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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119화 (120/224)

#119화

황금모루부족의 족장인 바몬트는 자신의 대장간이자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족장으로서 해야 할 업무가 끝났으니, 대장간에서 새로운 작품을 만지고싶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분명, 오늘 완성된다고 했었지.’

그가 대장간을 빌려준 인간, 이안이 만들어 냈을 물건이 궁금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인간 주제에, 이렇게 빨리 기술을 습득할 줄이야.’

고작해야 쇠를 다루는 기초에 불과했지만, 망치를 들고 태어난다는 난쟁이들의 기술이다.

하지만.

‘난쟁이들도 육 개월은 걸리는 기초과정을, 3개월 만에 모두 익힐 줄이야.’

그뿐만 아니라, 가끔은 자신들조차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쇠를 다루기까지.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늘어가는 인간을 볼 때마다 경외감과 질투심을 느낄 때가 한둘이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아니지.’

자신에게 무한한 영감을 제공해 주는 인간이다.

오늘은 그 인간이 3개월 동안 준비한 작품이 태어나는 시간.

“오늘은 맥주 딱 한 통만 해야겠어.”

끼익

기대감에 부푼 바몬트는 콧노래를 부르며 대장간 문을 열었다.

그리고.

“어…?”

황금모루.

난쟁이 왕과 함께 사라진 난쟁이족의 신기.

영롱하게 빛나는 모루를 마주한 바몬트의 몸이 석상처럼 굳어버렸다.

“마침 잘 왔네. 저게 뭔지 설명 좀 해 주지?”

어리둥절한 것은 이안도 마찬가지.

바몬트를 만난 이안은 반색하며 손짓했다.

“아니, 이게, 왜 여기에….”

바몬트는 말을 더듬었다.

대장간에 황금모루가 나타나는 것은, 희귀하지만 없는 일은 아니다.

황금모루가 좋아하는 것은 무구, 그 중에서도 최상급.

뛰어난 무구를 만들어 낸 난쟁이들 앞에 나타나 보상을 주는 일이 없진 않았으니까.

단지.

“자, 자네. 도대체 뭘 만들어 낸 겐가?”

이번에는 그 대상이 인간이란 사실이 달랐을 뿐.

놀란 바몬트가 말을 더듬자, 이안은 조용히 손에 쥔 탄환을 들어 보였다.

“고작, 그거라고?”

“그거고 저거고, 저게 뭐냐니깐?”

평범해 보이는 탄환의 형태에 바몬트는 적잖은 실망을 했지만, 이안이 거기에 장단을 맞춰줄 이유는 없었다.

“난쟁이족의 신기인 황금모루일세. 난쟁이왕과 함께 사라진 이후로 가끔씩 최상의 무구 앞에 나타나는 신기지.”

“그럼, 이게 최상의 무구란 거네?”

“전혀 이해는 가지 않는다만.”

자신 앞에도 나타나지 않았던 황금모루를 불러낸 인간을 향해 바몬트가 볼멘소리를 냈다. 하지만 이안은 씨익 웃었다.

“시험은 안 해 봐도 된단 소리군.”

자신의 손에 들린 총탄이 무구로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은, 곧 발사가 가능하다는 이야기이나 마찬가지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은가.

그때.

키이이잉

“뭐야?”

황금모루가 울부짖기 시작했다. 당황한 이안은 총탄을 쥔 채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황금모루는 주인을 닮아 탐욕스러운 존재지. 네가 만든 무구를 탐내는 것이다.”

“이젠 별 이상한 놈이 달라붙어선….”

철컥

인상을 찡그린 이안은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 들었다.

무려 삼 개월을 소비해 만들어낸 녀석이다. 저런 돼지같은 놈에게 쉽게 넘겨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바몬트가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나라면 그러지 않을 텐데. 모루는 자신이 가져간 무구의 가치만큼 보상을 내리거든.”

“보상?”

키이잉

이안이 호기심을 보이자,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인지 황금모루가 애처롭게 울어댔다.

바몬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서른 개쯤 있는 것 같은데, 하나만 던져주면 돼.”

“그렇다면야.”

어차피 시험을 위해 사용했어야 할 탄환이다.

시험은 사실상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하나쯤 던져준다고 해서 큰 손해가 나진 않는다.

“자, 물어!”

판단을 끝낸 이안은 손에 들린 탄환을 모루에 던졌다.

그러자.

키이잉

마치 입처럼 반으로 갈라진 황금모루는 자신이 개라도 되는 것처럼 총탄을 한 입에 삼켰다.

키잉, 키잉!

“무슨 강아지도 아니고.”

공중에서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모루를 보며 이안은 의혹을 떨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키이이잉!

황금모루가 길게 울부짖었다.

동시에, 모루의 입-이라고 할 수 있다면-에서 무언가가 토해져나왔다.

키이잉!

파아앗

할 일을 마쳤다는 듯 짧은 울음소리를 낸 황금모루는, 처음 나타났을 때처럼 빛과 함께 사라졌다.

“…뭐야, 제멋대로 나타났다 사라지기는.”

“난쟁이 왕과 함께 신계에 있을 거다. 난쟁이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분명 그럴 거야.”

바몬트는 모루가 사라지고 남은 황금빛무리를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봤다.

하지만 이안의 관심사는 다른 곳에 있었다.

“뭐야, 이건?”

사라진 황금모루가 토해놓은 무언가를 집어든 이안은, 순간 고개를 갸웃했다.

은은한 금빛을 주변에 뿜어내고 있는, 언뜻 보면 금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을 법한 손톱 크기의 돌멩이.

하지만, 그 돌에서는 익숙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신성력이 가득해.’

그것도, 만신전에서나 느낄 수 있을법한 순도 높은 신성력이.

우웅

이안은 신성력의 침식을 막기 위해 급히 손을 오러로 감쌌다. 그 모습을 본 미미르가 옆에서 중얼거렸다.

[신성의 파편이다. 어느 신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난쟁이왕의 것인가?]

‘난쟁이 왕?’

[난쟁이족의 전승에 따르면, 깨달음을 얻은 난쟁이 왕은 황금모루와 함께 신계로 올라가 신이 되었다고 전해지지.]

‘방금 바몬트가 한 소리가 그거로군.’

그러니까, 이안이 손에 쥔 이 돌멩이엔 난쟁이 왕으로 추정되는 신의 신성이 담겨있다는 말이지 않은가.

“분명, 이건 난쟁이왕의 힘이야. 난쟁이 왕께서 본인의 힘을 쪼개어주시다니, 고작 인간 따위한테….”

난쟁이족의 역사에서도 몇 되지 않는 대사건.

바몬트는 경외와 질투가 뒤섞인 눈으로 이안을 바라보고는.

“이보게, 인간. 그 돌을 나에게 넘겨주게”

이내 굳은 결심을 했다.

“이걸?”

“그래, 네가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해 주마!”

‘제법 가치가 있긴 한 모양인데.’

이안은 바몬트의 눈동자 속에 꿈틀거리는 욕망을 읽어내곤 속으로 웃었다.

“어차피, 난쟁이 왕의 신성은 난쟁이들에게나 중요한 것이란 말이야! 다른 종족이 가져봐야 아무 쓸모도 없다고, 알겠나? 원한다면 너를 위해 뭐든 만들어주지!”

이안이 뜸을 들이자, 몸이 달아오른 난쟁이가 언성을 높였다.

하지만 그 돌을 원하는 것은 바몬트뿐만이 아니었다.

[이안, 그 돌을 내게 다오. 신성을 강화한다면 지금보다 더 강한 힘을 부릴 수 있을 것이다.]

페르소나이자 신검인 미미르를 이루는 것 중 하나는 신성.

신성의 조각을 흡수한다면, 그의 출력은 더욱 강해질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페르소나가 새로운 특성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두 제안 모두, 이안에게 나쁘진 않았다.

곧, 생각을 마친 이안은 결정을 내렸다.

“안 돼.”

“어, 어째서!”

[이안, 다시 생각해 봐라. 내가 신성의 파편을 흡수한다면….]

이안의 말을 듣자마자, 경악한 한 명과 한 마리의 말이 빨라졌다.

그리고.

“이건 쓸 데가 따로 있거든.”

고개를 가로저은 이안의 입가엔, 예의 그 미소가 떠올라있었다.

***

알자스에 단 하나뿐인 빛의 신, 마르콘의 신전.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땟자국 하나 없이 새하얀 신전의 예배실에선.

“빛으로 대륙을 감싸 안은 마르콘이시여.”

한 사제와 한 남자가 의식을 치르고 있었다.

남자, 이안이 선 자리를 둘러싼 것은, 온갖 희귀한 재료들을 배합해 일 주일간 그려낸 신성결계.

마법기 몇 개는 사고도 남을 돈을 쏟아부은 결계를 움직이기 위해, 알자스 신전의 최고사제인 세리아의 기도는 계속되었다.

“당신을 섬기고자 하는 자가 이곳에 있나이다.”

우웅

그녀의 기도가 이어질 때마다 결계의 공명음이 커져갔다.

세리아의 새하얗게 질린 얼굴에서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부디 자비를 베푸시어 모습을 드러내소서.”

마침내, 그녀의 기도가 끝난 순간.

파아앗

결계 안은 하얀빛으로 물들었다.

성역.

그중에서도 빛을 관장하는 신인 마르콘의 성역이, 작게나마 현실에 구현되었다.

‘이걸 그 녀석은 말 한마디로 만들어 냈단 말이지.’

이안은 마기로 가득 찬 마경에서 성역을 뚝딱 만들어 내던 윌리엄을 떠올렸다.

[알면서 왜 찾아가지 않은 게냐. 그라면 갈리우스와도 충분히 연결해 줄 수 있었을 텐데.]

그 말에, 이안의 어깨 위에 올라탄 미미르가 고개를 갸웃했다.

‘약쟁이를 믿을 바엔 그냥 안 하고 말지.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고.’

하지만 이안은 쓴웃음을 지었다.

제정신을 차릴 때가 있다지만, 그거 하나만 믿고 진행하기엔 너무 위험하지 않은가.

조금 번거롭고 비용이 들더라도, 가능하면 안전한 방법을 택하는 게 결과적으론 더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곧, 둘의 잡담은 끝났다.

파앗

눈앞을 메운 빛이 거둬짐과 동시에, 빛의 신 마르콘이 머무는 장소가 그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휘유.”

성역의 모습을 확인한 이안은 휘파람을 불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천국이나 낙원이 존재한다면 이런 모습일까.

짹짹짹

갸르릉

덥지도 춥지도 않은 평원을 뛰노는 온갖 동물들과 각종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나무들.

-나를 만나러 온 것이, 그대일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군요.

하늘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이안은 고개를 올려다봤다.

-이쪽입니다, 관리자여.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움직인 이안은, 곧 그 정체를 알 수 있었다.

‘태양?’

눈부실 정도로 밝았지만 아니었다.

하늘에서 빛을 뿜어내는 것은, 하늘 한쪽을 가릴 만큼 거대한 소녀.

“당신이, 마르콘인가?”

강한 빛 때문에 눈을 찌푸린 이안이 물었다.

신에게 할 말이라기엔 불경한 어투.

하지만 여러 신을 만나본 이안에게 신에 대한 존경심 따위는 옛 저녁에 사라진 지 오래였다.

-예, 이 성역의 주인이기도 하지요.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마르콘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찾아온 이유도 대충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군요. 제 힘이 필요해서겠지요?

“시원시원해서 좋은데?”

-빛은 휘어지지 않으니까요. 제 아이들도 그렇고요.

“휘어지지 않는다라.”

금은보화 앞의 세리아를 떠올린 이안은 피식 웃었다.

-왜 그렇게 웃는 것이죠?

“아니, 아무것도.”

-뭐, 좋아요.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니까.

피식거리는 이안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던 마르콘은 곧 시선을 바로했다.

-당신도 알겠지만, 신성을 지상에 내려보내는 건 꽤 수고가 들어가는 일이에요. 그걸 제가 해 줘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글쎄, 아마도?”

마르콘의 말에, 이안은 세리아를 떠올렸다.

누구보다 신심이 깊은 자이지만, 돈과 보석 앞에선 눈이 돌아가 버리는 신관.

그렇다면.

그녀가 섬기는 신은 과연 어떨까?

“이 정도면,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아?”

이안은 품에서 신성의 조각을 꺼내 들고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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