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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91화 (92/224)

#91화

아슈타르의 유일한 비행함대.

그리핀 함대를 구성하는 함선의 숫자는 비행전열함과 비행초계함을 포함해 모두 열 한 척.

그 중.

“흠.”

비행초계함, 하이랜더의 함교에 올라선 이안은 페르소나로 만들어 낸 쌍안경을 눈에 갖다 댔다.

쌍안경 너머로 보이는 것은 마치 성처럼 하늘을 향해 뾰족하게 솟은 구조물.

마치 땅에서 자라난 것처럼 불규칙한 모양이었지만.

“저기란 말이지.”

이안은 저곳이 마왕, 단탈리안의 영역이란 사실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성의 주변엔, 보통 사람은 들이키기만 해도 죽음에 이를 고농도의 마기가 불꽃처럼 일렁였으니까.

[마경의 군주들 중에서도 하위권 취급을 받는다지만, 마왕은 역시 마왕이야.]

이안과 시야를 공유하는 미미르가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이안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뭐, 곧 죽을 녀석이지만 말이야.”

페르소나를 가진 오십 명의 자격자와 1급 비행전열함 골든라이온.

그들의 선봉에 선 자가 누구인가.

“페르소나를 쥔 오러 마스터라니, 내가 마왕이었으면 진작 내뺐을걸?”

물론 그였다면 도망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겠지만.

“미미르, 끝났어?”

쌍안경을 든 채 성을 한참 노려보던 이안이 입을 열었다.

그가 쌍안경을 든 것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었다.

[사격제원 입력 완료. 준비는 모두 끝났다.]

“그럼 이쪽은 됐고.”

미미르의 말을 들은 이안은 함교에서 뛰어내린 다음 함선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의 위치는 진지를 구축 중인 흑사자 사냥단의 바로 아래.

수많은 마법기로 만들어진 결계와 무기들이 제각기 목적에 맞게 배치되어있었다.

“이쪽도 끝. 그러면….”

준비가 끝난 것을 확인한 이안은.

“시작해.”

진지 중앙에서 대기하던 미미르를 향해 명령했다.

[알았다. 발사.]

미미르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콰앙 콰앙 콰앙

K-9 자주포가 불을 뿜었다.

한 발도 아닌, 무려 세 발의 포탄.

연달아 쏘아진 세 발의 포탄이 적진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좋아, 구현은 잘 된 거 같고.”

포탄의 비행상태를 확인한 이안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안이 불러낸 자주포, K-9이 쏘아낸 것은 155밀리 고폭탄.

쐐애애액

TOT(Time On Target).

적진에 도달하는 시간에 맞춰 세 발의 포탄을 각기 다른 각도로 발사한다.

각도가 높다면 포탄은 목표에 천천히, 낮다면 빠르게 도달할 터.

분명, 세 발의 포탄이 쏘아진 시간은 모두 달랐지만.

콰과과광!

포탄이 마왕의 성에 도달하는 시간은 다르지 않았다.

거대한 폭발이 성의 위쪽을 뒤덮었다. 보라색 오라로 빛나던 성은 어느새 희뿌연 연기에 휩싸였다.

물론, 이 폭발이 마왕에게도 통할만큼 강한 위력은 아니었지만.

“도발쯤이야.”

분노한 마왕의 병력들을 이끌어내기엔 충분하리라.

이안은 확신했다.

-공자님, 적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그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어, 나도 잘 보여.”

쌍안경 너머로 보이는 수많은 마족과 마수들.

녀석들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피를 철철 흘리는 것은 양반이었다. 개중 심한 녀석은 사지 한쪽이 날아가기도 했으니까.

수많은 적이 눈에 독기를 머금은 채 달려들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아직 계획대로.

“시작해.”

이제 남은 것은, 마수와 마족의 파도 앞에서 얼마나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느냐 뿐.

우우웅

페르소나에 마력을 불어넣은 이안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

단탈리안.

마경을 지배하는 열한 명의 군주 중 하나이자, 다섯의 최상급 마족을 거느렸던 마족의 정점.

“들리는구나.”

청년 모습의 마왕이 이마에 난 기다란 뿔을 매만지며 미소를 지었다.

“너희의 분노가. 너희의 저주가.”

상대의 감정을 볼 수 있는 마왕의 시선이 인간들을 향했다.

그의 시야를 가득 메운 인간들의 몸은, 온통 분노를 뜻하는 붉은 색으로 물들어있었다.

“무엇이 너희를 이렇게 만들었더냐.”

말을 마친 마왕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머리 가운데 난 뿔과 몸에서 끓어 넘치는 마기만 아니라면, 마왕이 아니라 성자라 불러도 부족하지 않을 모습.

그때.

“위선 떨지 마라, 마왕.”

인간들의 한가운데서 가장 붉게 타오르는 이.

“신검을 향해 이빨을 들이댄 건 너희였으니까.”

스르릉

레온하르트를 뽑아 든 신검공, 에드너 폰 아슈타르가 입을 열었다.

“이빨을 들이댈 용기만큼, 죽을 용기도 남아있을지 궁금하군.”

말을 마친 공작이 하늘 위로 칼을 치켜들었다.

그것이 신호였다.

우우웅!

그를 포함해, 이 자리에 모인 수많은 이들은 페르소나를 가진 자격자들.

모두가 페르소나를 가동한 순간, 미증유의 마력과 신성력이 가득 찬 마기를 몰아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근위대의 몸을 감싼 마력이 유형화되기 시작했다.

이윽고.

철컥 철커덕

그 자리에 나타난 것은, 아스텔리아를 스쳐 지나간 수많은 신화와 전설의 파편들.

온갖 전설적인 존재들을 베고 찌르고 깨부수던 병기와 환수들이, 현세에 다시 강림했다.

“유언이나 남겨라, 마왕.”

그 중심에 선, 태양처럼 빛나는 검을 쥔 사내.

초대 신검공 칼츠 아슈타르의 모습을 뒤집어 쓴 에드너가 타오르는 검을 들어 마왕에게 겨눴다.

페르소나를 가동한 근위대와 신검공의 힘. 거기에, 하늘에서 화력을 지원할 골든라이온까지.

마왕 하나를 베는 것쯤은 무 썰기보다 쉬운 일이리라.

하지만.

“그럴 수는 없지, 신검. 내가 이 성을 어떻게 지어놨는데 말이야.”

단탈리안의 기세는 조금도 꺾이지 않았다.

죽음을 목전에 두었다기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태도.

“그리고.”

우우웅

순도 높은 마기가 마치 전신 갑옷처럼 온몸을 뒤덮었다. 뒤덮고도 남은 마기가 줄기와 뿌리처럼 천장과 바닥, 사방의 벽으로 뻗어나갔다.

마침내 등장한 것은.

“죽는 건 내가 아니다.”

마성(魔城)이라고 해야 할까.

마치 원래부터 존재했던 나무처럼, 단탈리안은 자신의 몸과 성을 마기로 엮어버렸다.

“죽는 것은, 오만으로 가득 찬 너희.”

거목 한가운데 새겨진 그의 인자한 표정이 일그러진 순간.

파파팟

바닥에서 튀어나온 수많은 마수와 마족들.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보랏빛의 촉수들.

순식간에, 공작과 근위대는 포위하는 처지에서 포위당하는 처지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것이 아슈타르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베어라.”

신검을 쥔 에드너가 명령을 내린 순간.

파츠츠츠츠

그의 검, 레온하르트에서 금빛의 오러가 솟아났다.

***

-공자님, 더는 버티기 어렵습니다!

“뭐라고?”

드르르륵

통신용 마법기로 파비안의 보고를 듣던 이안이 도끼를 던지려던 오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퍼퍼퍼퍽

UMP 45.

검은색 기관단총에서 쏟아져나온 수십의 45구경 탄환이 오크를 벌집으로 만들었다.

오크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지만, 이안은 거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크아아-

하나를 쓰러트리면 둘이, 둘을 쓰러트리면 셋이 몰려왔으니까.

-보급품이 거의 떨어져 갑니다. 마력 결계의 마력도 거의 소진상태고요.

“앞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는데?”

-길어야 한 시간입니다.

“그래?”

짤깍

단장의 말을 듣자마자 이안은 품에 넣어둔 회중시계를 꺼냈다.

‘4시간은 이미 지났어.’

그것은 곧, 이안이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본대에 지원을 갈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이대로 탈출하는가.’

선택지는 하나뿐.

드르르륵

진지의 마법 결계를 넘어오려는 오크들을 쏘아 넘기면서, 이안은 통신기를 내려다봤다.

탈마공의 비전으로 만들어진, 아슈타르에서도 몇 개 보유하지 않은 장거리 통신용 마법기.

녀석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었다.

“일단 버틴다. 30분만.”

-…알겠습니다.

아직은 떠날 수 없었다.

파비안에게 명령을 내린 이안은 앞에서 다가오는 수십의 최하급 마족을 바라봤다.

-죽인다.

-인간.

간신히 말을 할 정도의 지성만을 가진, 제대로 마족 취급도 받지 못하는 반푼이들.

그럼에도, 그들의 머릿수는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쿵 쿵

굉음을 내는 이안의 총에 흥미를 느낀 것인지, 최하급 마족의 무리가 이안에게 다가오며 살의를 뿜어냈다.

고작해야 기관단총 만으론 상대할 수 없는 상대.

하지만.

“미미르.”

이안은 아무 걱정도 하지 않았다.

[알았다.]

투타타타타타

이안의 명령과 동시에 미미르가 쏘아낸 것은, 주먹 하나만 한 길이의 30밀리 기관포탄.

한 발만으로는 마족에게 큰 위협이 아니었지만.

쐐애애액

그 숫자가 수백에 달한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질 수밖에.

콰과과광!

수백의 고폭탄이 마족의 육체와 마석을 가리지 않고 찢어발겼다.

마족이 서 있던 자리에 남은 것은 포탄의 흔적과 검은 재뿐.

하지만.

‘부족해.’

이안의 페르소나인 미미르와 초계함의 지원사격.

어지간한 수준으론 넘어서는 것조차 어려운 마력 결계와 혈사자 마탑으로부터 받아온 수많은 마법기들.

그리고.

“마르콘이시여!”

-솟아라, 징벌의 성화여.

이들을 보조할 신관과 환수급 페르소나까지.

어지간한 소국 하나 정돈 멸망시키기 충분한 힘이었지만.

그어어어-

파도처럼 밀려오는 마족과 마수들의 숫자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재수 없으면 진짜 죽겠는데.’

드륵 드르륵

방아쇠를 당기던 이안의 표정이 점차 굳어져 갔다.

우우웅

어깨에 매단 통신마법기가 울린 것은 그때였다.

‘드디어.’

오른손으로는 방아쇠를 당기면서, 왼손으로 어깨의 마법 구슬을 잡은 이안이 마력을 불어넣었다.

곧, 그의 시야 한쪽에 익숙한 얼굴이 떠올랐다.

“아버지?”

에드너 폰 아슈타르.

피에 젖어 붉게 물든 얼굴이었지만, 이안은 그 모습을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피로에 찌든 공작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시간이 없다.

“실패입니까?”

이안은 담담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미 예상했던 시간을 한참 넘겼으니, 작전의 실패는 기정사실이었으니까.

-그래, 그게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에드너가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다.

-적은, 하나가 아니야.

“예?”

하나가 아니라니.

단탈리안의 영지에 존재하는 마왕은, 오직 단탈리안뿐이지 않은가.

이안이 채 묻기도 전, 에드너의 입이 힘겹게 열렸다.

-바르바토스가 합류했다.

바르바토스.

단탈리안과 함께 마경을 지배하는 군주, 마왕 중 하나이자.

‘그 미친년.’

이안을 죽이려던 자.

그 이름을 들은 이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아무리 신검공과 근위대의 힘이 강력하다지만 두 명의 마왕을 상대하기엔 부족할 수 밖에 없으니까.

-이안.

신검공이 입을 열었다.

-방법이 있느냐?

이안이 생전 처음 보는, 씁쓸한 표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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