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126화 (127/224)

#126화

“수호룡님.”

-왜?

루미너스의 말에, 제국의 수호룡 메이라우스는 봉인구 안에서 고개를 갸웃했다.

루미너스가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수호룡님께선, 정말로 그가 마스터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 생각하시나요?”

-왜 그런 질문을 하는 거지?

“마스터의 경지란 시간만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란 걸, 수호룡님께서도 아시잖아요.”

-흠.

루미너스의 말을 들은 그녀는 앞발로 턱을 긁적였다.

-하긴, 틀린 말은 아니지.

깨달음은 시간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누군가는 평생을 걸려도 넘지 못하는 벽을, 다른 누군가는 하루 만에 뛰어넘는 것이 깨달음의 본질.

쌓아온 경험과 처해있는 환경. 깨달음에 대해 고민할 시간과 정신과 육체의 상태.

그리고 충분한 운까지.

모든 것이 맞아떨어져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오러 마스터로 향하는 깨달음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라면, 가능해.

메이라우스의 말엔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혹시, 그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제국의 수호룡이자 수천 년을 살아온 그녀라면, 타당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지만.

-감.

“…예?”

메이라우스의 답을 들은 루미너스는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어머, 내 감을 무시하는 거야?

“그, 그건 아니지만.”

-내 감은 그냥 감이 아니라 예지의 권능이라고. 여태껏 틀린 적이 없다니까?

“그래도….”

-그래도는 무슨, 내가 내 목숨을 걸고 내린 결정이야. 여기서 패배하면 가장 위험한 건 나라고.

기분이 조금 나빠진 그녀가 부연설명을 했지만, 루미너스는 표정에서 실망을 숨기지 못했다.

그 때.

내가 돌아왔다!

복도 저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메아리쳐왔다.

틀림없었다.

이 목소리는 분명.

“공작?”

이안 폰 아슈타르 공작.

시간의 봉인 안으로 들어간 신검공의 것이었으니까.

돌아왔다…돌아왔다…돌아왔다….

-봐봐, 내 말이 맞지?

복도를 울려대는 메아리 속에서, 수호룡은 씨익 웃었다.

***

참룡공과 바르테온 후작.

둘의 대결은 서서히 종막을 향해 흐르고 있었다.

어느 쪽이 승자인지는 명백했다.

“허억, 허억.”

검을 휘두르던 후작은 거친 호흡을 내뱉었다.

2미터가 넘게 뻗어 나가던 오러블레이드는 어느새 절반으로 줄어들었고, 마를 줄 모르던 심장의 마력은 그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벌써 지쳐버린 것이냐?

거대한 용의 모습으로 화한 참룡공, 뢰베르는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비웃었다.

‘어째서.’

후작은 이해할 수 없었다.

‘페르소나의 힘이 유지되는 것이지?’

페르소나는 강력한 병기이지만, 그만큼 많은 마력을 소모한다.

마스터 급의 힘을 가져야만 사용할 수 있는 영웅급의 페르소나라면, 그 소모량은 1급 비행전열함 수준.

하지만 먼저 지친 것은 상대가 아니라 자신이지 않은가.

-내 마력이 소진되는 것을 기다리나 보군. 안타깝지만 그럴 일은 없다.

파지지직

멤피스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지친 후작을 비웃는 용의 뿔에서 스파크가 연신 터져 나왔다.

-에인션트급의 고룡은 그 자체로 거대한 마력엔진이다. 네가 기대하는 일은 죽을 때까지 일어나지 않을 테지.

파직 파지지직

말을 마친 푸른 용의 이마에 솟은 뿔에서, 뇌전의 힘을 담은 마력이 한데 뭉쳐지기 시작했다.

그러니 이만 죽어라.

에인션트급의 고룡의 힘이 담긴 브레스.

준비를 마쳐가는 고룡의 눈에서 살기가 풀풀 새어 나왔다.

‘끝인가.’

최후를 직감한 멤피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오러는 의지의 힘이지만, 그것도 재료인 마력이 존재할 때의 이야기다.

마력을 거의 소진한 멤피스에게, 저 강대한 용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의 시선이 저절로 한 쪽으로 향했다.

그곳에 쓰러져있는 자는, 다름 아닌 이안 폰 아슈타르.

‘아슈타르 공작이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었더라면.’

아니, 그가 사용하는 놀라운 무기에 오러를 불어넣을 수 있었다면 분명 전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오러를 담아낸 공작의 신무기라면 저 거대한 용의 피륙을 뚫어내기에 충분했을 테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지.’

하지만 가정은 가정일 뿐.

지금의 아슈타르 공작은 그저, 마력 부족에 허덕이는 익스퍼트 상급에 불과하지 않은가.

우우웅

쓸데없는 생각 대신, 후작은 남은 마력을 전부 소비해 오러블레이드를 뽑아냈다.

‘죽어도 서서 죽겠다.’

브레스를 쏘아낼 준비를 마친 용을 향해, 각오를 다진 멤피스는 검을 들어 올렸다.

“돌아왔어.”

그의 옆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 것은 그때였다.

‘이건….’

분명, 조금 전 쓰러진 이안의 목소리였다.

마력을 모두 소진한 것 치곤 목소리에 힘이 넘치긴 했지만.

‘차라리 쓰러져있었다면, 고통은 없었을 것을.’

공작이 마스터의 벽을 넘어선 게 아닌 이상, 이안이 저 강대한 고룡을 이길 가능성은 0에 가까웠으니까.

‘그 찰나의 순간에 벽을 넘어섰을리가.’

잠시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멤피스는 그 가능성을 부정했다.

하지만 후작은 몰랐다.

‘이, 이건!’

그가 찰나라고 느꼈던 시간 동안 이안은 300년이라는 시간을 수련에 매진했고.

“내가 돌아왔다!!!!!!”

우우우웅

결국, 마스터의 벽을 뛰어넘었다는 사실을.

***

‘돌아왔다.’

봉인이 풀리자마자 해방감에 기쁨의 함성을 지른 이안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의 입가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300년.’

오로지 수련만을 위해 바쳤다기엔 너무나 긴 시간이었으니까.

마스터의 벽을 넘는 깨달음을 얻는 데 200년, 그 깨달음을 정리해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는 데 또다시 100년.

고작 벽 하나를 뛰어넘기엔 너무나 긴 시간을 허비해버렸다.

[평범한 병기였다면 이렇게 오래 걸리진 않았을 것이다. 네 재능에 너무 실망하지 않아도 된다, 이안.]

함께 300년을 보내온 전우, 미미르가 이안을 위로했지만.

“닥쳐.”

그는 짧은 한마디만을 외치고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하, 진짜 돌아왔네.”

허공에 멈춰선 번개도, 영원히 타오르던 오러블레이드도 없었다.

그제야, 이안은 자신의 시간이 되돌아왔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외침이 너무 컸던 탓일까.

-네놈.

이마의 뿔에 뇌전의 힘을 가득 머금은 참룡공이 고개를 돌려 이안을 노려봤다.

-어떻게 마스터의 벽을 뛰어넘은 것이냐.

이안의 몸에서 흘러넘치는 힘이 범상치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의 표정이 잠시 일그러졌지만.

-아니, 상관없다.

이내, 뢰베르는 이안을 향해 비웃음을 보냈다.

-네가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건 아니건.

뇌전룡의 육체를 얻은 그가 준비한 것은.

파지지직

뇌전의 정수를 응축해서 발사하는 뇌전룡의 권능 중 하나, 라이트닝 브레스.

-세상 그 무엇보다 빠른 뇌전을 피할 방법은 없을 테니까!

브레스를 쏘아낼 준비를 마친 용이 거만한 눈으로 이안을 내려다봤다.

하지만.

“지랄한다.”

페르소나를 발동해 놓은 이안의 손엔 이미 한 자루의 총이 들려있었다.

20mm 기관포탄을 쏘아내는 대물저격총, RT-20.

딸깍

뢰베르가 채 반응하기도 전, 이안은 목표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콰아앙

굉음과 화염이 거대한 저격총의 총구에서 뿜어져 나갔다.

그와 함께 쏘아져 나간 것은, 하늘을 가른 황금빛의 선.

소리보다 두 배는 더 빠른 속도로 날아든 녀석은 정확히 고룡의 왼쪽 눈을 파고들었고.

콰아아아-

끔찍한 고통을 참지 못한 뢰베르는 괴성을 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파지직 파지지직

그의 뿔에 모여있던 뇌전의 힘이, 통제를 잃고 폭주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콰르르릉!

뇌전의 힘은 그대로 자신을 불러낸 주인을 향해 쏟아졌다.

파지직

번개맞은 피뢰침이라도 된 것 마냥, 거대한 고룡의 몸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극도로 응축된 뇌전의 권능은, 제 주인의 몸을 착실하게 망가트렸다.

자신의 권능에 자신이 당한 결과는 실로 처참했다.

콰우우-

뇌전의 힘을 응축하고 있던 이마의 뿔은 녹아내려 흉측하게 변한 지 오래.

여전히 스파크가 튀어 오르는 비늘은 검게 그을렸고, 그의 몸을 보호하던 뇌전의 힘은 대상을 바꾸어 주인을 공격하고있었다.

-어떻게, 어떻게!

뢰베르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의 몸은 이미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뇌전의 힘으로 보호되고 있는 상태.

오러블레이드로도 쉽사리 뚫을 수 없는 뇌전의 보호를, 자신의 덩치에 비하면 좁쌀만한 물건으로 뚫어내다니.

“와, 오러가 이렇게 좋은 거였어?”

하지만, 그 위력에 놀란 것은 이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깨달음을 얻고 오러를 탄환에 싣는 데 성공하긴 했지만, 이를 실전에서 사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으니까.

[적의 방어수단만 오러로 무력화시키면 된다니, 정말이지 터무니없는 무기야.]

이안이 쏘아낸 탄환의 원리를 알고 있는 미미르는 그 모습에 경탄했다.

“공작, 결국 성공했군! 어떤 방법을 사용한 겐가?”

전투중인 것도 잊어버린 채, 놀란 후작은 힘겨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건 나중에.”

하지만 이안은 고개를 젓고는.

“우선 저 도마뱀부터 끝내자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참룡공을 가리켰다.

우우웅

말을 마친 이안은 심장에 잠재된 마력을 끌어냈다.

비행전열함의 마력엔진과도 비견할 수 있는 웅혼한 마력이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갔다.

이윽고, 이안의 몸을 감싼 마력은 병기의 형태를 이루었다.

투타타타-

[잠자리?]

이안이 구현해낸 병기를 처음 본 미미르는 고개를 갸웃했다.

가늘고 긴 몸뚱이에 두 날개가 붙어 있는 것이 굳이 비교하자면 잠자리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저건, 날개인가?]

머리 위에서 굉음을 내며 돌아가는 날개의 용도는 도무지 알 도리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미미르가 그 용도를 알 필요는 없었다.

“목표 확인.”

이안이 필요한 것은 하늘을 날 날개가 아니었으니까.

삐비비빅

이안이 헬멧에 달린 바이저로 참룡공을 조준하자, 헤드폰너머로 익숙한 락온음이 들려왔다.

“흐읍.”

순간, 이안은 체내의 마력을 전력으로 끌어올렸다.

그 순간.

파아앗

AH-64E.

전차사냥꾼, 아파치 가디언의 외부를 금색의 오러가 감싸 안았다.

그것은, 날개 아래에 달려있던 열 여섯 발의 미사일 역시 마찬가지.

“지옥으로 꺼져, 도마뱀 새끼야.”

딸깍

300년의 원한을 쏟아낸 이안은, 조종간의 붉은 버튼을 눌렀다.

그와 동시에.

쐐애액-

AGM-114 헬파이어.

황금빛으로 물든 열여섯의 지옥불이, 거대한 고룡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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