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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70화 (71/224)

#70화

마력은 이 세계의 인간에게 종을 초월한 힘을 부여한다.

그것은 두 다리에도 마찬가지여서, 마법을 부리는 마법사와 오러를 다루는 기사들은 어지간한 명마보다도 빠르게 날고 달릴 수 있다.

하지만.

부아아아앙

이안이 탄 탈것은 어지간한 오러 익스퍼트보다도 빠르게 도시를 주파하고 있었다.

[고작 바퀴 두 개로 이렇게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다니, 언제 봐도 놀랍단 말이지.]

“놀랄 시간이 있으면 상대 전력이나 파악해 봐.”

다시금 깨어난 미미르가 놀란 목소리로 말하자 이안이 핀잔을 주었다.

하지만, 되돌아온 친구에게 건네는 그의 목소리엔 미미한 기쁨이 담겨있었다.

어찌 되었건, 미미르는 이 세상에서 자신과 가장 가까운 존재였으니까.

벨라크론이 불어넣은 용혈의 힘이 봉인을 상쇄하는 것은 고작해야 한 시간 남짓이겠지만.

‘그 정도면 놈을 상대하기에 충분하지.’

이안은 승리를 확신했다.

[본체가 아니군. 본체는 저 녀석의 내부에 있다.]

말레이우스의 상태를 확인한 미미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무슨 소리야? 누가 봐도 용이잖아, 저건.”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는 미미르의 말을 듣고, 이안은 다시금 눈앞의 거대한 용을 바라봤다.

조금 과장하자면, 눈앞의 검은 용은 드래고니아의 높디높은 천장에 닿을 만큼 거대했다.

검디검은 비늘과 뿔, 그리고 다섯 장의 날개는 도저히 실체가 아니라는 말이 나올 수 없었다.

[아니, 녀석의 외부는 실체가 아닌 에너지의 덩어리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거대한 육체를 유지할 수 있을 리 없지. 녀석의 머리를 봐라.]

“입?”

이안은 거대한 용을 올려다 봤다. 곧 그는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에너지가 녀석의 입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공격을 준비하기라도 하는 듯, 쩌억 벌린 흑룡의 아가리에 검은 기운이 모여들고 있었다. 검은 기운이 진해질수록 녀석의 육체는 풍선에 바람 빠지듯 쪼그라들고 있었다.

[브레스라도 쏠 모양이군. 그냥 두고 볼 셈이냐? 저만한 양의 에너지라면 용족들이 전멸할 가능성은 82.9%다.]

현신한 말레이우스의 힘을 눈치챈 미미르가 이안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니, 그럴 리가.”

이안은 고개를 내저으며 바이크의 쓰토틀을 당겼다.

부아아아아앙

M1030.

국방색으로 칠해진 바이크의 엔진이 피스톤을 움직이며 굉음을 내질렀다.

순식간에 빛살처럼 쏘아져 나간 바이크가 주인을 싣고 거대한 용을 향해 달려나갔다.

그와 동시에.

스으윽

이안의 양어깨에서, 시커먼 팔이 솟아났다.

그림자로 만들어진 두 팔은, 무언가를 잡을 자세를 취했다.

이윽고.

파아앗

마력의 푸른빛과 함께 허공에서 기다란 무언가가 나타났다.

그림자 팔은 마치 그것이 나타날 것을 알고 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낚아챘다.

RPG-7.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로켓 발사기의 한쪽 끝이 검은 용을 향하는 순간.

“발사.”

쐐애애애애액

새하얀 연기와 함께 로켓이 발사관으로부터 뿜어져 나갔다.

[이안, 조준이 잘못됐다!]

로켓의 궤적을 확인한 미미르는 당황했다.

그야.

[거긴 천장이지 않나!]

로켓은 말레이우스가 아닌 도시의 천장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으니까.

설마 저 한 발 때문에 드래고니아가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일 분 일 초가 아쉬울 때 이런 실수를 하다니.

하지만.

“아니.”

그는 실수하지 않았다.

“이게 맞아.”

부아앙-

이안은 스로틀을 당기면서 쏘아져 나간 로켓을 바라봤다.

이윽고.

[어?]

로켓의 궤적을 확인한 미미르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도 그럴 것이.

[떨어지고…있어?]

본래 대공용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일까.

거의 천장에 닿을 것처럼 솟구치던 로켓의 속도가 점차 느려졌다.

곧, 녀석은 포물선을 그리며 아래로 활강하기 시작했다.

쐐애애액

고개를 숙인 로켓이 향한 목적지는, 동족들을 향해 벌어진 검은 용의 아가리.

마치 빨려 들어가듯, 주황색 로켓은 흑룡의 입에 모인 검은 덩어리 속으로 사라졌다.

곧.

콰아아아아앙-

폭발.

말레이우스의 입안에서, 마룡의 몸을 집어삼킬 만큼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용의 아가리에 모여 있던 검은 에너지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폭발과 함께 연기처럼 흩어졌다.

콰우우우우-

미처 예상조차 하지 못한 것일까.

검은 용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폭발이 일어난 녀석의 반쯤 날아간 머리에서 피 대신 검은 연기가 사방으로 흩어져나갔다.

녀석의 고개가 힘겹게 아래를 향했다.

[네놈이로구나.]

마치 좀비를 연상케 하는 녀석의 짓이겨진 얼굴에, 노기가 서렸다.

[감히 필멸자 주제에….]

어떻게 언령의 봉인을 해제했는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고작해야 필멸자 따위에게 일격을 당했다는 것.

그 치욕이, 마룡의 자긍심에 스크래치를 냈다.

[이번에야말로,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해 주마.]

말레이우스의 말과 함께 그의 다섯 날개 중 하나가 꺼지듯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우우웅

이안과 흑룡의 사이로, 수백의 검은 화살들이 나타나 하늘을 메웠다.

아무리 이안이라도, 능력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지금은 막아낼 수 없는 공격.

하지만.

“글쎄, 네 맘대로는 안 될걸?”

이안은 두려움 대신 자신만만한 미소를 띄웠다.

[지금이다! 놈을 쳐라!]

그는 혼자가 아니었으니까.

콰아아아아

흑, 백, 청, 금, 은.

제각기 다른 색을 가진 수십의 용들이 입에서 브레스를 내뿜었다.

대부분은 엘더급에도 이르지 못하였으니 그 위력이야 보잘것없었지만, 흑룡의 정신을 흐트러뜨리기엔 충분했다.

[어찌, 지고한 종족이었던 우리가 한낱 필멸자 따위를 도우려 한단 말이냐!]

한때 수호자의 지위를 가졌던 용들이다.

그들의 권능이 아무리 약하다 한들, 수십이 모인다면 무시할만한 힘은 아니다.

우웅

이안을 공격하려던 수백의 검은 화살이 한데 뭉치더니 방패의 형태로 변했다. 곧 허공으로 떠오른 검은 방패와 무지갯빛 브레스가 충돌했다.

파츠츠츠츠

[너희는 나를 이길 수 없다.]

점차 브레스의 기세가 약해지는 것을 확인한 말레이우스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브레스의 기세는 좋았지만, 그뿐, 그들의 힘만으론 검은 방패를 뚫어낼 수 없었으니까.

녀석의 한 쪽 눈이 날아가지 않았다면, 필시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푸슉

콰우우우-

갑작스레 찾아온 고통.

검은 방패를 유지하던 말레이우스의 정신이 일순 흐트러졌다.

마룡의 눈은 어지간한 칼도 들어가지 않을 만큼 단단했지만, 장갑차도 관통할 수 있는 대물저격총의 탄환까지 막아낼 만큼 단단하진 않았다.

[지금이다!]

엘더급 골드 드래곤, 알리시온은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콰아아아

한 줄기의 금빛 브레스가 약해진 방패를 뚫고 마룡의 몸뚱이를 헤집었다.

고룡급의 힘을 가졌다곤 하지만, 엘더급 드래곤이 전력을 다해 쏘아낸 브레스는 말레이우스에게 타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 빌어먹을 자식들이….]

말레이우스는 분노했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다.

그의 힘이 아무리 강력하다지만, 지상과 공중에서 쏟아지는 공격들을 방어하는 동시에 공격까지 수행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뿐만이 아니었다.

쐐애애액

[비겁한 자식들….]

흰 연기를 뿜으며 날아오는 로켓을 간신히 피해낸 말레이우스가 으르렁댔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오는 정체불명의 무언가.

이미 뜨거운 맛을 본 마룡은 지상의 이안을 향해 이를 갈았지만.

“극찬 고맙다, 도마뱀 새끼야.”

쐐애애액

이안은 씨익 웃으며 RPG-7의 방아쇠를 재차 당겼다.

눈에 잘 보이는 로켓으로 상대의 정신을 교란할 동안, 어딘가에 숨겨둔 그림자 병사의 탄환이 적의 급소를 노린다.

‘조금만 더 있으면 끝나겠군.’

이안은 확신했다.

[녀석이 가진 힘의 크기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곧 버티지 못하고 소멸하겠군.]

처음에 비하면 절반으로 줄어든 놈의 몸뚱이를 본 미미르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늘에선 마법과 브레스가, 땅에선 로켓과 총탄이 놈을 공격한다.

두 날개를 이용해 어떻게든 피하고 막아내긴 하지만, 놈을 무릎 꿇리는 것은 말 그대로 시간문제이리라.

하지만.

[내가, 이 말레이우스가 이대로 포기할 것 같으냐?]

일이 생각처럼 쉽게 흘러가지는 않았다.

콰우우-

포효를 내지른 말레이우스가, 돌연 이상한 행동을 시작했다.

[놈이 보호막을 거뒀다. 포기한 건가?]

전신을 둘러싼 검은 보호막을 해제한 말레이우스를 미미르가 이상한 눈으로 바라봤다.

“아니.”

하지만 놈의 시선을 확인한 이안의 얼굴은 급속도로 굳어졌다.

“뭔가가 있어.”

말레이우스가 바라보는 것은 하늘의 동족도, 땅의 필멸자도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설마….’

두 진영의 사이를 가로막은 검은 구체.

선조의 빛.

이안이 악의로 가득 찬 마룡의 눈을 본 순간.

“놈을 막아야 해.”

이안은 말레이우스의 속셈을 파악할 수 있었다.

철컥

마음이 급해진 이안이 재차 로켓을 장전했다.

보호막을 해제한 지금이라면, 어떻게든 놈을 끝장낼 수 있을지도 몰랐으니까.

하지만 늦었다.

콰아아아

[긍지 잃은 자들이여, 이제 종말을 맞이할 시간이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포화를 그대로 받아내며, 검은 용은 마지막 남은 두 날개를 펼쳤다.

슈우우우-

그와 동시에, 놈의 몸뚱이가 선조의 빛을 향해 솟구쳐 올랐다.

이안이 채 무언가를 시도해보기도 전에, 검은 용은 검은 태양 속으로 파고들었다.

[무, 무슨 짓을!]

“썩 좋은 짓은 아니겠지.”

당황한 미미르의 말을 듣고 이안이 중얼거렸다.

그 증거로.

구구구구

말레이우스가 파고들자마자, 검은 구체가 사시나무 떨듯 진동하고 있지 않은가.

“알리시온! 용족들을 대피시켜!”

이안은 하늘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도시가 붕괴한다!]

[해츨링들이 먼저다! 어서 움직여!]

하늘의 용족들 역시 사태의 심각함을 인지하고는 알리시온의 지휘에 따라 대피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시간이 부족해.”

언제나 그래왔지만, 이안에게 지금만큼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한 시간? 십 분? 삼십 초?

눈앞의 구체가 언제 터질지는 이 자리의 그 누구도 몰랐으니까.

단지 최선의 결과를 위해 노력할 뿐.

스윽-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은 그때였다.

스으으윽

이안의 어깨 위로 자라난 그림자 팔이 갑자기 허공으로 떨어져 나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스으윽

그가 화력지원을 위해 소환해 둔 두 명의 그림자 병사들.

그들 역시 인간의 형태를 풀고 갑자기 하늘로 솟구쳤으니까.

하늘로 솟구친 그림자들은, 허공에서 만나 하나의 형태를 이루었다.

[저건, 입인가?]

입이라니.

그 모양을 본 미미르가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봉인이 다시….”

자신의 통제를 듣지 않는 그림자를 본 이안은 그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벨라크론은 이미 큰 부상을 입은 상태였고, 그가 발휘할 수 있는 권능 역시 온전할 때에 비하면 한정적이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이, 이안! 그림자들이!]

꿀꺽

그림자가 하늘에 떠오른 선조의 빛을 삼켜버릴 거라는 가정 따위를 할 수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어, 보고 있어.”

눈앞에서 벌어진 말도 안 되는 일에, 이안은 더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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