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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118화 (119/224)

#118화

마력을 다루지 못하는 난쟁이들이 지금껏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자신들의 몸을 지킬 튼튼한 금속을 만들어낼 수 있는 야금술.

그리고 절세의 무구로 빚어내는 대장술.

두 기술은 부족의, 아니 난쟁이족 전체의 기밀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인간, 농담 따먹기나 할 거라면 빨리 사라지지 그래? 종족 전체의 비밀을 알려달라니, 낯짝도 두껍네, 두꺼워.”

이안의 말을 들은 바몬트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종족 전체의 기밀을 알려달라니.

아무리 눈앞의 인간이 자신에게 무한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존재라 할지라도, 안 되는 일은 안 되는 일이다.

“아니, 난쟁이족의 비밀 따위는 관심 없어.”

하지만 이안이 원하는 것은 조금 다른 것이었다.

“그냥 기초, 기초만 알려주면 돼. 금속을 제련하고, 형태를 만드는 기초.”

“…기초?”

이안의 말을 들은 순간, 이안을 쫓아내려던 난쟁이의 움직임이 멈췄다.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난 무슨 거창한 게 필요한 게 아냐. 그냥 불이랑 쇠 다루는 법을 배우고 싶을 뿐이지.”

어차피 배울 거라면, 날 때부터 대장장이인 난쟁이에게 배우는 게 나을 거라 생각했을 뿐이다.

“흐, 흐음.”

“뭣하면 그냥 황궁에 있는 적당한 인간 대장장이라도 소개해 주던가. 난쟁이의 보증이라면 나도 믿을 만 하니까.”

바몬트가 대답을 못하며 머뭇거리자 이안은 팔짱을 낀 채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 기초 정도야 얼마든지 가르쳐줄 수 있다만….”

바몬트는 이해할 수 없었다.

“높은 지위에 오른 인간들은 대장일을 천하게 여긴다고 들었는데. 연합공국의 공작이라면….”

작긴 하지만 한 나라의 지배자 중 하나나 다름없지 않은가

.

그가 아는 인간들의 지도자들은, 불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쇠를 두들기는 일보단 시원한 방에 앉아서 주판 튕기기를 더 좋아하는 작자들이었다.

“그건 그놈들 사정이고, 나는 다르니까.”

하지만 이안에겐 필요한 일이었다.

‘금속의 느낌을 익힐 필요가 있어.’

직접 쇠를 두들겨가며 탄두의 형태를 만들어본다면, 오러를 담아내는 것이 더욱 수월하지 않을까.

탄환에 오러를 담아내는 데 실패를 거듭한 이안이 고심 끝에 생각해 낸 해결책이었다.

“싫으면 말고.”

바몬트가 대답을 주저하자, 이안은 망설임 없이 돌아섰다.

마르센 제국의 황궁에도 대장장이는 있었다. 그러니 5황자인 알론소에게 말해 본다면 어떻게든 스승을 구할 수는 있으리라.

그럴 필요는 없었지만.

“아, 아닐세. 내가 직접 가르쳐주지!”

등 뒤에서 들려온 난쟁이의 다급한 목소리.

“뭐, 그렇다면야.”

대답을 들은 이안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

이안이 오러를 탄화에 씌울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한 것은 대장술만이 아니었다.

“공작 전하, 지금 제가 잘못 들은 게 맞죠?”

새로운 아슈타르 공작령의 수도, 알자스에 위치한 빛의 신 마르콘의 신전.

그 신전의 주인인 세리아 필라스는, 대뜸 찾아온 이안의 말을 듣곤 경악했다.

이안은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제대로 들은 게 맞아.”

“아니, 신법이 무슨 애들 장난인 줄 알아요? 그냥 개나 소나 배우면 손에서 뿜뿜 나가게?”

상대는 자신보다 아득히 위에 있는 아슈타르의 공작이었지만, 세리아는 거침없이 쏘아붙였다.

“기별도 없이 대뜸 와서는 한다는 말이, 마르콘의 신법을 배우고 싶다니… 그게 말이냐고요.”

평생을 빛의 신에 바치기로 맹세한 그녀에겐 모욕이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제가 전하니까 이렇게 넘어가는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이렇게 못 넘어가요, 알죠? 못 들은 거로 할게요.”

으름장을 놓은 그녀는 귀를 씻을 물을 찾기 위해 일어섰다.

“그럼 다시 말할게. 나는 마르콘의 신법과 신성력의 원리를 배우고 싶어.”

하지만 이안은 물러서지 않았다.

순간, 열 받은 신관의 새하얀 이마에 핏줄이 솟았다.

“아니 진짜 이 사람, 아니 전하가.”

“안 될 이유가 뭐지? 결국, 내가 빛의 신과 연결만 되면 사용할 수 있는 게 신법 아냐?”

하지만 이안은 여전히 요지부동.

고집불통인 이안을 잠시 바라보던 세리아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그게 말처럼 그렇게 쉬운 게 아니라니까요?”

신성력은 신이 내려준 신성이 마력과 합쳐진 힘이다.

당연히, 신이 아무에게나 자신의 힘을 내려줄 리 없지 않은가.

“빛의 신 마르콘의 신성은 마르콘께 자신을 헌신할 준비가 된 사람만….”

“그럼, 바드리안 공작가의 피를 이은 사람들은?”

“아니 그분들은 신에게 사랑받는 혈통을… 하아, 내가 왜 이런 얘기를 해야되는 거에요?”

한 치도 물러섬이 없는 이안의 뻔뻔한 표정에, 세리아의 입에선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안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빛의 신이 나를 싫어할지, 아닐지는 너도 모르는 거 아냐?”

“그분은 순수한 사람을 좋아하신다고요. 당신처럼 때 묻은 사람이 아니라.”

“보통, 본인 입으로 그런 말을 하면 부끄러워하던데.”

“아니, 제가 그렇단 게 아니라…아악!”

결국, 답답함을 참지 못한 세리아는 폭발했다. 하지만 이안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어차피 날 좋아할지 싫어할지 결정하는 건 네가 아니라 빛의 신이라고. 그냥 만남의 자리만 주선해 주는 게 그렇게 어려워?”

“다음 서품식은 넉 달이나 남았어요. 고작 한 사람을 위해서 마르콘님을 강림시키기엔 신전의 재정과 일정이….”

짤그랑

“…생길 것도 같네요. 호호.”

“좋아, 잘 부탁할게.”

침을 꼴깍 삼키는 사제 앞에, 이안은 보석 주머니를 내려놓으며 씨익 웃었다.

애오옹

[다음은 어디로 갈 셈이냐?]

“마탑.”

이안이 짧게 답하자, 어깨 위에 올라탄 미미르가 고개를 갸웃했다.

[대장술에 신법, 거기에 마법이라니. 마검사라도 될 셈인게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들을 굳이 한번에 익히겠다니.

그는 이안의 계획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안이 귀찮아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만류귀종이라는 말, 몰라? 융합학문이라는 말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든 길은 결국 하나로 통하고 섞을 수 있다는 말이지, 그러니까.”

오러가 아닌 다른 곳에서 돌파구를 찾는다.

이안이 찾은 해답 중 하나였다.

[…이해할 수 없군.]

“그럼 가만히 보고만 있어, 괜히 초치지 말고.”

말을 마친 이안은 가볍게 마탑의 문을 밀어 열었다.

“공작 전하를 뵙습니다!”

자신을 보자마자 예를 갖추는 마법사들을 지나친 이안은 곧장 마탑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그가 만날 사람은, 마탑 지하의 연구실 중 하나에 있었다.

“공작 전하를 뵙습니다.”

“오랜만이야, 카르밀. 그 거북한 인사는 집어치우고.”

아슈타르 성에서 가죽을 다듬던 무두장이이자, 부여계 마법을 익힌 부여술사.

카르밀이 고개 숙여 예를 취하자 이안은 손을 내저었다.

“부탁이 하나 있어 찾아왔는데 말이지.”

“부탁이라니요, 전하. 명령만 하시면 따릅지요.”

이안의 말을 들은 카르밀이 당황했다.

물론 그는 제법 실력 있는 부여술사였지만, 아슈타르와 신검의 주인을 감히 거역할 용기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부여마법에 대해서 좀 배우고 싶은데.”

“아슈타르의 뜻대로…예? ”

순간, 고개를 숙이려던 카르밀의 행동이 멈췄다.

“전하, 방금….”

“부여마법을 배우고 싶다고. 설마 안된다고 하지는 않겠지?”

[하아…]

애오옹

성법에 이어서 마법까지.

이안의 엉뚱한 행보를 지켜보던 미미르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연금술을 배우고 싶은데.”

“정령술을….”

이안의 배움을 향한 열정은, 이게 끝이 아니라는 걸.

***

까앙!

황금모루부족의 대장간 중에서도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족장의 대장간.

까앙! 까앙!

하지만 그 안에서 쇠를 두드리는 것은 난쟁이가 아니었다.

애오오옹

모루 위에서 번갈아 가며 망치로 쇠를 두들기는 것은, 반투명하게 속이 비치는 고양이들.

[하다하다 이젠, 쇠까지 두드릴 줄이야. 내가 신검인지 하인인지 모르겠군.]

까앙!

다른 고양이들과 함께 금속을 두들기던 검은 고양이, 미미르가 한숨을 내쉬었다.

“신검이 아니라 신총이라니까. 자꾸 검인 척할래?”

하지만 미미르의 주인, 이안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쇳물이 가득 담긴 통을 슬쩍 기울였다.

치이이익

벌집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 틀을 가득 채운 쇳물은 빠르게 식어들어갔다.

이안은 망치를 휘둘렀다.

산산조각이 난 거푸집과 함께 바닥에 쏟아진 것은, 콩알만한 크기의 쇠막대들.

애오오옹

고양이들이 주워 담은 쇠막대를 모아 선반에 올리자, 이안은 조그마한 세공용 나이프를 들었다.

카각 카가각

오러를 불어넣은 나이프는 이안이 원하는 대로 쇠막대의 형태를 다듬어나갔다.

애오오옹!

[끝났다. 이 정도면 되겠지?]

“충분해.”

짤그락

미미르가 모아온 손가락 한 마디만 한 구리원통들을 본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아무것도 시키지 마라. 이제 내 마력도 한계니까.]

“어차피 그럴 셈이야.”

분신들을 돌려보낸 미미르가 네 발로 호다닥 대장간을 빠져나왔지만, 이안의 신경은 온통 선반 위에 집중되어 있었다.

“준비는 끝났고.”

탄두와 탄피, 그리고 화약 비스무리한 무언가.

3개월 동안 수박 겉핥기로 배워가며 만들어 낸 작품들이 선반 위에 가득 쌓여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구슬을 꿰어 보배로 만드는 것뿐.

꾸욱 꾸우욱

이안은 탄피에 화약가루를 집어넣은 다음, 탄두를 손으로 꾸욱 눌러 탄피에 집어넣었다.

본래는 몇 톤에 달하는 프레스기계로 해야 할 일.

하지만 오러익스퍼트 상급에 이른 이안의 팔뚝은 충분히 기계를 대체할 수 있었다.

“휴우.”

순식간에 서른 발의 9mm 철갑탄을 만들어낸 이안은 이마의 땀을 쓸어넘겼다.

기계의 힘을 대체할 순 있어도, 그게 쉬운 일이라 할 수는 없다.

과도한 힘을 사용한 팔은 욱신댔고, 불 앞에 온종일 서 있었던 몸뚱이는 땀으로 젖은 지 오래였다.

“다음부턴 매일 지구 방향으로 절이라도 해야겠어.”

지친 몸으로 철갑탄들을 바라보던

이안은 거친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웃고 있었다.

“이제야 서른 발이라니, 어휴.”

총탄이 가진 성질을 잘 이해하는 것이 오러를 발현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그 생각 하나만으로 탄환을 만들기 시작한 지 삼 개월.

그 결과가 눈앞에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발사가 됐으면 좋겠는데.”

이안은 총탄 하나를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다.

총탄 안에 든 것은, 강민혁의 고등학교수준 과학과 기초적인 연금술. 그리고 부여마법이 융합해 만들어진 화약과 뇌관.

정상적인 발사가 가능하다면, 오러를 총탄에 싣는 첫걸음이 될지도 모르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안은 시험을 진행할 수 없었다.

파아앗

느닷없이 환한 빛이 대장간을 가득 메웠다.

[뭐, 뭐냐!]

애오옹!

대장간 밖에서 편히 쉬고 있던 미미르가 놀라 뛰어들어 왔다.

하지만 총탄을 든 이안의 시선은 한쪽에 고정되어 있었다.

“…모루?”

황금색으로 빛나는 모루가,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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