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116화 (117/224)

#116화

오러를 다루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재료가 되는 마력이다.

그리고, 마력 다음으로 중요한 요소는.

‘사용자의 의지.’

마력을 오러로 가공하는 사용자의 의지가 어느 방향을 향하는지, 그 의지가 얼마나 곧고 강렬한지.

오러의 형태와 위력을 결정하는 데에, 사용자의 의지는 어떻게 보면 마력보다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의지의 방향을 잡아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같은 길을 걸어본 스승을 만나는 것.’

“날 제자로 삼겠다고?”

그런 의미에서, 오러의 끝을 마주한 마스터급의 강자는 말할 필요도 없는 최고의 스승이었다.

단지.

“어째서?”

그 오러마스터가 자신을 제자로 받으려는 이유를 알 수 없을 뿐.

의아해하는 이안을 향해, 멤피스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자네가 내 숙원을 해결해 주었으니, 나 역시 자네를 도와주고 싶은 것일 뿐이야.”

순간, 멤피스의 눈이 이안의 명치를 향했다.

“마력 탈진이 반복될수록, 자연스럽게 심장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단 사실은 자네도 알고 있겠지.”

그렇기에, 마력탈진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마력을 다시 모을 수 없을 만큼 심장이 약해진다.

“자네가 얼마나 힘든 싸움을 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심장의 상태가 썩 좋지 않네. 이대로 몇 번 탈진을 거듭하고 나면….”

펑.

심장 어림에 손을 갖다 댄 멤피스가 손으로 터지는 시늉을 했다.

이안은 인상을 썼다.

‘어쩐지.’

갑작스럽게 찾아온 가슴 통증.

심장에 쌓인 마력 때문일 거라곤 생각했었지만, 설마 마력탈진의 결과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래서, 당신한테 배우면 그 위험이 사라진다, 이건가?”

“그건 아니다.”

이안이 못 미덥다는 듯 묻자, 후작은 고개를 저었다.

“체내에 보유한 마력량이 늘어난다면, 탈진이 일어날 확률은 확실히 줄어들겠지. 하지만 이미 약해진 심장은 되돌릴 수 없을 거다.”

그 말을 들은 이안은 멤피스를 미친 놈 보듯 바라봤다.

“아니 그럼, 당신한테 내가 가르침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잖아?”

마력량을 늘리는 것은, 굳이 마스터급 강자의 도움이 없이도 홀로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이안은 아슈타르의 마력운용법을 익히고 있으니, 제국의 마력운용법을 후작의 가르침이 오히려 방해가 될 지도 모르는 노릇.

하지만.

“그래도.”

아직 멤피스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마스터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면, 네 신체가 마력을 받아들이기 가장 좋은 상태로 재구성되겠지.”

“…마스터라고?”

순간, 이안은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는 것을 무슨 동네 뒷산 올라가는 것처럼 말하다니.

“지금 농담하는 거지?”

모두가 오러를 다루지는 못해도, 오러를 다룰 수 있는 자의 숫자는 꽤 많다.

하지만, 그들의 정점에 올라선 오러 마스터의 숫자는 전 대륙에 채 다섯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현실.

신검공가라 불리던 아슈타르 공작가에서도, 당대의 오러 마스터는 전대 공작 에드너 폰 아슈타르뿐이었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내가 그렇게 한가해 보이나?”

“아니, 본인이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다고 다른 사람도 그렇게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뻔뻔해 보이기까지 하는 후작의 말을 들은 이안이 어처구니없어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쉽지야 않겠지만, 내 조언이 있다면 자네가 더 높은 경지로 올라갈 가능성을 끌어올릴 수는 있겠지.”

“하?”

하지만 후작은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는 것 같았다.

“높은 경지로 끌어올려 주는 것은 정해진 훈련이 아니라 영감을 끌어낼 수 있는 한 마디 조언이니까. 게다가.”

말을 멈춘 멤피스는 이안이 손에 쥔 권총을 가리켰다.

“자네는 검을 다루지도 않지 않나. 그대 정도의 수준이라면, 적절한 대련과 조언, 영감만으로도 충분히 성장할 수 있겠지.”

말을 마친 멤피스는 이안의 대답을 기다렸다.

[이안, 오러 사용자에게 마스터의 조언은 천금과도 같다.]

고민하는 이안의 옆에서 미미르가 재촉했다.

[저 말이 사실이라면, 반드시 승낙해야 한다. 아슈타르를 위해서라도.]

마스터급의 강자가 없는 아슈타르 공작가에서 마스터의 가르침을 받을 방법은 전무하다.

미미르의 눈으로 볼 때, 공작가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이 제안은 승낙할 가치가 있었다.

하지만, 이안에겐 승낙하지 못할 이유가 있었다.

“내가 그 말을 어떻게 믿지?”

눈 앞의 마스터를 믿을 수 없다는 것.

쓰러지기 전까지 목숨을 걸고 싸우던 상대에게 가르침을 받으라니.

이안이 아닌 다른 누구라도 이상하게 여길 게 뻔하지 않은가.

“이건 나 좋자고 하는 일이 아니네. 그걸 내가 증명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게 내 지론이라.”

“신검의 주인답지 않게 속이 좁군, 그래.”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은 후작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서, 할 거야 말 거야?”

하지만 이안은 당당했다.

그로선 당연히 해야 할 말과 일을 행했을 뿐이다.

결국, 한숨을 내쉰 후작은 입을 열었다.

“그게 자네의 속 좁은 마음에 위안이 된다면, 얼마든지 해 주지. 나 역시 마음의 찜찜함을 덜어내고 싶으니까.”

“그렇다면 나도 받아들이겠어.”

그제야, 이안은 후작을 향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누가 보면 네가 후작에게 가르침을 내리는 줄 알겠군, 그래.]

애오오옹

미미르가 옆에서 핀잔을 주었지만, 이안은 기어이 저택 어딘가에 비치된 마력계약서를 후작에게 받아낸 다음 사인까지 마쳤다.

“정말이지, 제자를 받으면서 계약서까지 쓰는 건 난생처음일세.”

“그럼, 지금까지 날림으로 살아왔단 거잖아? 인생을 손해 본 제자들에게 조의를 표하지.”

“이렇게 싸가지 없는 제자를 받는 것도 말이야.”

제자 이야기가 나온 순간 베어낸 기사들을 떠올린 후작의 얼굴이 잠시 어두워졌지만, 곧 표정을 편 후작은 이안을 향해 손짓했다.

“그럼, 바로 시작하도록 하겠네.”

“뭐부터 할 건데?”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이안은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무려, 오러의 정점에 오른 자가 직접 내려주는 가르침이지 않은가?

한 마디에 천금을 준다고 해도 응할 오러 사용자들이 열 수레는 채울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우선….”

하지만, 후작의 답은 생각 외로 평범했다.

“대련부터 하지.”

“대련? 오러 운용법이 먼저가 아니고?”

생각과는 다른 후작의 말에, 이안은 고개를 갸웃했다.

“우선, 자네의 수준을 확실히 알아야겠으니까.”

말을 마친 후작의 입꼬리가 크게 올라갔다.

***

-어떻게 책임질 겐가, 뢰베르?

살아 있는 듯한 용이 천장에 새겨진 방.

그 중앙에 떠오른 환영의 말을 들은 참룡공, 뢰베르는 묵묵히 인상을 찌푸렸다.

-나만 믿으라고 했던 게 분명 며칠 전이었던 것 같은데 말일세.

“설마하니, 그놈이 오러 마스터의 정신을 차리게 할 줄은 몰랐다. 도대체, 무슨 수로 심마에 빠진 자를.”

그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지자, 뢰베르는 급히 변명했다.

하지만.

-그건 나랑 상관없는 일일세.

참룡공의 변명이 채 끝나기도 전, 금테안경을 쓴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어쨌든, 그대는 우리에게 대가를 약속하고 힘을 빌려 갔지 않나. 우리의 소중한 대원들과 무기도 말이야.

“그건….”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았다, 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계획대로 그가 제국의 후작을 처리했다면, 내년 이맘때쯤 제국은 그의 손에 들어와 있었을 테니까.

노인은 품의 회중시계를 잠시 확인하고는, 안경을 고쳐 썼다.

-약속을 지키게, 참룡공. 그대가 베어온 용과 같은 꼴이 되기 싫다면.

말을 마친 노인의 환영은 언제 있었냐는 듯 사라졌다. 홀로 남은 참룡공은 한참을 말없이 서 있었다.

이윽고.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나 혼자 죽을 수는 없으니까.

말을 마친 참룡공의 뱀같은 눈이, 서늘한 빛을 뿜어냈다.

***

이안과 멤피스 후작의 대련은 지하에 위치한 연무장에서 이루어졌다.

“허억, 허억.”

또다시 찾아온 가슴의 통증에 인상을 찡그린 이안이 숨을 헐떡였다. 멤피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연무장이 완전히 박살 나 버렸잖나.”

물론, 그 말은 이안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자네, 전투방식이 너무 난잡해.”

지하 연무장은 말 그대로 초토화되었다.

여기저기서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에 가린 수많은 총탄자국들 사이사이로, 깨진 돌조각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분명 자네의 힘은 강하지만, 너무 비효율적이란 말이네.”

“뭐, 틀린 말은 아니지.”

이미 자신의 문제를 알고 있는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후작은 검지를 좌우로 저었다.

“아니, 자네가 생각하는 그 이상이네.”

검에 오러를 싣는 후작의 관점에서 볼 때, 이안의 강한 화력을 지닌 병기들은 분명 다 대 일에선 어마어마한 효과를 발휘하겠지만.

“일 대 일에서, 이런 범위 형태의 공격은 큰 의미가 없네. 강자 간의 대결에서는 일점에 집중된 위력이 더욱 중요하지.”

그의 눈에, 이안의 전투방식은 약한 다수를 상대하기에 더욱 적합해 보였다.

대 마족병기 페르소나는 마력을 잡아먹는 괴물.

“이런 식으로 마력을 낭비해대니, 마력탈진이 일어나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이야.”

단 한 번의 대련으로, 후작은 이안의 문제점을 단번에 파악해냈다.

그리고, 그 해법까지도.

“마력을 늘리기보단, 자네의 전투방식을 바꾸는 것을 추천하겠네. 체내의 마력량을 아무리 늘려본들, 자네의 마력소모량을 해결할 방법은 없을테니까”

해법을 제시한 멤피스는 팔짱을 낀 채 이안의 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건 좀 어려운데.”

하지만 이안은 그 말을 쉽게 따를 수 없었다.

“어째서지?”

“내가 페르소나로 구현해내는 병기들은, 원형이 정해져 있으니까.”

후작의 물음에 대한 이안의 답은 간단했다.

“내가 구현해내는 병기들은, 대부분 마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자들을 효율적으로 살상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니까.”

이미 계약서를 작성한 이안은 거리낌 없이 자신의 약점을 말했다.

“이 정도 위력이면, 인간 한둘 죽이는 데는 아무런 문제도 없거든.”

마력도, 오러도, 신성력도 존재하지 않는 지구에서, 인간을 죽이는 데 필요한 것은 고작해야 한 발의 총탄.

강력한 한 발보다는 적당한 위력의 수백 발을 쏟아내는 게 효율적이지 않은가.

“그래, 그렇군.”

약한 다수를 위해 개발된 무기로 대륙의 최정상에 올라와 있는 강자들을 상대해왔다니.

후작은 이해 할 순 없었지만, 굳이 그 부분을 캐묻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자네에게 물어볼 말이 하나 더 있었네.”

그가 정말로 궁금한 것은 다른 것이었으니까.

“어째서, 자네는 병기에 오러를 불어넣지 않는 겐가?”

말을 마친 후작과 이안의 눈이 마주친 순간.

“에휴.”

이안은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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