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92화 (93/224)

#92화

이안 아슈타르.

에드너가 세 번째로 거둔 자식이자, 언제나 실망스러웠던 가문의 수치.

가신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페르소나의 자격자로 선발한 것조차도, 자식에게 남은 미련을 버리기 위한 마지막 조치가 아니었던가.

그러니.

“방법이, 있느냐?”

평생 아무런 기대조차 안 했던 아들에게, 평생 하고 싶지 않았던 말을 해야 하는 에드너의 마음은 씁쓸했다.

“끄으으으….”

“방버업? 아직도 그런 걸 찾는다고?”

그 말을 들은 요녀가, 손에 쥐고 있던 인간을 성벽에 던져버렸다.

환수급 페르소나를 다룰 자격을 가진 자였지만, 모든 마력을 소진한 그에겐 마왕의 공격을 막아낼 힘이 없었다.

‘바르바토스.’

반쯤 쓰러진 에드너의 눈이 그녀를 노려봤다.

몽마의 특성을 가진 유일한 마왕.

그리고.

‘어째서, 온 거지?’

그의 토벌계획을 기초부터 박살 내버린 원흉.

콰직!

“이봐, 아슈타르.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거야?”

마지막 남은 근위대를 처리한 마왕, 바르바토스가 바닥에 굴러다니는 인간들의 주검을 보곤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이 자리에 나타난 순간, 너흰 이미 끝난 거야, 멍청하긴.”

말을 마친 그녀가 오른손에 들린 낫, 아포칼립스를 빙빙 돌렸다.

근위대의 절반을 넘게 베어 넘긴 커다란 낫의 날부분에 검붉은 피가 덕지덕지 묻어있었다.

‘그래, 멍청했다.’

에드너는 마왕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아무리 가능성이 적다고는 하지만, 여러 명의 마왕이라는 변수를 계산에 넣지 않은 그의 실책이었다.

그 결과는, 골든라이온에 남겨둔 오베르트를 제외한 근위대의 전멸.

“도와준 건 참으로 고맙다만. 이만 사라져줬으면 좋겠는데, 바르바토스.”

그녀의 뒤에 서 있던 마왕이 불쾌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곳은 나의 영역이다. 서로의 일에 간섭하지 않기로 한 것을 벌써 잊어버렸나?”

자신의 성과 한 몸이 된 마왕, 단탈리안.

자신의 영역을 침범당했다는 생각에, 그의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그녀가 혀를 빼문 채 말했다.

“아, 그런 게 있었나? 깜빡 해버렸지 뭐야, 헤헤.”

“바르바토스…!”

그녀의 태도에 단탈리안이 화를 내려던 순간.

“미안한데.”

그녀의 표정이 변했다.

“이건 메피스토와도 얘기가 끝났어.”

“…메피스토?”

순간, 마왕의 입이 다물어졌다.

마경을 지배하는 열한 군주들 중 가장 강한 자이자, 마왕의 마왕이라 불리는 자.

단탈리안 역시 마왕의 칭호를 지니고 있었지만, 마경의 지존에 비하면 손색이 있었으니까.

“그래, 메피스토. 나는….”

순간, 그녀의 눈에서 살을 저미는 것 같은 살기가 흘러나왔다. 바르바토스의 눈이 짙은 색의 천으로 가린 복부를 향했다.

그녀의 일생을 통틀어, 처음 느껴본 치욕.

“저 아슈타르 놈들을 모두 찢어 죽일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잘 알았지, 아슈타르?”

언제 그랬냐는 듯, 살기를 갈무리한 그녀가 에드너를 향해 생긋 웃었다.

하지만 그의 관심은 이미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제압은 할 수 있습니다. 마력을 충전할 시간이 30분 정도 필요하지만.

“그래.”

카가가각!

만족스러운 대답을 들은 공작이, 간신히 손에 쥔 신검을 지지대 삼아 몸을 일으켰다.

비틀거리는 몸으로, 그는 작게 중얼거렸다.

“뭔진 모르겠지만, 곧장 실행하거라. 이미 골든라이온과 다른 병력들은 후퇴시켰다.”

두 명째의 마왕을 마주한 순간, 에드너는 승리를 포기했다.

이제 그에게 필요한 것은, 마왕의 목이 아니라 시간이었다.

마왕을 확실히 묶어놓을 수 있는 시간.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잠시 침묵했던 막내아들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신검의 주인이다.”

아슈타르 공작가의 가주.

백만의 공민과 다섯의 무력집단을 아래에 둔, 일곱 영웅의 후예.

“신검은, 부러지지 않아.”

이제, 그 이름에 책임을 질 시간이다.

-…돌아오십시오.

“알았다.”

쨍그랑!

막내아들의 마지막 말을 듣자마자, 에드너는 어깨에 매단 통신구슬을 부숴버렸다.

“그래, 부러지지 않는다고?”

에드너의 대화를 들은 바르바토스가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어디, 정말 그런지 한 번 볼까?”

파지직

그녀가 들고 있던 검붉은 낫이 보라색 기운으로 물들었다. 그녀의 뒤에서, 단탈리안의 의지에 따라 솟아난 촉수들이 에드너의 주변을 둘러쌌다.

하지만 공작은 두려워하는 대신.

“레온하르트.”

신검에 담긴 인격을 향해 말을 걸었다.

[…진심인가?]

공작의 위에 오른 뒤로 평생을 함께한 친우.

그의 말에 에드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혹시나 말릴 생각 따위는 하지도 말게나.”

[…알았다. 어차피 말린다고 듣지도 않을 터.]

“미안하네.”

조금은 삐진 것 같은 신검을 향해 공작은 사과했다.

우우우웅

지금이 아니라면, 사과조차 할 수 없을 테니까.

파아앗

손에 쥔 신검이 처음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환하게 빛났다. 동시에, 에드너의 몸에 빛으로 이루어진 영웅의 육체가 다시금 덧씌워졌다.

우우웅

에드너가 서 있던 자리에 나타난 것은, 온몸에서 황금빛을 내뿜고 있는 아슈타르의 영웅.

초대 신검공, 칼츠 아슈타르.

“설마, 그 정도로 우릴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어리석도다, 어리석도다.”

하지만 바르바토스와 단탈리안은 공작을 비웃었다.

조금 전과 비교하면 강해진 것은 사실이었지만, 신검공에겐 자신을 보조해줄 근위대도, 화력을 지원해줄 전열함도 없는 상황.

병력 없이 홀로 남은 인간 따위는, 이미 그의 상대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막을 생각 따위는 애초에 없었다.”

그것이 공작의 의지를 꺾을 이유는 되지 못했다.

“검은 막는 게 아니라, 베는 것이니까.”

쐐애애액

‘부탁한다.’

잠시 이안을 떠올린 그가, 마왕을 향해 손에 쥔 신검을 내리쳤다.

***

[이안, 괜찮겠나?]

“그래.”

드르륵

미미르의 말에, 초계함 위로 기어 오는 마족을 벌집으로 만들어버린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이렇게 된 건가.’

물론, 말 만큼 괜찮을 리 없었다.

모두를 구하기 위해 누군가가 희생하는 경험은 아무리 많이 경험해도 익숙해질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래도, 해야 돼.’

하지만 이안은 알고 있었다.

“물러서지 마, 새끼들아! 조금만 버티면 빠져나갈 수 있어!”

“마르콘이여, 당신의 전능한 빛으로 삿된 무리들에게 징벌을!”

백 명의 근위대와 오러 마스터.

이 모든 희생을 개죽음으로 만들어버리는 것만큼 미련한 짓은 없다는 사실을.

[충전이 끝났다, 이안.]

골드라이온에 달린 것에 비하면 부족하지만, 거대한 배를 하늘로 띄우기엔 부족함이 없는 하이랜더의 마력엔진.

어지간한 환수급 페르소나와 비슷한 출력의 마력이, 이안의 페르소나를 가득 채웠다.

이안은 망설임 없이 계획을 실행했다.

“과부하.”

이안이 가진 페르소나의 특성 중 하나.

페르소나가 담고 있는 모든 마력을 하나로 녹여내, 기존과는 차원이 다른 위력을 만들어내는 특성.

끼긱 끼기긱

이안이 시동어를 외치자, 갑판 위에서 잠자고 있던 자주포가 제멋대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끼기기긱

꺾임과 찌그러짐을 반복한 자주포는 곧 제 모습을 잃어버렸다.

그 자리에 대신 나타난 것은, 등에 두 개의 박스를 짊어진 거대한 트레일러.

기이이잉

우렁찬 엔진소리를 내뿜는 녀석의 등에 비스듬히 세워진 박스가, 천천히 성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M270.’

지금의 이안이 페르소나를 통해 구현해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병기.

[페르소나 강제 해제까지 앞으로 3분. 시간이 없어!]

수 마리의 고양이들이 바쁘게 트레일러를 쏘다니며 발사를 준비했다. 트레일러 안에 탑승한 고양이, 미미르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

이안은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발사해.”

더 이상 미루는 것은 배려가 아니라 미련이다.

혹시나, 공작이 두 마왕을 처치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미련.

[…알았다, 발사.]

딱딱하게 굳은 그를 잠시 바라보던 미미르는 발사버튼을 꾸욱 눌렀다.

그리곤.

쐐애애액-

쏘아져 나갔다.

하얀 열기와 붉은 화염을 뿜어내며 상승하는 거대한 미사일.

쐐애액-

모든 마력을 쏟아 넣은 두 발의 미사일이 순식간에 초계함을 떠나 단탈리안의 성으로 향했다.

잠시 미사일이 날아오르는 것을 지켜보던 이안이 함장을 향해 몸을 돌렸다.

“골든라이온에 합류한다. 최대한 빨리.”

“예, 공자님. 함선, 전속 상승!”

기기기깅

함장의 명령과 함께, 마력 공급을 위해 지상에 착륙했던 비행초계함 하이랜더가 위로 떠 오르기 시작했다.

이미 사냥단의 모든 병력은 함선 안으로 철수한 상황.

순식간에 수백 미터 위로 떠오른 초계함이 기수를 틀고는 앞으로 나아갔다.

드르르륵

끼이이이-

갑판을 향해 기어오르던 마지막 마수를 떨궈낸 이안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

“와, 정말 놀랐지 뭐야? 진짜로 지는 건가 해서 조마조마 했다구.”

마왕, 바르바토스가 상대를 향해 생글생글 미소를 지었다.

고된 단련을 거친 기사의 의지도 단숨에 꺾어버릴 수 있을, 몽마 특유의 매혹적인 웃음.

“크….”

하지만 에드너에겐 찢어 죽여야 할 적일 뿐.

검을 휘두를 힘만 남아있었다면 그는 당장이라도 손에 쥔 신검을 휘둘렀을 것이다.

[생명력이 얼마 남지 않았다. 페르소나의 가동시간도 곧 한계야.]

생명력을 태워 자신의 힘을 한계 이상까지 끌어낼 수 있는, 신검 레온하르트의 특성 중 하나.

“아직은, 그럴 수 없지.”

철커덕

에드너가 비틀거리며 천천히 일어섰다.

머리는 하얗게 셌고, 피부와 근육은 제 탄력을 잃었다. 당장 쓰려져도 이상하지 않을 노쇠한 육체.

하지만, 그 의지만은 아직 무뎌지지 않았다.

철컥

검을 들어 올리자,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한 에드너의 팔이 사시나무처럼 떨려왔다. 하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아직도 우리를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게냐. 안타깝도다.”

촤아악

뒤에서 끊어진 촉수들을 재생시킨 단탈리안이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마경의 군주 둘과 마력조차 고갈된 인간.

이미 승패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쐐애액

무언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전까진.

“으응…?”

공기를 찢는듯한 날카로운 소리에, 바르바토스가 고개를 위로 들었다.

격렬한 전투에 의해 이미 무너져버린 천장 너머로 보이는 보랏빛의 하늘.

그곳에, 무언가가 반짝였다.

“별?”

별은 아니었다.

대낮부터 보이는 별이 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 순간.

“하, 하하하, 하하하하.”

에드너는 힘없이 웃었다.

고개를 들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지만, 그의 직감이 속삭여 주고 있었다.

‘끝이군.’

이제, 마지막 검을 휘두를 시간이라는 사실을.

“레온.”

공작은, 일생의 반을 함께한 전우를 불렀다.

[…그 이름으론 부르지 말라고 했을 텐데.]

“이제 안 볼 사이인데 무슨 상관인가.”

신검이 짜증을 냈지만 에드너는 개의치 않았다.

“지금이야말로, 오래전의 약속을 지킬 때일세.”

[…그 개소리가 현실이 될 줄이야, 빌어먹을.]

다음 일은 모두 정해진 대로였으니까.

파직 파지직

에드너는 남은 생명력을 모두 검에 불어넣기 시작했다.

그의 피부가 쩍쩍 갈라지면서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근육이 언제 그랬냐는 듯 쪼그라들었다.

그 결과로 얻은 것은.

우우웅

마력으로 변환된 생명력을 최대한도로 머금은, 빛나는 신검 한 자루와 강화된 오른팔.

역수로 검을 쥔 그의 오른팔이 서서히 위로 들어 올려졌다. 신검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가 만나왔던 칼츠의 후손들 중에서, 너는.]

“잘 가게.”

레온하르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공작은 망설임 없이 팔을 휘둘렀다.

쐐애애액

그의 모든 힘을 모아 던진 신검이 뻥뚫린 천장을 향해 날아올랐다.

다음 대의 아슈타르를 위해서 쏘아진 검은, 그대로 그의 시야를 벗어났다.

“뭐야. 방금, 자기 검을 던진 거야?”

“그보다, 저 하늘에서 다가오는 건 무엇이지?”

털썩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마왕들을 내버려둔 채, 노인은 바닥에 쓰러졌다.

그는 쓰러진 이후에야 볼 수 있었다.

쐐애애액

거대한 화살.

마왕들이 별이라 칭하던 그것은 점차 성을 향해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저것은 아마도.

‘녀석의 것이겠지.’

막내의 얼굴을 떠올린 공작은 쓴웃음을 지었다.

검을 쓰지는 않았지만, 검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는 아이.

‘그것이면 족하다.’

에드너는 담담히 자신의 최후를 기다렸다.

두 개의 화살이 성과 가까워졌을 때.

티티티티팅

두 개의 화살이 회전하면서 수백의 금속구체를 성 안으로 쏟아냈다.

그 광경에서, 에드너는 무언가를 떠올렸다.

‘비인가.’

강철의 비라니.

은혈의 사자라 불리던 그의 최후를 장식하기엔, 부족함이 없지 않은가.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빗방울들을 바라보며.

“오라.”

에드너는 엷은 미소를 지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