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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122화 (123/224)

#122화

이안이 황실비고에서 메이라우스를 만난 첫 소감은.

‘빌어먹게도 크네.’

이 황실비고를 설계한 작자는, 무슨 생각으로 이 지하공간에 아파트만한 용을 집어넣은 것일까.

“휘유.”

그가 눈으로 봐왔던 어떤 용족보다도 거대한 용의 위용을 보던 이안의 입에서 절로 휘파람이 나왔다.

‘알리시온은 어떻게 저런 놈이랑 말을 놓은 거지?’

지금쯤 알자스에 있을 골드 드래곤을 떠올린 이안의 시선이 황녀를 향했다.

“뭐, 자랑이라도 하려고 데려온 거야? 우리 용이 이렇게 커요! 같은 건가?”

“제국의 수호룡 앞에서 경박한 언행은 삼가세요.”

이안의 빈정거림을 들은 루미너스는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저기 용한테 일러바쳐 보기라도 하지 그래? 어차피 깨어나지도 못할 것 같다만.”

이안은 비아냥을 멈추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황실비고에 잠든 고룡과 그의 목적 간에는 어떠한 상관관계도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황녀가 자신을 여기로 데려온 이유는 뻔하지 않은가.

찌릿

하지만 루미너스는 대답 대신 눈을 흘기고는, 잠들어 있는 고룡을 올려다봤다.

“황가를 수호하는 화염룡 메이라우스여, 계약에 따라 잠에서 깨어나소서.”

그녀의 속삭임이 고요한 비고 안으로 퍼져나갔다.

순간, 대기의 흐름이 바뀌었다.

애오오옹?

[뭐, 뭐지?]

갑작스레 느껴진 마력의 파동.

미미르는 놀라 경기를 일으켰다.

하지만 이안은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봉인된 고룡을 깨워냈다고? 어떻게?’

철컥

영원히 잠들어 있을 것만 같았던 고룡이 눈을 번쩍 뜬 순간, 이안의 손은 이미 권총을 뽑아 들고 있었다.

여차하면 곧장 페르소나를 발동할 심산이었지만.

-루미너스, 너로구나.

상황은 이안이 생각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이번엔 손님도 데려왔네?

“아슈타르의 공작이에요. 비고에서 내어줄 것이 있어 함께 내려왔답니다.”

-아슈타르의 공작이, 황실비고까지 내려왔다고? 설마, 제국에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지?

마치 어제 본 사이처럼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누는 용과 인간.

‘이건, 무슨….’

마르센 제국의 탄생은 신과 용에 의해 이루어졌다.

빛의 신 마르콘과 고룡급의 레드 드래곤 메이라우스.

‘큰 부상을 입고 봉인당했다고 들었는데.’

하지만 봉인구에 갇혀 있다는 사실만 빼면, 고룡의 상태는 제법 멀쩡해 보였다.

-내가 이 모양 이 꼴이긴 하지만, 좀 무리하면 신검공정도는….

“그, 그런게 아니에요! 오히려 제국에 도움을 주셨다고요.”

-흐응, 그래?

말을 마친 화염룡, 메이라우스의 눈이 옆에서 권총을 든 이안을 향했다. 이안의 손에 들린 권총을 본 메이라우스의 눈이 찌푸려졌다.

-신검이 좀, 이상하게 생겼네?

그녀의 기억 속에, 신검 레온하르트는 분명 두 손으로 쥐고 휘두를 만큼 거대한 장검이었건만.

-분명히 기운 자체는 레온하르트의 것인데….

장검은 어디 가고, 단검보다도 짧아 보이는 저 쇠망치는 뭐란 말인가.

“요즘 너무 많이 듣는 소리라, 슬슬 질리는데.”

굳이 대답해 줄 이유가 없었던 이안은 어깨를 으쓱했다. 용이 눈동자를 좁혔다.

-흐음, 여기 갇혀있는 동안 세상이 많이 변했긴 했네. 인간이 나한테 까불기도 하고 말이야.

“너무 오래 살았다는 생각은 안 하나 봐? 세상엔 자연의 순리란 게 있다고. 아, 이 세상엔 없나?”

“공작. 화염룡 님.”

둘의 빈정거림이 싸움으로 번질 것 같자, 그사이에 끼어든 루미너스가 양손을 뻗어 막았다.

-운 좋은 줄 알거라. 내가 봉인을 풀 수만 있었더라도….

“그러게, 거기서 나오는 순간 대가리를 날려버렸을 텐데 말야.”

“하아.”

빈정거리는 둘 사이에서 루미너스는 한숨을 내쉬곤 이안을 향해 속삭였다.

“비고에서 얻고 싶은 게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랬지.”

“그럼 제발 그 입 좀 다물고 있어요.”

이안을 향해 한 번 으르렁거린 황녀는 곧장 수정구 안의 고룡을 바라봤다.

그리고, 황녀의 행동을 본 이안은 경악했다.

“화염룡 님, 비고에서 물품 하나를 꺼내주실 수 있겠어요?”

“…그걸 왜 저 용한테 시켜?”

봉인되었다곤 하지만, 그 상대는 에인션트 급의 고룡이다.

어지간한 마스터급의 강자보다 강력한 용을 창고지기처럼 부리다니.

-일종의 소일거리란다. 너처럼 수명이 짧은 인간은 모르겠지만, 빛 하나 없는 지하에서 수백 년 동안 가만히 있으면 정신이 오락가락하거든.

이안의 말을 들었는지, 메이라우스가 설명을 해 줬다.

‘내가 본 용들은 지하에서도 잘 살던데.’

지하도시 드래고니아에서 수백 년 동안 살아가던 용들이 이 말을 듣는다면 뭐라고 생각할까.

하지만 이안은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는 우를 범하진 않았다.

몰랐을 때라면 모를까, 자신이 받아야 할 보상과 연관된 존재라면 괜히 화를 돋울 필요가 없다.

“공작, 이제 원하는 걸 화염룡께 말씀드리시죠.”

“좋아.”

말을 마친 황녀가 뒤로 물러났다.

“이봐, 용. 내가 원하는 건….”

15층짜리 아파트만한 용을 올려다본 이안은, 천천히 자신의 요구조건을 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안이 채 말을 다 꺼내기도 전.

쿠르르릉

저 멀리서 들려오는 익숙한 소리가 이안의 귀를 간지럽혔다.

틀림없었다.

“뭐야, 우리 말고는 아무도 들어올 수 없다며?”

이 소리는 분명, 비고의 문이 열릴 때 났던 소리와 동일했다.

“부, 분명 폐하께 윤허를 얻은 것은 본녀뿐이에요.”

하지만 당황한 것은 루미너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르세니아의 피를 지닌 황족이라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긴 하지만, 폐하께서 윤허하셨을 리가 없는데….”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나자, 상황파악이 끝나지 않은 그녀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허둥댔다.

[이안, 입구 쪽에서 마력이 느껴진다. 뭉쳐있어서 정확하진 않지만, 열은 넘는 숫자야.]

애옹

어깨에 올라탄 미미르가 불청객에 대해 보고했다.

몇 가지 정보를 조합한 이안은 상황을 간단히 정리했다.

“그럼, 윤허인지 뭔지가 없이 들어왔겠지. 황제가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면.”

마르센 제국에서 가장 귀한 보물들이 잠들어 있는 황실비고에 무단으로 들어온 침입자.

그 결론은 뻔했다.

“황궁 보안이 생각보단 허술한가 봐? 도둑놈 하나 못 막고 말야.”

“그게 무슨….”

이안의 빈정거림을 듣고 루미너스가 발끈했지만, 이미 이안의 신경은 비고의 도둑놈들을 향해 쏠려있었다.

“미미르, 상대의 수준은?”

[숫자와 마력의 농도를 고려할 때, 마스터급의 강자는 없다. 제국의 황궁에 침입한 자들이니 만만한 상대는 아니겠지만.]

“그럼.”

우웅

미미르의 말에, 이안은 손에 쥔 권총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빨리 끝내버리자고.”

감히 내 것을 탐내는 도둑들을.

“오라, 미미르.”

페르소나의 잠을 깨우는 시동어가 이안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동시에.

파아앗

이안의 몸이 금빛에 휩싸였다.

***

멤피스 반 바르테온 후작.

제국의 유일한 오러마스터이자 적룡기사단의 단장.

심마를 베어버린 뒤 정신을 차린 그는 모처럼 돌아온 황궁에서 깨달음을 정리하고 있었다.

“너희는 뭐지?”

그의 앞에 다섯의 방해꾼들이 나타나기 전까진.

기잉

‘처음 보는 차림샌데.’

대답 대신 자신에게 무언가를 겨누는 적들을 마주한 멤피스는 눈을 찌푸렸다.

기잉 기이잉

머리부터 발끝까지 두꺼운 금속갑옷을 두른 그들의 몸에선, 연신 처음 듣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멤피스는 곧 무언가를 떠올렸다.

‘기가스?’

고대 거인의 형태를 본떠 만들어 낸 제국의 신병기.

그 크기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았지만, 분명 저들은 기가스와 유사한 점이 많았다.

그리고.

‘황실비고?’

그의 감각에, 몇 개의 마력덩어리가 황실비고로 이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다면.

“제국의 형법대로라면, 황실비고에 허락 없이 발을 들인 자는 모조리 사형에 처하게 되어 있지.”

우우웅

제국과 황실을 수호하는 그의 검에서, 찬란한 오러블레이드가 솟아났다.

이제, 그의 본분을 다해야 할 시간.

“그건, 공범도 마찬가지라네.”

쐐액!

말을 마친 후작은 지체없이 검을 날렸다.

기가스가 아니라, 원본인 거인족 조차도 일격에 베어버릴 위력이 담긴 오러블레이드.

하지만.

까앙!

“…허어.”

검을 휘두른 후작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분명, 단숨에 잘라버릴 생각이었건만.’

그의 오러블레이드는 상대의 왼팔에 막혀 더 나아가지 못했다.

파직 파지직

그 대가로 상대는 왼팔을 헌납해야 했지만, 오러블레이드가 막혔다는 사실 자체가 멤피스에겐 충격적인 일이었다.

“고렘인가?”

적의 팔에서 튀어 오르는 스파크를 확인한 후작은 그제야 납득할 수 있었다.

‘마법으로 만들어 낸 고대의 전투인형 중에는, 강력한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금속을 몸에 두른 녀석도 있다더니.’

어떻게 적이 고대의 유물을 부리는지 알 수 없었지만.

서걱

“와라, 단숨에 끝내주지.”

한 번으로 부족하면, 두 번을 베면 되지 않겠는가.

우우웅

달려드는 외팔이 고렘을 단숨에 쪼개버린 후작의 오러블레이드가 거세게 타올랐다.

***

마르센 제국의 황태자, 피에르는 도박을 즐기지 않았다.

황제가 되어 제국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굴러가도록 만들어야 할 자가, 확률에 모든 것을 기대야 하는 노름 따위를 즐길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쪽이네.”

황태자는 지금, 생애 처음으로 도박을 벌였다.

판돈은 자신의 목숨.

‘들키면, 유폐 정도로 끝나진 않겠지.’

제국의 수호룡, 메이라우스를 봉인한 수정구를 타국으로 몰래 빼돌린다.

그가 황족이 아니었다면, 가문이 통째로 지워질 만한 대죄다.

하지만 피에르는 목숨을 걸 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 일만 성공하면, 황제의 자리에 다시 도전할 수 있어.’

제국의 황위에 앉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친 그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봉인된 수호룡을 잘 구슬린 다음, 이들과 함께 이곳을 탈출한다.’

쉽고, 간단한 계획이었다.

그 전에, 먼저 들어간 그의 누이와 아슈타르 공작을 상대해야 한다는 것이 조금 걸렸지만.

“걱정 마십시오, 황태자 전하. 이 고렘들은 다섯으로 오러 마스터나 대마법사 하나를 상대할 수 있습니다.”

황태자의 마음을 읽었는지, 황태자 옆에서 따라가던 복면 사내가 고개를 숙였다.

“그거, 정말 믿어도 되는 거요?”

“신마전쟁 때 활약한 고대병기입니다. 성능은 이미 수백 년 전에 증명되었지요.”

피에르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상대가 고대의 전쟁까지 들먹이고나니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타앙-

그들의 이야기는 굉음과 함께 멈췄다.

***

까앙!

“뭐야, 도탄이라고?”

황실비고를 울리는 쇳소리가 귀를 긁어대자, 그는 손에 들린 바렛M82를 내려다봤다.

어지간한 장갑차량의 장갑도 관통할 수 있는 50구경 철갑탄이, 고작 갑옷 하나를 꿰뚫지 못하다니.

[고렘이다. 속까지 금속으로 꽉 들어찼으니 당연한 일이지.]

“그래?”

파앗

미미르가 핀잔을 주자, 이안은 바렛을 마력으로 흩어버렸다.

쌍안경을 든 그의 눈에, 달려오는 금속 갑옷들의 모습이 훤히 보였다.

미미르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만한 방어력이라면, 오러블레이드도 한 번쯤은 막아낼 수 있을게다. 신체능력도 떨어지지는 않을 테고. 저런 유물들을, 도대체 어디서 저렇게 많이 가져온 것이지?]

마스터급의 강자도 상대할 수 있을지 모르는 존재들이 줄지어 달려오는 것을 보고 있자니, 미미르는 온 몸의 털이 삐쭉 서는 것 같았다.

“그럼.”

우웅

하지만 이안은 동요하지 않았다.

단지.

“더 큰 게 필요하겠네.”

새로운 무기를 손에 쥐었을 뿐.

“지하에서 쓰기엔 좀 별로긴 한데.”

아직 탄환에 오러를 불어넣을 수 없는 그에겐 최선의 방법이었다.

어깨에 거대한 로켓발사기를 짊어진 이안이 방아쇠를 당긴 순간.

쐐애액-

판처파우스트3.

전차를 부수는 주먹이, 고렘들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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