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난쟁이들은 괴팍하고, 고집불통이며, 남에게 굽히지 않는다.
밤길에 칼 맞고 비명횡사하기 딱 좋은 품성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들이 수백 년의 수명을 온전히 살다 갈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
날 때부터 생겨난 병장기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관심과 난쟁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장인의 재능.
그리고.
“이게, 레온하르트라고?”
이안이 내보인 권총은, 난쟁이의 심기를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모양은 좀 달라졌지만.”
“서, 설마.”
바몬트는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순간.
“이 빌어 처먹을 인간 놈들이!”
끼긱
눈이 돌아간 난쟁이가 허리춤에 찬 대장간 망치를 꺼내 들었다.
“우리 일족의 보물을 멋대로 더럽혀?”
작은 손잡이와 어울리지 않게 거대한 망치 머리.
저 망치에 맞는다면, 어지간한 마수들도 무사하지는 못할 터.
“바몬트, 진정하게나!”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나?”
당황한 알론소가 둘을 말리려 끼어들었지만, 난쟁이 바몬트의 분노를 막을 수는 없었다.
“저 인간 놈이 해 놓은 짓거리를 보고도?”
신검 레온하르트는, 그들이 만들어낸 신기중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명작 중 하나.
자신들의 마스터피스를 더럽힌 자를 처리할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일족의 율법에 따라 처리할 거다. 비켜라, 알메네온의 다섯째여.”
“율법이라니?”
“당연히, 저 빌어먹을 인간의 골통을 깨부수는 거지!”
더럽혀진 명작과 명작을 더럽힌 자를 함께 처리하는 것뿐.
“난쟁이는 제국의 신민이지 않나! 제국을 전쟁으로 몰고 갈 셈인가?”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한 알론소는 필사적으로 말리려 했지만.
“그렇다면 우리 일족 모두에게 물어보아라! 어떤 난쟁이족도 저 끔찍한 짓거리 앞에선 똑같이 행동할 테니까!”
이미 분노한 바몬트는 막무가내였다.
하지만 정작.
“더럽혔다니, 무슨 소리야?”
골통이 박살 날 당사자인 이안은 뻔뻔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다.
“인간들의 조악한 기술로 우리 일족의 명작을 멋대로 개조했으니, 어찌 더럽힌 것이 아닐까!”
이안의 말이, 바몬트의 타오르는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었다.
“네놈은 저 검이 슬피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
화가 머리끝까지 난 난쟁이가 손에 쥔 망치를 부서질 듯 쥔 채 다가갔다.
하지만 이안은 고개를 갸웃했다.
“조악한 기술이라고?”
“그래, 네놈들의 손재주로 만져봐야 멀쩡한 작품을 망가트리기만 할 뿐이란 말이다!”
말을 마친 난쟁이는 화를 내다 못해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이봐, 난쟁이.”
하지만 돌아온 것은 이안의 냉소뿐.
“이게 뭔지는 알고 화내는 거야, 지금?”
“그야 당연히….”
검이지, 라는 말이 난쟁이의 목구멍까지 치솟았지만.
“설마, 이게 검처럼 보이는 건 아니겠지?”
“…큼.”
자신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 같은 이안의 말에, 바몬트는 말할 타이밍을 놓쳤다.
“인간 놈들의 사고방식이야 거기서 거기지! 기껏해야….”
“대충 저 이상한 손잡이 어디다 검신을 숨겨놓은 게 뻔해! 라고 생각한 건 아닐 거야. 설마, 그렇게 멍청할 리가.”
“…….”
눈앞에 선 인간이 쉴 새 없이 자신이 할 말을 빼앗아가니, 바몬트는 쉽사리 입을 열 수 없었다.
이안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이 녀석의 이름은 무엇인지, 어떻게 사용하는지, 원리는 무엇인지.”
“…흐흠.”
이안이 한 마디씩 툭툭 끊어서 내뱉을 때마다, 입을 다문 난쟁이가 움찔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더럽혀졌다고 말할 자격이 있나?”
말을 이안의 싸늘한 눈빛이 난쟁이를 훑었다.
“…없네.”
바몬트는 인간 앞에서 발가벗겨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난쟁이는 치욕감에 몸을 떨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마음속 어딘가에선, 상대의 말을 인정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면, 우리에게 그 신검이라 주장하는 것을 보여다오. 일족의 장인들이 모여 그대의 주장을 검토할 것이니.”
결국, 바몬트는 자신의 의견을 철회하곤 손을 내밀었다.
저 인간의 말이 맞는지, 아닌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너희는 봐도 모를걸?”
그의 손에 쥐어진 것은 이안의 비웃음뿐.
“감히, 우리 난쟁이들의 기술을 무시하는 것이냐?”
무시당한 바몬트는 이안을 향해 고래고래 고함쳤지만.
“무시라니, 그냥 사실이지.”
이 모든 것은 이안의 의도.
“너희에겐 그냥, 이 정도가 딱이야.”
휙
이안은 품에서 꺼낸 마법총을 집어던졌다.
바몬트는 무의식중에 발치에 떨어진 총을 집어 들고는.
“…이건 뭐지?”
바몬트는 의문에 빠졌다.
“마석을 한쪽 끝에 박아넣었군. 지금은 타버렸지만. 마법 지팡이인가?”
하지만, 마법 지팡이라기엔 너무나 짧은 데다 심하게 쉬어 있었다.
‘무언가를 쏘아내는 무기인 것 같긴 한데….’
손에 쥔 무기를 분석하면 할수록, 난쟁이의 머릿속이 복잡해져 갔다.
“역시, 너희가 만든 건 아니군.”
원했던 반응을 확인한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곤 손을 내밀었다.
“다 봤으면 돌려주지 그래? 그 총은 내 것이니까.”
“총? 이 지팡이를 가리키는 것인가?”
바몬트로선 처음 듣는 단어였다.
난쟁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모든 무기의 정점이지.”
엄밀히 말하면, 난쟁이의 손에 들린 무기는 총이 아니었지만.
“저, 정점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구나, 인간!”
하지만 이안의 말을 들은 바몬트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모든 무기는 저마다의 장단점과 상성을 가지고 있는데, 어찌 정점이란 수식어를 앞에 붙일 수 있단 말인가.
“역시 인간 특유의 허세는….”
난쟁이가 콧방귀를 뀌려던 순간.
타앙!
이안의 손에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씨이잉-
어지간한 오러 사용자와 비견될 만한 육체로도 따라갈 수 없는 속도.
퍽
벽에 무언가가 박히는 소리가 들려올 때까지, 바몬트는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곧, 바몬트의 고개가 뒤를 향했다.
‘쇳조각?’
눈으로 볼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날아간 쇳조각이, 동굴의 토벽 깊숙한 곳에 박혀있었다.
‘어찌, 저런 위력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날아가, 토벽에 구멍을 낼 수 있는 병기.
심지어.
‘오러를 끌어올리지도 않고…!’
오러 없이 이런 파괴력을 낼 수 있는 병기는, 그의 160년 인생 중 처음 이었다.
“이런 거, 본 적 있어?”
그 말에, 바몬트는 고개를 돌렸다.
끝에서 연기를 내뿜는 신검을 쥔 인간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순간.
“알려다오.”
난쟁이는 이안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그 총이란 무기에 대해, 알려다오.”
하지만 그의 표정에선 비굴함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난쟁이의 눈에 일렁이는 것은, 욕심.
‘저 무기를 연구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면.’
제 고집 때문에 전 대륙에 퍼져있는 일족을 하나로 묶어낼 방법이 생겨날지도 몰랐으니까.
‘먹히네?’
이안은 일이 예상대로 순조롭게 풀려나가자 내심 기뻐했다.
“그러면, 일단 저 녀석부터 연구해 오라고.”
난쟁이의 손에 들린 화승총을 가리키곤 씨익 웃었다.
***
제국의 황궁에서 멀리 떨어진 적룡기사단의 수련장.
개중 가장 지하의 비밀수련장에서는.
고오오
마흔 즈음 되어 보이는 남자가 천천히 장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누가 본다면 멈춰있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느리디느린 검.
하지만.
우우우웅
그의 검에서 뻗어 나온 기다란 오러 블레이드는, 사내가 오러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었다.
“후우우우.”
검을 휘두르면서, 사내는 천천히 숨을 토해냈다가 들이마시기를 반복했다.
사내, 멤피스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
‘고요하게.’
마음속에 들끓는 심마(心魔)를 잠재우는 것.
-왜, 내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는 거지?
-이 힘이라면 가능해.
며칠 전부터, 자신을 유혹하는 마음의 소리가 그의 귓가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듣지 않으려 해도 들리고,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는 속삭임.
‘아니, 나는 마르센 제국의 수호자다! 황제의 자리 따위는….’
-그래서, 저런 약한 자들에게 일생을 억눌려 살겠다는 말이냐? 지난 백 년 동안 제국이 어떻게 무너져가는지 똑똑히 봐왔으면서?
‘나는….’
이를 악물고 무시하려 할수록, 유혹의 목소리는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가끔은 그의 심마에 자아가 먹혀버리는 일까지.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스으으
고작해야 수련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것뿐.
‘제국의…수호자다….’
심마를 억누르기 위해, 멤피스는 검을 휘둘렀다.
그의 흰자위가, 점점 붉게 물들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한 채.
***
[이안, 난쟁이들에게 정말로 알려줄 셈이냐?]
‘뭘?’
[네 페르소나에 대해서 말이다.]
‘약속은 지켜야지.’
언제 뒤에 숨었냐는 듯, 어깨 위에 올라탄 미미르가 물었다.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다루는 병기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위력만큼은 분명히 알고 있다. 이 세계에 풀린다면 그 파급력은 엄청나겠지.]
미미르는, 이안이 자신의 페르소나로 어떤 위업을 세웠는지 똑똑히 봐왔다.
이안이 다루는 강력한 병기들이 다른 자들의 손에 들어간다면.
[어쩌면, 신마 대전은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대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겠지.]
‘글쎄.’
하지만 그의 주인인 이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과연, 본다고 따라 할 수 있을까?’
본다고 따라 할 수 있었다면, 암살자들이 화승총과 마법의 끔찍한 혼종을 들고 올 일도 없었을 터.
이 세계엔 글록의 외관을 이루는 플라스틱도, 총탄을 쏘아낼 화약도 존재하지 않는다.
‘뭐, 원리를 전부 알려줄 생각도 없었지만.’
보여준다 한들, 총에 대한 제반 지식이 없는 저들은 작동원리의 10퍼센트도 이해하지 못할 게 분명했다.
생각을 마친 이안은 어깨를 으쓱하곤, 옆의 알론소에게 물었다.
“내가 굳이 가야 할 이유가 있어?”
그들이 향하는 곳은, 황궁의 모든 신료들이 모여 대소사를 결정하는 어전회의.
알론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아바마마의 암살시도를 막아낸 데 대한 표창을 줄 거야.”
“반역도에게 표창? 참으로 자비로운 황제시군. 이쯤 되면 사면권이라도 하나 줘야 하는 거 아냐?”
이안은 코웃음 쳤다.
그의 신분은 어디까지나 연합공국의 아슈타르 공작.
제국의 입장에선 반역도가 아닌가.
하지만.
“맞아.”
이안의 농담을 들은 알론소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니, 뭐가?”
“표창과 함께, 마왕을 쓰러트린 연합공국의 일곱 영웅을 반역죄에서 사면하실 예정이야.”
“…공국과의 관계를 회복하겠다는 얘기군.”
황제의 의도를 간파한 이안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공국이 마왕을 쓰러트릴 힘이 있다는 것을 보인 순간, 제국으로선 껄끄러울 수밖에 없으리라.
“세력이 없는 내 힘을 실어주려는 의도기도 하고.”
“재밌어, 참 재밌어.”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된다.
이 점만은, 지구와 별반 다를 게 없지 않은가.
물론, 사면은 이안에게도 나쁜 이야기가 아니었다.
“모두 네 덕분이다, 이안. 네 녀석이 암살자를 막아준 덕분에, 아바마마께 명분이 생겼으니까.”
“…그래?”
‘명분이라, 설마 의도한 것은 아니겠다만.’
알론소가 내뱉은 말에서, 이안은 일말의 불길함을 느꼈지만 내색하지 않고 걸었다.
고작 명분을 얻기 위해 목숨을 걸다니, 위험부담이 너무 크지 않은가.
‘생각보다 큰데?’
어전 안으로 들어온 이안은 회의의 규모를 보고 조금 놀랐다.
수백의 신료들이 앉을 수 있는 좌석이 반원 형태로 놓여있었고, 그 반대쪽엔 붉은 용이 새겨진 황제의 어좌(御座)가 자리했다.
웅성웅성
이미 반쯤 찬 신료들의 자리엔 귀족들이 속닥거리는 소리로 가득했다.
그리고, 신료들의 얼굴을 살펴보던 이안의 눈에.
“어?”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이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자의 얼굴이.
‘뢰베르 폰 구스타프….’
참룡공.
이안과 함께 공국의 일곱 지배자 중 한자리를 차지하는 자.
‘어째서….’
그가, 제국의 어전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