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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87화 (88/224)

#87화

이안이 미미르를 기적의 탑에 던져넣은 이유는 별 게 아니었다.

‘신성의 파편으로 구성된 존재라면, 신들이 주는 선물을 더 잘 받아들이지 않을까?’

단순한 생각에서 비롯된 시도.

혹여나 실패하더라도 미미르라면 스스로 빠져나올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이건 전혀 예상 못 했는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만.]

애오오옹

이제는 다 커버린 고양이, 미미르가 구슬픈 목소리로 울었다. 몸집이 커진 만큼 미미르의 목소리에는 제법 힘이 담겨있었다.

애오옹

애오오옹

한 마리가 아니라 다섯 마리라는 게 문제였지만.

어느새 네 마리로 수를 불린 반투명한 고양이들이 미미르를 따라 함께 울부짖었다.

“이거, 조절이 가능하긴 한 거지?”

[조금 지나면 할 수 있을 것 같…, 젠장.]

애오옹

검은 고양이의 그림자에서 솟아난 다섯 마리째의 반투명 고양이가 울어대자 미미르가 고개를 떨궜다.

[귀엽다면서 주는 걸 받는 게 아니었다. 어쩐지 이상하다 했더니….]

“뭘 받은 건데?”

신들에게 무슨 선물을 받았길래, 고양이들이 무한히 늘어난단 말인가.

미미르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페르소나의 특성.]

“특성?”

이안은 곧장 정보창을 열었다.

[이안 아슈타르]

[페르소나명: 미미르]

[등급: 환수]

[마력: 3,500]

[개방 필요마력: 2,000]

[증폭률: 2000%]

[특성]

[장비교체][장전][과부하][보조인격][파편화][그림자의 화신][통신]

“마력 말곤 딱히 변한 게 없는…, 아.”

[특성] 부분을 확인한 순간, 그는 미미르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림자의 화신]에, [파편화]?”

[그래, 빌어먹을.]

애오옹

미미르가 체념한 표정으로 울어댔다.

그림자를 움직일 수 있는 특성, [그림자의 화신].

거기에, 페르소나를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놓을 수 있는 [파편화]까지.

저 반투명 고양이들에겐 페르소나의 특성들이 고스란히 묻어나 있었다.

[빌어먹을.]

애옹

한숨을 푹푹 쉬는 미미르를 바라보며 이안은 턱을 괴었다.

“흠.”

반투명한 것 빼고는 평범한 고양이로 보였지만.

“미미르, 저 녀석들을 통제할 수 있겠어? 내가 지시하는 대로.”

이안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해 보지.]

이안의 지시를 이해한 미미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애옹?

중구난방으로 울어대던 고양이들이 일순, 동작을 멈췄다.

마치 인형처럼 가만히 서 있던 고양이들이 서서히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윽고.

애옹!

차렷 자세를 취한 고양이들이 일제히 울음소리를 냈다.

“허.”

마치 훈련소에서 갓 나온 신병들 같은 모습에 이안의 입에서 실소가 나왔지만.

“나쁘지 않아, 음.”

이안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통제와 명령이 먹힌다는 것은, 곧 조직적인 행동이 가능하다는 것.

그렇다는 건.

“미미르, 이 고양이들을 얼마나 만들어낼 수 있겠어?”

[조절하지 않는다면 50마리 정도는 나오겠지. 내 몸속의 신성력이 충분히 공급된다면, 그 이상도 가능할 테고.]

“좋아, 이만하면….”

미미르의 말을 들은 이안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안이 직접 부리는 그림자 팔처럼 의지대로 움직일 수는 없었지만.

“시도해볼 가치는 있겠는데?”

잘 이용한다면, 생각보다 높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리라.

이안의 눈이 빛났다.

[이안,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거지?]

주인의 눈빛에서 무언가를 느낀 고양이의 등골이 싸해졌다.

“미미르.”

[왜, 왜 그러지?]

“네가 해줘야 할 게 하나 생겨서 그런데 말이야.”

말을 마친 이안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애옹? 애오옹?

통제가 풀려 제멋대로 울어대는 고양이들 사이에서, 검은 고양이가 식은땀을 흘려댔다.

***

만신전에서의 마지막 날.

수련을 위해 새벽부터 공터로 나선 에반은.

“어…?”

생전 처음 보는 광경과 마주했다.

“뭐야, 이게?”

잠이 덜 깬 건가?

기사는 재빨리 손을 들어 두 눈을 비벼댔다.

하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애옹 애오옹

마치 사람처럼, 몸을 일으킨 채 검은 고양이 뒤를 따르는 수십의 반투명한 고양이들.

“어, 왔어?”

그리고, 그 앞에서 나뭇가지 하나를 휘두르고 있는 주군.

“…공자님, 이게 도대체 뭡니까?”

에반은 당황해 떨어지지 않는 입을 간신히 움직였다.

이제는 더 이상 놀랄 것도 없다고 생각했었지만, 이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

애오옹 애옹

오와 열을 맞추어 두 발로 걷는 고양이라니.

“보면 몰라? 훈련 중이잖아.”

호위기사의 말에 이안은 천연덕스럽게 답했다.

“이 정도 숙련도면 흑사자 사냥단 애들하고 비교할만하지 않겠어?”

“아니….”

그래, 분명 이들의 제식은 어지간한 정예병사보다 절도가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않은가.

“고양이에게 제식을 가르쳐서 뭐에 쓰실 겁니까?”

암행술이나 추적술도 아니고, 병사들이나 받는 제식훈련이라니.

곡마단이라면 모를까, 전장에서는 아무 쓸모도 없는 훈련이다.

“그거야 내 맘이지.”

이안은 에반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고는 나뭇가지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이안, 이 지겨운 걸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거지?]

애오옹

가장 선두에 선 미미르가 불만 가득한 울음소리를 냈지만.

“네가 온전히 통솔할 수 있을 때까지.”

때마침 이안이 대열을 벗어나려던 고양이를 가리키자 그의 말문이 막혔다.

[…빌어먹을.]

애오옹

할 말을 잃은 고양이는 다시 반투명 고양이와 함께 공터를 돌기 시작했다.

“미쳤어, 미쳤어.”

에반이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지만, 훈련은 끝나지 않았다.

애오옹

새벽이 아침이 되고, 곧 점심이 될 즈음.

“이안 아슈타르 공자님.”

“집사?”

애옹?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온 순간, 두 사람과 수십 마리의 고양이들 시선이 한 사람으로 향했다.

“…성으로부터의 전갈입니다.”

뭐라 말하기 힘든 기괴한 광경.

하지만 집사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서신 하나를 건넸다.

“성이라.”

이안은 아무 생각 없이 봉투를 뜯었다.

이미 무슨 내용이 적혀있을지는 뻔했으니까.

[귀환.]

“허.”

그야말로 신검공다운 짤막한 메시지.

이안의 입에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래, 좀 늦긴 했지. 에반?”

“네, 공자님.”

이안의 부름에 소년이 고개를 숙였다. 이안이 손짓했다.

“돌아가자.”

집으로.

쥐고 있던 나뭇가지를 휙 하고 대충 내던진 이안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

“못 보던 고양이구나.”

오랜만에 막내아들을 마주한 에드너의 시선이 어깨의 미미르를 향했다.

“마법의 신이 내려준 기념품입니다.”

[기념품이라니, 기분이 썩 좋지 않군.]

애옹

이안의 말을 들은 미미르가 기분 나쁜 표정으로 울었다.

“훈련이 덜 되었군.”

“안 그래도 한창 가르치는 중입니다. 신이 준 고양이라 그런지, 나름 키우는 맛이 있더라고요.”

애옹

[이안, 난 네 조력자지 애완동물이…. 읍읍!]

“조용.”

미미르가 뭐라 입을 열려 했지만, 입을 막아가는 이안의 손을 피할 수는 없었다.

순간.

“하하하핫!”

“…아버지?”

에드너가 갑자기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미소조차 잘 짓지 않는 그였기에, 이안은 조금 당황했다.

곧, 신검공의 웃음이 멎었다.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이안은 생물학적 아버지의 축하를 담담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고작 축하를 받기 위해 온 것은 아니었다.

“상대는 누구입니까?”

전쟁.

마법의 신 갈리우스가 직접 성전을 선포한 이상, 마족과의 전쟁은 필연이었으니까.

신검공의 입이 열렸다.

“단탈리안.”

“마왕이군요.”

“아슈타르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지. 놈의 목으로 복수를 이룰 것이다.”

마경을 지배하는 열한 군주 중 하나의 이름.

신검공의 표정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위험한데.’

평범한 병사들로 구성된 사냥단을 이끄는 이안이 마왕을 상대하는 것은 어려웠으니까.

그리고.

“설마, 아슈타르만 움직이는 겁니까?”

에드너의 말을 눈치챈 영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에드너가 고개를 끄덕였다.

“공국의 전력이 모두 동원될 게다. 골든라이온도 함께.”

“정말 위안이 되는군요.”

이안이 이죽거렸다.

아슈타르의 유일한 1급 비행 전열함, 골든라이온.

영웅급 페르소나와 맞먹는 출력을 가진 녀석은 분명 강했지만, 마왕을 직접 상대하기엔 부족했으니까.

“하하.”

공작은 그런 이안을 보곤 웃었다.

“두려우냐?”

순간, 에드너의 눈빛이 변했다.

한평생 마족을 베기 위해 살아온 사내의 기백.

이안은 깨달았다.

“그럴 리가요.”

이것이, 공작의 마지막 시험이란 것을.

“이제 와서 두려워하기엔 너무 멀리 온 것 같습니다만.”

이안은 적절한 대답을 골랐다.

“정말이지, 1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모르겠군.”

기대했던 대답을 듣자마자, 공작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서렸다.

이윽고.

“네게 흑사자 사냥단의 부단장 직위를 주마.”

그의 입에서 막내아들을 위한 선물이 풀려나왔다.

‘흡.’

순간, 이안의 눈이 떨렸다.

흑사자 사냥단.

아슈타르 공작령의 다섯 무력집단 중 하나.

비록 다섯 중 가장 약한 지위를 가지고 있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마탑에, 사냥단이라.’

그에겐 이미 요제프에게서 받아낸 마탑의 지부장 자리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지휘권은 단장과 협의해야겠지만, 그 정돈 문제없겠지?”

“걱정 마시죠.”

이미, 그 단장은 이안의 가신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전장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살아남는다.’

손에 쥔 모든 것을 동원해서.

이안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틀 뒤니, 준비해두거라.”

“예?”

공작의 입에서 나온 폭탄선언을 듣기 전까진.

[역시 은혈의 사자로군.]

애옹

전쟁 이틀 전에 그 사실을 알려주다니.

미미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집무실을 나선 이안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자신의 방이었다.

애옹

[페르소나를 정비할 셈이냐?]

“그래.”

미미르의 말에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투에서 생존확률을 올릴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좋은 무기와 장비를 챙기는 것이니까.

이안은 곧장 제작 시스템의 제어정령, 프레이야를 불러냈다.

[오랜만입니다, 관리자님. 페르소나를 업그레이드하시려는 건가요?]

이안의 부름과 동시에, 허공에서 빛으로 이루어진 여인이 나타나 허리 숙여 인사했다.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당장 시스템을 열어주겠어?”

[물론이죠.]

이안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그녀가 손을 휘저었다.

지잉

“흠, 그래….”

눈앞에 떠오른 수많은 데이터를 빠르게 살핀 이안이 입맛을 다셨다.

‘전차로는 부족해.’

무언가 다른 게 필요했다.

분명, 전차는 공수 양면에서 최고의 성능을 가졌다 해도 부족함 없는 병기였지만.

‘마왕에겐 통하지 않아.’

그가 상대해야 할 적은, 전차의 복합장갑을 수수깡처럼 뚫어버릴 수 있는 120mm 날개안정철갑탄을 맨손으로 튕겨내는 괴물.

녀석을 상대하기 위해선, 조금 다른 녀석이 필요했다.

“이건 아니고, 이것도 좀 문제가 있는데….”

이안이 입력해 놓은 수많은 더미 데이터가 스쳐 지나갔지만, 마음에 드는 것을 찾기는 어려웠다.

그도 그럴 것이.

[이안, 무엇이 문제인 것이냐?]

“방어력.”

공격력은 어떻게든 확보 할 수 있지만, 방어력은 그렇지 않으니까.

철갑탄을 튕겨낸 마왕의 공격력이 전차포보다 우위에 있다고 가정한다면, 숫제 전차가 아니라 함선이라도 끌고 와야 할 판이지 않은가.

[이상하군.]

하지만 미미르는 고개를 갸웃했다.

“뭐가?”

[이안, 원래 네 전투방식은 정정당당한 방식이 아니지 않나? 굳이 적의 공격을 맞아줄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그 말을 들은 순간.

“아.”

이안은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마왕에게, 압도되었던 건가?’

마왕의 말도 안 되는 힘을 경험한 탓일까.

무의식중에, 그는 적의 공격을 막아낼 생각만을 하고 있었다.

“…미미르.”

[음?]

“고마워. 하마터면 중요한 걸 잊을 뻔했어.”

[고맙기는.]

애오옹

제 몸에 난 털을 핥는 미미르를 잠시 바라보던 이안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찾는다.’

해답을 찾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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