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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68화 (69/224)

#68화

선조의 빛.

마지막 남은 용족들의 안식처, 드래고니아를 밝히는 신성한 태양.

드래고니아의 모든 용족들이 자신들의 선조와 동일시하는 존재.

하지만.

“선조의 빛이…어째서…!”

더 이상 선조의 빛은 그 이름처럼 빛을 발하지 못했다.

신성력으로 만들어진 태양이 검게 물든 순간, 도시는 깊은 어둠에 잠겨버렸다.

‘마기?’

하지만 이안은 곧 고개를 내저었다.

신성력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선조의 빛에 어찌 마기가 깃들 수 있단 말인가.

“이, 이런 미친놈! 어떻게, 어떻게 저걸….”

완전히 빛을 잃어버린 하늘의 검은 구체를 바라보며, 이제는 작은 도마뱀이 되어버린 벨라크론이 길길이 화를 냈다.

“놈이군.”

이안은 그 범인이 누군지 쉽사리 알 수 있었다.

“말레이우스 녀석이 아니고서야, 이런 짓을 할 이유가 없지.”

“말레이우스?”

이안의 말에 파이톤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 태양이 사라진다면, 결국 용족들은 이 도시를 떠나야 할 테니까.”

지상의 생명이 살기 위해선 빛이, 에너지가 필요하다.

불멸자로 만들어진 용족이라 할지라도, 어린 시절에는 다른 동식물을 섭취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이 거대한 지하도시가 유지될 수 있는 이유 역시, 선조의 빛이 동굴에 빛과 에너지를 전해주기 때문이지 않은가.

“그러니, 동굴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짖어대는 녀석들이 제일 싫어할 게 뭐겠어?”

그리고 그것을 없애버리는 것이야말로, 전룡회와 말레이우스가 원하는 것일 터다.

“이렇게 과격한 자는 아니었는데…내가 녀석을 잘못 봤군.”

이안의 말을 들은 벨라크론이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이안이 입을 열었다.

“아니, 지금이라 가능한 것이겠지.”

“지금?”

“마침, 뭘 해도 덮어씌울 수 있는 필멸자가 나타났잖아?”

아마도 이안을 본 순간, 녀석은 천재일우의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식으로 급작스럽게 일을 진행할 리 없었다.

“놈을 막아야 하네.”

작은 도마뱀, 벨라크론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이안은 생각이 조금 달랐지만.

“용족은 어차피 내 영지에서 살아도 되잖아. 놈을 처리하긴 해야겠지만, 지상으로 나올 거라면 저 태양이 꼭 필요한 건 아닐 텐데?”

이안의 영지, 알자스에는 빈 땅이 많다.

용족의 수가 그리 많은 것도 아니니 그들에게 생활할 공간을 제공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리라.

“그게 문제가 아닐세. 저길 보게나.”

하지만 벨라크론, 꼬마용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젓고는 손가락으로 허공을 가리켰다.

이안과 일행의 고개가 손가락 끝에 걸려있는 검은 태양으로 향한 순간.

“태양이….”

무언가를 발견한 알론소의 눈이 커졌다.

“음?”

이상한 점을 발견한 것은 이안도 마찬가지였다.

조금 전만 하더라도 완벽한 원을 이루었던 마법 태양, 선조의 빛이.

“일그러졌어. 어떻게 된 거지?”

지금은 마치 누군가가 한 입 베어 물기라도 한 것처럼, 한쪽이 쪼그라들지 않았는가.

“저걸 만드는 데 백 개의 신기가 들어갔네.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을 리가 없지 않은가.”

이안의 물음에 벨라크론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안전장치?”

“누군가가 선조의 빛에 위해를 가할 경우, 선조의 빛은 스스로 자신이 가진 신성력을 압축하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한계까지 압축된 신성력은 자신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붕괴할걸세.”

“그러면?”

벨라크론의 말에서 불길함을 느낀 이안이 꼬마용을 재촉했다.

그리고.

“아마, 이 도시도 함께 무너지겠지.”

이안은 자신의 감이 틀리지 않았단 사실을 깨달았다.

***

“아직 시간은 있네. 선조의 빛을 원래대로 돌려놓을 수 있다면, 안전장치의 가동도 중단될 걸세.”

“말이 쉽지, 젠장.”

품에서 방향을 지시하던 벨라크론의 말을 듣고는 이안이 인상을 찌푸리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정체불명의 것이 선조의 빛을 침범했다는 사실만을 알고 있을 뿐,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알 도리가 없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게나. 수정탑에 도달한다면 분명 방법이 있을 테니까.”

“아니, 용족은 다 불멸자라며? 불멸자면 보기만 해도 척하고 기억해내야 하는 것 아냐?”

이안은 벨라크론의 말을 듣곤 고개를 갸웃했다.

예전에 봤던 판타지 소설에서, 용들은 한 번 보면 절대 잊지 않는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고 나와 있었으니까.

“자네는 삼 년 전 이날에 먹은 밥을 기억하나?”

하지만 벨라크론은 무슨 소리를 하냐는 표정으로 이안을 올려다 봤다.

“우리는 영생할 뿐이지,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란 말일세. 그 많은 정보들을 전부 기억할 수 있다면 책이나 수정탑 따위는 필요조차 없지 않겠나.”

하지만 이안은 이해할 수 없었다.

“난 기억하는데? 초코바 두 개.”

이안은 지금까지 있던 모든 일을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그의 사고방식 안에선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가세나. 언제 선조의 빛이 붕괴할지 모르니 말일세.”

하지만 벨라크론은 그의 말을 농담으로 듣고 넘겼다. 이안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이럴 때 녀석이 있다면 도움이 될 텐데…’

지금은 봉인당한 페르소나에 잠든 미미르를 떠올린 이안이 입맛을 다셨다.

신검 레온하르트와 800년의 세월을 공유한 녀석이라면, 무언가라도 알고 있지 않을까.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막상 필요할 때 없으니 녀석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졌다.

“그런데, 다른 자들은 어디로 갔는가?”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벨라크론이 이안의 품속에서 고개를 갸웃했다.

용족의 지식저장소, 수정탑으로 향하는 것은 이안과 벨라크론뿐.

나머지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으니까.

이안은 짤막하게 답했다.

“플랜 B.”

“프, 플랜…? 그게 뭔가?”

생전 처음 들어보는 단어에 벨라크론이 큰 눈을 끔뻑였다. 이안이 부연설명을 시작했다.

“우리가 실패한다면, 그 뒤처리를 해야 하지 않겠어?”

만약 이 계획이 실패한다면, 드래고니아는 통째로 대지 아래에 잠겨버린다.

설사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남은 용족들의 목숨은 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쯤 알리시온이나 다른 엘더드래곤과 접촉했을 거야. 여차하면 우리 계획을 도와줄 수도 있을 거고.”

“하긴, 수정탑을 들어가는 데에는 무력이 필요 없을 테니 말일세. 합리적이로군.”

이안의 말을 듣고 벨라크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우린 이 안에 들어가면 되는 거지?”

발길을 멈춘 이안이 눈앞을 가로막은 투명한 문을 바라봤다.

수정탑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전체가 불투명한 수정으로 이루어진 문이 이안의 눈에 들어왔다.

단지.

“탑이라며?”

“음?”

“탑은 어디 있는 거야?”

눈앞에 있는 것이 탑이 아니라, 그냥 동굴이란 것이 문제일 뿐.

“문은 수정이고, 탑은 그냥 갖다 붙인 건가?”

어처구니없어하는 이안을 보곤 벨라크론이 고개를 저었다.

“수정탑은 자네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탑의 개념과는 다르다네. 들어가 보면 알 걸세.”

“그래?”

벨라크론의 말을 들은 이안은 조금 의아했지만 따지고 있을 시간 따윈 없었다.

끼익

문고리를 잡은 이안이 힘을 살짝 주자 수정으로 만들어진 문이 부드럽게 뒤로 열렸다.

“아, 이래서 탑인 거라고?”

문을 열고 내부의 광경을 확인한 이안은 그제야 벨라크론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동굴 안에 있는 것은 오직 계단뿐.

위로, 아래로 끝없이 뻗어있는 나선의 계단이 동굴의 위와 아래를 관통하고 있었다.

“어차피 지하에 세워질 탑인데, 굳이 위와 아래의 구분을 둘 필요는 없지 않은가.”

딴엔 맞는 말이었기에 이안은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남아있었다.

“그럼 어디로 가야 하지?”

위와 아래. 두 갈림길 중 하나를 택해야 했으니까.

“위로 올라가면 되네.”

벨라크론이 짧은 앞발을 치켜들었다. 이안은 도마뱀이 가리킨 방향에 따라 무한히 뻗은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속도는 이안의 생각보다 훨씬 빨랐다.

구우웅

“에스컬레이터?”

계단이 스스로 움직일 거라곤 생각지도 못한 이안은 살짝 놀랐다.

“설마 그 높은 계단을 걸어 올라갈 생각은 아니었겠지?”

벨라크론이 피식 웃었다. 이안은 입을 다문 채 스스로 움직이는 계단에 몸을 맡겼다.

구궁

얼마 지나지 않아, 이안과 벨라크론은 탑의 꼭대기에 도달했다.

“호오.”

멈춰버린 계단을 벗어나 바닥에 발을 디딘 이안은 눈앞의 광경을 보고 감탄했다.

방의 중앙에는 수정탑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사람 한 둘을 합친 것보다 거대한 수정이 둥둥 떠 있었다. 이안은 천천히 수정 앞으로 다가갔다.

“수정에 손을 갖다 대 보게나.”

이안은 벨라크론의 말에 따라 손을 뻗었다.

수정의 차가운 감촉이 이안의 손끝에 전해지는 순간.

지잉

[용들의 지식저장소, 드래곤피디아에 접속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응?”

눈앞에 떠오른,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익숙한 메시지에 이안은 순간 멈칫했다.

곧이어, 온갖 정보가 적힌 네모난 창이 이안의 시야를 가득 메웠다.

이건….

“인터넷?”

가운데의 기다란 검색창, 그리고 그 아래에 달린 몇 개의 메뉴.

지구에서 유명한 인터넷 포털의 인터페이스와 너무나 유사한 그 모습에, 이안은 순간 이곳이 지구라고 생각할 뻔했다.

하지만.

“뭐하나? 어서 선조의 빛을 원래대로 돌릴 방법을 찾아보지 않고. 시간이 없네, 시간이.”

가슴팍에서 들려오는 작은 도마뱀의 외침이, 이곳이 지구가 아니란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정신을 차린 이안은 눈앞의 검색창에 시선을 집중했다.

그러자, ‘드래곤피디아’라고 적힌 큼직한 글자 아래 하얀 네모 칸에 글자가 적히기 시작했다.

[선조의 빛을 복구하는 법]

‘이렇게 적어도 되는 건가?’

순간, 검색창에 적힌 문장을 본 이안이 머리를 긁적였다.

하지만 선조의 빛에 관해 아무런 전문지식도 없는 이안으로서는 이 정도가 한계였다.

‘뭐, 안 되면 벨라크론에게 다시 물어보자고.’

생각을 마친 이안은 가볍게 검색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선조의 빛을 복구하는 법’에 대한 검색결과입니다. 선조의 빛에 문제가 생긴 경우, 다음과 같은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1….]

“와.”

결과를 확인한 이안은 제법 놀랐다.

지구의 인터넷은 아니었지만, 이안이 물어본 질문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네모난 창 안에 주욱 나열되어있었다.

“이게 바로 용족이 지난 수천 년간 쌓아온 지식의 정수일세. 놀랄 만도 하지.”

이안의 놀란 모습을 본 벨라크론이 조금 여유를 찾은 듯 미소를 보였다.

아무리 상대가 엘더급의 용족이라지만, 파이톤과 알론소가 계획대로 다른 엘더급들을 모아온다면 제압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테니까.

“자, 이제 어서 떠나세나. 계획대로 움직여야지.”

일 분 일 초라도 빨리 사태를 해결하고 싶었는지, 벨라크론은 이안을 재촉했다.

하지만.

“잠깐, 그 전에.”

이안은 벨라크론을 잠시 제지하곤, 눈앞의 네모난 창에 다시 정신을 집중했다.

‘혹시, 이거라면….’

이안 역시, 일 분 일 초라도 빨리 해결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까.

이안의 의지에 따라, 검색창의 안에 한 문장이 들어찼다.

[언령을 해제하는 방법]

검색.

이안은 망설임 없이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언령을 해제하는 방법에 대한 검색결과입니다…]

그의 눈앞에, 족쇄를 풀 열쇠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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