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화
이안이 신검공의 계승자로 인정받은 방법은 간단했다.
‘파아아앗!’
오직 아슈타르의 신물을 가진 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금색의 오러.
‘아니….’
‘부, 분명해. 저건 분명히 신검의 오러야!’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금빛의 오러를 목도한 순간.
아슈타르의 모든 사람들은 이안이 공작가의 새로운 가주가 되었다는 사실을 의심치 않았다.
문제는 단 하나.
“신검 없는 신검공이라니, 이게 무슨 개 같은 소린지.”
손에 쥔 권총을 만지작거리던 이안은 선내의 공작용 집무실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애오옹
[이 방법이 최선이었다, 이안. 이미 의지를 잃은 신성을 흡수하기 위해선 나의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건 나도 알지. 아는데….”
그걸 안다고 해서 딱히 해결책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참에 신총공으로 갈아타? 마력총이라도 만들어서 병사들한테 뿌릴까?”
잠시 정신을 놓은 이안은 제멋대로 헛소리를 지껄이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젠장.”
어차피, 이미 벌어진 일이 아닌가.
되돌릴 수 없다면, 손에 쥐고 있는 것들로 해결할 수밖에.
“정보.”
결정을 내린 이안은 명령어를 외쳤다.
[이안 아슈타르]
[페르소나명: 미미르]
[등급: 환수]
[마력: 5,000]
[개방 필요마력: 2,000]
[증폭률: 2000%]
[특성]
[장비교체][장전][과부하][보조인격][파편화][그림자의 화신][통신]
[신검의 기운][흡마][폭주]
“마력이 5천 갈리움이라고?”
분명, 많은 것이 변했다.
거의 두 배로 늘어난 마력은 물론, 새롭게 늘어난 특성까지.
신검을 흡수하기 전과 비교한다면 괄목할 만한 성장이었다.
“이만하면, 영웅급 페르소나를 만들어볼 수도 있겠는데.”
거기까지 생각이 이른 이안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영웅급.
수십의 페르소나를 보유하고 있는 아슈타르 공작가에서도 단 하나만 존재했던, 사실상 페르소나의 최종형태.
지금도 환수급의 한계에 가까운 힘을 발휘하고 있는 이안에게 영웅급의 페르소나가 쥐어진다면….
‘마왕하고도 해 볼 만하겠지.’
물론.
[영웅급 페르소나를 다루기 위해선 마력을 다루는 경지를 높여야 한다.]
거기엔 한 가지 전제가 깔려있었지만.
희망을 짓밟는 목소리에, 이안은 바닥에 뒹굴고 있던 고양이를 바라봤다.
“얼마나?”
[너는 오러를 다루니, 아무리 못해도 오러 마스터의 초입엔 들어야겠지.]
“말은 쉽지, 말로는 아주 마왕도 대가리를 쪼개버리겠어.”
오러 마스터라니.
이안의 현재 수준은 익스퍼트 상급이다.
그가 마스터에 도달할 수준이었다면, 애당초 이런 고민을 하고 있었겠는가.
이안의 반응을 본 미미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네가 너무 비정상적으로 성장해서 그렇게 느낄 뿐이다. 평범한 필멸자는 네 경지에 오르는 데만 반평생에 가까운 세월을 써야 할 터. 조급해하지 말아라.]
지금의 이안을 만들어 낸 기초는 물론 뼈를 깎는 노력이었지만, 그가 얻어낸 수많은 기연들 역시 한 축을 차지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앞으로도 이런 기연들이 계속 나타나 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
미미르의 조언은 틀린 구석이 없었다.
“그래, 뒤에서 마왕 둘이 쫓아오지만 않았더라도 좀 나았을 텐데 말야.”
단지, 이안에겐 그때까지 기다릴 시간적 여유가 없었을 뿐.
두 마왕이 아슈타르를 향해 진격해올 게 확실한 이상, 이안은 어떻게든 방법을 고안해야 했다.
결국.
“다들 불러모아야겠군.”
혼자서 머리를 쥐어짜 본들,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우웅
자리에서 일어난 이안은 자리에 놓인 통신마법기를 가동시켰다.
[예, 공작 전하.]
곧, 수정구슬에서 초췌한 얼굴이 떠올랐다.
‘공작 전하라.’
이안은 새로운 호칭을 속으로 잠시 음미하고는.
“단장들을 불러줘. 10분 내로.”
[어떤 용무라 전할까요?]
“반격.”
말을 마친 이안은 눈을 빛냈다.
***
아슈타르 공작가를 기둥처럼 떠받치는 다섯의 무력집단.
개중, 이 자리에 합세한 자들은 마탑주를 제외한 넷.
“반격이라니, 갑자기 마음이 바뀌기라도 한 게냐?”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이안의 형, 오베르트였다.
애당초, 오베르트가 이안과 대립한 건 마왕에 대한 복수 때문이 아닌가.
오베르트의 눈이 복수에 대한 열망으로 활활 불타올랐다.
“지금이라도 네가 마음을 바꿔주었으니 다행이다. 나에게 병사들을 맡겨만 주면….”
“그건 안될 말씀입니다, 근위대장.”
하지만 모두가 그와 마찬가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현재 아슈타르의 비행함 전력은 고작 골든 라이온과 하이랜더뿐입니다.”
그리핀 함대의 제독, 몰드린 그라파스 후작.
“골든라이온이 아무리 뛰어난 함선이라지만, 마왕 둘을 상대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전대 공작 전하께서 살아계셨다면 모를까….”
“공작 전하께서 왜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건지 아는가?”
그의 입에서 부정적인 이야기가 흘러나오자, 오베르트가 성을 내기 시작했다.
“본인을 희생하면서까지, 아슈타르가 마왕 놈들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할 준비를 할 수 있게 안배하신 거란 말이다.”
이안만 아니었다면, 그는 당장이라도 골든라이온을 돌려 마왕의 성으로 향했을 터.
“이 기회를 놓쳤다간, 힘을 회복한 마왕놈들이 언제 아슈타르를 칠지 몰라.”
그만큼, 계획이 좌절당한 오베르트의 분노는 강렬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어찌 되었건, 전대 공작 전하의 복수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병력이 부족한 것도 사실입니다. 자칫 잘못했다간 아슈타르까지 통째로 사라져버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은사자 기사단을 이끄는 칼리번에, 흑사자 사냥단을 이끄는 파비안까지.
서로의 의견은 완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다.
결국.
“그래, 우리 공작 전하께선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 거지?”
오베르트의 빈정거림과 동시에, 넷의 눈이 구경만 하고 있던 이안을 향해 쏠렸다. 이안은 손에 낀 깍지를 풀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현재 아슈타르에 남은 병력은?”
“은사자 기사단 3개 지단과 흑사자 사냥단 5개 백인대, 혈사자 마탑의 열여섯 지부와 1급 비행전열함 골든 라이온, 비행초계함 하이랜더입니다.”
이안의 물음에, 칼리번은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굳이 포함하자면 귀족들의 사병이나 성의 경비대도 있겠습니다만, 큰 의미는 없겠죠.”
“원정 전과 비교하면?”
“절반 이하입니다.”
“그럼, 전멸이네.”
이안은 간단히 상황을 요약했다.
부대의 병력을 절반이나 잃었다는 건, 그 부대가 맡고 있던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이야기.
지원병력도, 교체병력도 갖춰지지 않은 부대가 어찌 정상적인 전투를 치를 수 있겠는가.
더 생각해 볼 필요도 없었다.
“그럼, 영지로 돌아가자고.”
전력을 다해 부딪치고도 해내지 못한 일이다.
전멸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달려들어 봐야, 불구덩이에 달려드는 나방과 별 차이 없는 결말을 맞이할 게 뻔했으니까.
물론.
“겁쟁이처럼 지껄일 거라면, 왜 부른 거지?. 괜히 시간 낭비만 했군.”
모두가 이안의 결정에 동의하지는 않았다.
책상을 내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난 오베르트의 눈이 겁쟁이처럼 구는 새로운 공작을 차갑게 노려봤다.
하지만.
“무슨 소립니까?”
이안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저는 반격을 하겠다고 했지, 동반자살을 하자고 한 적은 없습니다만.”
“…그게 무슨 소리지?”
이안의 말을 들은 오베르트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안은 차근차근히 설명을 시작했다.
“제가 아는 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속담?”
이안이 뜬금없이 속담을 꺼내자, 이안을 뺀 나머지가 의아한 시선을 보냈다. 그의 입이 열렸다.
“똥개도 제 집에선 반은 먹고 들어간다.”
“…그게 무슨 소리지? 뭘 먹는다는 것이냐.”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이계의 속담을 들은 오베르트의 표정이 굳었다. 이안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공성을 위해선 세 배의 병력이 필요하다.라는 말로 바꾸겠습니다. 이 정도면 이해하겠습니까?”
순간.
“공작 전하, 혹, 그 말씀은….”
“맞아.”
넷 중, 파비안만은 이안의 말에 뭔가를 깨달았다.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생각을 말했다.
“아슈타르의 전 병력은 성으로 돌아간 다음, 몰려올 군세에 맞서 수성에 돌입한다.”
“수성만으로는 영지의 피해만 더 커질 뿐이다. 그것을 정녕 모르느냐?”
오베르트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키는 자가 공격하는 자보다 유리할 수는 있지만, 결국 더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지키는 자다.
전투에서 아무리 대승을 거둔다 한들, 영지가 폐허로 변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지만.
“얻는 게 있으려면, 버리는 게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뭐?”
그 말을 들은 이안의 반응은 무덤덤했다. 오베르트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지금, 영지를 버리겠단 말이냐? 아슈타르를?”
오베르트의 그 말에, 흥미로운 눈으로 이안을 바라보던 다른 세 명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쾅
“전하, 설명해 주십시오.”
“설마, 진실로 아슈타르를 버리겠단 말씀은 아니시겠지요?”
“그만들 하십시오. 전하의 말씀이 아직 끝나지 않았잖습니까?”
순간, 충격을 받은 기사단장과 제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파비안이 급히 일어나 그들을 말리기 시작했다.
“전하, 저희는 아슈타르와 인계를 지킬 사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부디 합당한 설명을 해 주시지요.”
하지만, 주군을 보는 사냥단장의 눈 역시 곱지는 않았다.
이 자리에 선 모두가 아슈타르에서 나고 자라 마족에 맞서온 자들.
아무리 그 말을 꺼낸 사람이 신검의 주인이라 한들, 평생의 고향을 버리자는 의견에 동참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도망?”
이안은 대답 대신 코웃음만 칠 뿐이었다.
“당연히 지켜내야지. 우리가 도망간다고 마왕들이 포기하고 돌아갈 것 같아?”
아니, 이 기회를 이용해 연합공국이란 이름의 방벽을 넘어설 게 분명했다.
그러고 나면, 아무런 방해없이 공국을 넘어선 마족들은 제 입맛대로 인계를 유린하리라.
물론.
“수성이 전부가 아니야. 함정을 파 놓을 거다.”
말을 마친 이안이 깍지를 목 뒤로 넘겼다. 파비안이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함정이라면, 설마 마족들을 슈바이크 내로 끌어들여서 잡겠단 말입니까?” 혹여나 실패한다면 피해가 너무 큽니다.”
아슈타르 공작령의 중심도시를 대가로 마족의 침공을 막아낸다면, 결국 상처뿐인 승리일 뿐.
벼룩 하나 잡자고 성을 태우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파비안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주군에게 간언했다.
“그럼, 마왕은?”
이안의 생각은 조금 더 멀리에 있었다.
“예?”
이안의 물음을 들은 파비안은 멍청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마경의 군주 둘이라면, 적당한 교환비라고 생각하는데.”
“…그거야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만.”
영지는 다시 복구할 수 있지만, 죽은 마왕은 부활할 수 없다.
열한 명의 마왕 중 둘이 사라진다면, 마경과 인계의 균형추는 한쪽으로 기울어질 것이 분명했다.
문제는.
“마왕들이, 쉽게 함정에 걸려들겠습니까?”
마족들도 그리 멍청하지 않다는 것이었지만.
적게는 천 년, 많게는 수천 년을 살아온 것이 마경의 군주들이다.
억겁의 세월동안 쌓인 풍부한 전투경험을 가진 그들이, 과연 함정에 제 발로 들어오겠는가.
하지만.
“걱정하지 마.”
이안은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았다.
“내가 직접 나설 거니까.”
적을 유인하고 함정을 파는 것은, 요원 강민혁에겐 숨 쉬듯 익숙한 일.
씨익
말을 마친 이안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