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109화 (110/224)

#109화

권총 형태의 화승총.

화약을 넣을 구멍도, 불붙일 화승도 없는 데다가 총구가 있어야 할 자리가 보석으로 막혀있긴 했지만.

“하.”

그가 손에 쥔 물건의 형태는, 이안이 알고 있는 태초의 권총과 거의 유사했다.

[마법기로군. 좀 특이하게 생기긴 했다만.]

이안의 손에 들린 화승총을 본 미미르의 감상은 밋밋했다.

나무로 대충 깎아 만든 듯한 저 막대기를 보고, 어찌 이안이 다루는 막강한 현대화기를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냥 마법기가 아니야.”

[그냥 마법기가 아니라니, 누가 봐도….]

이안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고양이는 눈을 끔뻑이는 것 말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럼, 어디.”

시험해 볼까.

생각을 정리한 이안은 벽을 향해 총을 겨누었다.

[이안?]

애오옹?

미미르는 갑자기 막대기를 들어 올린 이안을 보고 당황해 눈을 끔뻑였지만.

이안은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그 순간.

파지지직!

총구에 박힌 보석에서 푸른색의 빛줄기가 쏟아져 나갔다.

치이이이

마치 레이저처럼, 쏘아져 나간 빛줄기는 한쪽 벽에 검은 자국을 냈다.

“일회용이네?”

총구에서 검게 타버린 보석을 확인한 이안은 턱을 쓰다듬었다.

마력을 한 점에 응축시켜 만들어낸 빛을 쏘아내는 무기라.

“개념이 너무 비슷하단 말이지.”

이안이 알고 있는, SF에서나 나올법한 레이저총과 원리는 거의 같았다.

[방금 방출된 마법의 마력량으로 볼 때, 유효사거리는 25미터 이내다.]

물론, 그 위력은 어지간한 오러 사용자에겐 통하지 않을 수준.

페르소나는커녕, 오러를 조금 끌어올리기만 해도 막아낼 수 있을 정도로 약했다.

물론.

“마력을 다루지 못하는 자들을 상대하기엔 이만한 게 없겠지만.”

이 대륙의 모든 사람이 마력이나 오러, 신성력을 다루는 것은 아니다.

일회용 무기라 할지라도, 아무런 방비도 하지 않고 있는 요인을 암살하는 용도로는 충분한 위력.

이안은 손에 들린 마법총을 이리저리 살폈다.

그때.

덜컥

문이 열리며 칼을 뽑은 기사들이 들어왔다.

쓸모없어진 총을 내던진 이안은 허리춤에서 권총을 빼 들었다.

“뭐야?”

“…실례했습니다. 혹시 적의 침입이 있지 않나 하여.”

손님인 이안이 서슬 퍼런 눈빛을 쏘아냈지만, 기사들은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었다.

이안은 손을 내저었다.

“아무 일도 아냐. 가서 일 보라고.”

“알겠습니다.”

“뭐야, 저놈들은. 아까는 보이지도 않더니.”

어디 눈이라도 있나?

내던진 화승총을 대충 치워둔 이안은 잠을 청하기 위해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흠?’

이안의 머릿속에, 답답함을 해소할 방법 하나가 떠올랐다.

“미미르.”

[왜 그러지?]

애옹?

이안의 부름에, 혀로 털을 정리하던 미미르가 고개를 돌렸다.

“일 하나만 해 주면 좋겠는데.”

말을 마친 그의 눈이 반짝, 빛났다.

***

이안의 계획은 단순했다.

분신을 만들어 조종할 수 있는 미미르의 힘으로, 이 궁 안에 수십 마리의 고양이를 흩뿌려놓는 것.

그렇게 사흘이 흘렀다.

[오늘도 별다른 조짐은 보이지 않아.]

애옹

모든 고양이로부터 정보를 건네받은 미미르가 뒷발로 몸을 긁었다.

‘오러 마스터는?’

[궁 안에선 찾을 수 없었다.]

‘근위기사단의 단장이, 사흘 동안 궁을 비웠다?’

제국의 근위기사단, 적룡기사단은 황실을 지키는 방패.

방패의 중심을 이뤄야 할 오러 마스터가 자리를 지키지 않는다니.

“뭔가 있단 말이지.”

생각을 마친 이안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곤 문밖으로 나섰다.

이미 이 은신처와 통로의 구조는 파악을 끝낸 지 오래.

비밀통로에 들어온 이안은 곧장 5황자의 궁으로 향했다.

“이안? 어떻게 여길….”

“조용. 그보다.”

벽난로의 불꽃을 뚫고 튀어나온 이안을 목도한 알론소는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지만, 이안은 개의치 않았다.

“아는 게 있나?”

대신, 그가 내민 것은 한 자루의 화승총.

“이 막대기를 말하는 거야?”

당연히, 화승총을 생전 처음 본 알론소는 의아할 수밖에.

“마법기야. 암살자들이 가지고 있던 무기지.”

“그걸 왜 네가 신경 쓰는 건데?”

이안의 말을 들은 5황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미 암살자들의 배후는 적룡기사단을 비롯한 황실 직속 기관들이 조사하고 있다.

게다가, 황제가 죽었을 때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자 중 하나가 바로 아슈타르의 공작이 아닌가.

“필요하니까. 보아하니 아는 건 없는 모양인데, 난 가볼게.”

하지만 이안은 굳이 자세한 설명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말을 마친 그가 다시 활활 타오르는 벽난로로 향하던 그때, 알론소가 입을 열었다

“나는 모르지만, 알 만한 자들은 알고 있지.”

“그래?”

황자의 말을 듣자마자, 이안은 떠나려던 발을 멈췄다.

“누군데?”

“난쟁이들.”

“난쟁이?”

이안은 고개를 갸웃했다.

난쟁이족에 대해선 이안도 알고 있다.

신마대전이 끝나고, 스스로 제국의 신민이 되기로 한 장인들.

하지만.

“난쟁이들은 마법을 못 쓴다고 들었는데.”

마법을 쓰지 못하는 자들이 마법기를 만든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지 않은가.

이안의 말에 알론소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법기에 마법을 불어넣는 것은 마법사지만, 마법을 담아낼 틀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자들은 제국에서 오직 난쟁이족뿐이야.”

“그렇단 말이지.”

곧, 이안은 난쟁이족을 만나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럼, 만나는 건 어떻게?”

“모든 난쟁이족은 제국의 지하를 그 영역으로 삼고 있지.”

촤아악

말을 마친 알론소는 꽃병에 든 물을 벽난로에 뿌렸다.

치이이익

벽난로 안에서 활활 타오르던 불길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잿더미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뒤로 보이는 것은, 조금 전 이안이 들어왔던 황궁의 비밀통로.

“당연히, 황궁 지하도 포함해서 말이지.”

“…뭐, 그래.”

손에 꽃병을 쥔 채 자랑스레 미소지은 제국의 5황자를, 이안은 떨떠름한 눈으로 바라봤다.

***

황궁의 지하는 이안의 생각보다 비좁았다.

“무슨 토굴도 아니고.”

말을 마친 이안은 자신의 머리와 거의 맞닿을 것 같은 동굴의 천장을 툭툭 두들겼다.

괴수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을씨년스러운 풍경.

이안의 중얼거림을 들은 알론소가 입을 열었다.

“난쟁이족에게 맞게 설계된 곳이니 그럴 수밖에. 역대 황제 폐하들께서 누누이 얘기했지만 고쳐지지 않은 부분이야.”

“이걸 지키겠다고? 쓸데없는 고집인데.”

이 초라한 동굴에, 황제의 명까지 무시할 만한 가치가 있을까?

그럴 이유를 찾지 못한 이안은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곳의 동굴은 전 대륙으로 뻗어 나가니까. 난쟁이들도 유사시엔 황가의 탈출 통로로 사용할 수 있단 점을 강조한 거지.”

알론소의 설명을 듣고서야, 이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이 허름한 동굴이 전 대륙으로 뻗어 나갈 수 있는 통로라면, 충분히 지킬 가치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미미르의 반응은 달랐다.

[난쟁이들이라니, 영 내키지 않는데.]

애오옹

이안의 오른편에서 걸어 나가던 미미르는 경계하는 눈초리로 주변을 살폈다. 이따금 이안의 허리춤에 찬 권총을 살피기까지.

‘왜 그래?’

난쟁이족의 영역에 들어서자마자 바뀐 미미르의 행동을 본 이안은 이상한 눈으로 바라봤다.

[조심해야 한다, 이안. 놈들은 무서운 존재야.]

‘…뭔 개소리야?’

애초에 난쟁이들이 위험한 존재라면, 제국을 지배하는 황제가 난쟁이들을 황궁 지하에 살 수 있도록 내버려 뒀을 리 없지 않은가.

하지만 미미르는 진지했다.

[나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레온하르트의 기억에 난쟁이족에 관한 이야기가 남아 있다.]

‘뭔데?’

[난쟁이들은 탐욕스럽고, 무도한 존재라고.]

‘…그건 또 무슨 개소리야?’

마력회로가 꼬여버리기라도 한 것일까.

누가 봐도 겁에 질린 고양이를 보며 이안이 고개를 젓고 있을 즈음.

“여기다.”

앞에서 이안을 인도하던 알론소가 걸음을 멈췄다.

“여기라고?”

“그래.”

“…아무것도 없는데?”

이안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선 곳은, 지금까지 수도 없이 봐왔던 거미줄 같은 갱도 중 하나.

인기척은커녕, 인공적인 구조물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오러를 귀에 집중해 봐.”

알론소의 표정은 진지했다.

‘농담은 아닌 것 같고.’

우웅

이안은 곧 오러를 움직였다.

심장에서 변환된 오러가 그의 두 귀를 감싼 순간.

까앙

들렸다.

까앙 까앙

저 멀리에서, 금속과 금속이 규칙적으로 맞부딪치는 소리가 이안의 귓가에 들려왔다.

“이건….”

“이제 들리나?”

이안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알론소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이게 난쟁이들의 대장간으로 통하는 입구다. 곧 난쟁이들이 우리를 맞이하러 올 거야.”

그냥 동굴처럼 보이는 갈랫길 앞에서, 알론소는 보란 듯이 팔짱을 끼곤 난쟁이들을 기다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척 척

이안의 허리춤에나 올 만한 키의 난쟁이 한 명이 수염에서 땀을 뚝뚝 흘리며 걸어왔다.

“누군가 했더니, 알메네온의 다섯째 아들이었군.”

“허?”

황제의 이름을 서슴없이 부르는 난쟁이를 본 이안은 순간 말을 잊었다.

하지만 난쟁이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 옆은 못 보던 사람 같은데? 누구요?”

“제국의 사람은 아니다. 신검의 주인이지.”

하지만 알론소는 이미 상대의 무례함에 익숙한 듯,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답했다.

그러자.

“오…신검의 주인이라고?”

순간.

이안을 향해 고개를 돌린 난쟁이의 눈이 반짝, 하고 빛났다.

하지만.

“뭐야, 신검이 없잖아?”

이안의 허리춤에 검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난쟁이는 곧 흥미를 잃어버렸다.

[나, 난 잠시 숨어 있겠다.]

난쟁이의 눈빛을 마주한 미미르는 질린 표정으로 이안의 등 뒤에 숨어들었다. 이안은 난쟁이를 향해 물었다.

“신검은 왜 찾는 거지?”

“그야, 신검 레온하르트야말로 우리 난쟁이들이 가진 기술의 결정체이기 때문이지!”

이안의 말을 듣자마자, 난쟁이가 콧방귀를 뀌며 소리쳤다.

“그 검 하나를 만들기 위해 모인 장인의 숫자가 몇인지는 알고 있나? 그건 신기, 마법기를 통틀어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난쟁이족의 역작이라고!”

“그래?”

“물론, 저 예술품을 간신히 휘두를 줄이나 아는 너 같은 인간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말야.”

말을 마친 난쟁이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너무 쉬운데?’

이안은 난쟁이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금세 깨달았다.

“그럼.”

이안의 오른손이 허리춤으로 향했다.

“이건 어떻게 생각하지?”

그가 허리춤에서 뽑아 든 것은.

황금 사자가 새겨진 권총, Glock 18C.

“…뭐냐, 이건.”

하지만, 난쟁이가 권총의 정체와 용도를 알 리 없었다.

“새로운 신검.”

난쟁이의 물음에, 이안이 씨익 웃으며 답한 순간.

“뭐, 뭐라고?”

난쟁이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