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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114화 (115/224)

#114화

자주포, K-9에 장착된 포의 구경은 155밀리미터.

녀석이 쏘아내는 거대한 포탄들은, 평범한 고폭탄조차도 어지간한 축구장 하나 정도는 불바다로 만들어버릴 만큼 강력한 병기였지만.

콰과광!

세 발의 포탄이 동시에 명중한 자리에서 쏟아져나온 것은, 더욱 끔찍한 무언가였다.

푸시시시-

백색의 연기.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연기가 아니었다.

화르르륵-

포탄 안에 담긴 백린(白燐)이 만들어낸 것은, 백색의 독연(毒煙).

피부에 닿는다면 뼈를 태우고, 허파로 들이킨다면 허파를 태워버린다.

너무나 잔인하단 이유로 전투에 사용되는 것이 금지된 끔찍한 무기가, 고작 한 사람을 제압하기 위해 퍼져나갔다.

하지만.

‘역시, 멀쩡하군.’

온몸에 불이 붙은 채 연막 속을 천천히 빠져나오는 후작을 보며, 이안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왕에게도 통하지 않았던 백린이, 동급의 힘을 지닌 오러 마스터에게 통할 리 없지 않은가.

순간.

-죽인다.

후작과 눈을 마주친 이안의 머릿속에, 살기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흡!’

수 킬로미터 떨어진 거리였음에도 느껴지는 무시무시한 살기에 이안은 숨을 멈췄다.

그와 동시에.

타타타탓

이안의 모습을 확인한 후작이, 전속력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미친.’

말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달려드는 후작을 본 이안의 표정이 굳었다.

하지만.

‘이 정돈 예상범주 안이야.’

이안은 이미 대비를 끝내놓은 상황.

전신에 화염을 뒤집어쓴 후작이 이안이 은신한 숲 안으로 들어오기 직전.

“발사.”

이안은 두 번째 계획을 실행했다.

콰아아-

불타오르는 오러 마스터를 향해 쏘아져 나가는 불꽃.

미미르의 분신들이 쏘아낸 판처파우스트3의 대전차 로켓이 후작의 목숨을 노리곤 쏘아져 나갔다.

그 표적이, 보통 인간이 아니라는 게 문제였지만.

서걱

후작의 검이 번뜩임과 동시에, 반으로 갈라진 로켓이 허공에서 폭발했다.

강력한 폭발에 검날이 심하게 뭉그러지긴 했지만, 폭발이 분산되어버린 로켓은 후작의 몸에 아무런 상처도 입힐 수 없었다.

쐐애액-

하지만 로켓은 한 발이 아니었다.

쐐애애액-

적게 잡아도 열 발은 되어 보이는 로켓이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후작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서걱

콰과광!

후작의 검이 빛날 때마다 날아오던 로켓들이 하나둘 폭발하며 사라졌다.

이미 망가진 것이나 다름없는 검이었지만, 검에서 뿜어져 나온 오러 블레이드는 전혀 녹슬지 않았으니까.

그럼에도.

쐐애애액-

단 한발.

후작의 배후에서, 시간차를 두고 날아드는 로켓은 미처 막아내지 못했다.

콰앙-

간신히 후작의 등에 닿은 로켓의 기다란 코가, 초고온의 메탈제트를 한 점으로 쏟아냈다.

그 결과는 확실했다.

‘됐다.’

피를 흘리며 한쪽 무릎을 꿇은 후작을 확인한 이안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오러 마스터가 아무리 강하다 한들, 결국은 피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이다.

강철로 이루어진 전차의 장갑도 두부처럼 뚫어내는 녀석을, 고작해야 인간의 피부로 막아낼 수 있을 리 없었다.

우웅

이안은 곧장 다음 병기를 소환했다.

두 어깨 위에 맨 무반동포에 장전된 것은, 헬파이어 미사일을 소형화한 LAHAT.

쐐애액-

양손의 검지에 걸린 방아쇠를 힘껏 당기자, 두 발의 미사일이 포구를 빠져나와 하늘로 솟구쳤다.

하나는 뒤로, 하나는 앞으로.

최고고도까지 상승한 미사일은 그대로 표적인 후작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내리꽂혔다.

콰앙-

[명중했다, 이안. 상대가 멈췄어.]

‘계속 퍼부어. 정신을 못 차리게.’

[알았다.]

콰앙 콰앙

쐐애액-

수 킬로미터 밖에서 불을 뿜는 자주포. 그 아래로 줄지어 쏘아져 나가는 로켓들.

불꽃놀이를 방불케 하는 폭발들이 쉬지 않고 터져나갔다.

하지만.

[이, 이안.]

‘보고 있어.’

폭발의 화염과 연기가 걷힌 순간, 둘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파파팟

살아 있었다.

가슴팍이 온통 헤집어져 있고, 전신이 피로 검붉게 물들어 있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 있는지조차 의문인, 송장이나 다름없는 몸 상태였지만.

파파파팟

달려오는 후작의 눈빛만은, 처음과 달라진 게 없이 그대로였다.

게다가.

‘재생능력이 있었어?’

쌍안경으로 표적의 상태를 확인한 이안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스으으

마치 시간이 되돌아가기라도 하는 듯, 마스터의 가슴에 파인 구멍이 서서히 메꿔져 나갔다.

[신체 안정화는 제국의 마력 운용법에 깃든 효과 중 하나일 거다. 저런 식으로 신체를 재생하는 건 처음 봤지만.]

“안정화? 저건 안정화가 아니라, 숫제 치료 신법을 쏟아붓는 수준이잖아.”

아무리 오러 마스터라지만, 이건 정도가 좀 지나치지 않은가.

숲 안으로 사라지는 적을 확인한 이안은, 다음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뒤로 몸을 뺐다.

아니, 빼려고 했다.

쾅 쾅 콰광!

숲속에서 연달아 폭발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분명, 그것의 정체는 이안이 미리 심어둔 지뢰들.

하지만.

‘너무 빨라.’

후작의 속도는, 그의 예상보다 빨라도 너무나 빨랐다.

“미미르, 튀어 와.”

[뭐?]

“모가지가 날아가고 싶지 않으면, 빨리 튀어오라고!”

우웅

이안은 어리둥절하고 있는 고양이를 향해 다급히 소리치곤, 불러낸 K-9 자주포를 마력으로 되돌렸다.

‘시간이 좀 더 필요해.’

이안이 상대에게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충분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

상대에 비해 느린 반응속도와 방어력을, 상식 이상의 사거리와 명중률로 보완하고는 있었지만.

이 모든 것은 상대와의 충분한 간격 아래에서만 가능했으니까.

우웅

이안은 플랜B를 실행했다.

왜애애앵-

연습기를 개조한 프로펠러 공격기, KA-1이 숲 위로 날아올랐다.

숲의 나무들이 점으로 보일 때까지 상승한 공격기는, 곧 기수를 반전해 표적을 향해 내리꽂기 시작했다.

‘속도에 속도를 더한다.’

추진력만으로 음속을 넘나드는 총탄과 로켓에 시속 수백 킬로미터로 내리꽂는 공격기의 속도가 더해진다면, 그 관통력은 훨씬 막강할 터.

‘일단 화를 돋구고 난 다음, 마스터가 오러를 모두 소모할 때까지 거리를 벌려서….’

조종간의 발사 버튼에 손가락을 걸친 이안은 플랜B를 다시 한번 되새겼다.

하지만, 이안의 계획이 채 시작되기도 전.

‘빌어먹을.’

조종석을 덮은 캐노피 너머로 적을 조준하던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파아앗

오러의 칼날이, 그의 눈앞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

멤피스 폰 바르테온.

제국의 명문 검가인 바르테온 가문에서 태어나, 일평생을 제국과 검에 바쳐온 자.

-제국은 우리의 것이다. 황족이라 칭하며 제국을 망가뜨리는 자들에게 넘겨줄 순 없다!

그리고, 이제는 제국의 재앙이 되어버린 자.

그는 천천히, 날개 잃은 대적자를 향해 걸어갔다.

하늘에서 추락한 것 치고는 멀쩡해 보이는 금발 머리의 청년.

‘이안 폰 아슈타르 공작.’

공작의 양손엔, 구멍이 숭숭 뚫린 쇠뭉치가 들려있었다.

이윽고.

투타타타타-

굉음과 함께 사내가 쥔 막대기에서 불꽃이 쏟아져 나왔다.

사내가 쥔 쇠뭉치의 이름이 M134 미니건이고, 쇠뭉치가 쏟아내는 것이 7.62밀리미터 구경의 철갑탄이란 사실은 알지 못했지만.

티티티팅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오러를 몸에 두른 순간, 그를 해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마스터급의 공격뿐.

쾅 콰과광

밟는 곳마다 폭발이 일어나고 무언가가 계속 그의 등을 강타했지만, 멤피스는 전진을 멈추지 않았다.

-죽여라, 어서! 너를 귀찮게 하는 저 하룻강아지를 어서 죽여!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심마가 멤피스를 유혹했다.

하지만 후작에게 조금이나마 남아 있던 이성은 응하지 않았다.

‘나를 상대로 이토록 오래 버티다니.’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이후로 적수를 찾지 못했던 그였다.

아슈타르 공작의 힘은 분명 부족했지만, 자신의 공격을 지금까지 버텨오지 않았나.

‘이런 기회는 흔치 않아.’

티티팅

오랜만에 얻은 장난감이 부서지는 것이 아까운 것일까.

쏟아지는 포화 속에서 멤피스는 천천히 공작을 향해 다가갔다.

신검공이 공격을 멈춘 것은 그때였다.

우웅

손에 쥔 무기를 마력으로 흩어버린 공작의 몸이 마력의 푸른 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파아앗

곧이어 나타난 것은, 생전 처음 보는 두꺼운 옷으로 온몸을 감싼 사내.

희한하게 생긴 가면을 얼굴에 뒤집어쓴 공작과 멤피스의 눈이 마주쳤다.

‘포기한 것인가?’

마력이 거의 소진되었는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신검공을 본 멤피스는 지레짐작했다.

자신의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 이제는 방어로 전략을 바꾼 게 틀림없었다.

‘과연, 저 옷이 오러 블레이드도 막아낼 수 있을까?’

-어림도 없지!

지이잉

검에서 2미터가 넘는 푸른 검날을 뿜어낸 그와 심마가 동시에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단단한 금속으로 만들어진 판금 갑옷도 아니고, 알 수 없는 천으로 만들어진 의복 따위가 자신의 검을 막을 수 있을 리 없지 않은가.

-베어라, 베어! 베어버려!

마음을 먹어치운 심마의 인도에 따라, 후작은 검을 든 오른손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공작이 걸친 의복은, 검을 막기 위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그가 한 걸음을 더 내디딘 순간.

“가스.”

공작이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그와 동시에.

푸시시시-

‘연기인가.’

그의 발밑에서 쏟아져나오는 무색의 기체를 느낀 멤피스는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마스터의 육체는, 어떠한 독도 이겨낼 수 있지.’

오러는 의지의 힘이다.

처음 쏘아낸 불꽃 속에서도 살아남은 그가, 고작해야 독 따위에 쓰러질 리 없었다.

‘장난은 이제 끝이다.’

멤피스는 조금이나마 남아 있던 흥미가 사라짐을 느꼈다. 이내 그는 검을 치켜들었다.

상대와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그가 검을 내리치는 순간, 수백 조각으로 쪼개진 오러 블레이드는 공작의 몸을 난도질해버릴 테니까.

-비겁한 놈이다. 죽여!

우우웅

심마의 유혹에 따라, 멤피스는 검을 내리치려 했다.

하지만.

‘그런데….’

검을 내리치기 전, 그는 기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뭐지?’

검을 내리치기만 하면 끝나는 일.

하지만, 그는 검을 내리칠 수 없었다.

-뭐 하는 거야? 빨리 저놈을 죽여버리지 않고!

그와 공작 사이를, 거대한 무언가가 가로막고 있었으니까.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검은 어둠으로 이루어진 녀석은 붉은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모조리 죽이고, 제국을 네 손에 넣는 거다!

공작에게 손가락질하고 있는 녀석의 목소리는 분명.

‘놈이야.’

자신의 마음을 집어 삼켜버린, 심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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