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삐이-삐이-
“움직여! 모두 자기 위치로!”
병사들과 함께 갑판으로 뛰어나오는 흑사자 사냥단의 단장, 파비안의 표정은 심각했다.
‘적이 너무 많아.’
적의 숫자가 많지 않았다면 골든라이온과 다른 비행함의 마력포로 충분히 섬멸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남은 적의 숫자는 이미 마력포로 감당할 수 있는 숫자 그 이상.
‘우리가 올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많은 병력을 준비할 수 있을 리 없었다.
‘피해가 꽤 크겠어.’
파비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사냥단 역시 충분한 준비를 했지만, 그들의 역할은 결국 마력포를 맞고도 살아남은 잔당의 처리일 뿐.
잔당으로 치부하기엔 가고일들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그보다.
‘이안 공자님을 어서 구하지 않으면!’
아무리 주군의 힘이 강력하다지만, 페르소나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군대와 맞설 수 있는 개인은 오직 오러 마스터, 혹은 대마법사뿐.’
계단을 뛰어 올라가던 파비안의 마음이 급해졌다.
이윽고, 그가 갑판 밖으로 빠져나온 순간.
“뭐야.”
파비안은 할 말을 잊었다.
부아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두 개의 뿔에서 쉴 새 없이 불을 토해내는 강철 괴물.
녀석의 뿔 끝이 붉은색으로 번쩍일 때마다.
콰콰쾅!
가고일들의 주변에서 쉴 새 없이 폭발이 일어났다.
마기를 머금은 바위로 구성된 가고일들은 강한 내구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날개는 그렇지 않았다.
끄아아아아-
비호의 기관포에서 쏘아져 나오는 30밀리 포탄이 폭발할 때마다, 날개 피막에 구멍 뚫린 가고일들이 약 먹은 파리 떼처럼 지상으로 추락했다.
가히, 압도적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화력.
“저, 저게 뭐야?”
“이게 바로, 제사장의 힘….”
파비안과 함께 갑판 위에 올라온 병사들 역시 마찬가지.
마족들을 일방적으로 학살하는 강철 괴물의 위용 앞에, 그들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이안, 적들이 너무 접근했다. 41초 뒤엔 사격각이 나오지 않을 거야!]
미미르의 다급한 목소리가 이안의 머리를 울려댔다.
적들의 머릿수는 조금 전과 비할 수 없이 줄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수가 남아 있었으니까.
그러자.
“뭣들 하는 거야?”
이안의 시선이 굳어 있던 병사들에게 향했다.
“놀러 왔어?”
“아닙니다! 뭣들 하는 거야? 여기서 뒈지고 싶어?”
이안의 말에 파비안이 고함을 내질렀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병사들이 황급히 자신의 자리로 이동해 병기를 조립하기 시작했다. 이안은 남은 마력을 확인했다.
‘절반.’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긴 했지만, 문제는 없었다.
불나방처럼 날아드는 가고일들을 처리하기엔 충분한 화력.
그리고.
“발사!”
티티티티팅
이안은 혼자가 아니었으니까.
쐐애애애액
소형 발리스타에서 쏟아져나온 볼트들이 하늘을 뒤덮었다.
거대한 화살의 금속촉에 달린 것은, 마력을 가득 담은 마법기들.
화르륵
파사사삭
수많은 마법기에 담겨있던 화염과 냉기 마법이 순서대로 석상들을 덮쳤다.
쩌적 쩍
급격한 온도 차를 견디지 못한 가고일들의 육체가 하나둘 쪼개지기 시작했다.
결국.
“뜯어온 보람이 있네.”
쿵 쿠쿵
산산이 조각난 채로 함선의 결계를 때리는 석상 조각을 보며, 이안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사냥단이 쏘아 올린 화살은 모두 흑사자 마탑에서 얻어온 물건들.
평소라면 아까워서 쏘지도 못했겠지만, 마법 화살이 창고에 넘쳐나는 지금만큼은.
‘아무리 쏴대도 남아돈단 말이지!’
공격을 막아줄 결계와 적을 깨부술 화력.
이 두 가지만 갖춰진다면, 사냥단의 힘은 충분히 강력하니까.
하지만.
-거기까지다, 필멸자들.
아직 끝난 것은 아니었다.
-감히, 내 아이들을 이 꼴로 만들다니….
지금까지의 가고일보다 두 배는 커다란 석상.
흑요석처럼 빛나는 놈의 몸에서 마기가 아지랑이처럼 일렁였다.
“저건?”
[최상급 마족이다. 아마도 이 가고일들을 부리는 공작이겠지.]
잔당들을 향해 기관포를 쏘아내던 고양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작.
마왕 단탈리안의 밑에서 수많은 마족과 마수들을 통솔하는 다섯의 최상급 마족.
오러 마스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에 버금가는 힘을 가진 강자.
“공격.”
이안은 망설임 없이 손가락으로 마족을 가리켰다.
부아아아아앙
수백의 기관포탄이 흑요석 석상을 향해 날아들었다.
셀 수 없이 많은 가고일들을 돌조각으로 쪼개버린 가공할 병기.
콰콰콰콰쾅!
목표에 가까이 접근한 포탄들이 허공에서 폭발했다. 사막의 모래만큼 많은 금속 파편들이 소리보다 빠른 속도로 최상급 마족을 덮쳤다.
그와 동시에.
화르르륵
파사삭
재차 쏘아진 마법 화살들에서 터져 나온 화염과 냉기.
이 공격들을 맞고도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을 존재는 그렇게 많지 않으리라.
하지만.
“꽝이네?”
화염 가운데에서 멀쩡히 살아 있는 마족을 확인한 이안은 인상을 찡그렸다.
-내 아이들에겐 통했을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통하지 않는다!
수많은 생채기와 실금이 그의 피부를 장식했지만, 마족은 전의를 잃지 않았다.
우웅
흑요석으로 만들어진 그의 오른손에 보라색의 기운이 덧씌워졌다.
그는 곧장 함선의 결계를 향해 팔을 휘둘렀다.
꽈아아아아앙!
[경고! 결계 손상률 80퍼센트! 전 병력, 마기 유입에 대비하라!]
함교에 있을 누군가의 다급한 목소리가 갑판을 울렸다.
페르소나가 없는 자들에게 마기는 극독.
갑판에 올라선 병사들이 급히 몸에 지니고 있던 마법기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그러시다면야.”
하지만 이안에겐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
“더 좋은 걸 먹여주지.”
이안은 이미 놈에게 어울리는 공격을 생각해 둔 상태.
우웅
결정을 내린 이안이 체내의 마력을 움직였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강력한 한 방.’
이안은 새로운 병기를 준비하면서, 제 2격을 준비하는 마족을 노려봤다.
하지만.
서걱!
이안의 새로운 병기가 사용될 일은 없었다.
-어….
최상급 마족의 입에서 단말마가 튀어나왔다.
아니,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끼이이익
목이 잘려 나가고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가, 이 세상에 존재할 리 없지 않은가.
슈우우우우
몸에서 미끄러져 나간 석상의 목이 수백 미터 아래로 떨어졌다.
이윽고.
파사사삭!
순수한 오러만으로 이루어진 검날의 파편이 놈의 몸통을 향해 날아들었다. 푸른 빛의 검날이 몸통 중앙에 자리 잡은 마석을 깨부쉈다.
마족은 마석을 잃는 순간 생명을 다하는 법.
‘두 번.’
공작급의 최상급 마족이 목숨을 잃기엔, 고작 두 번의 검격만으로 충분했다.
이안의 고개가 저절로 움직였다.
“…아버지?”
그곳에, 그가 있었다.
오러 마스터. 은혈의 사자. 신검공.
손에 쥔 아슈타르 공작가의 신물, 신검 레온하르트에서 창처럼 기다란 오러 블레이드를 뿜어낸 중년의 사내.
“작전을 변경한다.”
에드너 폰 아슈타르.
“함대, 전속 전진!”
연합공국의 일곱 영웅 중 한 명이자 아슈타르 공 작가를 이끄는 가주.
“이대로 곧장 단탈리안의 성으로 돌진한다!”
포효를 내지른 그의 눈이 막내아들, 이안에게로 향했다.
***
아슈타르에서 유일하게 비행함을 운용하는 그리핀 함대의 기함, 골든라이온.
지구의 소형 항공모함에 버금가는 덩치를 가진 녀석 안에는 가히 작은 도시와도 같은 수많은 시설이 존재했고.
“어디서 새어나간 건진 모르겠지만, 이미 적은 우리의 목적을 알고 있었다.”
개중에는 가주가 탑승할 때를 대비한 전용 집무실도 포함되어 있었다.
집무실 뒤로 난 창으로 밖을 바라보던 신검공이 몸을 돌려 이안과 눈을 마주쳤다. 이안이 이죽거렸다.
“혹시, 제가 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럴 리가. 마족 놈들이 무슨 수를 쓴 것이겠지.”
에드너가 고개를 젓자 이안은 의구심이 들었다.
“널 부른 것은 그것 때문이 아니다.”
그렇다면, 자신을 부른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말을 마친 에드너가 등을 돌려 창밖에 펼쳐진 마경을 가리켰다.
“단탈리안의 성에 도착하기까지는 앞으로 두 시간. 녀석의 목을 베는 시간이 아마도 두 시간.”
둘을 합치면 총 네 시간.
“흑사자 사냥단과 함께 강하한 다음, 본대의 시선을 끌고 마왕을 토벌할 시간을 벌어라.”
말을 마친 공작이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그가 내린 명령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지원과 탈출 방법은 있습니까?”
그건 이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안의 물음에, 에드너는 잠시 머뭇거렸다.
“…탈출용 초계비행함 한 척. 그 외의 지원은 불가능하다.”
“아예 없진 않군요.”
탈출수단은커녕 대검 하나만 들고 적진 한복판에 잠입하던 전생보다는 좋은 조건.
물론, 단순히 탈출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본대가 토벌에 실패하는 순간, 너와 사냥단은 즉시 돌아가 적의 반격에 대비한다. 아슈타르를 무방비로 남겨놓을 순 없으니까.”
실패에 대비한 최후의 보험.
딱딱하게 굳은 공작의 표정이 이안의 눈에 들어왔다.
마왕토벌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이안.”
그의 입에서, 평소에는 잘 부르지 않는 이름이 흘러나왔다. 순간, 이안의 표정에 파문이 생겼다.
“할 수 있겠느냐?”
“왜, 접니까?”
이해할 수 없었다.
아슈타르에서 이안보다 강한 자는 거의 없었지만.
“기사단장, 아니 하다못해 오베르트 형님도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 해서, 그보다 강한 자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아슈타르 최후의 보루가, 어째서 자신이 되어야 한단 말인가.
“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해 봤다.”
잠시, 에드너의 말이 멈췄다. 무거운 침묵이 이안과 그 사이를 맴돌았다.
이윽고.
“나를 포함한 모두가 전멸하고 홀로 남았을 때.”
신검공의 입이 열렸다.
“사냥단과 본신의 힘만으로 아슈타르를 지킬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신검의 이름을 가진 그에게, 검은 곧 모든 것.
하지만.
“백 자루의 검은 백 명의 적을 벨 수 있지만, 한 자루의 검이 벨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뿐이다.”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검의 한계.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지 않는 이상 하나의 검으로 군세를 막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니까.
“함선은 이미 준비해 두었다. 준비되는 대로 곧장 내려가거라. 작전 시점은 통신으로 알려줄 테니.”
어딘지 모르게 씁쓸한 표정을 지은 신검공이 나가라며 손을 내저었다.
그때.
“…시오.”
그의 귓가에, 막내아들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음?”
에드너의 눈이 이안을 향했다. 막내아들의 입이 재차 열렸다.
“돌아오십시오, 살아서.”
아버지가 아닌, 사선을 넘어야 하는 전우로서의 부탁.
말을 마친 이안은 집무실을 나섰다.
쿵
집무실에 홀로 남은 에드너는 창밖으로 보이는 보랏빛 대지를 바라봤다.
하지만.
“흠.”
그의 생각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쓸데없는 걱정이로구나.”
이안의 마지막 한 마디.
감정이라곤 거의 배어 있지 않은, 딱딱한 단어들의 나열이었지만.
“신검은 부러지지 않는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오직 적을 벨 뿐.”
그가 이안을 믿기에는.
지잉
주인의 마음을 읽은 신검, 레온하르트가 울부짖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