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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82화 (83/224)

#82화

성광공가, 바드리안 공작가의 일원은 신성력을 다룬다.

모든 신의 힘을 자유로이 받아들일 수 있어 통합주교라 불리는 성광공은 제외하더라도.

우우웅

그 피를 이은 자들은 모두 신이 가진 의지, 신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 강한 정신력과 영혼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페르소나의 능력 중 하나는 힘의 증폭.

파아아앗

마력의 푸른빛이 윌리엄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왔다. 무형의 힘은 곧 형태를 이루었다.

차르릉

푸른색의 그물과 쇠사슬.

마력으로 빚어진, 사람 하나쯤은 손쉽게 묶어버릴 수 있을 것 같은 구속구가 윌리엄의 앞에 나타났다.

“저거라면….”

어쩌면, 마왕을 잠시 속박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고작해야 병기 급으로 보이긴 했지만, 페르소나는 특화된 기능에 따라 그 성능이 하늘과 땅 차이였으니까.

이안은 버렸던 희망을 다시 주워들었다.

그리고.

“…뭐야.”

이안은 주워든 희망이 산산이 부서지는 것을 느꼈다.

“주인을 묶는 병기라고?”

구속구의 형태를 한 페르소나가 묶어버린 대상은, 다름 아닌 페르소나를 불러낸 윌리엄이었으니까.

촤르륵

머리부터 발끝까지.

구속구가 주인인 윌리엄을 속박하기 시작했다. 곧 그의 모습은 구속구에 파묻혀 사라졌다.

마침내 남은 것은, 그물과 쇠사슬에 칭칭 감긴 미라 하나.

“흐으….”

미라가 된 윌리엄은 초점 없는 흐리멍덩한 눈으로 마왕을 쳐다봤다.

짝짝짝

“어머머! 귀여운 재주를 가졌네? 곱게 모셔가라고 포장까지 해 준 거야?”

가관이었다.

자기 자신을 미라로 만들어버린 머저리 자격자와 그 모습을 보며 기립박수를 쳐대는 마왕.

‘방법은….’

그리고, 그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방법을 찾으려는 이안.

생존의 가능성은 너무나 낮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마르콘.”

윌리엄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파아앗

신은 자신을 믿는 자의 몸과 영혼을 일종의 통로로 삼는다.

윌리엄이 신의 이름을 입에 담은 순간, 그의 몸으로부터 신성력의 빛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온통 마기로 물들어있던 대지가, 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색을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말도 안 돼.]

그 모습을 본 미미르는 경악했다.

[마경에 마르콘의 성역을 구축하고 있어. 아무리 페르소나의 힘이라지만….]

성역은 신의 의지, 신성이 지배하는 공간.

고작 병기 급의 페르소나로 만들어낼 수 있을 만한 것은 아니다.

구속구에 칭칭 감긴 성광공의 아들을 중심으로, 백색의 구가 마경을 조금씩 잠식해나가기 시작했다.

“어라, 신성력이잖아?”

마기의 종주인 마왕, 바르바토스에게는 좋지 않은 소식.

“안됐지만, 여기선 안 돼.”

잠시 놀란 토끼 같은 눈으로 성역을 바라보던 바르바토스가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스으으

주변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진한 보랏빛의 기운이 그녀의 손을 타고 사방으로 뿜어져 나갔다.

수많은 마족 중에서도 오직 마왕만이 뿜어낼 수 있는 근원의 마기.

파츠츠츠

마기와 신성력이 충돌하자 검붉은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고농도의 순수한 마기는 신성력에 한 치도 밀리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성역이 좁아지고 있다. 역시 병기 급의 한계인가.]

마왕과 페르소나의 싸움을 지켜보던 미미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마왕의 힘은 영웅급의 페르소나를 부리는 자격자와 동급.

고작해야 병기 급의 페르소나로 막아내기엔 벅찬 상대였다.

“흐흐흥, 못된 아이에겐 벌을 줘야겠지? 무슨 벌을 줘볼까나아.”

점점 줄어드는 빛의 성역을 보며 마왕은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얼굴이 흥분으로 붉게 달아올랐다.

“갈리…우스.”

미라가 된 윌리엄이, 두 번째 신의 이름을 언급하기 전까지는.

“…뭐라고?”

달뜬 숨을 내뱉던 그녀가 채 반응하기도 전.

파아아앗

빛의 성역에서 두 번째 파장이 퍼져나갔다.

백색 광채로 만들어진 벽을 감싼, 하늘빛의 날카로운 기운.

“마력…?”

이안은 이 기운의 정체를 쉽사리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흔한 기운이 다름 아닌 마력이었으니까.

하지만.

[이건, 이건 말도 안 된다. 성역을 만드는 것도 모자라….]

미미르의 사자머리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갈리우스는 마법과 마력을 다루는 유일한 신.

빛의 신 마르콘의 성역에 마력이 섞여들었단 사실은.

[성역이, 중첩됐다고? 어떻게….]

문자 그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성역은 신의 법칙이자 의지, 신성으로 가득 찬 공간.

두 신이 동일한 성역을 점유하는 것은 한 몸에 두 인격이 있는 것과 같다.

자존심 높은 신들이 자신의 성역에 다른 신을 들이는 걸 납득할 리 없지 않은가.

파아아앗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마력이….”

차오른다.

갈리우스가 공급하는 순수한 마력이 이안의 메마른 몸을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아찔한 고양감이 이안의 머리를 뜨겁게 달궜다.

“후우.”

맑아진 머리를 휘휘 저은 이안의 눈이 사자머리를 흘긋 쳐다봤다.

‘남은 시간은?’

[1분 32초.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채 2분도 남지 않은 시간.

그 시간이 지나면, 이안은 다시 만신전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저 녀석이 마왕을 막아낼 수 있다면 말이지.’

이안의 시선이 꽁꽁 묶인 윌리엄에게 향했다.

파아앗

윌리엄의 상태는 농담으로도 좋다고 말할 수 없었다.

피부는 마치 금 간 도자기처럼 쩍쩍 갈라져 있었고, 그 틈 사이로 하얀빛과 푸른 빛이 번갈아 가며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그래, 인간의 몸과 영혼으로 두 신의 성역을 동시에 펼칠 수 있을 리 없지. 구속구가 아니라 보호구였어.]

그 모습을 본 미미르가 감탄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감탄할 때는 아니었다.

“그래 봐야, 너흰 날 감당할 수 없어.”

마왕 바르바토스.

마계의 열한 군주 중 한 자리를 차지한 그녀의 눈이 붉게 달아올랐다.

콰아아앙

마치 폭탄이 터지기라도 한 것처럼, 마왕이 밟고 있던 대지가 아래로 꺼졌다.

스으으

그녀의 전신을 감싼 자줏빛 마기의 일부가 무질서하게 퍼져나갔다.

이윽고.

“안됐지만, 장난은 이제 끝이야.”

바르바토스는 마기를 뭉쳐 만든 보라색의 공을 손에 쥐곤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손이 움직인 순간.

파츠츠츠

마기의 결정체가 성역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이안, 위험하다. 저건….]

“말 안 해도 알아.”

꿀꺽

사자의 말을 끊은 이안이 침을 삼켰다.

미미르의 설명 없이도, 저 보랏빛 공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소름 끼칠 만큼 강했으니까.

‘버틸 수 있을까?’

아니.

이안은 고개를 저었다.

그동안 경험한 마법과는 차원이 다른 힘.

성역을 구축했다 한들, 고작 병기 급의 페르소나가 가진 출력으로 저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뿐.

“오라, 미미르.”

우웅

이안이 시동어를 외친 순간, 몸 안에 가득 찬 마력이 반응했다.

다시금 가동된 대 마족병기, 페르소나가 이안의 몸을 각종 보호구로 뒤덮었다.

“남은 시간은?”

[57초.]

“좋아.”

미미르의 말에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과부하.”

페르소나의 힘을 폭주시켰다.

파지지직

순간, 이안의 몸을 감싼 방탄복과 헬멧이 푸른 빛을 뿜기 시작했다. 반투명해진 장비들이 청색의 스파크를 주변에 흩뿌렸다.

이 순간, 이안이 다룰 수 있는 마력은 본래의 다섯 배.

우웅

이안의 의지에 따라 마력의 형태로 돌아간 장비들이 한 곳으로 뭉쳐 들기 시작했다.

파앗

곧, 이안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유선형으로 곧게 뻗은 순백의 화살들.

수십의 철판이 매끈하게 이어진 화살들의 끝에는 금속으로 만든 날개가 달려있었다.

‘미치겠는데.’

유도능력에는 더 큰 정신력과 마력이 필요하다.

미사일을 구현해낸 이안의 얼굴이 땀에 젖은 채 하얗게 질렸다. 마왕을 바라보는 그의 시야가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가라.’

이안이 떨리는 손으로 마왕을 가리킨 순간.

쐐애애액

위로, 아래로.

허공에 떠오른 화살들이 불을 뿜으며 정해진 방향으로 쏘아져 나갔다.

보라색 대기를 찢으며 나아간 녀석은 마기의 결정체를 그대로 지나치곤.

“헤에?”

여유만만하게 미소 짓는 바르바토스를 향해 날아갔다.

“고작 이런 거로….”

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왼손을 들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날아드는 공격도 쳐낸 그녀가, 앞에서 느릿하게 날아드는 화살 따위를 막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휘익

그녀는 강철 괴물이 쏘아내던 포탄들과 마찬가지로, 불붙은 화살이 날아오는 방향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너흰 이길 수 없어.’

고작해야 환수 급의 페르소나 따위로 마왕을 막을 수 있을 리 없었으니까.

씨이잉

화살이 갑자기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면 말이다.

“뭐?”

화살 대신 허공을 가른 바르바토스가 채 당황하기도 전에.

화살의 뭉툭한 부분이 그녀의 복부와 맞닿았다.

LAHAT.

최강의 대전차미사일인 헬파이어 미사일의 축소판이었지만.

그 위력만은 지옥 불에 뒤지지 않았다.

콰아아앙!

폭발과 함께, 미사일의 탄두가 마왕을 향해 지옥 불보다 뜨거운 메탈제트를 쏟아냈다.

푸슈우욱

전차의 장갑도 가볍게 관통할 수 있는 고온의 액체금속이 하얗게 드러난 그녀의 복부를 그대로 꿰뚫어버렸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콰앙! 콰앙!

앞에서, 뒤에서, 옆에서.

각기 다른 방향으로 날아온 미사일들이 폭발할 때마다, 그녀의 몸에 구멍이 하나씩 뚫렸다.

“커, 커헉.”

너무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격통.

쏘아냈던 마기의 결정체는 이미 통제력을 잃고 흩어진 지 오래다.

몸통에 머리통만 한 구멍이 뚫린 그녀가 선 채로 보라색 피를 토해냈다.

“무슨….”

그녀는 혼란에 빠졌다.

마경에 널린 마기로 육체의 자가수복이 가능한 그녀에게 큰 상처는 아니었지만.

“나를, 상처입혔다고? 마왕인, 나를?”

상처 입은 것은 그녀의 육체만이 아니었으니까.

고작해야 환수와 병기.

마족의 기준으로는 상급이나 될까 한 피라미들에게 일격을 먹었다는 사실 자체가.

“감히, 나를….”

그녀가 마왕이 된 이후로 한 번도 꺾이지 않았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

“필멸자 따위가….”

여유로운 미소는 사라진 지 오래.

입에 보라색 피를 덕지덕지 묻힌 그녀의 눈이 살의로 빛났다.

“너희만, 너희만 없어진다면….”

이 일을 아는 자는 아무도 없어질 것이고, 금 갔던 그녀의 자존심도 다시 회복되리라.

쿠르르릉

주변의 마기를 끌어모아 구멍 난 육체를 메꾼 바르바토스가 의지를 일으켰다.

그러자.

고오오

그 힘을 견디지 못한 하늘이 소용돌이 모양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절대로….”

살려두지 않으리라.

파스스

그녀의 의지에 따라 모인 마경의 마기가 수천, 수만 개의 화살로 변해 필멸자를 겨누었다.

스치기만 해도 영혼이 썩어 문드러질, 절멸의 저주를 안에 담아 빚어낸 화살.

고작해야 병기와 환수를 다루는 필멸자 따위는 수천 번을 죽일 힘을 가진 무기.

“영혼조차도 소멸시켜버려 주마.”

붉게 달아오른 바르바토스의 두 눈이 이안과 윌리엄을 찢어 죽일 듯 노려봤다.

하지만 그녀는 알지 못했다.

“야, 마왕. 그거 알아?”

바르바토스가 필멸자를 찢어발길 준비를 하는 동안.

“파티는 끝났어.”

이안은 충분한 시간을 벌었다는 사실을.

파아아앗

제한 시간이 끝나고, 이안과 윌리엄의 몸이 파랗게 물들며 사라지던 순간.

“이 미친년아.”

이안은 눈이 벌게진 마왕을 향해 살포시 중지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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