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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103화 (104/224)

#103화

빛이 있으라.

탈출에 성공한 레온하르트의 갑판 위에서, 결계 안을 가득 메운 백색의 광구(光球)를 내려다본 이안은 성경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파아아앗-

결계 안은 이미 성의 마력엔진이 붕괴하면서 뿜어져 나온 고밀도의 마력으로 가득 채워진 상태.

거기에 이안이 폭발시킨 벙커버스터에 섞여든 페르소나의 힘을 더하자 만들어진 것은, 어떠한 마(魔)조차 살아남을 수 없는 성역.

‘저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마족이 있다면….’

그냥 패배를 인정하고 순순히 멸망당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이안은 이 계획에 모든 것을 걸었고.

[결국, 성공했군. 비싼 대가를 치르긴 했지만.]

빛이 되어버린 성과 도시를 내려다보며, 난간에 올라앉은 고양이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가진 800년의 기억 대부분을 간직한 성은 이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물론.

“교환이라고 치자고.”

빙의자인 강민혁이 느낄 수 있는 것은 약간의 미안함 뿐이었지만.

“성 하나로 마왕 둘을 잡았으면, 충분한 거 아냐?”

마경의 열한 군주를 아홉 군주로 줄여버렸으니, 마족 역시 재침공은 한동안 생각도 못 할 터.

[…그건 그렇군. 두 번은 당해 주지 않겠지만.]

미미르는 이안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저 아래부터 해결하자고.”

이안은 결계 바깥을 가리켰다.

마왕군의 절반은 결계 안에서 소멸했다. 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여전히 아슈타르의 대지를 밟고 있었다.

놈들까지 처리해야만, 진정 마족의 침공을 막아냈다는 말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미 준비는 끝난 상태다.]

미미르는 뒤를 돌아봤다.

그의 뒤에 자리한 것은, 24발의 130밀리 로켓을 순식간에 쏟아낼 수 있는 구룡 다련장로켓.

마력만 충분하다면 무제한으로 장전이 가능한 병기들.

애오옹

차량 안팎을 점거하다시피 한 수십 마리의 반투명 고양이들은 이안의 발사 신호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하, 마력포 발사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골든라이온에 장비된 마력포 역시 마찬가지.

함장이 이안에게 다가와 보고한 순간.

“좋아, 발사.”

이안은 명령을 내렸다.

이윽고.

기이이잉

아슈타르의 마족들을 흔적까지 지워버릴 공격이 시작되었다.

***

마경에 존재하는 마왕의 성은 총 열두 개.

800년 전부터 비어 있는 디아블로의 성을 제외하면, 열한 성의 주인은 여태껏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다.

“…소멸했는가.”

마경의 하늘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열한 별.

그중 두 개가 사라진 사실을 깨달은 메피스토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었다.

“관리자가 결국 일을 저질렀군.”

마경의 군주 둘이 줄었다는 사실은, 배반자 디아블로가 인계의 편으로 돌아선 이후로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균형이 기울어진다는 사실을 의미했으니까.

아슈타르의 박살 난 영토와 성은 언젠가 복원할 수 있겠지만, 소멸한 두 마왕은 되살려낼 수 없지 않은가.

“후우.”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지으며, 메피스토는 왕좌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가 가장 우려했던 최악의 사태는 이미 닥쳐왔고, 이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것은.

“마왕들을 불러모아야겠어.”

지금껏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던 방법들.

스으으-

메피스토는 마기를 끌어 올렸다. 그의 손이 주문의 흐름에 맞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우웅-

곧, 마법이 발동하면서 여덟의 인형이 그의 앞에 떠올랐다.

-무슨 일이지?

-메피스토, 당신이 어쩐 일로?

상황을 모르는 여덟의 마왕은 자신들을 불러낸 메피스토를 귀찮아했다.

본래 마경의 군주들 간에는 단순한 연락조차 하지 않았으니까.

“그럴만한 일이 있기 때문이지.”

메피스토는 이런 반응을 이미 예상했다.

먼저 소멸한 두 명의 머저리와 별반 다를 것 없는 녀석들.

그럼에도, 메피스토가 부릴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힘이었기에.

“단탈리안과 바르바토스가 소멸했다.”

메피스토는 마왕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뭐, 뭐라고?

-메피스토, 그대의 말에 책임을 질 수 있는가?

-하나도 아니고 둘이라니, 도대체 무슨 일이….

여덟의 마왕에겐 충격, 그 자체였다.

지난 800년 동안 연합공국과의 싸움은 끊이지 않았지만, 수많은 싸움 중에서도 마왕이 소멸한 일은 한 번도 없었다.

두 마왕이 소멸했다는 것은, 자신들 역시 소멸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뜻.

- 그럼, 언제 놈들이 쳐들어올지 모른다는 거 아냐!

- 그 미련한 놈들은 일을 어떻게 했길래 이렇게 된 거야?

위험을 느낀 마왕들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여덟 마왕의 목소리가 메피스토의 대전을 가득 메웠다.

메피스토가 입을 열었다.

“조용.”

순간, 메피스토의 짜증을 느낀 모든 마왕은 입을 다물었다.

여기 모인 어떤 마왕보다도 강한 자는 다름 아닌 메피스토였으니까.

여덟 마왕의 입이 다물어지자, 마왕의 왕은 마침내 준비해둔 말을 꺼냈다.

“이제, 800년 전부터 준비해 둔 맹약을 발동할 때가 되었다는 사실에 동의하는가? 반대한다면 지금 말해라.”

말을 마친 메피스토가 앞에 떠오른 여덟 마왕의 환영을 바라봤다.

-…….

예상대로, 그의 말에 반대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면.

“반대가 없으니, 지금부터 복마의 언약에 따라 움직이겠다. 따르지 않는 자들은 배반자로 간주할 터.”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들을 끌고 갈 뿐.

여덟의 마왕 앞에서, 말을 마친 메피스토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

콰아아아-

영웅급 페르소나에 비견될만한 힘을 가진 마력엔진이 푸른 불을 뿜어냈다.

엔진의 주인, 1급 전열함 골든라이온이 향하는 곳은. 제국과 공작령 사이의 경계이자, 이제는 아슈타르의 새로운 수도가 될 알자스였다.

“이렇게 고향을 잃게 되다니….”

하지만 새로운 수도로 향하는 자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골든라이온에 탑승한 자들은 대부분이 아슈타르 성과 그 주변에서 살아온 자들.

“그토록 높고 거대한 성이 그렇게 사라질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마왕들의 목숨과 바꿨으니 나쁜 것은 아니지만…후.”

수십 년간 살아온 고향이 사라지는 모습을 두 눈으로 보고도 아무렇지 않은 자가 이 세상에 존재할 리 없다.

“그나저나, 알자스가 뭐 하는 곳인지는 아나?”

사기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잔존병력들의 관심은, 곧 새로운 터전으로 옮겨갔다.

“공작 전하께서 공자이시던 시절에 새롭게 얻은 영토라던데?”

“자넨 모르나? 거긴 예전부터 범죄자와 반역자들의 소굴로 유명했지 않나!”

“그런 곳을 영토로 삼았다고? 왜?”

병사들의 이야기중 대부분은 부정적인 소문들.

“그렇다면 아무것도 없겠군. 비를 피할 집이라도 구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범죄자들이랑 살려면 이불 안에 칼이라도 숨겨놔야겠군.”

“전하께선 어찌하여 그런 곳을 수도로 삼으시는 건지….”

알자스의 기원부터가 썩 건전한 곳은 아니었으니 당연한 일.

범죄자의 소굴로 유명한 땅의 소문이 좋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알자스란 곳을 소문으로만 접한 병사들의 사기는 더욱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봐, 저게 뭐야?”

“알자스겠지, 뭘. 알자스에 거의 도착한 거 아냐?”

“아니, 저걸 보라고!”

“도대체 뭘…뭐야, 저게?”

병사들이 알자스를 눈앞에서 마주한 순간.

“저게, 그 범죄자들의 도시라고?”

아슈타르 성에 비하면 절반 수준이었지만, 성벽 전체에 회색빛이 감도는 거대한 성.

그리고, 거대한 성을 둘러싼 직사각형 형태의 건물들.

자신들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도시의 풍경에, 병사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안, 저건 도대체… 신전을 몇 개나 세워놓은 것이지?]

성을 둘러싼 직사각형의 건물들을 본 미미르의 눈이 커졌다.

그가 알기로, 이 세계에서 직사각형의 탑 형태를 취한 건물은 오직 성광공의 만신전뿐.

높이는 기껏해야 10층 정도였지만, 탑의 형태를 본 미미르는 착각할 수밖에 없었다.

“뭔 소리야, 저건 집이라고.”

하지만 이안은 미미르를 미친놈 보듯 바라봤다.

[집?]

“아니, 엄밀히 말하면 막사에 가깝겠지만.”

이안이 영지를 떠나기 전, 용들에게 제공한 것은 철근콘크리트와 고층주택에 대한 아이디어.

지구의 건물과는 당연히 다르겠지만.

날아다니는 중장비나 다름없는 용들과 넘쳐나는 재정을 효율적으로 활용한다면 그 비슷한 무언가는 만들어낼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생각보단 잘 해 줬는데?”

용들은 이안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원래는 알자스의 범죄자들을 수용하려던 거지만….’

이렇게 되었다면, 다른 영지로 분산된 슈바이크의 유민들을 알자스에 모으는 것도 가능하리라.

만세-! 만세-!

공작 전하 만세-!

도시를 가득 메운 만세 소리를 들으며, 이안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

이안이 영지를 비운 두 달 사이, 알자스는 큰 변화를 맞이했다.

거리를 메운 수많은 이주민과 병사들, 그리고 그사이에 좌판을 펼친 상인들에게 그늘을 제공하는 높다란 탑들은, 대륙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모습.

“도대체, 우리 영주님께선 가만히 있는 법이 없단 말이지. 아. 공작 전하이신가, 이젠?”

그 모든 변화가, 영지의 행정관이었던 베티의 머리를 지끈거리게 했다.

“신검의 주인께 예의를 차리시오, 행정관.”

베티의 무례한 말을 들은 기사단장, 칼리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함께한 파비안과 오베르트의 표정 역시 마찬가지.

하지만 이안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럴 필욘 없어. 행정관은 그럴 자격이 있으니까.”

그가 자리를 비운 동안, 알자스를 슈바이크에 비견할 수 있을 만큼 키워낸 자다.

아무리 용들과 무한정에 가까운 재정을 사용할 수 있었다 한들, 그 공은 절대로 적지 않았으니까.

“베티.”

“왜, 영주님?”

“이 시간부로 알자스 시장에 임명한다. 지금처럼만 관리해.”

이안은 그녀를 계속 붙잡아둘 생각이었다.

“…귀찮게.”

머리를 벅벅 긁은 그녀가 빠른 걸음으로 방을 나섰다.

“젠장!”

문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 것 같았지만, 이안은 신경 쓰지 않고 칼리번과 파비안, 오베르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전력을 복구하기 위한 시간은?”

그것이, 이안이 이들을 불러모은 이유.

“흑사자는 길어야 1년 내외입니다. 병사들을 훈련하고, 병기와 보급물자만 충분하면 다시 전투력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흑사자 사냥단의 단장, 파비안이었다. 담담하게 말을 마친 그의 얼굴엔 아무런 거리낌도 없어 보였다.

이안은 고개를 돌려 칼리번을 바라봤다.

“기사단은?”

“오러유저를 너무 많이 잃었습니다.”

칼리번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기존에 오러를 다루던 자들을 모은다 하더라도, 아슈타르의 마력운용법과 오러변환법을 재교육시키는 시간을 고려하면… 짧아도 10년은 걸릴 겁니다.”

“10년이라.”

그 말은 곧, 당분간은 기사단의 힘을 이용할 수 없다는 뜻.

하지만, 이는 근위대가 입은 피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페르소나를 가진 자들을 모으는 것만 못해도 30년은 걸릴 거다. 아마도, 내가 죽기 직전에나 재건할 수 있겠지.”

홀로 살아남은 근위대의 단장, 오베르트는 쓴웃음을 지었다.

“흠…페르소나의 생산시간이 문제 아닙니까?”

“잘 알고 있군.”

페르소나를 만들어내는 구현의 방이 열리는 것은 일 년에 한 번.

마법의 신과 제작자가 만들어 낸 규칙을 벗어날 방법은 없었다.

그러니, 오베르트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기다리는 것뿐.

“그럼, 전력의 복구는 거의 불가능하단 건데.”

“송구합니다, 전하.”

“송구는 무슨, 그냥.”

칼리번은 주군의 말에 고개를 숙였지만, 이안은 고개를 젓고는 선언했다.

“해체하자고, 둘 다.”

이안의 말이 끝나기도 전, 둘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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