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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67화 (68/224)

#67화

백 년은 긴 시간이다.

갓난아이가 묘지에서 백골이 되고, 콩알만 한 씨앗이 거목으로 자라나는 시간.

그리고.

“이런 개….”

이안의 마력과 페르소나에 걸린 봉인이 다시 풀리는 시간.

“그냥 지금 뒈지는 게 빠르지 않을까?”

벨라크론의 말을 듣고 입꼬리를 일그러트린 이안이 이죽거렸다.

오러 마스터나 3급 이상의 대마법사가 아닌 이상에야, 인간의 몸으로 어찌 백 년을 살 수 있단 말인가.

그의 마력에 가해진 봉인이 풀리는 것보다 이안이 관속에 들어가는 게 더 빠르다는데 이안은 금화 한 닢도 걸 수 있었다.

“물론, 다른 방법도 있긴 하네. 별반 차이는 없지만 말야.”

그러자 노란 도마뱀이 짧은 팔로 턱을 긁적이며 말했다.

순간, 이안의 눈빛이 변했다.

“그게 뭐지?”

어떤 가능성이라도 없는 것보단 나았다.

진짜로 백 년을 기다릴 게 아닌 이상에야 말이다.

“어려운 건 아닐세. 단지.”

이안이 묻자 벨라크론이 뜸을 들였다. 이안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되물었다.

“단지?”

“언령에 소모한 용혈의 힘보다 더욱 강력한 힘이 필요할 뿐일세. 백 년 동안 준비한 언령이라면, 인간들이 사용하는 비행함이 십 년 동안 사용하는 마력과도 비견할 만하겠지.”

“확실히, 비슷하긴 하네. 뭐든 내가 죽기 전엔 힘들겠는데.”

모든 이야기를 들은 이안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순도가 낮을 뿐, 비행함 한 척을 움직이는 데 들어가는 마력은 어지간한 오러 마스터가 가진 오러보다도 많다.

그만한 마력을 모으는 것도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란 말이다.

“이안, 일단은 몸을 피하자. 우리 영지로 돌아가면 분명 방법이 있을 거야. 어쩌면 아버지께서 알고 계실지도 모르고.”

노란 도마뱀을 안고 있던 파이톤이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그의 아버지, 탈마공이라면 분명 이안의 마력에 걸린 봉인을 풀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건 안 돼.”

파이톤의 말에 이안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에겐 아직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아있었으니까.

“알론소가 남아있어. 녀석도 함께 가야 해.”

마르센 제국의 6황자, 알론소 폰 마르세니아.

녀석이 아직 드래고니아에 남아있었다.

“미쳤어?”

그 말을 들은 파이톤이 이안을 미친놈 보듯 바라봤다. 하지만 이안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아직 가능성은 있어. 네 힘이라면 엘더급의 드래곤을 능히 능가할 테니, 인간 남자 하나 정돈 충분히 구할 수 있겠지.”

“난 네가 그렇게 착한 놈인 줄 몰랐는데. 허.”

“아직 나에게 필요한 녀석이니까.”

파이톤이 고개를 갸웃하자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이안이 이타적이기 때문은 아니다.

알론소는 이안이 제국과 교섭할 때 쓰일 열쇠.

구할 시도조차 하지 않고 돌아가기엔, 그 손해가 너무나 컸다.

한 가지 문제가 있긴 했지만.

“그래서, 그 몸뚱이로 누굴 어떻게 구하려고? 그때처럼 이빨로 물어뜯기라도 할 생각이야?”

지금의 이안은 총도, 마력도, 오러도 다룰 수 없다는 것.

“나 혼자라면 상관없지만, 너까지 데리고 용들을 상대하는 건 좀 곤란한데. 네가 오러라도 사용할 수 있다면 모를까.”

용족이 약하다고는 하지만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마력과 신성력을 다룬다.

그림자신의 힘 역시 제한적으로만 부릴 수 있으니, 지금 이안의 힘으로는 전력을 다해도 갓 태어난 해츨링 하나 상대하는 것조차 힘에 겨우리라.

“그건 지금부터 생각해봐야지.”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파이톤의 손 위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새끼도마뱀을 바라봤다.

“벨라크론, 알론소의 위치는?”

“내가 만들어 낸 아공간에 있네.”

“아공간?”

아공간이라니.

벨라크론의 말을 듣곤 이안이 되물었다.

“정상적으로 용혈을 깨우기 위해선 주변의 간섭이 없어야 하니까. 현실 공간에선 불가능한 일이니, 아공간을 이용해야지.”

벨라크론이 당연한 말을 하냐는 투로 이안을 바라봤다.

“누군가 아공간을 해제하거나 녀석이 용혈을 깨우치기 전까지는 열리지 않을 걸세.”

“그럼 지금 바로 해제하면 되잖아?”

“전룡회 녀석들이 이미 그곳에 있을 거란 게 문제일세. 아공간의 입구를 내 거처에 만들어 두었거든.”

“흠.”

“말레이우스도 같이 있겠지. 생각만큼 쉽지는 않을 걸세.”

벨라크론의 설명을 들은 이안은 잠시 턱을 괴곤 생각에 잠겼다. 파이톤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이안, 지금이라도 포기하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아무리 나라도 엘더급 하나를 상대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

하지만 이안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방법이 있어. 확실한 건 아니지만.”

손가락 하나를 편 이안이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곤 입을 열었다.

***

벨라크론의 거처.

다른 동굴들보다도 유독 크고 넓은 입구 앞으로, 전룡회의 용들이 각기 인간의 형태로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좀 더 그럴싸한 일을 할 줄 알았는데, 고작해야 정문 경비라니.”

하지만 분위기는 썩 좋지 않았다.

“그런 말 말게. 말레이우스님의 명령이지 않은가. 인간 놈들에게 피습당한 벨라크론님이 회복되기 전까진 어쩔 수 없지.”

“그건 그렇지만….”

한 용이 투덜대자 옆에서 전방을 감시하던 용이 핀잔을 주었다.

“조금만 기다려보자고. 곧 때가 되면 드래고니아 밖의 필멸자 놈들을 모조리 몰아낼 거라 하시니 말일세.”

“그래, 그 날이 어서 빨리 왔으면 좋겠군. 말레이우스님은?”

“혹시 인간들이 또 나타날지 몰라 다른 엘더급 용들과 함께 바깥으로 순찰을 나가셨네. 망할 필멸자 놈들….”

말을 마친 용이 화가 난다는 듯 발로 땅을 쿵쿵 굴렀다.

“그런데…”

그 옆에서 손에 든 수정구를 몇 번 만져보던 용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이 자식들은 왜 연락이 안 되지?”

전룡회의 본부를 지키고 있어야 할 용들 중, 어느 하나도 연락을 받지 않았으니까.

화를 내던 용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잠이라도 자고 있나 보지, 자네 같으면 마력도 못 쓰는 인간 하나를 감시하는 데 얼마나 공을 들이겠나. 그런 일에 용이 셋이나 필요하다니, 말레이우스님 생각도 참 모르겠단 말이지.”

“확실하게 하자는 생각이시겠지. 아직 필멸자 한 놈을 잡지 못하지 않았는가. 혹시라도 일족에 대죄를 지은 죄인을 놓치기라도 한다면 곤란해지니 말일세.”

“그런 죄인은 당장에 영혼을 뽑아서 갈아 마셔야 하는데 말이야.”

용들의 수다는 끊이지 않았다.

용족이 다른 종족보다 우월하다는 전룡회의 사상을 가진 그들이, 비겁하게 암수나 쓰는 인간을 두려워할 리 없지 않은가.

하지만.

타타타탓

그들의 수다는 곧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음?”

“저게 뭐지?”

앞에서 급히 달려오는 무언가.

“적인가?”

두 용이, 손을 들어 마력을 집중시키며 전방을 경계했다.

상대의 얼굴을 확인하기 전까진.

“베르나우스?”

자신들과 같이 전룡회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용.

하지만.

“넌 본부를 지켜야 하잖아?”

본부를 지켜야 할 그가 왜 여기에 있단 말인가.

용의 물음에 베르나우스가 다급히 말했다.

“본부가, 습격당했어.”

“뭐?”

습격.

그 말뜻을 이해한 두 용의 눈이 커졌다.

“그, 베르키온님을 습격한 필멸자 놈이…나 말고 나머진 다 당했어. 도움….”

철퍼덕

말을 채 마치지도 못한 용은 땅에 기절해 쓰러졌다.

그와 동시에.

콰아아아앙

쓰러진 용이 뛰어온 방향에서 나타난 섬광과 폭음.

“이, 이런!”

그제야 두 용은 이 사태가 보통 일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머저리 같은 자식들, 그걸 왜 이제야 알려주는 거야!”

“가자, 말레이우스님이 오실 때까지 놈을 막아야 해!”

욕지거리를 내뱉은 용들이 급히 마법을 사용해 하늘로 떠올랐다.

순식간에 날아간 그들은 곧 하늘의 점이 되었다.

자리에 남은 것은, 한 마리의 쓰러진 용뿐.

그때.

“끄응.”

바닥에 쓰러진 용이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몸에 묻은 흙먼지를 툭툭 터는 용의 입가에는 미소가 어려 있었다.

“생각보다 쉬운데?”

“그러게 말일세. 설마하니 자네 말이 맞을 줄은 몰랐네.”

유유히 빈 동굴로 들어가는 이안의 품에서, 벨라크론이 영 좋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이제 그 마법을 풀지 그러나. 썩 보기 좋지는 않네만.”

지금 이안이 뒤집어쓴 용의 환영은 이안이 감옥에서 쓰러트린 간수의 것.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지만, 죽은 동족의 환영을 뒤집어쓴 이안의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속에서 좋지 않은 감정이 생겨났으니까.

“안 돼.”

당연하지만 이안은 단칼에 거절했다.

“아직 적들이 안에 남아있을 수도 있으니까.”

혹여나 들키기라도 한다면, 일말의 무력도 없는 이안에겐 최악의 상황이었다.

“파이톤이 그렇게 시간을 오래 끌어주진 못할 거야. 빨리 움직여야 해.”

그 발동방식이 독특한 이안의 것을 제외하면, 페르소나의 힘은 위력적이지만 마력을 많이 소모한다.

상대를 격멸하는 게 아니라, 단순히 시간을 끌기엔 그다지 적합한 물건이 아니었다.

“이쪽일세.”

이안은 벨라크론의 안내에 따라 빠르게 움직였다.

천만다행으로 다른 용들과 마주치지 않은 이안은 순식간에 동굴의 어느 방에 도달했다.

“여긴….”

이안은 놀란 표정으로 방을 둘러봤다.

거대한 마법진이 있다거나, 정체를 알 수 없는 장치들이 방을 가득 메웠기 때문은 아니었다.

“아무것도 없잖아?”

텅 빈 방 안을 이루는 것이라곤 갈색의 돌벽과 천장에 박힌 마법 구슬뿐.

이안의 기대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아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은 용족의 최상급 권능 중 하나네. 복잡한 마법진이나 마법기 따위는 필요 없지.”

그러자 이안의 코트 품에 안겨있던 벨라크론이 당연하다는 투로 받아쳤다.

“이제부터 아공간을 강제로 개방하겠네. 그자가 과연 용혈을 깨웠을지는 알 수 없네만… 다음에 또 기회가 있을 테지.”

말을 마친 작은 도마뱀은 짧은 양팔, 아니 앞발을 앞으로 쭉 내뻗었다.

하지만 그가 아공간을 강제로 개방하기도 전.

쩌저적

허공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아공간이 열리는 것을 처음 본 이안은 눈을 끔뻑였다.

“원래 이런 식으로 열리는 거야?”

“내가 한 게 아니네. 이건….”

당황한 벨라크론이 채 말을 다 마치기도 전.

쨍그랑

마치 유리 조각이 깨져나가듯, 허공에 간 실금이 조각조각 깨져나갔다.

거칠게 깨져나간 공간 뒤로 보이는 것은 짙은 어둠뿐.

그리고.

허공에서 나타난 사내가 바닥에 착지했다.

“알론소?”

“뭐야, 이안이잖아? 품에 그건 벨라크론님?”

알론소는 갑작스레 나타난 이안을 보고 당황했다. 하지만 당황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성공했군. 이렇게 빨리 용혈을 깨우는 데 성공할 줄이야…”

알론소의 기세가 전과는 다르다는 점을 깨달은 벨라크론이 신음성을 냈다.

“용혈?”

알론소의 변화를 눈치챈 이안이 놀란 표정으로 말을 걸려던 순간.

쿠르르릉

동굴의 바깥에서 갑작스런 굉음이 터져 나왔다.

“…밖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좋진 않아. 일단 여길 빠져나가자.”

심상찮은 분위기를 느낀 알론소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안과 알론소는 급히 동굴 밖으로 향했다.

‘파이톤인가?’

파이톤과 용의 전투가 제법 격렬한 모양이다, 라고 이안은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동굴 밖을 나서자마자.

“저건?”

이안은 그 판단이 틀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선조의 빛이….”

하늘을 바라본 벨라크론이 침음성을 냈다.

선조의 빛.

드래고니아를 밝게 비추는 순백의 태양이.

고오오오-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 듯 검게 물들어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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