리 마스터라도, 페르소나의 힘을 지녔더라도. 홀로 군대를 당해낼 수는 없는 법인데….”
페르소나는 개인에게 개인을 초월하는 힘을 주는 병기.
하지만, 그만큼 소모되는 힘 또한 적지 않다.
단기전이었다면 모를까, 온종일 유지하는 것은 아무리 오러마스터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대체 어떻게….”
“잘.”
하지만 이안이 몸에 품은 마력은 자그마치 29만 갈리움.
영웅급이라면 모를까, 환수급 페르소나 수준의 출력을 활용하기엔 넘치고도 남는 양이었으니까.
라이덴의 말에 대충 대답한 이안은 천천히 라이덴을 향해 걸어갔다.
“…크윽.”
그가 한 걸음씩 다가올 때마다 라이덴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지만, 차마 도망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도망가면, 죽는다.’
마치 뱀 앞의 개구리가 된 것 같은 기분.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이면 저자의 손에 들린 병기에 언제든 죽을 수 있을 것 같은 두려움이 느껴졌다.
‘만병지왕이지.’
라이덴은 과거, 영성의 홀에서 이안을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시험해 보던가. 그 고철덩어리로 말야.’
뒤룩뒤룩 살만 찐 돼지가 자신에게 저 저주받을 병기를 겨누던 그때를.
‘언제부터 이렇게 강해진 거지?’
그때와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이안의 힘.
“정신 차리지? 보아하니 새 참룡공이 될 거 같은데.”
짝 짝
말도 안 되는 힘의 격차 앞에서, 라이덴은 이안이 권총으로 뺨을 툭툭 치는 것조차 제지할 수 없었다.
“크윽….”
“이제, 너희와 나 사이의 원한은 끝난 거다. 동의하나?”
하지만 이안에게 라이덴의 심정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이 자리에서 힘을 보인 이유는, 자신과 구스타프 공작가 사이의 은원을 끊어내기 위함일 뿐.
“…동의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 것 같은데?”
라이덴이 쉰 목소리로 묻자, 이안은 대답과 동시에 권총을 라이덴의 머리에 들이밀었다.
“확실한 건, 너 하나로 끝나진 않을 거다. 난 등 뒤에서 날 찌를 놈들을 내버려 둘 생각이 없으니까.”
“…동의하지.”
미소짓는 이안의 말에 느껴지는 진득한 살기 앞에서, 라이덴은 제안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잘 생각했어. 그럼, 먼저 이것부터 작성하자고.”
그 말을 듣자마자, 이안은 기다렸다는 듯 마력계약서를 꺼내 들었다.
“이제, 우린 어떻게 되는 거지?”
사인을 마친 라이덴이 고개를 들어 이안을 바라봤다.
‘생각 같아선 당장이라도 놈의 심장을 꿰뚫어버리고 싶지만.’
그 순간, 구스타프는 또 하나의 참룡공을 잃게 될 것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라이덴은 욕망을 실행으로 옮길 수 없었다.
“뭘?”
“우리 가문은 어떻게 되는 거냔 말이다.”
이안에 의해 구스타프 공작가의 힘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이안이 마음만 먹는다면, 구스타프 공작가를 흡수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뭐, 더 필요한 게 있나?”
이안은 대답 대신 손에 쥔 계약서를 흔들었다.
“이대로만 해. 다른 건 바라지도 않으니까.”
손에 쥔 권총, 사자가 새겨진 글록을 빙글 돌리면서.
삐이이-
“뭐야?”
그때였다.
재킷에 넣어둔 통신마법기에서 알람이 울렸다.
수정구슬을 꺼내 들어 확인한 이안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성광공?”
구슬 위에 떠오른 것은, 바드리안 공작가의 문장이었다.
***
아슈타르 성으로 돌아온 이안은, 집무실에서 다섯의 공작이 보낸 환영을 마주했다.
-이번엔 자네가 너무 지나쳤네.
먼저 입을 연 것은 성광공, 엘로임이었다.
-은원을 끊기 위해서라곤 하지만,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나?
그의 입에서, 이안을 향한 질책이 흘러나왔다.
-참룡공가 역시 마족을 막기 위한 방벽중 하나일세. 방벽의 한 축이 약해져서 좋을 건 없지.
일곱의 공작가는 각기 다른 영역을 마족으로부터 지켜낸다.
일곱 중 하나의 힘이 약해진다는 것은, 나머지 여섯에게 그만큼 부담이 커진다는 의미.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중시하는 성광공에겐 중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이도 있었다.
-굳이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지 않겠나.
-환세공, 이건 중요한 문제일세. 인계의 안위와도 연관된 일이지.
-그건 결국 은원을 만들어낸 자들의 잘못 아닌가? 사실 원인을 찾자면, 상대의 수준도 모르고 덤벼든 참룡공 놈들에게 있지.
이 자리에 없는 라이덴이 들었다면 까무러쳤을 소리.
마르쿠스의 말에 엘로임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환세공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면, 둘 다에게 벌을 주면 되는 것 아냐?
둘의 말을 들은 심안공은 조용히 자신의 의견을 냈다.
-벌이라니?
-결국, 둘 때문에 다른 다섯 영지가 피해를 보는 거잖아. 그렇다면, 둘에게 보상을 요구하면 되는 거 아냐?
-둘 모두 힘이 많이 약해진 상황이 아닌가. 보상이라니, 그게 무슨….
-틀린 말은 아니로군. 저들이 할 일을 우리가 대신해야 한다면, 마땅히 보상을 지급해야겠지.
-나는 반대다. 저들이 다시 힘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그 부담은 영원히 우리가 짊어질 게 뻔하지 않은가.
심안공의 말을 시작으로, 다섯의 공작은 저마다 다른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당사자인 이안의 의견은 무시한 채로.
‘뭐 하잔 거지, 지금?’
순간, 이안은 어이가 없어졌다.
“잠깐.”
이안이 입을 열자, 다섯의 공작들이 입을 다물곤 이안을 바라봤다.
“여러분, 뭔가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이안은 그들 하나하나와 눈을 마주쳐가며 말했다.
“이번 일은 경고입니다. 아슈타르에 해를 끼치려 한 자들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기 위한 경고.”
-경고라고…?
“네.”
말을 마친 이안은 입꼬리를 뒤틀었다.
“저는, 아슈타르는. 당신들이 전대 신검공에게 한 일을 잊지 않았으니까요.”
그의 눈앞에 모인 다섯이 전대 신검공과 함께했다면, 시신조차 찾지 못할 일은 없었을 테니까.
-그건, 에드너가 멋대로 행동한 것일세. 우리의 책임이 아니야.
그 말을 듣자마자 성광공이 반박했지만, 이안은 고개를 저었다.
“여러분의 말은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중요한 건 제가, 아슈타르가 어떻게 느꼈느냐지.”
사실 이안이야 별생각이 없었지만, 굳이 이 말을 꺼낸 이유는 따로 있었다.
“지난번에 여러분이 아슈타르에 지웠던 빚은, 이것으로 갚은 셈 치겠습니다.”
-자, 잠깐!
당황한 성광공이 무어라 말하기도 전.
삑
이안은 구슬로 흘러 들어가던 마력을 끊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