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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71화 (72/224)

#71화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이안이 가진 그림자신의 힘은, 이미 몇 번이고 신기를 삼켜버렸던 전적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진짜 할 줄은 몰랐는데.”

그저 농담처럼 생각했던 일이 실제로 벌어지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뿐.

파사삭

백 개의 신기로 만들어진 선조의 빛.

그리고, 그것을 오염시킨 정체불명의 힘과 엘더급의 격을 지닌 드래곤.

그 모두를 송두리째 삼켜버린 그림자 덩어리는.

츄릅

만족스러운 듯 검은 혀를 낼름거렸다.

[서, 선조의 빛이….]

[말도 안 돼….]

목숨보다 중한 일족의 보물을 말 그대로 먹혀버린 용족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거대한 그림자 덩어리를 바라봤다.

[난감해졌군. 어떻게 할 거냐, 이안?]

“나도 몰라.”

미미르가 묻자 이안이 심각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지금이야 용의 권능 덕에 페르소나의 힘을 다룰 수 있지만, 이안의 모든 힘은 봉인된 상태다.

한 줌의 마력조차 남지 않은 몸으로 수십의 분노한 용들을 어찌 상대할 수 있단 말인가.

“일단은 협상을 해 봐야겠지. 가능하면 영지에 저들의 자리를 마련하는 쪽으로 말야.”

다행히 선조의 빛이 폭발하거나 하는 사태는 없었지만, 그렇다 해서 자신들의 신물을 집어삼킨-고의는 아니었지만- 이안을 곱게 봐줄 리 없지 않은가.

[이안!]

스으윽

그림자 덩어리가 다시 이안에게로 향한 것은 그때였다.

[피해….]

미미르가 채 말을 다 내뱉기도 전.

스으윽

쏜살같이 날아든 그림자 덩어리가 순식간에 이안을 덮쳤다.

[이안!]

본능적으로 멀찍이 물러난 미미르가 경악했다.

페르소나의 주인인 이안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그에게도 좋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다행히도, 미미르가 상상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스으으으윽

마치 제트기를 덮치는 구름처럼, 그림자 덩어리는 이안을 삼키는 대신 뚫고 지나가 버렸다.

이안의 몸을 통과한 검은 덩어리는 통과하기 전보다 확연히 작아져 있었다.

[괜찮은가, 이안!]

주인이 삼켜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한 사자머리가 소리쳤다.

하지만 이안은 그의 말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에게는 더 중요한 일이 있었으니까.

“힘이….”

돌아왔다.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이안은 연신 두 주먹을 쥐었다 폈다.

오랫동안, 어쩌면 죽을 때까지 되찾을 수 없을지 모른다 생각한 힘.

우웅

그동안 봉인 당한 것에 대한 보상이라도 되는 것처럼, 주먹을 쥘 때마다 마력과 오러가 이안의 몸속을 맹렬히 휘돌았다.

“후우….”

모든 것을 가진 것만 같은 충족감이 이안의 전신에 차올랐다.

용족들에 대한 걱정 따위는 힘을 얻은 순간 사라진 지 오래.

이 순간, 이안은 도시에 존재하는 어떤 존재보다도 강했다.

하지만 아직 풀어야 할 의문이 남아있었다.

‘분명, 그림자신의 힘 때문이야.’

그림자가 집어삼킨 선조의 빛에 담긴 신력, 혹은 말레이우스가 부리던 정체불명의 힘.

그것도 아니라면, 그림자 신이 가진 권능.

셋 모두 그림자와 관련된 것은 확실했으니까.

이안은 그림자가 스쳐 지나간 방향을 돌아봤다.

그리고.

“저건….”

데구르르

그곳에서, 이안은 바닥을 구르는 검은 알을 발견할 수 있었다.

***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깟 신기쯤, 멸족에 비하면 싸게 먹힌 셈이 아니겠나.]

어차피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던 것일까.

이안의 예상과는 달리, 깨어난 벨라크론은 선조의 빛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놀랄 뿐, 화를 내지는 않았다.

[결국, 말레이우스 녀석의 소원대로 되었군, 하.]

도시를 밝혀주던 태양이 사라진 이상, 이 어두컴컴한 동굴에서 영원히 살 수는 없었다.

자의건 타의건, 용족들은 결국 이 지하도시를 떠나 지상에 자리를 잡아야 하리라.

“고의는 아냐.”

체념한 꼬마용의 표정을 본 이안은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이안의 말을 들은 벨라크론이 제 몸만 한 머리를 내저었다.

[알고 있네. 자네를 탓할 생각도 없고. 이것이 우리 일족의 운명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않겠는가. 그나저나.]

말을 하다 만 벨라크론이 짧은 앞발로 방의 한쪽 구석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먹물을 붓기라도 한 것처럼 온통 시꺼먼 색의 알이 놓여있었다.

[저건 어떻게 할 셈인가?]

“글쎄.”

노룡의 물음에 이안은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저 알의 정체가 무엇인지, 아니 알이 맞기는 한 것인지조차 알 수 없었으니까.

“미미르?”

[짐작 가는 게 있긴 하다만, 확실하진 않다.]

“그래?”

미미르의 답을 들은 이안의 표정이 아주 조금 밝아졌다.

저 알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면, 어떻게 처분해야 할지도 알 수 있으리라.

“뭔데?”

하지만.

[신.]

미미르는 이안의 예상을 무참히 부숴버렸다.

“신?”

신이라니.

뜬금없는 말에 이안의 눈이 동그래졌다. 미미르가 말을 덧붙였다.

[정확히는, 신의 씨앗이다. 신의 형태가 갖춰지기 전의 상태지.]

“그게 무슨 개소….”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욕지거리를 내뱉으려던 이안은 순간 말을 멈췄다.

순간, 그의 머릿속에 하나의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정보.”

이안이 명령어를 내뱉자, 눈앞에 푸른 창이 떠올랐다.

[이안 아슈타르]

[페르소나명: 미미르]

[등급: 환수]

[마력: 2,300]

[개방 필요마력: 2,000]

[증폭률: 2000%]

[특성]

[장비교체][장전][과부하][보조인격][파편화][통신]

‘특성이 사라졌다.’

정보창을 확인한 이안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림자의 씨앗].

그림자신의 힘을 가리키는 그 특성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페르소나를 삼키면서 생겨난 추가적인 마력도 함께.

그게 어떤 이유 때문인지, 이안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저거로군.”

이안은 검은 알, 아니 신의 씨앗을 잠시 노려봤다.

이게 그에게 득이 될지 아닐지는 아직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확실한 것은.

‘그림자가 움직이지 않는다.’

페르소나에서 특성이 사라진 탓일까, 이안이 아무리 애를 써도 그림자는 반응하지 않았다.

본래 그림자의 힘에 크게 의존하지는 않았지만, 지녔던 능력이 사라지고 나니 갑갑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씨앗이 발아한다면 다시 능력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갓 싹튼 신은 자아가 약해서 제대로 힘을 통제할 수 없으니까. 이미 힘을 다뤄본 너라면 통제되지 않은 힘을 다루는 것은 쉬운 일이겠지.]

“그건 어떻게 해야 하지?”

[기다려야 한다. 발아하기 적당한 조건이 되었다고 씨앗이 판단할 때까지.]

“결국, 지금은 안 된단 거잖아.”

미미르의 말을 들은 이안은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는 검은 알을 조심스레 주워들었다.

언제 싹을 틔울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자신의 힘이었던 것을 그냥 내팽개칠 수는 없지 않은가.

“벨라크론, 혹시나 해서 말해두는 건데, 이건 내 꺼야.”

[걱정 말게나. 일족을 구해줬는데 그쯤이야.]

이안의 으름장에 의자에 앉은 벨라크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 몸을 회복한 덕분인지 꼬마용의 몸집은 이전보다 두 배쯤 커져 있었다.

확답을 들은 이안은 조심스레 알을 품에 챙겨 넣었다.

그때.

파아앗

벨라크론의 방 한구석에 설치된 순간이동 마법진에서 푸른빛이 뿜어져 나왔다.

곧이어 나타난 것은.

“이안, 준비 다 됐어!”

“수정탑을 지킬 몇몇 용들을 제외한 모든 용들을 바깥으로 내보냈다, 이안. 이제 우리만 떠나면 돼.”

탈마공의 후예인 반마족과 용혈의 힘을 깨운 제국의 황자.

파이톤과 알론소의 얼굴을 본 이안은 내심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저들이 소란을 피워서 전룡회의 용들을 유인하지 않았다면, 말레이우스를 상대하는 것은 더욱 어려웠을 테니까.

“그래? 그럼.”

끼익

둘의 말을 들은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이제 돌아가자고.”

가야 할 곳으로.

말을 마친 이안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지어졌다.

***

이안이 영지를 떠나 드래고니아에 머무른 지도 근 한 달.

그 짧은 시간 동안, 이안의 영지인 알자스는 꽤나 변해있었다.

반쯤 무너졌던 중앙의 성은 대부분 복구를 끝낸 상태였고, 부서진 판잣집들의 잔해가 있던 자리엔 어느새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호오.”

하지만 이안이 정말로 흥미를 느낀 것은 따로 있었다.

쿠웅

“조심해, 이 새끼야! 하마터면 모가지가 분질러질 뻔했잖아!”

“살았으면 됐지, 뭘. 꼬우면 네가 잘 피하던가.”

“뭐, 인마?”

이 도시를 복구하고 있는 병사들의 대다수는, 트로이카에 속했던 조직원들이었으니까.

“적극적으로 협력하려는 자들만 불러왔습니다. 나머지는 아직도 훈련소에서 몸과 정신을 단련하고 있지요.”

“잘했어, 경. 고작 한 달인데 이 정도라니, 역시 경은 달라.”

이안은 옆에 선 도노반 경을 향해 엄지를 세웠다.

빈말이 아니라, 고작해야 한 달 만에 이 정도 성과를 내리라고 기대하진 않았으니까.

비록 여기저기서 욕설과 고성이 울려 퍼지기는 했지만, 길들여지지 않은 들짐승 같은 자들을 교화시킬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도노반의 능력은 검증된 셈이었다.

“공자님께서 놈들의 기세를 꺾어주신 덕분입니다. 그러지 않았다면 이렇게 쉽게 해결되진 않았겠지요. 흑사자 사냥단의 도움도 있었고 말입니다.”

한 달 만에 만난 주군의 칭찬에 노기사 도노반이 기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조금만 더 지나면 정상적인 영지의 기능을 회복하게 될 거야. 우리 영주님께서 탱자탱자 놀고 오실 동안 말이지.”

옆에 서 있던 알자스의 행정관, 베티가 핀잔을 놓았다. 이안은 아무 대답 없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나저나, 저 용들은 어떻게 할 생각이야?”

그녀가 건너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도시 한 구석에 자리해있는 거대한 공터.

본래 판자촌이었다가 전투로 인해 무너진 곳을 정리해둔 것이지만, 지금은 사람 대신 수백의 용들이 제 거처를 만들어나가고 있었다.

“어떻게 하긴, 영지민이 되었으니 그에 맞는 대우를 해 줘야지.”

“너야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이 세계에서 용들이 가진 위치가 어디인지는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자연히, 저들을 자신의 품에 안으려는 이안과 영지가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제국하고도 붙어봤는데, 더 무서울 게 뭐가 있겠어?”

“하긴, 그건 그렇지.”

이안의 말에 베티는 고개를 끄덕였다.

연합공국을 제외하면 대륙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

마르센 제국과 싸워서 불가침을 받아낸 이상, 알자스 영지를 위협할만한 존재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으니까.

그때.

다그닥다그닥

멀리서부터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이안의 고개가 소리 난 방향으로 꺾였다.

그곳에, 한 기의 기사(騎士)가 흙먼지를 날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공작가의 문장이군.]

기사가 맨 깃발에 새겨진 사자의 문양을 확인한 미미르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저 깃발을 사용할 수 있는 자는 오직 신검공의 명을 전달하는 전령뿐.

곧, 기사는 이안의 앞에 당도했다.

“이안 아슈타르 공자님을 뵙습니다.”

말에서 내린 기사가 무릎을 꿇으며 예를 표했다.

“무슨 일이지?”

“공작전하의 친서입니다.”

이안이 짐짓 의뭉스런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기사는 대답과 함께 품에서 인장으로 봉인된 서신을 꺼내어 건넸다.

“흠.”

그 친서를 가볍게 받아든 이안은 봉인을 뜯고 안의 편지를 꺼냈다.

하지만 이안은 읽기도 전에 서신의 내용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돌아와라.]

적혀있는 것은 짤막한 한 문장.

에드너 폰 아슈타르.

신검의 주인이자 아슈타르의 공작이 그를 찾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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