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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72화 (73/224)

#72화

“어디 입이 있다면 지껄여보거라.”

에드너 폰 아슈타르.

아슈타르 공작가의 가주이자 신검 레온하르트의 주인.

연합 공국을 움직이는 일곱 중 한 사람의 기분은 썩 좋지 못했다.

그 원인은 공작의 눈앞에 서 있었다.

“무슨 생각을 했길래 구스타프 가의 일원을 건드렸는지 말이다. 끄응.”

골칫덩이 막내아들, 이안 아슈타르를 바라보던 에드너가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질끈 눈을 감았다.

“하다못해, 일을 벌였다면 증거라도 남기지 말아야 할 게 아니냐?”

어지간하면 말조차 길게 하지 않았던 에드너였지만.

“마경에서 일을 벌인 것도 아니고, 우리 영지 앞마당에서 일을 벌여놓고선 당당하게 가문의 이름까지 대는 건 도대체 무슨 대가리에서 나온 건지 좀 말해 보거라.”

지금의 상황은 그만큼 좋지 않았으니까.

“그래야 나도 구스타프 놈들에게 할 말이 있지 않겠느냐?”

공국은 지금 마족과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일곱 가문이 한마음으로 움직여도 모자랄 판에, 아들이란 녀석은 사고나 치고 있으니 머리가 아플 수밖에.

“….”

하지만 이안은 묵묵부답.

“말이나 좀 해보거라. 왜 그랬는지 말이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막내를 보고 있자니, 에드너의 속은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아버지, 도대체 뭐가 문제인 겁니까?”

이안의 입이 열린 것은 그때였다.

그리고.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아슈타르의 피를 이었다는 놈이 이리도 멍청해서….”

뻔뻔한 아들의 한 마디에 에드너의 뚜껑도 함께 열렸다.

하지만 이안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제 영지입니다, 아버지.”

“뭐?”

“제 영지에 무단으로 침입한 자들을 제가 쫓아냈는데, 그게 무슨 문제란 말입니까?”

“그래, 고작 도마뱀 따위를 지키려고 그 짓을 했단 게 문제지만.”

이안의 조리 있는 말에, 에드너는 순간 멈칫했지만, 곧 반박했다.

곧 멸족할 용과 오 백 년간 함께 해온 연합공국의 공가.

둘 중 누가 아슈타르에 중요한가를 비교한다면 당연히 후자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영주에게 영지민이 고작일 수는 없지요.”

“…지금 진심으로 하는 말이냐?”

틀린 말은 아니다.

다스릴 백성이 없는 군주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영주에겐 당연히 자신이 지배하는 영지민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었다.

하지만 이안의 말뜻은 그게 아니지 않은가.

“도마뱀들을 네 영지민으로 받아들였다고? 그 콧대만 높은 놈들을?”

이안의 말을 들은 공작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스스로를 불멸자이자 대륙의 수호자라 자칭하는 용들은 필멸자에게 고개를 쉽게 숙이지 않으니까.

아무리 죽기 직전이라 한들, 인간이 개미에게 고개를 숙일 리 없지 않은가.

용이 아무리 약해졌다 하지만, 그들의 자존심은 그만큼 강했다.

“그들이 스스로 원한 일이었습니다. 지금은 알자스 성의 한구석에 거주영역을 지정해 준 상태이고요.”

하지만 이안은 한 치의 주저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에드너는 다시금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살면서 들어본 얘기 중 가장 어처구니없는 소리군. 용이 인간의 밑으로 들어가다니….”

오랜만에, 독한 위스키 한 잔이 간절했다.

잠시 숨을 몰아쉬며 마음을 진정시킨 공작이 입을 열었다.

“그래, 네 변명을 인정하마.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용들이 네 영지민이라면 틀린 말은 아니겠지. 구스타프에겐 그렇게 전하마. 하지만.”

일순, 말을 마친 에드너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이안을 바라봤다.

“그 뒷감당은 전적으로 네 손에 달려있단 사실을 잊지 마라. 영주가 영지민을 위하고자 한다면 그만한 힘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남을 지키기 위해선, 자신을 지키는 것보다 더 큰 힘이 필요하다.

자신보다 강하다 여겨지는 상대라면 더더욱.

이안은 공작의 말에 고개를 까딱 숙인 뒤 미소를 지었다.

“기대해도 좋으실 겁니다.”

“기대하마.”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는 아들의 모습에 에드너는 이 일에 대해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저 자신감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곧 알게 될 터였으니까.

‘올해엔 녀석을 보내야겠군.’

작은 결정 하나를 내린 에드너는 감정을 가라앉히곤, 딱딱한 얼굴로 이안을 바라봤다.

“아, 그리고.”

“네?”

공작에게 인사를 한 다음 집무실을 벗어나려던 이안은 아비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에드너가 입을 열었다.

“사실이냐?”

“그게 무슨…”

앞뒤 잘린 아버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이안은 되물었다.

그리고.

“도노반 경이 그랜드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다는 소문 말이다.”

“아.”

공작의 설명을 들은 이안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

[적을 속이기 위해선 아군부터 속이라더니. 제대로 속였군, 이안.]

‘시끄러. 골치 아파 죽겠으니까.’

미미르가 빈정대자, 집무실을 나선 이안은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긁어댔다.

그 자리에서 따로 대답하지는 않았지만, 아버지의 귀에까지 들어갔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온 공국에 소문이 퍼질 게 뻔했으니까.

[차라리 잘된 일이지.]

하지만 미미르의 입가엔 기분 좋은 미소가 남아있었다.

‘잘 됐다고?’

[네 호위기사가 그랜드마스터라는 소문이 퍼진다면, 최소한 네 영지를 넘볼 놈은 없을 것 아니냐. 그걸 곧이곧대로 믿지 않더라도 말이지.]

설사 소문을 믿지 않는 녀석이라 하여도 쉽사리 덤빌 수 없게 하는 것이 그랜드마스터라는 단어의 힘이었다.

하지만.

‘아니, 그게 아냐.’

이안이 걱정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너무 강해 보이면 주의를 끌게 된단 말이지.’

약자가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지만, 강자가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다르다.

강자가 약점을 드러내는 순간, 그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던 들개와 승냥이들이 일제히 달려들 것은 뻔했으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이제 와서 아니라고 말하기엔 너무 늦었지 않았느냐.]

‘그러니까 내가 이러고 있지.’

속으로 쏘아붙인 이안이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살살 만지작거렸다.

“공자님, 괜찮으신 겁니까?”

옆에서 이안을 수행하기 위해 따라온 에반이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어, 걱정하지 마. 별일 아니니까. 그보다.”

이안은 손사래를 치며 대충 넘기고는 고개를 돌렸다.

“슬슬 준비된 모양이지?”

열 척이 넘어가는 초계함과 그 중앙에 자리한 1급 비행전열함, 골든라이온.

지구의 어지간한 소도시보다 거대한 비행장에, 수많은 종류의 비행함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거대한 비행함이 만들어내는 장관을 마주한 이안의 입에서 휘파람이 새어 나왔다.

“여름이 시작되기 전에 출정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공국의 전력을 다할 것이라더군요.”

“그래?”

에반의 말을 들은 이안은 눈앞의 비행함을 바라봤다.

마법의 신이 직접 관여하는 페르소나에 비하면 조금 떨어지지만, 이 세계의 기술로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마법 병기들.

“저 정도가 전력이라니, 조금 실망인데.”

물론, 지구에서 압도적인 화력전을 경험해본 이안의 입장에선 조금 아쉬운 수준이었지만.

이안의 말을 들은 에반이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네? 공자님, 저만한 숫자라면 어지간한 소국쯤은 반나절이 지나기도 전에 무너뜨릴 수 있을 겁니다.”

“우리가 코딱지만 한 애들하고 싸우러 가는 건 아니잖아. 상대는 마족이라고.”

이안의 머릿속엔, 여전히 전투 당시의 기억이 남아있었다.

고작해야 중급도 되지 못하는 존재들이었지만, 페르소나 없이 상대하기엔 너무나 강력하고 위험한 존재들이 아니었던가.

비행함이 아무리 강력한 마법병기라 한들, 상급 이상의 마족들이 전면으로 나선다면 쉽사리 승산을 장담할 수 있을까.

그때.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만, 아슈타르의 공자가 입에 담기엔 부적절한 말인 것 같구나.”

뒤에서 갑자기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

이안은 급히 몸을 돌려 상대를 확인했다.

상대의 얼굴을 확인한 이안의 표정에 한 줄기 의구심이 피어났다.

“오베르트 형님?”

오베르트 아슈타르.

이안의 큰형이자 아슈타르 공작가의 1순위 후계자.

한창 마족과의 전쟁준비로 바빠야 할 그가 왜 이안의 앞에 나타났단 말인가.

“네 말대로 본격적인 전쟁을 벌이기엔 부족한 전력이지. 어찌 되었건 마왕들은 각기 마스터급의 힘을 지니고 있으니까.”

마스터급에 이른 자는 그 하나하나가 전황을 뒤집을 만한 힘을 지니고 있다.

인간이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다 해도 그럴진대, 인간보다 월등한 육신을 지닌 마족이 마스터급의 경지에 오른다면 얼마나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겠는가.

마법병기의 도움을 받는다 하더라도 간신히 마족의 공세를 막아낼 수만 있을 뿐, 마경 전체를 토벌하는 것은 요원한 일이리라.

“하지만 우리의 목적은 마경 전체의 토벌이 아니니까.”

“예?”

오베르트의 말을 들은 이안은 순간 이해할 수 없었다.

토벌도 아닌데 이만한 병력과 물자를 준비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하지만, 곧 이안은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경고입니까?”

우리를 건든다면 너희도 무사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마족에 대한 무력시위.

그런 이유라면 이해할 수 있었다. 지구에서도, 특히 냉전기에 이런 일은 빈번하게 일어났으니까.

“호오.”

이안의 답을 들은 오베르트는 잠시 놀란 눈으로 막내 동생의 얼굴을 바라봤다.

“확실히 예전과는 다르단 말이지. 영혼이라도 바뀐 느낌이야.”

“그런 말씀이나 하려고 오신 겁니까? 생각보다는 시간이 남아도시는 모양이군요.”

저도 모르게 진실을 말한 큰 형의 말에 괜히 찔린 이안이 쏘아댔다.

하지만 오베르트가 찾아온 목적은 그게 아니었다.

“요제프가 널 노릴 거다.”

“흠?”

익숙한 이름이 귓가에 들려오자 이안의 표정이 변했다.

요제프.

다름 아닌 자신의 둘째 형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안은 곧 어깨를 으쓱했다.

“새삼스러울 일도 아니로군요. 요제프 형님은 저를 썩 좋아하시지 않는 것 같으니까요.”

이안, 그러니까 강민혁이 이 몸으로 빙의한 이후 둘째 형과 얼마나 많은 갈등을 빚었던가.

둘째 형의 성격을 대강이나마 알고 있었던 이안에게, 그건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건 형님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이안이 놀란 것은, 그 말을 해준 사람이 오베르트였다는 사실 때문이다.

평민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이안과는 달리, 두 형들은 같은 어머니 배에서 태어난 친형제였으니까.

“순수한 피를 지닌 진짜 귀족께서 제 걱정을 이렇게까지 해주시는 줄은 몰랐습니다만.”

가족과의 첫 식사자리를 기억하고 있는 이안이 비꼬듯 말했다.

하지만.

“아니, 녀석은 모를 뿐이다. 알아서도 안 되고.”

무슨 의미일까, 알아서는 안 된다니.

영문을 모를 오베르트의 말에 이안의 의문은 깊어졌다.

“이안, 네 혈통은 네 생각보다 고귀하다. 아니, 유일하다고 하는 게 맞겠지.”

말을 마친 오베르트가 가만히 이안을 바라봤다.

장난기 따위는 실오라기만큼도 담겨 있지 않은 진지한 눈빛.

“그게 무슨 개소립니까?”

이안은 장난하냐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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