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115화 (116/224)

#115화

BZ가스.

신경을 마비시킴과 동시에 뇌의 신경전달물질을 교란해, 온갖 정신질환을 일으키는 화학무기.

하지만 이안이 이 녀석에게 바라는 것은 크지 않았다.

‘오러 마스터의 감각을 무디게 하는 것.’

아무리 강철같은 정신과 육체를 지녔다 한들, 느낄 수 없다면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마스터 급의 감각은 인간을 초월한 수준으로 예민하지만, 그렇기에 감각을 교란당하는 것에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반쯤 도박에 가깝긴 했지만.’

오러 마스터의 내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코끼리 열 마리를 잠재울 수 있는 양을 풀어 놓았지만, 이게 오러 마스터인 후작에게 얼마나 통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다행히도.

‘효과가 있나?’

서걱

허공에 검을 휘두르는 후작을 본 이안은, 도박이 성공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쓴웃음을 지었다.

‘제길, 마력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도.’

뒤통수에 큰 거 한 방을 먹이면 끝날 일.

하지만, 공격기가 추락하면서 막대한 마력을 소모했다.

가스의 침투를 막아줄 보호의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그에겐 벅찼다.

털썩

[이안, 정신 차려라! 난쟁이 놈은 어떡하려고!]

‘알아서 하겠지, 자기가 알아서 쫓아왔는데.’

마력으로 이루어져 가스에 영향을 받지 않는 미미르가 이안의 몸을 흔들어댔지만, 바닥에 쓰러진 채 숨을 헐떡였다.

남은 것은.

‘내 마력이 먼저 고갈되느냐, 아니면 후작이 먼저 쓰러지느냐인가.’

한쪽이 먼저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뿐.

‘미미르. 혹시 내가 쓰러지더라도, 부탁할게.’

[이안, 이안!]

쾅 콰직

대낮부터 칼춤을 추는 오러 마스터를 앞에 둔 채.

이안은 정신을 놓아버렸다.

***

베었다.

-네가 상대해야 할 건 제국이란 말이다!

서걱

마음속에서 자신을 유혹하던 심마를 베었다.

-끄아아악! 어째서, 어째서!

사지 하나가 날아간 채 비명을 지르는 검은 거인.

서걱

하지만 후작은 베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서걱 서걱

검을 휘두를 때마다, 오우거보다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던 검은 거인은 조금씩 작아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거지?’

왜, 눈 앞에 심마가 나타난 것일까.

정신을 차린 후작은 작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심마에 먹혀버려 이성을 잃어버린 것까지는 그렇다 쳐도.

‘원래 심마라는 게, 벨 수 있는 것이었나?’

아니, 그럴 리 없다.

전설로만 남아 있는 심검(心劍)의 경지가 아니고서야, 어찌 검으로 마음을 벨 수 있단 말인가.

-말도, 말도 안 돼. 어떻게, 검으로 나를 벨 수 있는 것이냐!

심마도 그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눈앞의 검은 형체가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오러 블레이드에 격중당할 때마다 크기가 줄어든 녀석은, 어느새 인간과 비슷한 크기까지 줄어들어 있었다.

‘이상해, 참으로 이상해.’

이성을 되찾은 그였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것.

다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서걱

눈앞에 나타난 심마를 검으로 베어낼 때마다, 그의 이성이 점차 또렷해진다는 사실.

‘벤다…마음을.’

서걱

-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조금만 더 있으면, 놈의 몸을 차지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어린아이만 한 크기로 줄어든 검은 형체가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다.

‘마음의, 검.’

후작의 검은 멈추지 않았다.

서걱

반쯤 부러진 것이나 다름없는 그의 검에 서린 오러 블레이드는, 검은 형체의 목을 단번에 날려버렸다.

-이건…말도….

단말마를 내뱉으며 검은 형체가 눈앞에서 사라진 순간.

파앗

후작의 시야가 변했다.

‘숲?’

정신을 차린 후작이 주변을 살폈다.

여기저기 타오르는 나무들 사이로 자극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내가 왜….’

자신이 왜 이런 숲에 있는 것인지 깨닫지 못한 후작은 순간 어리둥절했지만.

‘아.’

곧, 수련장에서 벌인 일을 떠올린 후작의 표정이 침통하게 변했다.

그가 직접 키워낸 기사들을 직접 베어버렸다는 것은, 썩 유쾌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우선은, 이 사태를 수습해야겠군.’

어찌 되었건, 멤피스는 제국에서 가장 강한 검이었다.

광인의 상태였다면 모를까, 심마에서 벗어난 지금의 자신은 제국에 꼭 필요한 존재이지 않은가.

‘설사, 어떤 오명을 뒤집어쓰더라도.’

굳게 다짐한 멤피스는 고철로 변한 검을 조심스레 검집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이 자는….’

그의 눈에, 쓰러진 사내가 들어왔다.

‘이안 폰 아슈타르.’

제국의 검이자 방패인 그가 사내의 이름을 모를 리가 없었다.

연합공국의 일곱 공작 중 한 명이자, 조금 전까지 그와 생사를 다투던 사내가 아니던가.

‘상태가 썩 좋아 보이진 않는군.’

얼굴이 하얗게 질린 것이, 공작은 분명 마력탈진의 상태에 이른 것이 분명했다.

전신에 뒤집어쓴 페르소나를 어떻게 유지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곧 공작은 마력을 다룰 수 없는 몸이 되리라.

애오오옹 애오옹

공작의 옆에서 한 마리 고양이가 애처롭게 울부짖고 있었지만, 멤피스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렇게 강한 힘을 가지고도, 제대로 휘두를 수 없다니. 나약하군.’

속으로 공작을 비웃은 그는 걸음을 옮겼다.

어깨에, 쓰러진 공작을 둘러업은 채.

‘그래도, 이만한 상대는 드물지.’

마스터의 경지에 이르지 않고도 자신의 육신을 해할 수 있는 자다.

거기에, 마지막에 공작이 사용한 정체불명의 기체.

‘목적은 불순하다만, 결과는 좋았으니.’

일단 데려가 볼까.

애오옹, 애오오옹!

자신의 다리를 할퀴는 고양이를 무시한 채, 멤피스는 어깨에 둘러맨 공작에게 마력을 주입했다.

그의 발걸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

마르센 제국의 황궁에 존재하는 수많은 궁궐 중, 외부의 손님을 접대하기 위해 존재하는 온화궁.

그곳을 이용하는 자는 단 한 사람뿐이었다.

“슬슬 찾아올 때가 되었군.”

참룡공, 뢰베르 폰 구스타프.

수 시간 전 폭발음을 들은 뒤로, 그의 표정은 제법 밝았다.

‘분명, 후작의 짓이겠지.’

심마에 빠진 오러 마스터는 천재지변이나 다름없다.

평범한 인간의 힘으로는 막아낼 수 없는 존재.

‘여기서 오러 마스터를 막을 수 있는 건 나와 아슈타르 놈, 둘 뿐이지만….’

운과 요행으로 마왕을 토벌한 아슈타르 놈과 달리, 그는 본신의 힘만으로 마왕을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

‘오러 마스터를 제거하고 나면, 제국은 내게 더 의존할 수밖에 없을 터.’

그러면, 제국이 그의 손아귀에 들어오는 것도 절대 무리는 아니다.

‘다른 공작들과 어느 정도는 나눠 가져야겠지만.’

곧, 마르센 제국은 그 이름을 바꾸게 되리라.

“후후.”

계획이 그의 의도대로 착착 진행되어가자, 그의 식어버린 심장에서 감정이 끓어올랐다.

“공작 전하, 황녀 전하의 서신이옵니다.”

낮은 목소리로 웃던 그에게, 약혼녀로부터의 서신이 날아온 것은 그때였다.

“결국. 이럴 거면서, 괜히 시간을 끌기는.”

‘아직, 기다려주세요. 무슨 일인지 확인되지 않았으니까.’

갑작스레 자신을 가로막은 황녀를 떠올린 그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일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거란 사실을 깨닫고, 자신이 나서는 것을 막은 모양이다만.

“어차피 너희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을 터.”

마스터급의 힘을 막아낼 수 있는 강자 중, 마르세니아 황가의 피가 섞인 것은 결국 자신뿐이었으니까.

부욱

황녀의 서신을 손에 쥔 뢰베르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서신에 붙은 인장을 뜯었다.

하지만.

“…뭐?”

서신을 읽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참룡공은 손에 쥔 서신을 바닥에 툭 떨어트렸다.

편지를 들고 있던 그의 오른손이 부르르 떨려왔다.

서신에는, 그가 생각한 내용이 적혀있지 않았으니까.

“파혼, 이라고?”

으드득

계획이 어그러졌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눈이 붉게 달아오른 용인은 이를 갈았다.

***

[이안, 이안!]

이안이 정신을 차린 것은, 미미르에게 뺨을 몇 대 맞고 난 뒤였다.

“또….”

기절했나.

정신을 차린 이안은 한숨을 내쉬었다.

병기의 위력은 분명 막강했지만, 전투가 조금만 길어져도 마력의 소모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은 이안의 큰 단점이었다.

그리고.

“크윽, 또….”

쨍하게 울리는 머리와 찢어질 듯 아파오는 심장.

잠시 가슴을 움켜쥔 그는, 가장 먼저 자신의 몸상태를 살폈다.

“뭐야, 마력이….”

이안은 놀랐다.

마력을 모두 소모해 탈진된 상태여야 할 그의 육체에, 조금이지만 마력이 차 있었으니까.

이안의 시선이,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날린 고양이를 향했다.

“미미르, 어떻게 된 일이야?”

[널 여기까지 데려온 자의 짓이지. 대체 이게 뭔지….]

말을 마친 미미르는 한숨을 내쉬었다.

“누가? 난쟁이가?”

그 말에,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은 이안은 고개를 갸웃했다.

화학 가스와 불길로 가득 찬 숲에, 누가 있어 자신을 구해 주었단 말인가.

그 의문은 곧 풀 수 있었다.

“내가 했네, 공작.”

방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익숙한 얼굴의 사내.

“…미친.”

그리고, 그가 사냥해야 할 대상이었으니까.

철컥

이안은 곧장 탁자 위에 놓인 권총을 겨눴다.

상대는 오러 마스터.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선 손도 쓰지 못하고 당할 확률이 높았지만, 가만히 손 놓고 구경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 무기는 그만 내리게. 자네와 더 싸울 생각은 없으니까.”

미친 후작의 태도는 그의 생각보다 온건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자네와 싸울 생각이었다면, 굳이 거기서 자네를 데려왔을 이유가 없지 않겠나?”

“당신이, 날 데려왔다고? 갑자기 정신이 멀쩡해지기라도 했나 봐?”

이안은 총구를 그대로 겨눈 채 빈정거리듯 말했다.

하지만 후작과 눈이 마주친 순간.

‘다르다.’

지독한 살기로 가득했던 지난번과는 달랐다.

마치 새벽의 호수처럼 고요한 눈동자.

“정말 제정신으로 돌아왔어, 어떻게?”

아직 총구를 내리지는 않았지만, 멤피스의 정순한 눈빛을 확인한 그의 경계심이 점차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후작이 입을 열었다.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로군. 어떻게 내 심마를 바깥으로 끌어낸 거지?”

순간.

‘설마?’

이안은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가 마지막에 뿌린 화학 가스, BZ의 효과 중 하나는 지독한 환각.

환각에 의해, 마음속의 심마가 그의 눈앞에 나타난 거라면?

‘그게 오러 마스터에게도 통하는 건지는 몰랐지만.’

애초에 이런 효과는 기대도 하지 않았던 이안에겐, 천운이나 다름없었다.

“역시, 자네는 짐작 가는 바가 있나 보군.”

상대의 표정을 읽은 멤피스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 없진 않은데.”

“그렇다면, 자네는 내 은인일세.”

이안이 그 말에 긍정하자, 후작은 반색하며 말했다.

“은인?”

“덕분에, 작은 깨달음을 하나 얻었거든.”

“깨달음이라니….”

오러 사용자의 정점에 오른 마스터가, 또 다른 깨달음을 얻을 일이 있단 말인가?

이안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

하지만,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후작의 제안이었다.

“내 제자가 될 생각은 없나?”

“제자?”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받은 이안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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