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100화 (101/224)

#100화

파아앗

순간이동 마법진에서 나타난 것은, 고작 한 사람.

“벌써 한바탕하고 온 거야? 상태가 왜 이래?”

탈마공의 자식인 반마족, 파이톤은 이안의 핏기없는 얼굴을 마주하곤 고개를 갸웃했다. 이안은 그에게 핀잔을 주었다.

“너무 늦었잖아.”

“나도 어쩔 수 없었다고. 아버지께서 기다리라고 하지만 않으셨어도 진작 달려왔을걸?”

말을 마친 파이톤이 손으로 달리는 시늉을 하자 이안은 피식 웃었다.

다른 자들은 몰라도, 자신과의 계약자이자 전우인 파이톤은 도우러 와줄 거라 믿었으니까.

“전대 신검공께선,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다.”

“뭐, 신나게 검이나 휘두르고 계시겠지.”

이안의 어깨에 손을 올린 파이톤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다른 공가에선?”

이안이 구축해 놓은 방어선을 눈으로 살핀 파이톤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이안은 고개를 저었다.

“네가 처음이야. 마지막일지도 모르고.”

“젠장,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신들한테 쩔쩔매는 녀석들이 여기까지 나와줄 리가 없지.”

“신?”

그게 왜 여기서 나오는 거지?

파이톤의 입에서 나온 단어를 들은 이안의 머릿속에, 무언가 불길한 생각이 떠올랐다.

“뭐야, 설마 몰랐던 거야?”

이안의 반응을 확인한 파이톤은 순간 당황하더니, 이안이 몰랐던 이야기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갈리우스를 제외한 신계의 신들이 이번 원정에 반대했다는 이야기를.

그리하여, 아슈타르 혼자만이 원정에 나섰다는 사실을.

“아버지도 결국 놈들의 말을 거역하지 못했지. 이제야 말하는 거지만, 미안하다.”

말을 마친 파이톤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결국, 지금 이안과 이슈타르에 위기를 가져온 원인 중에는 자신의 가문도 포함되어 있지 않는가.

하지만.

“…그래?”

모든 이야기를 전해 들은 이안의 반응은 의외로 덤덤했다.

“…무슨 반응이 그래?”

“내가 너한테 무슨 반응이라도 해 줘야 해?”

“아니, 그건 아닌데….”

예상과는 달리 너무도 무덤덤한 이안의 반응에, 당황한 파이톤은 눈만 끔뻑였다.

따지고 보면, 놈들은 이안의 아버지인 신검공을 죽게 만든 배후가 아닌가.

“여기서 화를 낸다고 바뀌는 건 없잖아? 지금은 전투 중이야.”

하지만 이안은 놀랍도록 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의 말 한마디, 손짓 하나에 수많은 목숨이 걸려있다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단지.

‘아무래도, 편히 쉬시려면 할 일이 많겠는데요.’

잊지 않을 뿐.

“그렇다면야, 뭐.”

아무렇지도 않은 이안과 눈이 마주친 파이톤은 눈을 슬쩍 피하고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럼, 난 뭘 도와줘야 하지?”

“방어선이 뚫릴 때를 대비해서….”

이안이 파이톤에게 임무에 대한 설명을 준비하던 그때.

우우우웅

순간이동 마법진이, 다시금 푸른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뭐야, 마지막이라며?”

“누군가가 또 오는 모양이군.”

이안과 파이톤의 시선이 향했다.

파아앗

마법진에서 일군의 무리가 나타났다. 이안의 시선은 먼저 그들에게 향했다.

“공작대행을 뵙습니다.”

익숙한 형태의, 네 사람이 들어 올리는 가마.

가마꾼 역할을 맡은 신관 중 하나가 고개를 숙였다. 익숙한 신관의 얼굴을 알아본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성광공 쪽에선, 윌리엄 하나인가?”

그들이 메고 있는 가마 위에 널브러진 것은, 약에 취해 쓰러진 이안의 친구, 윌리엄.

“저래서야, 일어나지도 못하겠는데. 다른 애들은 없고?”

친구의 상태를 확인한 이안은 고개를 내저었다.

“저희와 신성기사단도 함께입니다. 그런 걱정은 접어두셔도 괜찮을 겁니다.”

영 떨떠름한 반응에, 신관은 급히 변명하고는 뒤에서 대기 중인 병력들을 향해 손짓했다.

척척척척

전신을 순백의 갑옷으로 감싼 기사들.

검 대신 새하얀 색의 메이스나 전투용 망치를 허리나 등에 멘 그들의 몸에선, 온갖 신들로부터 축성받은 신성력의 향기가 풍겨왔다.

“어우, 역겨워.”

“신성력이 부담스러우시다면 조금 뒤로 빠지시지요. 그 피를 탓할 수는 없으니.”

파이톤과 신관이 서로를 향해 신경전을 벌일 동안.

우우웅

또 한 번, 마법진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단 나쁘지 않은데.”

아슈타르를 제외한 연합공국의 여섯 공가 중 셋의 지원이라니.

‘가울드인가?’

환세공이 직접 약속했으니, 이 자리에 나타날 자는 그들밖에 없으리라.

고개를 돌린 이안은 새로운 지원병력이 나타나는 것을 지켜봤다.

하지만.

파아앗

“신검공!”

마법진에 나타난 것은, 정말이지 생각도 못 한 인물이었다.

“내가 이곳에 왔소! 마족들은 어디 있는 게요?”

환세공, 마르쿠스 폰 가울드.

비단으로 만든 청의 무복을 입은 노인이 얼굴만 한 부채를 들곤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내가 말했지 않나, 가울드는 약속을 지킨다고.]

“그래.”

아주 화끈하게 말이지.

“여기 있었군! 몸은 괜찮은 게요? 얼굴이 완전히 반쪽이 됐구만. 내 미안하오.”

“아닙니다.”

자신을 향해 서슴없이 고개를 숙이는 환세공을 본 이안은, 확신의 웃음을 지었다.

***

마족들이 내부에 품은 마석의 역할은, 마족들의 육체를 유지할 수 있는 마기를 끊임없이 생성하는 것.

그 말은 곧.

스으으-

마족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마기를 만들어내는 공장과도 같다는 의미.

마족들이 수많은 마수들 사이로 쉴 새 없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푸르른 대지가 보랏빛의 극독으로 물들었다.

“바르바토스, 여기서 쪼개지는 게 좋을 것 같군.”

“어째서? 부대를 나눠봐야 필멸자 놈들 좋은 일 하는 거 아냐?”

단탈리안의 제안을 들은 바르바토스는 의아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단탈리안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미련한 필멸자 놈들이라지만, 이렇게 대놓고 쳐들어가는데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을 리가 없지. 지금쯤이면 함정을 준비해 놓았을 거다.”

단탈리안은, 저도 모르는 새 이안의 계획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한쪽이 함정 앞에서 놈들을 기다릴 동안, 한쪽은 함정을 우회해서 놈들의 옆을 치는 거지. 우리 둘이 힘을 합친다면 충분하다.”

“그래?”

단탈리안이 자세히 설명하자, 바르바토스는 싱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물론이지. 너도 그 아슈타르 놈을 잡는 게 목표이지 않나?”

하지만.

“단탈리안, 너 겁쟁이구나?”

“뭐, 뭐라고?”

그녀의 미소는 어느새 비웃음으로 바뀌었다.

“어떻게, 마경의 군주란 놈이 이렇게 겁쟁이일 수가 있지? 저 한주먹거리도 안되는 필멸자들을 상대로, 그런 잔꾀를 쓰겠다고?”

말을 마친 바르바토스가 경멸의 눈빛을 보냈다.

“겁쟁이라니, 나는 그저….”

전투와는 거리가 먼 몽마에게 겁쟁이 소리를 들은 단탈리안은 이를 갈며 입을 열었지만.

“정마알? 메피스토가 들으면 뭐라고 생각하겠어?”

“…젠장.”

바르바토스가 메피스토를 들먹인 순간, 그는 변명하기를 포기했다.

“그래서, 네년의 생각은 뭐냐.”

그답지 않게 인상을 쓴 단탈리안이 물었다. 바르바토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 함정이야 당연히 있겠지. 녀석들이 그렇게 머저리는 아니니까.”

“그걸 잘 알면서….”

“하지만.”

뭐라 말하려던 단탈리안의 입을 손가락으로 막은 바르바토스가 눈을 빛냈다.

“우리가 그 함정을 직접 뚫어낼 필요는 없잖아?”

바르바토스가 말을 마친 순간.

스스스-

몽마족이 가진 권능 중 하나.

지배력을 최대한 끌어올린 그녀의 눈이 타오를 듯 이글거렸다.

콰우….

키이이이….

마왕연합군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마수들.

그들의 눈동자가 흐리멍덩해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두두두두두두

고블린부터 오우거까지.

바르바토스의 지배력에 영향을 받은 모든 마수들이 정면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바, 바르바토스! 무슨 짓이냐? 마수들을 그냥 버리겠단 거냐!”

마수들은 마족에 비해 약한 존재지만, 그렇다고 해서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화살 받이로도, 미끼로도 쓸 수 있는 유용한 존재들을 이렇게 낭비하다니.

하지만 바르바토스는 고개를 갸웃, 했다.

“버리다니? 이만큼 유용한 방법이 어디 있다고?”

“그게 무슨….”

“함정을 파훼하는 방법은 두 가지야, 단탈리안.”

그녀는 말을 마치고 하얀 손가락 두 개를 곧게 폈다.

“하나는 피해 가는 것. 다른 하나는….”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 나가던 바르바토스는.

“함정을 아예 막아버리는 거지. 시체로.”

단탈리안을 향해 싱긋, 웃어줬다.

***

이안이 고안한 참호선은 쉽게 뚫어낼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참호 뒤에 참호가, 그 뒤에 또 다른 참호가 온갖 함정과 함께 마치 개미굴처럼 얽히고설켜 있었다.

어지간한 마족이라도 쉽사리 빠져나오기 힘든 죽음의 함정.

하지만.

“적들이 참호를 넘어옵니다!”

“그런데 뭘 가만히 있어? 막아야지!”

파도처럼 몰아치는 적들을 막아내기는 쉽지 않았다.

“마법 화살이 다 떨어졌습니다!”

“검이라도 뽑아야 할 거 아냐! 여기서 그냥 죽을 셈이야?”

가장 큰 문제는, 상대와 비교했을 때 너무도 적은 숫자.

못해도 만 단위로 몰려드는 마수를 막아내기엔 물자도, 병력도 너무나 부족했다.

“발검!”

스릉!

코앞까지 몰려든 고블린들을 상대하기 위해, 다 쓴 석궁을 등에 멘 사냥단원들은 허리춤에 검을 뽑아 들었다.

하지만.

“이프리트.”

그들이 검을 휘두르는 일은 없었다.

“치워버리시게.”

참호 위에 떠 올라 전세를 지켜보던 환세공이 자신의 옆에 선 불꽃 거인을 바라본 순간.

콰아아아-

불의 정령왕의 몸에서 지옥의 업화가 부채꼴로 쏟아져 나갔다.

청색의 화염이 참호 속의 사냥단원들을 넘어, 마수의 파도에 도달한 것은 그야말로 순간.

화르르르-

수 천도를 넘는 고온의 열기에 노출된 마수들의 몸뚱이가, 순식간에 재로 화했다.

“이, 이건….”

말로만 듣던 정령, 그것도 정령왕의 힘을 실제로 마주한 단원들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리고.

파앗

“뭐 하고 있어들? 죽기 싫으면 빨리 내 손이나 잡아!”

느닷없이 허공에서 나타난 반마족까지.

화르르륵

모닥불처럼 타오르는 마수들의 시체 앞에서, 단원들은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노림수가 너무 뻔한데.”

그들의 후방.

지휘소에서 쌍안경으로 환세공의 활약을 지켜본 이안은 씨익 웃었다.

마왕연합군이 가진 장점 중 하나는 숫자.

숫자의 힘으로 상대의 전략과 전술을 부숴버리겠다는, 단순하지만 확실한 방법.

[설마, 네 말대로 정면으로 나올 줄은 몰랐는데 말이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인가?]

“뭐, 그건 우리가 알 바는 아니고. 오라, 미미르.”

우우웅

미미르의 말에 어깨를 으쓱한 이안은 페르소나를 개방했다. 포효하는 사자문양 권총에서부터 뿜어져 나간 마력은 곧, 트럭의 형태를 갖추어나갔다.

“그럼, 계획대로.”

좀 더 약 올려 주자고.

[알았다.]

쌍안경을 든 이안이 손으로 마왕군을 가리킨 순간,

씨이이잉-

트럭의 등에서, 수많은 로켓이 쏘아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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