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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102화 (103/224)

#102화

아슈타르 성은 불침의 요새다.

그중에서도, 외부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거대한 방어결계는 지난 800년간 마족의 침공을 성공적으로 막아낸 비장의 무기였지만.

“당했군.”

이 무적의 결계를 적을 가두는 함정으로 사용하는 것은, 아슈타르의 어떤 가주도 시도하지 못한 방법이었다.

“설마, 도시를 포기할 줄이야.”

적을 막아내기 위해 영지의 중심도시를 내어준다니.

뼈를 주고 살을 취하는 것이나 다름 없지 않은가.

“어떻게 생겼는진 모르겠지만, 제법 셈이 빠른 놈이로군.”

그럼에도, 상대가 이 방법을 택한 이유는 분명했다.

두 마왕의 목숨이, 영지와 맞바꿀 가치가 있다는 것.

“바르바토스, 어서 빠져나가야 한다.”

단탈리안은 바르바토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지만.

“바르바토스?”

그녀는 듣지 않았다.

우우웅

요녀의 몸에서 흘러나온 고순도의 마기가 한 데 응축되었다.

파직 파지직

하늘을 향해 뻗쳐오른 그녀의 머리칼 사이로 보라색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블랙 솔(Black Sol).”

시동어를 외운 그녀의 양손에 들린 것은, 보라색으로 활활 타오르는 업화.

우웅

그녀의 손에 들린 보라색 불덩이가 떠오르더니, 서서히 황금색 결계를 향해 나아갔다.

화르르륵

3급의 마법이 만들어낸 것은, 고작 주먹만 한 불덩이.

하지만 그 불덩이 안엔 세상의 모든 것을 녹여버릴듯한 열기가 담겨있었다.

우우웅

검은 태양의 목표는 황금색으로 빛나는 결계.

불덩이와 벽이 서로 맞부딪힌 순간.

파지지지직

충돌한 부분에서 어마어마한 스파크가 터져 나왔다.

마력과 신성력, 그리고 마기.

세 가지 다른 힘이 서로의 영역을 잠식해나갔다.

하지만.

파직 파지지직

“망할 놈들. 3급 마법으로도 뚫을 수 없다고?”

검은 태양이 결계를 뚫지 못하고 사그라들자, 바르바토스는 이를 갈았다.

대마법사의 마법으로도 뚫리지 않는 결계를 뚫을 방법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마족들을 베어라!”

“하늘의 신들이여, 우리의 검과 방패에 깃드소서!”

지금은, 넋을 놓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챙 채챙

아슈타르의 은사자 기사단과 오베르트, 그리고 성광공의 신성기사단.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모를 필멸자 놈들이 검을 든 채 좌우에서 마족들을 압박하고 있었다.

지이이잉-

거기에 하늘에 떠 있는 거대한 비행함, 골든라이온에서 가해지고 있는 마력포와 아슈타르 놈들의 포격까지.

키이이이-

크룩, 크루룩!

퇴로가 막힌 순간, 마왕군이 자랑하는 숫자는 도망을 막는 걸림돌이 될 뿐이었다.

“결계에 신성력이 가미된 모양이다. 놈들의 힘이 더 강해졌어.”

“그래, 우리는 더 약해지는 중이고 말야.”

“이러다간….”

자신의 몸에 조금씩 쌓이는 신성력을 느낀 두 마왕은.

“웃기지 마.”

생전 처음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다.

“가만히 서서 뭐 하는 겐가, 마경의 불한당들이여.”

환세공, 마르쿠스 폰 가울드가 둘의 앞에 나타난 것은 그때였다.

등에 불꽃의 날개를 단 대머리 노인은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안타깝구나.”

하지만, 단탈리안은 코웃음 쳤다.

“그 아슈타르의 늙은이와 같은 운명을 맞이할 네가 안타까워 견딜 수가 없어.”

스으으

말을 마친 단탈리안이 몸에 마기를 가득 둘렀다.

마목(魔木)의 몸으로 마왕의 자리에 오른 그에게, 가장 편한 상태의 몸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파아아앗

그의 몸에서 쏟아져나온 수백의 촉수가 땅에 뿌리를 내렸다. 그러고도 남은 촉수들이 단탈리안의 몸을 칭칭 감아냈다.

[홀로 나타난 것을 죽을 때까지 후회하게 해 주마.]

본래의 모습으로 변한 단탈리안은, 전신으로 뻗어 나간 보라색 촉수를 꿈틀거리며 사념을 뿌려댔다.

“조심해, 녀석은 너와 상극일 테니까.”

[네 걱정이나 해라. 정령왕의 불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하긴, 저 대머리만 죽이면 끝나는 일이긴 하지.”

어느새 그녀의 낫, 아포칼립스를 꺼내든 바르바토스가 환세공을 향해 서늘한 눈빛을 보냈다.

아슈타르의 관리자를 죽이기 전엔, 아무도 그녀를 막을 수 없었다.

“허허.”

마르쿠스는 두 마왕의 전투태세를 보곤 턱에 난 수염을 쓰다듬고는.

“오라, 마리엘.”

페르소나의 시동어를 외쳤다.

***

아슈타르의 세 자루 검 중 하나이자, 은사자 기사단의 장인 칼리번 만스타인.

서걱!

그의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마족들의 몸뚱이가 잘려나갔다.

“아슈타르를 위하여!”

“마족들을 죽여라!”

단장의 검에서 오러가 불타오르자,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기사단의 기사들이 함성과 함께 돌격했다.

-이 저주받을 사자 놈들이!

-함정만 아니었어도….

결계가 만들어낸 신성력의 힘으로 강화된 오러를 뿜어내는 기사들.

그들을 상대하는 마족들은 점점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죽으려고 후작의 위에 앉은 게 아니란 말이다!

승산이 없다고 직감한 마족 중 하나가, 마왕의 지배력이 약해진 틈을 타 도주를 결심했다.

파파팟

-어, 어딜 가는 겁니까, 후작 각하!

-이 배신자!

뒤에서 마족들의 욕설과 마법이 쏟아져 나왔지만.

-어떻게든 빠져나갈 방법이 있을 거야. 이렇게 거대한 결계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을 리 없어!

뱀파이어, 혈마족의 후작 드라고스는 애써 그 말을 무시했다.

쉬이이-

도망친 그가 마력을 움직이자, 그의 육체는 피를 머금은 안개로 변했다.

혈마족의 능력 중 하나는 육체를 피로 변환하는 것.

도시 지하에 그물처럼 깔린 하수도로 숨어든다면, 그를 찾아내긴 쉬운 일이 아니리라.

-일단 기회를 봐서 여기를 뜬다. 전투가 끝나면 결계는 곧 풀리겠지.

파앗

나름의 계획을 세워둔 백작은 핏물의 형태로 모습을 바꾸었다.

어두운 하수도를 흐르는 탁수에 몸을 숨긴다면, 물이나 다름없는 그를 어찌 찾아낼 수 있겠는가.

애옹?

하지만 하수도에 숨은 존재는 드라고스 혼자만이 아니었다.

-고양이?

마치 사람처럼 두 발로 걸어 다니는, 반투명한 색의 고양이.

개중 한 마리가, 핏물로 변한 드라고스를 발견하고는 뒤쪽을 향해 울어댔다.

-귀찮게.

하지만 상대는 후작급의 마족.

파삭

혈수(혈수)에서 솟아난 피의 창이 그대로 고양이를 관통하자, 고양이는 연기처럼 세상에서 사라져버렸다.

-이제 좀 조용해졌군.

방해물을 없앤 드라고스는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애옹!

고양이의 울음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애오옹!

애오오옹!

수 많은 고양이들의 울음소리는 어느새 하수도 전체를 가득 메웠다.

-귀찮은 녀석들….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조용히 숨어 있는 것을 원했던 백작은 약이 올랐다.

꾸드드득

핏물 위로 수백 개의 가시가 솟아났다.

저 시끄러운 고양이들을 몽땅 없애버리기 전엔, 숨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터.

스르륵

가시를 품은 마르쿠스는 하수도를 타고 고양이들을 향해 흘러갔다.

-평소라면 좀 가지고 놀아줬겠는데 말이야, 운이 좋군.

하수도를 흘러내려가며, 후작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고작해야 고양이 따위를 잡기엔 차고도 넘치는 위력이지 않은가.

하지만 후작은 알지 못했다.

애오오옹!

그 상대가, 평범한 고양이들이 아니란 사실을.

-뭐, 뭐지?

무언가를 등에 짊어진 채, 몇 마리씩 짝을 지어서 달려드는 고양이들을 발견한 그는 당황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당황은 오래지 않아 사라졌다.

애옹.

애옹!

멈춰선 고양이들을 향해 가장 앞선 고양이가 명령을 내린 순간.

쐐애애애액-

수십 발의 판저파우스트가, 핏물을 향해 쏟아져 나갔다.

[처리했다, 이안.]

“그래, 혹시나 숨어드는 녀석들이 있으면 똑같이 처리하고.”

미미르의 보고를 받은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나 지하로 숨어든 놈들이 성안으로 들어오면 골치 아플 테니까.

우웅

이안은 통신마법기를 가동했다.

“작전 종료까지 앞으로 10분. 전 병력은 전투를 멈추고 슈바이크를 떠나라.”

슈우우

짤막한 명령을 남긴 이안은 그대로 통신기를 꺼버렸다.

그에겐, 답신을 듣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있었으니까.

“충! 공작 전하, 투하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갑판에 서 있던 이안에게 골든라이온의 함장이 다가와 그에게 보고했다. 이안의 입이 열렸다.

“성의 마력엔진은?”

“안전장치를 해제했다는 파이톤 공자와 마법사들의 보고입니다.”

“좋아.”

고개를 끄덕인 이안의 시선이 갑판의 한쪽 편으로 향했다.

그곳에 존재하는 것은, 2톤이 넘는 거대한 금속 기둥.

‘GBU-28.’

통칭, 벙커버스터.

한 발도 아닌 세 발의 거대한 폭탄이, 튼튼한 마법 밧줄에 꽁꽁 묶인 채 주인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투하 준비.”

이안의 명령이 떨어진 순간.

“투하 준비! 고도를 높여라!”

마력포를 충전 중이던 골든라이온이 고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

‘뭔가 있어.’

환세공을 상대하던 바르바토스의 뇌리에, 좋지 않은 예감이 번쩍였다.

-뭐 하느냐, 바르바토스. 어서 가울드 놈을 치지 않고!

뒤에서 거목의 형태를 갖춘 단탈리안이 재촉했지만, 그녀는 잠시 멈춰 상대를 바라봤다.

“지친 것인가? 이 몸을 상대했으니 그럴 만도 하지.”

멈춰선 그녀를 보곤 환세공이 도발했지만, 그녀는 쉽사리 발을 떼지 못했다.

‘계속 뒤로 도망치고 있단 말이지?’

이곳은 상대의 본진.

그리고 자신과 단탈리안은 함정에 빠진 상태.

그런데, 도망을 친다고?

그녀는 곁눈질로 상황을 살폈다.

‘성으로 가지 못하게 유인하고 있어.’

환세공이 움직이는 경로는, 성으로 향하는 길과 정 반대.

분노로 가득 찼던 그녀의 머리가 서서히 식어가면서, 조금 전까지는 떠올리지 못했던 생각들이 퍼즐을 맞춰나갔다.

“단탈리안, 성으로 간다.”

-뭐?

“그곳에 놈들이 노리는 게 있어.”

-알았다.

꾸드드득

단박에 바르바토스의 말을 이해한 단탈리안은 지면에 깊게 박아넣은 뿌리를 뽑아냈다.

쿵 쿵

뿌리를 뽑아내 다리처럼 움직이면서, 마목은 성의 반대쪽으로 몸을 돌렸다.

“호오, 이제야 깨달은 것인가. 어리석은 마족의 두뇌로 잘도 생각했군.”

그 모습을 본 마르쿠스가 피식, 실소를 머금었다. 낫을 들이댄 바르바토스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들통나버린 소감이 어때? 할아범.”

환세공을 제외한다면, 그들을 막을 수 있는 자는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다.

단탈리안이 마경의 군주 중에선 약하다는 평을 듣긴 하지만, 마왕은 마왕.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군.”

“…뭐?”

환세공의 표정이 하나도 움직이지 않자, 그녀의 불길한 예감은 점점 진해졌다.

“이미 그대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네. 그러니.”

우웅

말을 마친 환세공이 서서히 하늘로 떠올랐다.

“부디, 다음 생엔 다른 것으로 태어나게.”

파아앗

마왕을 향해 마르쿠스는 공손히 합장하곤, 그대로 하늘로 쏘아져 나갔다.

“어딜…!”

그녀가 도망치는 환세공을 가만두지 않으려 했지만.

쐐애액-

바람의 정령왕을 몸에 들인 환세공을 쫓아갈 수는 없었다.

“뭐야, 저 자식?”

꽁지가 빠져라 도망친 환세공의 뒷모습을 본 바르바토스는 당황했다.

하지만.

“차라리 잘 됐어. 성으로 가야겠군.”

그녀는 곧 생각을 바꿨다.

마왕 둘이 힘을 합친다면, 충분히 놈들의 계획을 분쇄해 버릴 수 있지 않겠는가.

마음을 정한 그녀는 아슈타르 성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때.

“기둥?”

무언가를 발견한 그녀가 눈을 좁혔다.

천장의 결계까지 올라선 골든라이온의 측현에서, 세 개의 기다란 기둥이 순서대로 아래를 향해 떨어졌다.

기둥들의 낙하지점은, 누가 보더라도 명확했다.

“아슈타르 성….”

순간.

“설마!”

그녀는 상대의 계획을 깨달았다.

“이런 미친놈들.”

스으으-

바르바토스는 손에 쥔 낫을 힘껏 쥐고는, 마기를 쥐어 짜내기 시작했다.

“끄으으….”

쩌적

그녀의 가슴에 박힌 마석에 금이 가기 시작했지만, 그녀는 마기를 끌어모으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손상은 각오한다.’

금 간 마석을 복구하는 데 어마어마한 노력이 들어가겠지만, 소멸보다는 낫지 않은가.

그녀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단지.

콰아앙

너무 늦었을 뿐.

콰아앙

시간차를 두고 떨어진 벙커버스터 두 발이 성을 꿰뚫곤 폭발했다.

두 발의 벙커버스터가 폭발한 곳에 남은 것은, 성의 지하로 통하는 거대한 구멍.

구멍 아래로 보이는 것은.

기이이잉-

결계를 유지하기 위해 최대한의 힘을 쏟아붓고 있는, 아슈타르 성의 마력엔진이었다.

성의 심장이나 다름없는 엔진실에, 마지막 벙커버스터가 내리꽂힌 순간.

파아아앗-

결계 안이, 하얗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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