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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106화 (107/224)

#106화

버려진 요원에서 아슈타르의 재무관 자리에 오른 베티.

그녀는 언제나 새벽 별을 보며 일과를 시작한다.

“빌어먹을, 이놈의 서류는 줄어드는 법이 없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알자스의 행정업무는 언제나 한도 초과.

새롭게 뽑아온 휘하의 행정관들이 거르고 거른 서류들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책상 위엔 언제나 서류가 산처럼 쌓여있었다.

사각사각

하지만, 재무관이 되기 전 그녀의 직책은 알자스의 행정관 겸 영주 대행.

제멋대로 사라진 영주 대신 무너진 알자스를 복구하기 위해 밤낮없이 일한 경험이, 이럴 때는 꽤나 큰 도움이 되었다.

“후으으.”

해가 중천에 뜨기 전 업무를 마친 그녀가 기지개를 켰다.

책상 위에 정신없이 쌓여있던 서류들은 어느새 정리가 끝난 지 오래.

“오늘은 좀 일찍 나가볼까?”

예상보다 일찍 일이 끝나자 그녀가 콧노래를 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손에 종이를 쥔 채 리드미컬한 발걸음으로 시장실을 나섰다.

이제, 점심을 먹기 전 그녀가 마쳐야 할 일은 하나뿐.

똑똑

목적지에 도착한 베티는 포효하는 사자가 새겨진 나무문을 두드렸다.

문 너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이안 폰 아슈타르.

새로운 신검의 주인이자, 연합공국을 이끄는 일곱 공작 중 하나.

그리고, 그녀의 주군.

‘빨리 끝내고 밥이나 먹자.’

무도회 준비로 눈코 뜰 새 없는 날이다.

운 좋게 시간이 남은 지금 먹어두지 않는다면, 한 끼도 먹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끼익

이안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마음이 급해진 그녀는 집무실의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공작 전하? 보고할 게 있는데….”

곧장 방 안으로 들어선 그녀는 손에 쥔 서류를 안에 있던 주군에게 넘기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없었다.

“…어?”

어디론가 급히 움직이기라도 하려는 듯, 겉옷을 걸치는 이안을 본 베티는 순간 할 말을 잊었다.

“어, 마침 잘 왔어.”

베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안은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고는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정신을 차린 베티가 입을 열었다.

“뭐야, 옷은 왜?”

“갈 데가 있어서. 무도회는 못 갈 거 같으니까, 도노반이랑 알아서 잘 해결해 주고.”

이안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베티는 전혀 대수롭지 않았다.

“…지금, 공작 즉위 기념 무도회에 공작이 불참한다는 말을 손님들한테 전하라고?”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인가.

“잘 알아들었네.”

“이런 미친놈이….”

그래, 원래 이런 놈이었지.

공들여 세운 탑이 와르르 무너지게 생기자, 베티의 눈앞이 노래졌다.

“그래, 어디 들어나 보자. 어딜 가길래 자기가 주인공인 무도회도 박차고 나가는 건지.”

간신히 정신줄을 잡은 재무관은 한숨을 쉬곤 물었다.

어디로 가는지 정돈 알아야, 이안을 만나기 위해 찾아온 손님들에게 설명이라도 할 게 아닌가.

하지만.

“제국.”

이안이 목적지를 밝힌 순간.

“이 개자식아.”

그녀는 더이상 참을 수 없었다.

***

아인연방의 수도, 페르난부르크의 어딘가에 위치한 저택.

달조차 모습을 숨긴 어두운 밤이었지만, 마법 조명을 가득 설치한 저택의 내부는 대낮처럼 밝았다.

조명 아래 펼쳐진 것은 잔잔한 음악을 곁들인 무도회.

인간보다는 인간이 아닌 자들이 더 많다는 것만 빼면, 무도회는 제법 평범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흠.”

개중, 춤추는 남녀들을 의자에 앉아 바라보던 중절모 쓴 노인이 있었다.

수많은 종족들이 모인 무도회에서 얼마 찾아보기 힘든 인간 남자.

손에 쥔 칵테일 잔을 홀로 기울이던 그에게, 누군가가 다가왔다.

“스승님.”

“그래, 왔는가.”

노인을 스승이라 칭한 것은, 온몸이 붉은 비늘로 뒤덮인 리자드맨.

다름 아닌, 이안과 만난 연방의 사절이었다.

“보아하니, 그에게 차인 모양이로군. 그 표정만 봐도 알겠어.”

“송구합니다. 제 능력이 부족해….”

리자드맨과 눈을 마주친 노인이 인자한 웃음을 지었다.

도마뱀은 급히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지만, 그는 칵테일 잔을 쥔 손을 저었다.

“너무 그러지 말게나. 세상일이 언제나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니 말일세. 그래, 무슨 이유로 차인 겐가?”

제안을 거절한 자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거절한 자들에겐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거절당한 원인을 알아낸 다음, 보완해 더 많은 이들을 포섭하는 것이 ‘스승’인 그가 해야 할 일.

“그, 그것이.”

“말해 보게나. 실패는 언제나 성공의 밑거름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지 않나.”

하지만 리자드맨은 쉽사리 입을 떼지 못했다. 호기심을 느낀 노인은 자신의 제자를 재촉했다.

“그, 그냥이랍니다.”

“…뭐라고?”

하지만, 리자드맨의 답은 그의 예상과는 완전히 동떨어져 있었다.

“그냥, 마음에 들지 않아서….”

대답을 들은 노인은 순간, 리자드맨이 자신을 놀리려 한다 생각했다.

‘허.’

하지만, 도마뱀의 세로로 찢어진 눈엔 조금의 장난기도 보이지 않았다.

“송구합니다, 스승님. 그자가 워낙 강경한 태도로 거절하는 바람에….”

스승이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리자드맨은 쩔쩔매며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지만.

“재밌군.”

“예?”

예상치 못한 스승의 반응에, 리자드맨은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노인이 칵테일을 홀짝이며 말했다.

“재밌지 않나? 아무리 말도 안 되는 제안이라지만, 그만한 지위에 오른 자라면 보통은 어느 정도의 격식을 갖춘단 말일세.”

“본래 악명이 자자한 자라 들었습니다. 유명한 망나니라고….”

“그런 자였다면 애초에 가주의 자리에 오르지도 못했을 것이네. 마왕 토벌자의 위업을 달성하지도 못했을 테고, 우리 동지들을 둘이나 쓰러트릴 수 있었을 리 없지.”

으적

리자드맨의 말에 고개를 저은 노인은, 빈 칵테일 잔에 홀로 남은 체리를 입안에 털어 넣은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아보게. 이안 폰 아슈타르의 출생부터 현재까지. 모두다. 필요한 지원은 모두 해 줌세.”

“예, 스승님.”

고개를 숙인 도마뱀을 뒤로하고, 노인은 홀을 나와 저택의 계단을 올랐다.

자신의 방 안으로 들어온 그는 중절모를 내려놓곤 천장을 바라봤다.

“드디어, 예언의 때가 도래했는가.”

천장에 새겨진, 일곱 날개의 용을.

***

마르센 제국의 수도, 테라로사.

그 이름처럼 도시를 둘러싼 붉은 색의 거대한 성벽엔, 제국의 각지로 통하는 도로가 연결된 성문들이 제각기 다른 크기로 열려있었다.

개중. 성문 위에 황금의 용이 새겨진 황족 전용 통로, 로열 게이트.

그리고.

다그닥다그닥

마차 한 대가 로열 게이트를 향해 달려왔다. 문을 지키던 경비병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자네, 혹시 마차에 대해 기별 받은 것 있나? 나는 없는데.”

“나도 마찬가지야. 여섯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라면, 황자 전하이신가?”

“깃발은 황실의 깃발이 맞는데….”

그때.

“저건?”

한 경비병이, 정체불명의 마차에 새겨진 문장을 발견했다.

포효하는 황금빛의 사자.

저 문장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이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아슈타르 공작?”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일곱 반역도 중 하나.

반역도의 마차가, 오직 마르세니아의 피를 가진 자만이 이용할 수 있는 로열로드를 통해 들어오고 있었으니까.

“전투 준비!”

스릉!

상대가 누구인지 인지한 순간, 경비병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검을 뽑아 들었다.

로열 게이트를 지키는 자들은, 평범한 경비병이 아니라 황실을 호위하기 위해 태어난 적룡기사단.

상대인 공작은 분명 자신들보다 강자였지만, 황실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히히히힝

곧, 검을 뽑아 든 기사들을 발견한 마차는 속도를 서서히 줄이기 시작했다.

끼익

자신들의 코앞에서 멈춰선 마차의 문이 열리자, 기사들은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이윽고, 누군가가 마차 안에서 내렸다. 기사들이 그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5황자 전하를 뵙습니다!”

경비병들은 일제히 한쪽 무릎을 꿇고 예를 갖췄다.

마르센 제국의 5황자, 알론소 폰 마르세니아.

그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이곳의 책임자가 누구지?”

“신, 하임델이라 하옵니다.”

알론소의 물음에, 한 기사가 무릎을 꿇은 채 답했다. 알론소의 입꼬리가 묘하게 일그러졌다.

“경은, 과인의 깃발을 보지 못한 것인가?”

“아닙니다. 하오나….”

“그렇다면 어서 길을 비켜주게. 한시가 급하니.”

“예, 전하!”

처처척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경비병들이 일어나 좌우로 흩어져 길을 터주고는 검을 치켜들었다. 그 사이를 유유히 빠져나간 마차는 곧 붉은 벽을 넘어섰다.

“무슨 일이야?”

마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안이 묻자, 알론소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 일도 아니다.”

“그래? 기사들 얼굴이 새하얘지던데?”

“잘 말해 뒀으니, 앞으론 이런 일이 없을 거다. 그보다, 제국의 수도를 본 감상은?”

차마 너 때문이다, 라고는 말할 수 없었던 알론소는 말을 돌렸다.

“뭐, 나쁘지 않네.”

이안의 감상은 단순했다.

아슈타르 성처럼 높은 건축물은 보이지 않았지만, 면적만은 알자스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했으니까.

하지만 이안의 관심사는 그게 아니었다.

“난 공식적인 초청인 줄 알았는데, 들어가는 건 무슨 쥐새끼 같네.”

알론소는 아무 일도 아니라고 했지만, 이안은 뭔가 수상하다는 사실을 곧장 인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연합공국은 공식적으론 제국의 반역자들이야. 반역자들의 수괴를 공식적으로 테라로사에 초청한다면, 귀족들이 참 좋아할 것 같지 않나?”

“하긴.”

알론소의 명쾌한 대답을 들은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론소가 입을 열었다.

“이대로 황궁으로 들어간 다음, 곧장 아바마마를 뵙게 될 거야. 미리 준비하고 있으라고.”

“황제는 쓰러졌다고 하지 않았나?”

“간혹, 정신을 차리실 때가 있지.”

“못 차렸으면?”

“다음에 다시 찾아가야겠지.”

이안의 물음에, 알론소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안은 헛웃음을 지었다.

“말은 쉽군.”

“저번에도 말했듯, 대가는 확실히 지급하지. 부탁하겠네.”

“그건 다음에 좀 더 이야기하자고.”

둘의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마차는 어느새 황궁 안으로 들어선 다음 어느 건물에 멈춰 섰다.

“여기서부턴 내 마차로 갈아타지. 그 문장을 어전 앞에 보일 수는 없으니까.”

마차에서 내린 이안은 알론소의 안내에 따라 움직였다.

곧, 금색의 용이 새겨진 마차에 이안이 오르려던 순간.

“황자 전하.”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은 이안과 알론소는 고개를 돌렸다.

그들에게 말을 건 것은, 이제 마흔이나 되었을까 싶은 중년의 사내.

“후작은 여기 어쩐 일이시오?”

잘 아는 사이인 듯, 알론소는 후작이라 부른 사내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때.

[이안, 조심해라.]

이안의 발밑에 선 미미르가, 주인을 향해 경고했다.

‘뭘? 후작을?’

이안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제법 단련한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후작에게선 어떠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마스터 급이다.]

미미르의 말이 떨어진 순간, 이안의 눈빛이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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