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88화 (89/224)

#88화

아슈타르의 5대 무력집단 중, 가장 강한 힘을 가진 집단은 어디인가?

“당연히 근위대 아닙니까?”

이안의 질문을 들은 에반이 고개를 갸웃했다.

적사자 근위대.

구성원 전원이 페르소나를 가진 신검공 직속부대를 빼놓고 어찌 최강을 논할 수 있단 말인가.

“영지민 누구에게 물어봐도 똑같이 대답할 겁니다, 공자님. 물어볼 필요도 없죠.”

말을 마친 에반의 눈은 확신에 차 있었다.

페르소나를 얻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들이 강자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그 말을 들은 이안은 장난스레 웃었다.

“그럼, 제일 약한 집단은?”

“그건….”

조금 전과 달리, 에반은 쉽사리 입을 떼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질문을 왜 여기서 하십니까?’

에반과 이안이 선 이곳은 5대 무력집단 중 하나의 본부였으니까.

“왜 말을 못 해?”

“아니, 여기서 말씀드리긴 좀….”

이안의 장난에 호위기사가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공자님께서도 참 짓궂으시군요. 답이 정해진 질문을 하필 이곳에서 하시다니.”

건물 정문에서 나타난 사내가 이안을 향해 웃는 낯으로 다가왔다.

이안은 기다리던 사내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이야, 파비안.”

“공자님을 뵙습니다.”

파비안 포르테 자작.

이안에게 다가온 흑사자 사냥단의 단장이 가볍게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를 슬쩍 훑어본 이안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입꼬리를 올렸다.

“성장했네?”

이안의 기감에, 단장의 몸에 담긴 마력이, 지난번보다 훨씬 강하게 느껴졌다.

“별말씀을요.”

그 말을 들은 파비안이 고개를 숙였다. 티를 내지 않으려 했지만, 주군의 칭찬을 들은 그의 입술이 연신 실룩거렸다.

“성장하신 것은 공자님께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만. 제사장의 자리에 오르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웃는 낯으로 이안의 상태를 훑어본 단장이 칭찬 한마디를 던졌다.

하지만.

“그것보다, 얘기는 들었겠지?”

이안은 단장의 축하를 대충 넘기곤 본론으로 들어갔다.

무슨 말인지 곧장 이해한 파비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축하드릴 일이 두 개였군요! 저도 이제 나이를 먹은 모양입니다, 흐흐.”

이안이 사냥단의 부단장에 임명되었다는 사실.

당연히, 단장인 그가 소식을 듣지 못했을 리 없었다. 이안이 씨익 웃었다.

“출정만 아니라면 단장하고 술이나 한잔했을 텐데 말야.”

“술안주로는 마족만 한 게 없죠. 토벌이 끝나면 제가 초대하겠습니다. 그보다.”

말을 잠시 끊은 파비안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이제 저희의 힘이 필요하신 겁니까?”

“물론.”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사장의 자리에 오르면서 명예를 회복하는 데 성공한 이안이지만, 그에겐 아직 부족한 것이 있었다.

바로 세력.

“설마, 안 된다고는 하지 않겠지? 나 혼자서 전쟁을 벌일 순 없다고.”

그 스스로가 이미 강자이긴 했지만, 강한 개인은 지원해 줄 세력과 함께할 때 더욱 빛나는 법이니까.

이안의 말을 들은 파비안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요. 공자님께선 제 평생의 주군이시지 않습니까. 다만.”

“다만?”

단장의 낯빛이 살짝 어두워졌다. 이안의 머릿속에 잠시 의문이 들었지만.

“사냥단만으론 부족함이 있지 않을까 싶어 드리는 말씀입니다.”

“호오.”

과연.

말을 마친 파비안이 얼굴을 찌푸렸지만, 이안은 속으로 감탄했다.

“아시다시피, 사냥단에는 마력 사용자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각종 장비로 보조한다고 해도 척후나 유격전이 아니라 전면전을 치르기엔 한계가 있죠.”

자신의 단점을 남의 일처럼 쉽게 말할 수 있다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이니까.

“그래서?”

“마족 놈들과의 전면전을 위해선 기사단, 혹은 마법사단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선천적으로 마기를 타고난 마족들은 가장 약한 개체도 평범한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

상대를 괴롭히면서 시간을 끌거나 정찰만 한다면 모를까, 전면전의 선봉에서 마족들을 상대하기 위해선.

‘이쪽 역시 인간을 벗어난 힘이 필요하지.’

이안은 미리 생각해 둔 대책을 떠올렸다.

“그건 걱정 마.”

말을 마친 그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는,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안 그래도, 오늘 돌아볼 곳이 좀 있거든.”

검을 주 무기로 삼는 신검공의 영지에서 유일하게 마법을 다루는 곳.

혈사자 마탑.

“그 정도라면 충분할 것 같군요.”

주군의 뜻을 알아챈 파비안이 이안을 마주 보며 웃었다.

***

혈사자 마탑.

오러를 중시하는 아슈타르에서 유일하게 마법을 다루는 마법사들의 탑.

이 세계의 문명 대부분을 지탱하는 것이 마력과 마법의 힘인 만큼, 이들은 공작령에서 대체 불가능한 존재였지만.

“후우.”

새로이 혈사자 마탑의 탑주 자리에 앉은 5급의 고위 마법사, 메네실 고르곤의 입에선 연거푸 한숨만이 뿜어져 나왔다.

그 이유는 먼 곳에 있지 않았다.

“공자님, 그래서 정확히 하고 싶으신 말씀이 무엇이신지요?“

앞에 앉아 능글거리는 웃음을 머금고 있는 아슈타르의 3공자.

“빚을 갚으라는 거지. 겸사겸사 아슈타르를 위해 헌신도 좀 해 주고.”

이안이 한 마디, 한 마디를 입 밖으로 내뱉을 때마다 쏟아지는 두통에 메네실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도대체 무슨 빚을 말씀하시는 건지, 원….”

빚이라니.

예고도 없이 찾아와선 갑자기 무슨 소리란 말인가.

“저희 마탑과 공자님 간에는 아무런 채무 관계도 없지 않습니까? 에페론, 아니 이제는 알자스 지부로 변경되었습니다만, 그곳과도 마찬가지고요.”

메네실은 눈앞의 공자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법사도 아닌 주제에 마탑의 지부장 자리를 꿰찬 것도 모자라, 탑주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었으니까.

‘연구할 시간도 모자란데, 젠장.’

시간 낭비였다.

“송구스럽지만, 저는 더 드릴 말씀이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상대가 제사장의 자리에 올랐다 한들, 마탑의 주인인 자신을 이렇게 겁박할 수는 없다.

말을 마친 메네실은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정말 모르겠어?”

이안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알테어 프리마.”

“…큼.”

아슈타르의 반역자.

두루마리 하나를 품에서 꺼낸 이안의 입에서 그 이름이 튀어나온 순간, 탑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러고 보니….’

그제야 메네실은 떠올릴 수 있었다.

눈앞에 앉은 어린 공자가, 감히 마탑의 이름으로 마족화 실험을 벌인 반역도를 잡아내었다는 사실을.

“이래도 내게 갚을 게 없다고 할 셈이야?”

“…아닙니다.”

새하얘진 얼굴로 탑주가 고개를 숙이자, 이안이 한쪽 다리를 꼬았다.

‘너무나 큰 빚이지.’

마탑이 그에게 갚아야 할 빚은 목숨.

이안이 아니었다면, 마탑과 마탑 소속의 모든 마법사는 반역도가 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을 테니까.

‘이미 끝난 일이라지만….’

상대는 아슈타르다.

거기에, 반역자의 연구실에 찾아가 직접 처단하지 않았는가.

‘설마, 저 두루마리가….’

마탑과 반역자가 연관된 증거라면.

‘서걱!’

곧장 목이 날아가리라.

얼굴이 하얗게 질린 메네실이 손으로 목을 만지작거렸다.

이윽고.

“무엇을 원하십니까?”

핼쑥한 얼굴로 탑주가 힘들게 말을 꺼냈다.

목숨의 빚을 갚을 수 있는 것은.

‘오직 같은 목숨뿐.’

눈앞의 공자가 원한다면 탑주의 자리도 얼마든지 내줘야 할 판이다.

‘빌어먹을 반역자 새끼….’

메네실은 속으로 이제는 소멸해버린 알테어 프리마를 질겅질겅 씹어댔다.

‘사람이 너무 투명한데, 마법사라 그런가?’

메네실의 표정을 읽은 이안의 마음이 편해졌다.

“별 건 아냐, 그냥.”

그는 가볍게 입을 열고는.

“마탑에서 보유 중인 마법기 전부면 어느 정도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 거 같아서 말이지.”

준비했던 제안을 탑주에 던졌다.

“…예?”

이안의 말을 들은 메네실은, 순간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탑주의 자리를 요구하진 않았지만, 저 제안을 곧이곧대로 들어준다면.

‘마탑은 파산이다!’

마법을 담아낸 물건, 마법기는 마탑의 주 수입원.

이안의 제안은 사실상 마탑 문을 닫으란 말과 다름없었으니까.

“그, 그건….”

“뭐야, 안 돼? 마탑 전체의 목숨값인데도?”

“이건 그냥… 죽으라는 말씀과 똑같지 않습니까….”

이안이 짐짓 화난 표정을 짓자 메네실이 울상을 지었다.

여기까지는 예상대로.

“흠, 그럼.”

살짝 표정을 푼 이안의 입이 열렸다.

“흑사자 사냥단 전원에게 공급할 정도는?”

“전원, 말씀입니까?”

조금 전과는 조금 달라진 제안.

금방이라도 울 것 같던 탑주의 얼굴색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마력을 사용 못 하는 병사들, 그리고 종자나 하인들까지. 그리고 부대 공용으로 쓸 수 있는 고출력의 마법기도.”

“음….”

이안의 말을 들은 메네실이 머릿속에서 주판을 튕겼다.

‘절반 정도, 인가?’

마탑이 보유한 마법기 재고의 절반.

분명, 그조차도 마탑에는 너무나 큰 손해였지만.

‘반역자로 죽는 것보다는 낫다.’

마탑에 손해를 끼친 책임을 추궁당해 탑주의 지위를 잃을지언정, 목숨만은 보전할 수 있지 않은가.

‘내 연구를 완성하기 전엔 안 돼, 절대로!’

그리고, 그에겐 죽어서는 안 될 이유가 있었다.

“…받아들이겠습니다.”

고민은 길었지만, 결정은 빨랐다.

“재고목록을 보내드릴 테니, 필요한 물건을 말씀해 주시면 바로 보내드리지요.”

“아, 그리고.”

“예?”

이안이 무언가를 더 말하려 하자, 탑주의 표정이 재차 굳었다. 이안이 입을 열었다.

“이러면 내가 너무 손해 보는 거 같으니까, 마법사들도 좀 지원해 줘. 가능하면 부여마법을 익힌 자들로.”

‘휴우.’

이안의 제안을 듣자마자 탑주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경으로 떠나는 토벌대들에 종군 마법사를 파견 보내는 것은 마탑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인첸터를 종군 마법사로 찾지는 않지만….’

마법기 절반에 비하면 거저 주는 것과 다름없는 수준이지 않은가.

“그 정도라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알자스 지부에 파견하는 형식으로 보내드리기로 하죠.”

“좋아.”

원하는 조건을 모두 얻어낸 이안이 꼰 다리를 풀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응?”

“손에 쥐고 계신 그 증거를 넘겨주십시오.”

탑주가 손가락으로 이안의 손에 들린 두루마리를 가리켰다.

저 두루마리가 이안의 손에 들려있는 한, 마탑은 이안에게 끌려다닐 수밖에 없으니까.

“뭐, 좋아. 일단은 물건을 받고서 얘기하자고.”

얻을 것을 모두 얻어낸 이안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메네실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럼, 곧장 준비토록 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길.”

말을 마친 탑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뒤쪽의 책장에 꽂힌 재고 장부를 찾기 시작했다.

‘자, 다음은.’

메네실의 등판을 바라보며, 이안은 다음 일을 생각했다.

평범한 사람이 마족을 상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두 가지.

그중 하나인 마력은 해결했으니, 그 다음을 해결할 차례였다.

‘역시, 전문가에게 맡겨야지.’

돈 좋아하는 신관.

세리아를 떠올린 이안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