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무엇을 원하는가?”
잠시 수염을 쓰다듬던 바몬트가 물었다. 이안은 손가락 하나를 펼쳤다.
“정보.”
“정보?”
“이걸 만들 수 있을 만한 자들에 대한 정보. 장인이라면 마법기를 만드는 자들에 대해서도 알고 있지 않아?”
“흥미로워. 이걸 그대가 만든 게 아니라니.”
“거기까진 알 것 없고.”
이안이 눈을 부라리자, 한 번 찔러보려던 바몬트는 찔끔 놀라선 입을 열었다.
“글쎄. 이걸 만든 사람을 왜 찾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해 줄 수 있는 이야기는 하나뿐이야.”
이안은 바몬트의 말을 심각한 표정으로 듣기 시작했다.
“우리도, 제국도, 연합공국에서도 만들지 못하는 물건이라면.”
“이라면?”
“남은 건 당연히 연방뿐이지 않겠나.”
이안은 원하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아인 연방.
제국에 배척받던 수많은 이종족과 소수의 인간이 모여 만들어 낸 나라.
그리고.
‘일곱 용이 그곳에 있지.’
이안은 제작자가 남긴 책에서 읽은 일곱 용의 정보를 떠올렸다.
-내 최악의 실수. 내 사상과 지식, 기술을 수박 겉핥기로만 베껴낸 놈들.
분명, 제작자는 일곱 용에 대해 그렇게 서술했다.
‘그리고, 제작자는 정황상 지구와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크지.’
그렇다면.
‘일곱 용.’
이 정체불명의 마법총을 만들어낸 자 역시, 그들과 연관된 게 아닐까.
“역시, 라니. 뭐 짚이는 거라도 있는 것인가?”
이안의 반응을 이상하게 여긴 바몬트가 고개를 갸웃했다. 쓸데없는 소리를 할 이유가 없었던 이안은 고개를 저었다.
“너희한텐 쓸모없는 정보야. 그보단.”
휘리릭
“이게 필요한 것 아니었어?”
“그, 그거야 그렇지만.”
이안이 손에 쥔 권총을 빙빙 돌리자, 난쟁이들의 눈이 권총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저 탐욕스러운 눈빛을 봐라! 설마, 내 본체를 저 악마들에게 넘기겠다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알고 있느냐?]
애오오오옹!
난쟁이들의 욕망에 가득 찬 눈빛을 마주하곤 질려버린 미미르가 목청껏 울어대기 시작했다.
[내 부품 하나하나를 분해해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거란 말이다!]
말을 마친 검은 고양이는 부르르 떨며 울부짖었다.
하지만.
“분해는 내가 직접 할 거고, 시간과 장소 역시 내가 원하는 대로. 불만 있나?”
“없다.”
“시연 횟수는 단 한 번. 그 이상을 바란다면 나와 추가적인 거래를 해야 할 거고.”
“나쁘지 않군.”
애오오오오옹!
“저 고양이는 왜 이리 우는 겐가?”
“알 거 없어.”
이안은 미미르의 애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난쟁이와 인간의 검은 거래가 막 성사되려던 그때.
“아슈타르 공작 전하.”
바깥에서 시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린 이만 가보지. 약속은 꼭 지키게나.”
인기척을 느끼자마자, 당황한 난쟁이들은 순식간에 두더지처럼 벽난로 안으로 사라졌다. 홀로 남은 이안이 문을 바라봤다.
“뭔데?”
난쟁이들과의 거래를 끝내고 본국으로 돌아가려던 그의 목소리엔 짜증이 조금 섞여 있었다.
하지만.
“루미너스 폰 마르세니아 황녀 전하께서 전하를 뵙고자 하십니다.”
시녀의 말을 듣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짜증은 달아나버렸다.
“바로 나가지.”
외투를 챙기는 이안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
[혼인을 앞둔 것 치고는, 썩 행복해 보이는 얼굴이 아닌 것 같은데.]
‘동감이야.’
고양이의 말에, 이안은 속으로 긍정했다.
미미르의 말대로, 루미너스의 얼굴엔 근심이 가득해 보였다.
붉은 입술 한 쪽을 깨문 그녀의 눈 아래에 검은 기운이 짙게 깔려있었다.
“약혼자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나 보지? 나한테 찾아온 걸 보니.”
이안은 빈정거리는 투로 농담을 건넸다. 하지만 돌아온 그녀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이미 알면서 물어보는 것 아닌가요?”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순간, 이안은 농담인가 싶어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퀭한 황녀의 눈에서 쏘아진 독기는 그녀의 말이 진실이라 말하고 있었지만.
“이 모든 게, 네 계획 아니었나?”
용혈을 완전히 각성한 참룡공이 가진 정통성을 빌어, 황제가 되겠다는 계획.
누가 봐도, 뻔한 일이 아니었나.
“참룡공 그 사람은, 인간이 아니에요.”
그 말에, 그녀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 그 눈은…절대로 인간이 아니야.”
‘위축되어 있군.’
몇 가지 신호만으로 상대의 감정을 읽을 수 있는 이안이 아니라도, 누구든 그녀를 보면 정상이 아니란 사실을 알 수 있으리라.
쪼르르륵
이안은 주전자에 남은 차를 찻잔에 따라 건넸다.
“일단 목부터 축이고 이야기하는 게 어때?”
“미안하지만 본녀에겐 지금 차 마실 시간 따위가….”
루미너스는 이안이 건넨 차를 거절하려 했지만.
‘무슨 향이….’
익숙하지만 강렬하게 퍼지는 시원한 향.
저도 모르게, 루미너스의 손은 어느새 찻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무슨 차죠. 이게?”
한 모금을 머금자, 그녀의 얼굴은 언제 수척해졌냐는 듯 생기가 가득해졌다. 이안은 씨익 웃었다.
“성수에 용의 침을 섞었지.”
“그 귀한 것들을….”
이안의 말을 들은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성수가 섞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용의 침이라니.
그 귀한 것을 어떻게 구했단 말인가.
“역시, 효과가 있긴 한가 보네.”
나는 입에 안 대지만, 이라는 말은 굳이 덧붙이지 않았다.
누군가의 침으로 만든 차를 굳이 입에 대고 싶진 않았으니까.
“정말 귀한 것을 대접받았군요.”
“알면, 빨리할 얘기나 하고 가라고. 시간 끌지 말고.”
“좋아요.”
이안은 황녀를 재촉했다. 고개를 끄덕인 황녀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니까. 이대로 가면 황제는커녕, 제국이 참룡공의 손에 홀라당 넘어갈 것 같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이안은 그녀의 긴 이야기를 한 줄로 요약했다. 루미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구스타프 공작, 그자를 통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용의 피를 깨웠다고는 하지만, 오러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지는 못한 자였으니까. 그런데, 그 눈을 보고 나서는….”
참룡공과의 만남을 떠올린 그녀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미미르가 코웃음 쳤다.
[용의 피를 너무 우습게 봤군. 용인의 경지에 오른 자라면 고룡 급의 힘을 가졌을 텐데 말이야.]
그렇기에, 오러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신검공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애초에 그런 짓을 하지 말았어야지. 아무리 황제 자리가 탐났다지만, 쯔쯧.”
그것은 이안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황위가 아무리 욕심이 난다 한들, 타국의 공작을 혈연으로 끌어들이려 하다니.
‘뭐, 그건 나도 마찬가지지만.’
“미안하지만, 이건 황위싸움 문제가 아니에요.”
하지만 그녀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럼, 무슨 문젠데?”
실패한 자들의 흔한 변명.
그 말을 들은 이안이 코웃음을 쳤지만.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언제 바르테온 후작이 황위를 찬탈할지 몰랐으니까.”
꿀꺽
말을 마친 그녀가 긴장한 표정으로 침을 삼켰다.
“…뭐? 내가 잘 못 들었나?”
이안은 순간 잘못 들었나 싶어 귀를 긁적였다.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얼마 전부터, 후작의 눈빛이 썩 좋지 않았어요. 감정의 기복도 심해졌고, 본녀 앞에서 대놓고 불경한 말을 꺼내기도 했고요.”
“불경한 말?”
“지금의 황가에는 문제가 있다고요. 곧장 취소하기는 했지만.”
“허.”
황가에 대해 무한한 충성심을 가진 자만이 앉을 수 있는 근위기사단의 단장이, 황위에 욕심을 낸다.
“그 사람 노망이라도 난 거 아냐? 백 살이 넘은 노괴물이라고 들었는데.”
이안은 말을 하면서도 고개를 갸웃했다.
인간이라는 종이 가진 수명의 한계를 집어던진 초인에게 노망이라니.
‘말도 안 되는 헛소리지.’
하지만, 그렇게라도 설명하지 않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하지만 미미르의 의견은 달랐다.
[심마에 빠진 거다.]
‘심마?’
미미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면의 욕망에 정신이 먹혀버리는 현상이다. 오러 사용자들이 겪는 부작용 중 하나지. 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자가 심마에 빠지는 것은 처음 듣는 소리다만.]
긴 설명을 마친 미미르는 뒷발로 턱을 긁어댔지만.
“그냥 미친 거잖아. 뭘 그렇게 길게 말해?”
이안은 미미르의 장황한 설명을 한 마디로 압축했다.
하지만 말과 달리 그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오러 마스터가 미쳐버렸다.’
이안이 영지를 희생해 간신히 소멸시킨 마왕과 능히 일 대 일로 힘을 겨룰 수 있는, 대륙의 최상위 강자 중 하나.
살아 있는 전략 병기나 다름없는 오러 마스터가 광인이 되었다?
‘대륙의 재앙이지.’
다른 곳은 몰라도, 제국은 멸망에 가까운 피해를 입게 되리라.
“물론 본녀가 황위에 대한 욕심이 없다고 할 순 없겠지만, 이 계획은 아바마마께서도 승인하셨어요. 구스타프 공작이 가진 힘이라면 마스터급의 강자를 제어할 수 있을 거라 여겼으니까요.”
“그런데 공작은 말이 안 통하는 또라이였고, 그래서 말이 좀 통하는 것 같은 날 찾아오셨다 이거군.”
상대가 말이 통하는 것 같았다면 애초에 이안을 찾아오지도 않았을 터.
“그대는, 마왕을 토벌한 경험이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오러 마스터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겠죠. 구스타프 공작 역시.”
그 말에 루미너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팔짱을 낀 이안이 물었다.
“알론소에겐 뭐라고 말할 생각이지?”
이안은 이미 5황자인 알론소를 후원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황위 경쟁자인 그녀를 도와줘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아마, 이 일이 해결되고 나면 본녀는 황위를 포기하게 될 거에요.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나요?”
말을 마친 루미너스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떨궜다.
“그거론 부족하지. 내가 얻는 게 없잖아?”
하지만 이안은 고개를 내저었다.
“자그마치, 마스터 급의 강자를 상대하는 건데 말이야. 어쩌면 두 번이나.”
꼭 직접 싸울 필요는 없겠지만, 일이 잘못된다면 결국 전투를 벌여야 할 것이다.
‘걸어 다니는 전략 병기를 상대로.’
고작 황위 계승을 포기하는 정도로는, 이안의 구미를 맞추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그럼, 그대가 원하는 건 뭐죠?”
“왜, 그런 거 있지 않아? 황궁의 보물이나, 비밀창고 같은 거.”
말을 마친 그는 루미너스의 질린듯한 눈빛을 뻔뻔하게 넘겼다. 잠시 뒤, 그녀가 입을 열었다.
“…황실 비고는 아바마마의 명이 있어야만 개방할 수 있어요. 안타깝지만 본녀가 들어줄 수 없는 조건이군요.”
말을 마친 황녀는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그럼, 허락을 받아오면 되겠네?”
이안에겐 그녀의 거절이 다른 의미로 들렸다.
“당신….”
“기다리고 있을게. 시간이 그리 넉넉하진 않겠지만.”
자신을 노려보는 황녀의 표독스러운 눈빛을 태연히 받아넘기며.
“한 잔 더?”
이안은 성수로 우린 차 한 잔을 더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