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관리자.
페르소나 제작시스템을 만들어낸 인간, 제작자가 다른 이들에게 부여한 권한 중 하나.
이 권한의 존재를 아는 자는 이안을 제외한 극소수뿐이었지만.
‘어떻게?’
그 단어가, 왜 마왕의 입에서 나온단 말인가.
투카앙
이안은 본능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화염과 함께 열화우라늄으로 만들어진 금속 화살이 초음속으로 쏘아져 나갔다.
쐐애애애액
어지간한 쇳덩이는 두부처럼 뚫어버릴 수 있는, 관통력에 관해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탄환.
하지만.
“미친.”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한 이안의 입에서 저절로 욕이 나왔다.
“으으, 따가워.”
쿵
손에 쥐고 있던 열화우라늄탄을 바닥에 대충 던져버린 그녀가 손에 입김을 불어댔다.
분명 중급 마족도 일격에 고기 조각으로 찢어버릴 강대한 공격이었건만.
“아, 어떡해! 손이 다 까져버렸잖아….”
그녀에겐 고작해야 피부가 붉어지고 손바닥이 까지는 수준에 불과했다.
위험했다.
티티티팅
이안이 버튼을 누르자 여덟 개의 유탄이 전차 주변으로 튀어 나갔다.
주먹만 한 유탄이 주변의 대지에 꽂힌 순간.
푸슈슈슈
백린연막탄에서 쏟아져나온, 적외선조차 교란할 수 있는 희뿌연 연기가 순식간에 전차의 위치를 숨겼다.
그와 동시에.
키이이이이잉
1,500마력의 가스터빈 엔진이 굉음을 내질렀다. 전차의 무한궤도가 빠르게 전차를 반대 방향으로 회전시켰다.
‘일단 이곳에서 벗어나야 해.’
빠르게 멀어지는 연막을 보며 이안은 입술을 깨물었다.
상대는 모든 마족의 정점, 마왕.
영웅급의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다 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존재다.
아무리 이안이 다루는 병기가 강력하다지만, 그 기반은 고작해야 환수급의 페르소나.
‘승산이 너무 낮아.’
이미 챙길 것은 다 챙겼으니, 연막이 적의 시야를 가릴 동안 이곳을 빠져나가야 했다.
하지만 이안이 채 자리를 벗어나기도 전.
“그래, 분명해.”
또각또각
연막을 뚫고 그녀가 천천히 걸어왔다.
백린은 공기 중에서 스스로 타오르는 최악의 극독.
살갗에 닿으면 뼛속까지 타들어 가는 극악무도한 병기였지만.
“너.”
마경의 군주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화형당하는 마녀처럼 하얀 불꽃이 그녀의 온몸을 집어삼켰지만, 그녀는 고통스러워하긴커녕 여유롭게 미소를 지었다.
“그때 그 녀석 맞지?”
하얗게 타오르는 손가락이 이안이 탄 전차를 가리켰다.
“생긴 건 좀 다르긴 해도, 내 아이들을 박살 낸 수법이랑 똑같단 말이지? 후후.”
바르바토스의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그렇지 않았다.
마족과 신족이 아슬아슬하게 유지하고 있던 균형을 뒤집어버릴 게임 체인저가 눈앞에 있었으니까.
그녀의 눈에서는, 문자 그대로 불꽃이 튀어 오르고 있었다.
“그럼 어디, 그 잘난 얼굴을 한번 볼까? 페르소나의 관리자 양반.”
“지랄하네.”
철컥
이안은 대답하는 대신 방아쇠를 당겼다.
투캉
초음속으로 쏘아내는 열화우라늄 화살의 운동에너지라면, 적을 격살하는 건 몰라도 지연시킬 수는 있으리라.
투캉 투캉
미미르의 관제에 따라 자동으로 장전된 포탄이 마왕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하지만.
까앙 까앙
“…저런 미친 새끼가.”
눈앞에 벌어진 광경을 본 이안은 할 말을 잃었다.
까앙
가녀린 여인이 손을 휘두를 때마다, 초음속으로 쏘아져 나가던 포탄이 옆으로 튕겨 나갔다.
만화에서나 나올법한 비현실적인 광경.
하지만 이건 만화가 아니라 현실이다.
까아앙
웃으며 포탄을 튕겨내는 미친년은 말보다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고.
철컥.
“…빌어먹을.”
마력을 거의 소진한 이안에겐, 더 이상 쏘아낼 포탄이 남아 있지 않았다.
“뭐야, 이거로 끝난 거야? 시시하기는.”
이안의 공격이 멈추자 그녀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페르소나 제작시스템은 마족에게 있어 최대의 위협.
그 시스템의 가능성을 이끌어낼 수 있는 관리자만 잡아낼 수 있다면.
‘이 게임은 우리의 승리야.’
신족과 마족 간의 균형은 다시 뒤집히리라.
눈앞의 관리자만 확보한다면.
‘젠장.’
물론 이안에겐 전혀 다른 의미였지만.
키이이잉
말보다 빨리 달릴 수 있는 에이브람스 전차였지만, 마왕과의 거리는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
상대는 초인적인 힘이 난무하는 이 세계에서도 압도적인 강자.
이안이 가진 병기가 아무리 효율적이고 파괴적인들, 절대적인 힘의 차이 앞에선 한계가 있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
결정을 내린 이안은 버튼을 눌렀다.
티티티팅
포탑에 장착된 연막탄발사기에서 다시금 8발의 유탄이 쏘아져 나갔다.
푸슈슈
백린이 듬뿍 담긴 유탄에서 뿜어나오는 백색 연기가 마왕과 전차 사이를 가로막았다.
마왕인 그녀가 가진 눈으로도 투시할 수 없을 만큼 지독한 독연(毒煙).
“잔재주라도 부리는 거야? 어머, 귀여워라.”
하지만 그녀는 딱히 걱정하지 않았다.
이 희뿌연 연막이야말로, 상대에게 더 이상 대항할 방법이 없다는 방증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흐흐흥, 흐흥.”
불타는 백색의 안개를 뚫고 지나가면서, 마왕은 콧노래를 불렀다.
고작해야 말과 비슷한 속도라면 그녀가 따라잡지 못할 리 없지 않은가.
이 안개 뒤에서 겁에 질려 오들오들 떨고 있을 관리자를 생각하니 몸이 뜨거워 견딜 수가 없었다.
“흐흐흥, 흐흥.”
그녀가 생각하지 못했던 건 단 하나.
부아아아아아아앙
“으응?”
관리자가, 그녀의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도망칠 수 있다는 사실.
부아아아앙
“헤에?”
백린 연막에서 빠져나온 마왕은, 순식간에 점이 되어버린 상대를 바라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
부아아아아앙
[마왕이 계속 추격해오고 있다. 더 빨리 움직여야 해.]
“이게 최대속도야!”
철컥
미미르의 말을 들은 이안은 버럭 성질을 내며 바이크의 쓰로틀을 재차 당겼다.
부아아앙
RPM이 끝까지 올라가면서 바이크의 엔진이 터질 것처럼 비명을 질러댔다.
이안이 구현한 군용 바이크의 최고속도는 시속 145킬로미터.
신기를 넘어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반응속도를 활용해 최고속력을 유지하고는 있었지만, 마왕의 추적을 완전히 따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마력만 좀 더 있었다면.’
이안이 이를 악물었다.
마력을 조금 더 사용할 수 있었다면, 이런 모터사이클 따위가 아니라 훨씬 빠른 탈것을 구현할 수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이안에겐 아직 믿는 구석이 있었다.
“미미르, 남은 시간은?”
갈리우스가 시련을 위해 마경에 머물 수 있도록 허락한 시간은 정확히 다섯 시간.
다섯 시간이 지나면, 이안은 갈리우스의 의지에 따라 영웅제가 열리던 판테온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앞으로 5분.]
“빌어먹을, 뭐 이리 많이 남았어? 한 30분은 달린 것 같은데.”
[조금만 더 버텨라. 얼마 남지 않았다.]
“말은 쉽지.”
미미르의 독려를 들은 이안은 콧방귀를 뀌며 핸들을 틀었다.
끼기기긱
“휴.”
앞을 가로막은 두 개의 바위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통과한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왕과 그의 간격은 더 이상 줄어들지 않았다.
이대로 5분만 버틴다면, 그는 아무 일 없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푸르륵 푸륵
그러니까, 연료가 충분했더라면 말이다.
“빌어먹을.”
바이크가 금방이라도 멈출 것처럼 떨리기 시작하자 이안이 이를 갈았다.
조금씩이지만 바이크의 속도가 느려지는 것이 그의 감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잡힌다.’
아직은 달리던 관성이 있으니 괜찮지만, 연료가 모두 바닥난 바이크는 곧 멈추게 될 터.
아니, 그 전에 마력으로 구현된 바이크가 먼저 사라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실제로 이안이 탄 바이크가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 깜빡이고 있지 않은가.
‘어떻게 할까.’
절체절명의 위기.
이안의 머리가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때.
[이안, 1시 방향이다. 거리는 약 2킬로미터.]
미미르가 다급한 표정으로 외쳤다. 이안은 이해할 수 없단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뭔 소리야?”
[신성력이 느껴진다. 대리인이야.]
하지만 미미르의 말을 들은 순간.
“…그래?”
이안은 희망을 발견했다.
푸르르륵
시동이 꺼지기 직전의 오토바이가 재빨리 방향을 틀었다.
속도가 조금 줄기는 했지만, 2킬로미터 정도라면 어떻게든 마왕과의 거리를 유지할 수 있으리라.
‘많은 것을 바라진 않는다.’
마력을 거의 소진한 이안보다는 낫겠지만, 그래 봐야 병기급이나 환수급의 페르소나를 가졌을 터.
마왕을 이길거란 기대는 처음부터 갖지도 않았다.
‘그래도 시간 벌이 정도는 할 수 있겠지.’
이안에게 필요한 것은 고작 5분.
미끼가 되건 어쩌건, 딱 그만큼만 버텨줄 수 있다면 바랄 게 없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살아남은 이안의 승리였으니까.
부아앙
바닥을 드러낸 연료를 박박 긁어낸 국방색 바이크가 마지막 혼을 불태웠다. 희망과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앞으로 3분!]
그리고 이안의 눈에 대리인의 모습이 들어온 순간.
“왜….”
이안의 희망은 갈기갈기 찢겨져나갔다.
윌리엄 바드리안.
쓸모없기로는 예전의 이안과 용호상박을 다툴 약쟁이에 알코올 중독자.
어떻게 바드리안 공작가의 대리인으로 뽑혔는지도 모를 녀석이.
“하필 저 새끼야?”
이안이 붙잡을 유일한 동아줄이 되어버렸으니까.
“으응…?”
제대로 서지도 못해서 지팡이를 짚은 윌리엄이 이안을 흐리멍덩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이안, 페르소나가….]
그 순간, 미미르가 이안에게 경고했다.
타앗
그 말의 의미를 알아챈 이안이 곧장 바이크에서 뛰어내렸다.
몸을 피하기 무섭게.
파아앗
바이크는 본래의 형태를 잃은 채 푸른 빛의 마력으로 돌아갔다.
“젠장.”
낙법으로 지면에 닿는 충격을 최소화한 이안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이를 악물었다.
마력을 모두 소모해 마력탈진에 걸리기 직전이었지만.
‘아직은 안돼.’
모든 게 끝날 때까진 쓰러질 수 없었다.
“너, 뭐야?”
약에 취한듯한 특유의 나른한 목소리.
갑자기 튀어나온 이안을 윌리엄이 흐릿한 눈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이안이 그 말에 대답할 필요는 없었다.
“헤에, 제법 쥐새끼처럼 도망가는 재주는 있었단 말이지?”
‘젠장.’
순식간에 이안을 뒤따라온 마왕, 바르바토스가 해맑은 표정으로 웃고 있었으니까.
“뭐야, 이 돼지는? 설마 이런 애를 믿고 도망간 거야? 귀엽기는.”
가만히 멈춰선 둘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던 그녀가 뇌쇄적인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안의 눈엔 먹이를 노리는 뱀으로 보일 뿐.
마왕의 힘은 마스터 급에 필적, 혹은 우위.
그녀가 마음만 먹는다면, 3분이 아니라 3초도 채 버티지 못하리라.
“뭐야, 마왕? 딸꾹.”
아직 상황 판단이 되지 않은 것인지, 윌리엄이 벌게진 눈으로 서서히 마왕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참으로 가관이 아닐 수 없었다.
‘끝이다.’
어지러움이 몰려왔다. 이안의 눈이 질끈 감겼다.
저 중독자가 어떻게 이곳에서 살아남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운도 이제 끝이다.
마경의 절대자 중 하나인 마왕을 앞에서 마주하는 것만큼 불운한 경우는 없을 테니까.
그때.
“오라….”
윌리엄의 입에서 나른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안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페르소나?’
갈리우스로부터 내려온 대 마족병기의 봉인을 푸는 시동어.
“글레이프…니르.”
정신조차 제대로 차리지 못하던 폐인.
그가 취한 눈으로 천천히 페르소나의 이름을 부른 순간.
파아아앗
이안은 윌리엄이 마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