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75화 (76/224)

#75화

아슈타르 성의 내부에 위치한 연무장들은 그 하나하나가 어지간한 들판보다 넓었다.

공작가에서 쓰이는 온갖 무구와 대련용 허수아비들, 마법적인 처리가 된 금속과 바위로 만들어진 연무대. 심지어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숲과 강까지.

실전과 같은 훈련을 하는 데 있어 이보다 좋은 조건은 없을 터.

그리고.

그중 하나인 제6 연무장에선.

채채챙

타타타탕-

총과 칼.

서로 어울리지 않는 무기들이 맞부딪치고 있었다.

쐐애애액

소리만큼 빠른 탄환들이 공기를 가르며 날아온다.

오러 익스퍼트 중급의 발달된 안력으로도 식별하기 어려울 만큼의 빠른 속도.

“후욱.”

하지만 숨을 고른 에반이 검을 휘두르자.

채채채채챙

귀청을 때리는 쇳소리와 함께 구리로 덧씌워진 납탄들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검면이 울퉁불퉁하게 찌그러지긴 했지만, 초속 300미터로 날아드는 탄환을 막아낸 대가치곤 싸게 먹힌 편.

하지만 공격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데구르르

언덕을 타고 굴러내려오는 두 개의 주먹만 한 금속 구체.

그게 무엇인지 알고 있는 에반의 표정이 굳었다.

타아앗

오러를 머금은 그의 다리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속도로 도약했다.

곧.

콰아아앙

에반이 자리를 피하기 무섭게 거대한 폭음이 언덕 아래 숲을 뒤흔들었다. 에반이 몸을 피한 나무에 수백의 파편이 박혀 들었다.

꿀꺽

나무 너머로 느껴지는 묵직한 진동에 기사가 침을 삼켰다.

그의 반응이 조금만 늦었더라도, 파편들은 나무가 아니라 에반을 덮쳤으리라.

‘어디지?’

에반은 나무 너머를 슬쩍 확인했다.

또 다른 금속 구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캐한 연기가 언덕을 가리고 있었다.

에반은 판단을 내렸다.

‘연기가 사라지기 전에 덮친다.’

상대는 자신의 간격 밖에서 무시무시한 공격을 숨 쉬듯 쏘아내고 있다.

하지만 시야가 가려진 상태에선 쉽사리 공격하지 못할 터.

맥없이 서 있다 당할 게 아니라면, 이쯤에서 승부를 걸어야 했다.

우웅

에반은 다시금 전신에 오러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하지만.

철컥

“거기까지.”

등 뒤에서 들려온 쇳소리와 함께 에반의 뒤통수에 차가운 무언가가 닿았다.

기사의 등골이 싸늘하게 식었다.

‘언제 여기까지 온 거지?’

에반 역시 익스퍼트 중급에 도달한 실력자다.

오러의 힘으로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것은 마나 감지를 포함한 육감 역시 마찬가지.

‘하지만….’

무슨 수를 쓴 건진 모르겠지만, 상대는 자신의 감각을 뚫고 들어왔다.

에반은 양손을 든 채 천천히 몸을 돌렸다.

“제법 몸놀림이 괜찮은데? 수련 좀 했나 봐?”

그의 눈앞에, 권총을 정면에 겨눈 이안이 승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에반은 포기하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말라.

그것이야말로, 눈앞의 주군이 알려준 전투의 철칙 아니던가.

‘손에 힘을 풀었어.’

이안의 전신을 살핀 그가 눈을 빛냈다.

이안의 무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이미 알고 있다.

‘방아쇠에 건 손가락보다 빨리 움직일 수만 있다면….’

우웅

생각과 함께 오러가 움직였다.

씨이잉

머리를 젖혀 사선(射線)을 벗어난 에반이 검을 내뻗었다.

오러를 머금어 푸르게 빛나는 검이 이안을 향해 쇄도했다.

하지만.

타타탕

천둥소리가 울려 퍼진 순간, 에반은 더 이상 검을 뻗을 수 없었다.

“…큭.”

챙그랑!

오른팔을 전투용 망치로 후려친 것 같은 묵직한 충격.

에반은 이를 악물고 애써 격통을 참아냈지만, 더 이상 검을 쥘 수는 없었다.

세 발의 납탄이 정확히 그의 오른팔을 움직이는 인대를 끊어버렸으니까.

“방심을 노린 건 좋았지만, 일부러 틈을 보였을 가능성도 생각했어야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피식 웃은 이안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권총을 집어넣고는 품에서 포션을 꺼냈다.

“전장에선 모든 게 도박이지만, 일부러 죽어줄 필요는 없잖아?”

치이익

에반의 오른팔에 붉은 포션을 뿌리자 뿌연 연기와 함께 박힌 탄환이 팔 밖으로 밀려 나왔다.

“더 노력하겠습니다.”

에반은 군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이안의 입가에 만족스런 미소가 떠올랐다.

‘내가 제대로 봤어.’

기술이나 지식처럼 후천적으로 기를 수 없는 재능이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자신의 목숨으로 도박을 할 수 있는 용기.

눈앞의 호위기사는, 이안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요건들을 충족하고 있었다.

회복된 오른팔을 몇 번 움직여본 에반은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한 겁니까?”

“뭘?”

“어떻게 제 감각을 속이고….”

오러를 다루는 자들의 감각은 어지간한 동물이나 마수보다 민감하다.

눈으로는 십 리를 꿰뚫어 보고, 귀로는 적의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초인들.

하지만 이안은 어깨를 으쓱였다.

“감각을 속이는 건 어려운 게 아냐. 감각이 예민한 게 꼭 좋은 건 아니니까.”

감각이 예민할수록 갑작스레 쏟아지는 감각들에는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안이 던진 것은 세열수류탄과 연막탄.

폭음과 연기로 적의 시각과 청각을 교란시키고, 그 사이에 그림자의 힘을 이용해서 배후를 점한다.

현대전에서는 딱히 새로울 것도 없는 기초전술이었다.

하지만 에반은 뭔가 아닌 것 같다는 표정으로 즉각 반박했다.

“이건 좀, 비겁한 것 아닙니까? 저희가 마족도 아니고….”

적의 눈과 귀를 가리고 배후에서 급습한다.

정정당당함을 추구하는 기사보다는 도적에게나 어울리는 잡술에 가까웠으니까.

물론.

“개소리하고 있네.”

이안에겐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말이었다.

“전장에서 그딴 소리를 씨부리는 놈들이 왜 없는지 알아? 그런 병신들은 이미 다 죽었거든.”

정정당당? 공정?

그런 게 존재했다면 어째서 전쟁이 벌어지고 침략이 일어날까.

애당초 전쟁이란 수단은,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를 힘으로 찍어누르겠다는 야만적 행위가 아니던가.

“잘 들어. 강한 놈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놈이 강한 거야. 전장에서 뭔 짓을 하건, 살아남기만 하면 이긴 거라고. 무슨 말인지 알겠어?”

“…네, 공자님.”

에반은 주군의 말에 불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안은 애써 그 표정을 무시했다.

‘어차피 이해할 거라고 기대하진 않았지만….’

자신과 비슷한 눈을 가지고 있는 에반이라면, 언젠가 깨달을 날이 오리라.

[이안, 네 말은 꽤나 과격하다. 고귀한 피를 이어받은 자가 할 말이라기엔…]

지금까지 만나왔던 주인들과는 달랐기 때문일까, 미미르가 걱정하는 투로 말을 걸어왔다.

하지만.

‘어쩌라고. 고귀한 피면 칼이 피해 가는 줄 알아?’

[……]

이미 전장에서, 비밀작전에서 동료들이 죽어 나가는 것을 숱하게 봐온 이안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전장이란 이름의 지옥에서 살아남는 것뿐이었으니까.

“좋아, 오늘은 이쯤에서 그만하자고.”

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한 이안이 권총, 미미르를 다시 홀스터 안에 집어넣었다.

‘제법 괜찮은데?’

이안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환수급의 페르소나가 가진 힘에 익숙해지고 나니, 차량에 비해 비교적 간단한 개인화기를 구현해내는 것은 이전보다 더욱 쉬워졌다.

‘정보.’

[이안 아슈타르]

[페르소나명: 미미르]

[등급: 환수]

[마력: 2,500]

[개방 필요마력: 2,000]

[증폭률: 2000%]

[특성]

[장비교체][장전][과부하][보조인격][파편화][그림자의 알][통신]

‘흠.’

눈앞에 떠오른 상태창의 변화를 확인한 이안은 턱을 매만졌다.

조금 늘어난 마력 옆에 +로 표시되던 추가마력이 사라지고, [그림자의 씨앗]이었던 특성이 [그림자의 알]로 변해있었다.

이안이 가슴팍을 슬쩍 만졌다. 옷 아래로 만져지는 딱딱하고 동그란 물건.

‘이 알이 가지고 있는 건가?’

혹시나 잃어버릴까 싶어 줄곧 품 안에 넣어둔, 그림자신의 힘을 담고 있는 알.

사라진 마력은, 분명 이 녀석이 품고 있으리라.

‘언젠간 깨어나겠지, 뭐.’

이안은 생각을 멈췄다.

페르소나를 가동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당장 저 마력을 가지고 있다 해서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때.

“공자님?”

“왜?”

“누가 오고 있습니다.”

에반의 말에 이안은 입구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적게 잡아도 일 킬로미터는 떨어져 있었지만, 오러를 불어넣은 이안의 눈은 일 킬로미터 밖에 선 상대의 얼굴을 알아보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상대가 누군지 확인한 이안의 얼굴이 굳어졌다.

‘요제프?’

이안의 둘째 형이자 5급의 마법을 부리는 고위 마법사.

그가 왜, 지금 여기에 나타났단 말인가.

요제프와 그를 둘러싼 로브 쓴 사내들을 확인한 이안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공격하러 온 것은 아니다.’

따로 무장을 챙기지 않기도 했지만, 이곳은 공작가의 영역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곳 중 하나.

당연히 하루 24시간 경비 병력이 배치되어있다.

혹여 이안에게 손을 쓸 생각이라 하더라도, 이곳에서 일을 벌이지는 않으리라.

“에반.”

“네?”

“가자.”

생각을 끝낸 이안은 천천히 요제프가 있는 곳을 향해 산책하듯 천천히 걸어 나갔다.

어차피 그를 만나러 온 것이라면, 급한 것은 상대지 자신이 아니지 않은가.

“뭘 하길래 기어오는 거지? 그 손톱만 한 오러를 다 써버리기라도 한 게냐?”

물론 요제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무시당했다는 사실에 요제프가 눈을 부라리며 화를 냈다.

“수련하러 오셨습니까? 그럼 수고하십시오, 형님.”

하지만 이안은 손톱만큼도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이대로 요제프를 지나쳐 나가기라도 할 듯 출구를 향해 발걸음을 계속 옮겼다.

물론 이안의 노림수였다.

‘뭔가가 있어.’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요제프는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있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잠깐, 할 말이 있다.”

대놓고 무시하는 이안을 붙잡으려 할 리가 없으니까.

“할 말, 말씀입니까?”

그 말에 발을 멈춘 이안이 고개를 돌리곤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명백한 비웃음.

“…네가 영웅제의 대리인으로 뽑혔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요제프는 화를 내는 대신 할 말을 이어나갔다.

‘이거였군.’

그 한 마디로, 이안은 요제프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용케도 아셨군요.”

이안은 일부러 능청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요제프가 날카롭게 노려봤다.

“네게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

“뭐, 자격이 있고 없고는 크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을까요? 중요한 건 제가 거기 나가게 되었단 사실이죠.”

빠드득

이안의 뻔뻔한 대꾸에 요제프가 이를 갈았다.

“더는 못 봐주겠다. 너 같은 녀석이 나가봤자 가문의 이름에 먹칠이나 할 테지.”

말이 끝남과 동시에, 요제프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휘익

투둑

“어쩌잔 겁니까?”

자신의 가슴팍을 치고 바닥으로 떨어진 장갑을 물끄러미 내려다본 이안이 알 수 없단 표정을 지었다.

“결투다. 내가 이긴다면 내게 대리인의 권한을 넘겨야 할 터. 이건 이미 아버지께도 허락받은 사안이니, 거부할 생각은 하지도 말아라.”

뜬금없이 결투라니.

‘아니, 공작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대리인의 자격을 주었으면 그거로 된 거지, 이건 숫제 줬다 뺏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이것도 시험의 일종인가?’

지금까지 이안에게 여러 번의 시험을 내린 공작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이다.

하지만.

‘그냥 받아들이면 손해지.’

이안은 이 제안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그럼, 제가 이기면 뭘 얻을 수 있습니까?”

“뭐?”

“설마, 맨입으로 하자는 건 아니겠죠? 누가 보더라도 이건 제 손해입니다만.”

사실 대리인의 자격 따위야 아무래도 좋았지만, 상대가 원하는 것이라면 얘기는 달라지는 법.

“그, 그건….”

이안의 말을 들은 요제프가 눈에 띄게 당황했다.

‘번복하고 싶다면, 네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걸어야 할 것이야.’

‘이런 뜻이었나.’

이안이 진짜 바보천치도 아니고서야, 아무런 이득도 없이 손해만 볼 결투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요제프는 그제야 아버지의 말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제가 납득할만한 무언가를 거시죠, 형님. 그래야 공평하지 않겠습니까?”

이안은 표정을 일부러 누그러뜨렸다. 잠시 침묵하던 둘째 형은.

“…마탑.”

“예?”

“내가 마탑의 지부장으로서 가지고 있는 모든 지위와 권한. 이 정도면 되겠나?”

“흠.”

요제프의 대답을 들은 이안은 잠시 고민하는 척했다.

“뭐, 그 정도라면야.”

물론, 고민할 필요도 없었지만.

자신의 모든 기반을 마탑에 두고 있는 둘째 형이다.

그 세력을 통째로 얻을 수 있단 건, 위험을 상쇄할 만큼 매력적이었다.

마음을 굳힌 이안의 오른손이 서서히 아래로 내려갔다.

“그럼, 결투는 언제 시작하는 겁니까?”

“지금 바로, 여기서 시작하자고.”

요제프는 이안에게 시간을 줄 생각이 없었다.

‘질 리야 없지만, 확실하게 가는 게 낫겠지?’

이안이 격렬하게 훈련하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한 요제프이다.

고작해야 마력과 오러를 다룬 지 일 년도 되지 않은 애송이에게, 그것도 지쳐있는 놈은 상대로 패배할 리 없지 않은가.

‘방어술식을 구축한 다음, 고위 마법으로 확실하게 끝낸다.’

그럴싸한 전략까지 생각해낸 요제프가 마력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방심한 그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그럼.”

철컥

타타타탕

“어…?”

방어마법을 미리 발동시켜놓지 않았다는 것.

털썩

네 발의 총탄에 전신을 꿰뚫린 요제프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쓰러졌다.

“요, 요제프 공자님!”

“괜찮으십니까!”

쓰러진 요제프를 보고 당황한 마법사들이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야, 뭐해?”

하지만 그들은 미처 떠올리지 못했다.

“아까 약속한 거 못 들었어?”

이 순간.

“형님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너넨 가서 인수인계할 준비나 해 놓으라고.”

그들이 섬기는 주군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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