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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69화 (70/224)

#69화

다섯 엘더 드래곤 중 하나.

알리시온이 파이톤과 알론소를 마주한 것은 그녀가 순찰을 마치고 돌아올 무렵이었다.

[…그게 사실이라고?]

파이톤의 설명을 들은 그녀가 멍청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말레이우스와 전룡회가 동족을 배신하고, 드래고니아가 무너질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니.

[차라리 인간 놈들과 전쟁이라도 벌였다면 모를까, 일족을 배신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자신의 앞에 선 것이 알론소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당장에 앞발을 휘둘러 목과 머리를 분리해 버렸을 것이다.

“믿기 싫겠지만 사실이야. 그리고 녀석을 막지 못한다면 드래고니아가 사라질 거란 것도 사실이고.”

빛나는 구슬을 쥔 파이톤이 믿을 수 없어 하는 그녀의 표정을 보곤 어깨를 으쓱했다. 본체로 현신한 알리시온이 고개를 돌려 검을 쥔 사내를 향했다.

[알론소, 저 말이 사실이니?]

“예, 사실입니다. 벨라크론님도 놈에게 큰 부상을 입고 이안과 함께 계십니다.”

그녀가 묻자 알론소가 고개를 숙이며 예를 갖췄다.

[그래, 네 말이 그렇다면 맞겠지.]

알론소의 말을 듣고서야 그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저 반마족은 몰라도, 알론소는 용의 피를 이어받고 그 힘을 일깨운 일족의 후예였으니까.

그리고 저 말이 사실이라면.

[감히, 일족을 배반하다니….]

그녀가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타라. 시간이 별로 없는 것 같으니.]

지상에 내려앉은 거대한 금색 용의 노한 목소리가 사방을 울렸다.

마족에게 모든 고룡들이 죽어나가는 와중에도 분열하지 않았던 일족이, 고작해야 머저리 하나 때문에 반 토막 나다니.

타타탓

그녀의 심기가 좋지 않은 것을 눈치챈 알론소와 파이톤이 아무 말 없이 그녀의 꼬리를 타고 올랐다.

반용과 반마족이 그녀의 등에 자리를 잡자.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쐐애애액

그녀의 외침과 함께, 신력으로 강화된 골드 드래곤의 거체가 하늘을 향해 화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

수정탑.

용족이 가진 수천 년의 지식을 보관하고 있는 용족의 보물이자 역사.

지구의 신화 속 바벨탑이나 다름없는 이 지식의 보고를 열어젖힌 이안은.

“정말 이거라고?”

눈앞에 떠오른 검색결과를 보곤 눈살을 찌푸렸다.

[1. 언령의 힘이 소모될 때까지 대기.]

[2. 언령의 힘보다 강한 에너지를 사용해 언령의 힘을 중화.]

첫 번째와 두 번째 방법은 벨라크론이 설명해 준 것과 동일했다.

그리고 둘 다 현실성이 없는 방법.

하지만 세 번째 방법은 달랐다.

[3. 용이 가진 권능을 봉인에 쏟을 경우, 용의 격에 따라 일시적으로 언령의 힘을 중화시킬 수 있음.]

“…벨라크론.”

“왜 그러나.”

“나한테는 왜 이런 방법이 있다고 말하지 않은 거지?”

방법을 확인한 이안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엘더급의 드래곤이자 용족의 제1장로, 벨라크론을 내려다 봤다.

이안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페르소나를 구동시키는 것.

일시적이나마 페르소나를 움직일 수 있다면, 그래서 힘을 되찾는다면 이 모든 사태를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몰랐으니까.

“말하지 않았나. 용족의 기억력이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니라고. 하물며, 평생 사용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방법 따위를 내가 기억할 이유가 없지 않겠나?”

이안이 가슴팍에 묻혀있는 벨라크론을 째려보자, 벨라크론이 멋쩍은 표정으로 자신의 얼굴에 난 비늘을 긁었다.

“이래서 미미르가 있어야 하는데.”

뻔뻔한 도마뱀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이안은 곧장 세 번째 방법의 세부적인 내용을 확인했다.

어찌 되었건, 지금으로써는 이 방법만이 유일한 해결책이었으니까.

“벨라크론, 이거 가능한 거야?”

이안은 네모난 창에 떠오른 정보를 가리켰다.

“아마도 가능할 걸세. 내가 가진 용혈의 힘을 다른 필멸자에게 주입해본 적은 없지만, 필멸자들도 용혈을 다루기는 하니.”

벨라크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론소와 참룡공의 자손들처럼, 용이 아니어도 용혈의 힘을 사용하는 경우는 왕왕 있어왔다.

정확한 방법까지야 그가 알고 있지는 않았지만.

“방법은 수정탑이 알려줄 걸세.”

그들의 앞에는 용족이 가진 지식의 총아가 있지 않던가.

“좋아.”

벨라크론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안은 수정탑의 검색창에 질문을 입력했다.

[검색결과입니다….]

마치 이안의 마음을 들여다보기라도 하는 듯, 검색창은 정확히 이안이 원하는 답을 제공했다. 답을 확인한 이안이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호오, 저런 방법이 있을 줄이야….”

“좋아, 확인했지? 시간이 없어.”

검색창의 결과에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뜬 벨라크론을 내려다보며 이안이 재촉했다.

“알겠네. 우선 자네의 피부터.”

고개를 끄덕인 꼬마용이 작달막한 아가리를 쩍 벌렸다.

용의 권능은 피에 새겨져 있는 것.

권능을 연결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피를 섞을 필요가 있었으니까.

콰득

이안은 곧장 오른쪽 새끼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낸 다음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오른 주먹을 타고 붉은 피가 뚝뚝 떨어져 내렸다. 이윽고 선혈은 벨라크론의 아가리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노룡이 필멸자의 피를 머금은 순간.

파아아앗

이안의 가슴팍에 자리 잡은 벨라크론의 전신에서 황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

용족은 본디 시간과 수명에 구애를 받지 않는 불멸자들이다.

이들에게 시간이란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십 년이건 백 년이건 기다릴 수 있는 존재들이니까.

하지만.

“늦는군.”

용족의 정점 중 하나.

엘더급 실버드래곤 말레이우스는 초조한 표정으로 눈앞의 검은 구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깥의 소란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아무리 상대가 대 마족 병기 페르소나를 가졌다지만, 페르소나는 근본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었으니까.

“조금 시간을 끌면 되겠지. 페르소나의 가동시간은 참으로 짧으니.”

페르소나의 가동시간이 끝난다면 상대의 영향력 역시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그가 걱정하는 것은 다른 부분이었다.

“이제 반응을 할 때가 되었는데….”

선조의 빛.

한때는 지하도시를 밝히는 태양이었지만, 이제는 시한폭탄이나 다름없어진 녀석을 올려다본 말레이우스가 좋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녀석들이 제대로 알려준 건지 모르겠단 말이지….”

자신에게 힘을 준 자를 떠올린 말레이우스가 좋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그가 준 알 수 없는 힘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말레이우스는 애초에 그를 믿지 않았으니까.

‘모든 것은 당신의 의지에 달려있습니다, 용족의 왕이여.’

“왕이라니, 필멸자들이나 할 법한 소리를.”

그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린 말레이우스는 콧방귀를 뀌었다.

영원을 살며 홀로 지내왔던 용들에게 왕이라니, 그 보다 어울리지 않는 말도 없으리라.

애당초, 자신의 영토를 박살 내는 왕이 세상천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 감옥을 부수고 나면, 우리 일족은 다시 강해질 것이다.”

검게 물든 선조의 빛을 보며 말레이우스는 다시 한번 다짐했다.

그때.

“음?”

공기의 흐름이 바뀐 것을 눈치챈 말레이우스가 선조의 빛에서 눈을 뗐다.

거대하지만 닫혀있는 공간인 드래고니아는 공기의 흐름이 항상 일정하다.

그것이 변할만한 일은 오직 하나뿐.

“알리시온, 또 네년이로구나.”

저 멀리서 보이는 수많은 동족의 날개들.

그 한 가운데서 달려드는 금빛용을 확인한 말레이우스가 쓴웃음을 지었다.

곧, 용들의 무리와 말레이우스는 검게 변한 선조의 빛 앞에서 마주쳤다.

[말레이우스, 드디어 네놈이 미쳤구나!]

노한 알레시온이 말레이우스를 노려보며 일갈했다.

“미쳤다라.”

말레이우스는 조용히 자신에게 살의를 내뿜는 용들을 바라봤다.

아무것도 모르는 자들. 일족의 긍지가 필멸자 따위에게 짓이겨지고, 밟혀왔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하려는 자들.

이런 자들을 지키려 했다니.

“미친 것은 이 세상이다.”

“뭐?”

말레이우스의 말을 들은 알레시온의 눈썹이 팔자로 휘었다.

“우리는 중간계의 수호자였다. 이 대륙의 그 누구보다도 긍지 높았던 것이 우리란 말이다.”

말을 이어나가는 말레이우스의 눈에서, 조금씩 분노가 차올랐다.

“그런 우리 일족을 빛 하나 들지 않는 땅속으로 밀어 넣은 것이 이 세상이며 필멸자들이다. 그런데 어찌 이 세상이 미치지 않았단 말이냐?”

[미쳤군. 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 일족을 몰살시킬 생각이라고?]

이야기를 들은 알리시온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말레이우스는 거침이 없었다.

“필멸자들의 개가 될 바엔 죽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고작 목숨 따위에 연연하는 너희가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말을 마친 말레이우스가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손날을 세운 그가 한쪽 이를 악물었다.

“어차피 현신할 거라면, 필요 없겠지.”

콰득

[무, 무슨!]

단숨에 왼팔을 날려버린 말레이우스를 보고 알레시온이 놀라 소리쳤다.

하지만 더욱 놀랄 일은 지금부터였다.

파아아앗

그의 잘려나간 왼쪽 어깻죽지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으니까.

고오오-

단숨에 잘려나간 팔뚝을 집어삼킨 검은 덩어리가 마치 웃는 것처럼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우우웅

순식간에 인간 형태의 말레이우스를 집어삼킨 덩어리가 몸집을 불렸다. 도시의 지면에 내려선 덩어리는, 곧 제 형상을 갖추어나갔다.

[저건….]

말레이우스의 모습을 본 알리시온과 용들은 일제히 신음성을 삼켰다.

뜯겨 나간 하나를 제외한 다섯 날개, 석탄처럼 새까만 비늘.

마왕을 연상케 하는, 머리에서 곧게 뻗어난 세 개의 뿔.

어지간한 고룡보다 거대한 덩치를 가진 괴이한 형태의 용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마룡(魔龍)….]

용족이 스스로 마기를 받아들여 탄생하는 존재.

마기라고는 털올만큼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 모습은 만큼은 사라져버린 고룡들로부터 전해지던 마룡의 것과 동일했다.

콰우우우-

지상에 강림한 마룡이 하늘의 동족들을 향해 포효했다.

그의 피처럼 붉은 눈동자에는 여전히 분노가 깃들어있었다.

[나의 일족들이여.]

검은 용이 하늘을 향해 입을 벌렸다. 한때는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일족들을 향해.

[이제부터, 너희의 긍지를 증명해라.]

말레이우스가 말을 마침과 동시에, 그의 입에 정체불명의 검은 기운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브레스다!]

[피해! 마기에 물든 브레스를 맞으면 마룡이 된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용들은 경악했다.

마기와는 다른, 아니 조금 더 소름 끼치는 기운.

마룡이 되지는 않더라도, 저 음습한 기운을 몸으로 맞는 게 득이 될 리 없지 않은가.

[권능을 풀어! 결계를 구축한다!]

알리시온은 지시를 내림과 동시에 자신의 몸에 깃든 용혈을 깨워냈다.

단순히 권능의 일부를 흉내 낼 뿐인 필멸자들과는 다른, 오직 용만이 다룰 수 있는 힘.

고오오오-

용들이 협응의 권능을 깨우자 주변의 공기가 떨려오기 시작했다.

알리시온의 의지에 따라, 용들이 바깥으로 뿜어낸 권능이 마력과 섞여 오망성의 진을 이루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젠장, 늦었어.’

아무리 권능을 발휘한들, 서로 다른 용들의 마력과 신성력을 엮어내는 것은 제법 어려운 일이다.

상대가 평범한 용이었다면 모르겠지만, 상대는 사실상 고룡 급.

고룡 급의 브레스를 막아낼 결계를 짜내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끝인가….’

금방이라도 터져 나갈듯한 검은 기운을 바라보며, 알리시온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 순간.

부아아아아앙

생전 처음 들어보는 굉음이 알리시온의 귀를 자극했다.

[뭐지?]

그녀는 무심코 소리가 난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이안!]

그곳에서.

부아아아앙

알리시온은 생전 처음 보는 말 위에 탄 이안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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