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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66화 (67/224)

#66화

신성력은 모든 힘 중에서도 가장 사용하기 까다로운 힘이다.

신의 의지인 신성을 신성력으로 변환하기 위해선, 신성을 버텨낼 정신력과 이를 녹여낼 마력이 필수적이었으니까.

하지만.

‘어째서….’

이안은 마법구 아래에서 꿈틀대는 그림자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스윽

그의 마력이 모두 봉인되었음에도, 그림자신의 힘은 여전히 이안의 앞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이안은 재빨리 자신을 감시하던 간수들을 살폈다.

“말레이우스 님께서는 좀 늦으신다면서?”

“해결할 일이 있다 하시더군.”

‘눈치채지 못했어.’

다행히도, 용들은 이안에게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이안은 다시 꿈틀대는 그림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스으윽

어떠한 의지도 부여되어있지 않기 때문일까.

마치 끓는 용암처럼 제멋대로 수축과 확장을 반복하는 그림자는 그 자체만으로 기괴했다.

이안이 할 수 있는 추론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혹시, 신성은 봉인 당하지 않은 걸까?’

어째서 미미르가 움직이지 못하는가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없었지만, 그것만이 눈앞에 꿈틀대는 그림자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가설이었다.

이안은 빠르게 결심을 굳혔다.

‘어차피 다른 길은 없다.’

시도하지 않는다면 결말은 뻔하다.

이 상황을 탈출할 수 있는 최후의 희망을 발견한 이안은 다시금 눈을 감았다.

혹시라도 몸 안에, 혹은 페르소나에 남아있을지 모를 그림자신의 힘을 느끼기 위해서.

‘분명 무언가가 있을 거야.’

느껴지는 것이라곤 완전히 돌처럼 굳어버린 마력과 오러뿐.

하지만 이안은 집중했다. 희망이 있다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으니까.

이윽고.

‘역시!’

이유를 찾아낸 이안은 속으로 환호성을 터뜨렸다.

두근

본래는 몸속 전체를 순환해야 할 힘.

두근

지금은 봉인되어 굳어버린 몸속의 마력과 오러 사이로, 아주 미약하지만 맥동하는 좁쌀만 한 알갱이가 느껴지고 있었다.

이안은 그 정체를 쉽사리 짐작할 수 있었다.

‘쉐도우베인의 일부겠지.’

그 크기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아졌을지언정, 모양만큼은 이안이 라비린토스에서 삼킨 심장 모양의 신기와 동일했다.

‘이제 남은 건, 내 의지에 반응하는지를 확인하는 것뿐이다.’

마지막 희망.

이안은 천천히, 조심스럽게 의지를 불어넣었다.

그러자.

‘움직인다.’

좌로, 우로, 확장과 수축.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이안의 모든 힘이 봉인된 상황임에도 녀석은 마치 수족처럼 이안의 의지에 따라 움직여주었다.

‘잘만 이용하면….’

이 감옥을 탈출할 수 있는 열쇠가 될지도 모른다.

가능성을 찾아낸 이안의 눈동자에 희망의 빛이 돌았다.

이안은 용들에게 들키지 않게 표정을 관리하면서, 서서히 몸속에 남아있는 그림자신의 힘을 움직였다.

‘적은 여섯, 모두 용족.’

페르소나에 버금가는 힘을 가진 엘더급이야 아니겠지만, 한 줌의 마력도 가지지 않은 이안에게는 마왕보다도 버거운 상대다.

‘눈치채지 못하게, 단숨에 끝내야 해.’

우웅

이안은 그림자신의 힘을 사방으로 퍼뜨렸다.

평소 같으면 마력이 그림자신의 신성력을 보조했겠지만, 지금은 모든 마력이 봉인된 상태.

그림자를 움직이기 위해 이안은 평소의 몇 배에 달하는 심력을 쏟아내야 했다. 그의 이마에서 한 방울의 땀이 흘러내렸다.

그와 동시에.

스윽

그림자가 움직였다.

빛이 있는 곳에는 그림자도 있는 법.

그것은 감옥을 경비하는 간수들의 발밑에도 적용되는 말이었다.

‘셋.’

스으으

용들의 발밑에 검게 드리운 그림자들 위로, 무언가가 뭉쳐지기 시작했다.

이안의 의지에 따라 솟아오른 그것은 총탄이라기엔 너무 컸고, 포탄이라기엔 너무 짧았다.

“…용족의 세상이 올 걸세. 조금만 참아보자고.”

“빨리 인간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고 싶은데 말야.”

그림자의 힘은 아무런 기척도, 소리도 내지 않는다.

간수들이 제 발밑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 수다를 떨고 있을 동안, 이안은 그림자의 힘을 한계치까지 뿜어냈다.

‘확실하게 가자.’

금방이라도 튀어나갈 것처럼 요동치는 그림자들을 억제하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혹여나 한 놈이라도 살아남는다면 탈출은 도루묵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이윽고, 그 한계가 도달했다.

몇 줄기의 땀이 턱을 타고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금방이라도 기절해버릴 것 같은 고통이 찾아왔다.

하지만.

‘지금.’

이안은 바로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

그가 눌러왔던 모든 힘을 해방시키는 순간.

콰아아아앙

적들의 발밑에서, 폭발과 함께 그림자의 파편이 용들을 덮쳤다.

***

“놓쳐버렸군.”

드래고니아의 제1장로, 벨라크론의 침소.

하지만, 그 안에선 주인 대신 실버 드래곤 말레이우스가 이를 갈고 있었다.

“이렇게 놓쳐버리기엔 대가가 너무 큰데 말이야….”

말을 마친 말레이우스가 검은 기운이 흐르는 손으로 피눈물이 흐르는 왼쪽 눈을 감싸 쥐었다.

용혈(龍血).

용이 가진 권능의 근원을 폭주시키는 대가로 놈들이 요구한 것.

이 힘으로 거의 고룡에 근접한 엘더급 드래곤을 몰아붙일 순 있었지만, 고작해야 쫓아내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 걸 숨기고 있었단 말이지….”

분명 전투는 말레이우스의 압도적인 우세였다.

싸울 준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벨라크론은 이미 용혈을 폭주시킨 말레이우스를 상대로 그저 버티기밖에 할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감쪽같이 사라져버릴 줄이야.”

말 그대로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린 벨라크론을 떠올린 그가 입맛을 쩝쩝 다셨다.

큰 부상을 입혔으니 당분간 자신을 방해하지는 못하겠지만, 언젠가는 찾아서 끝장을 내야 하리라.

“우선은 일족을 내 손에 넣은 다음에 말이지. 인간에게 일족을 맡긴다니, 미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발상이야.”

말레이우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다음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침소 밖으로 나왔다.

좁디좁은 동굴에 일족들이 모여 산 지도 800년째.

하지만 개인주의적인 성향은 크게 변하지 않아서, 제1장로인 벨라크론의 침소를 지키는 용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흠.”

침소의 문을 나선 말레이우스는 이 동굴을 비추는 백색의 태양, 선조의 빛을 바라봤다.

지하도시 드래고니아의 용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빛.

“저주받을 빛이로군.”

하지만, 그에겐 돼지처럼 나태해진 동족들을 우리에 묶어두는 족쇄일 뿐이었다.

지난 800년간 태어난 어린 용 중에는, 한 번도 바깥 태양을 보지 못한 녀석도 있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저 저주받을 빛이 사라져야만, 동족들은 마침내 자유를 찾을 수 있으리라.

“선조들이여, 당신들의 선택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해주겠소.”

말을 마친 말레이우스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자.

고오오오

은빛 용의 전신에서 알 수 없는 붉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용의 힘도, 마력도 아닌 이질적인 힘.

하지만 그 무엇이라도 부술 수 있을 것 같은 패도적인 힘이 그의 몸을 집어삼켰다.

“모든 것은, 일족의 미래를 위해.”

불꽃처럼 타오르는 그가 씨익 웃었다.

그의 손등에는, 은색 용의 표식이 새겨져 있었다.

***

드래고니아의 한 동굴 앞에 만들어진 넓은 공터.

본래는 말레이우스의 거처이지만, 이제는 전룡회의 회합 장소로 더 많이 사용되는 이곳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하지만 그 고요함은 얼마 가지 못했다.

끼이이익

“후우.”

공터의 한쪽 구석.

바닥에 만들어진 비밀 문을 열고 튀어나온 이안은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아무도 없는 것 같긴 한데.’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간수들을 쓰러트린 이안은 지금까지 단 한 마리의 용도 볼 수 없었다.

‘다들 어디로 간 거지?’

아무리 이안이 모든 힘을 봉인 당한 상태라지만, 이 넓은 동굴과 지하 감옥을 지키는 것이 단 셋이란 사실이 말이 된단 말인가.

이안은 뭔가 구린 냄새를 맡았다.

‘당장은 방법이 없지만.’

이안은 땀으로 범벅이 된 셔츠를 내려다보았다.

‘두 번 쓰지는 못하겠어.’

마력이 보조해준다면 모를까, 이안의 의지와 정신력만으로 그림자신의 힘을 부리는 것은 시간과 체력의 소모가 너무 컸다.

간수들이 방심하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안은 이 힘을 쓸 엄두도 내지 못했으리라.

‘이제 어떡한다.’

피로에 침침해진 눈을 매만지며 이안은 지친 머리를 억지로 굴렸다. 그렇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쓰러져 잠들어버릴 것 같았다.

‘우선은 파이톤을 찾는다.’

마법에 관해선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탈마공의 후예라면, 봉인된 이안의 힘을 다시 찾는 방법을 알고 있을지 모른다.

‘어떻게 찾느냐가 문제지만.’

페르소나도, 마력도, 무기도 없이 잠재적인 적들이 우글거리는 곳을 돌아다니며 찾아다닌다?

갓 태어난 용조차 이길 수 없는 지금의 이안에겐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일단은 여길 벗어난다.’

혹시라도 본거지로 돌아오는 용들에게 발각된다면 더 이상의 기회는 없으리라.

생각을 마친 이안은 무거운 몸을 억지로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그가 채 발을 떼기도 전.

“이안! 여기 있었구나!”

“…파이톤?”

파이톤이 왜 여기 있단 말인가.

아무런 기척도 없이 나타난 파이톤을 발견한 이안의 눈이 동그래졌다.

“여긴 어떻게….”

영문을 알 수 없었던 이안은 파이톤에게 물었다.

하지만 대답은 다른 곳에서 들려왔다.

“자네가 여기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생각보다 상태가 좋아 다행이군.”

“벨라크론?”

익숙한 목소리.

이안은 벨라크론을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이 공터에는 파이톤과 이안뿐. 노룡의 모습을 찾을 수는 없었다.

“어디 있는 거야?”

“여기일세, 여기.”

이안은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시선을 움직였다.

이윽고.

“아.”

이안은 파이톤의 손에 들려있는 2등신의 노란 도마뱀을 발견할 수 있었다.

“꼴이 영 좋지는 않군.”

“나도 자네처럼 당해버렸으니 말일세. 말레이우스 그놈이 설마 이런 식으로 일을 벌일 줄이야.”

이안의 말에 새끼 도마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기 몸뚱이만 한 머리를 오뚝이처럼 갸우뚱 거리는 것이 고풍스러운 말투와는 영 어울리지 않았지만, 이안은 아랑곳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언령을 푸는 방법을 알려줘.”

“언령? 그게…이런, 당해버렸군.”

이안의 말에 고개를 다시 갸우뚱한 도마뱀은, 이안의 상태를 깨닫곤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해결해줄 걸세. 언령의 힘은 곧 시간의 힘인지라, 시간이 지날수록 약해지거든.”

‘그래도, 아주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니군.’

한시름 놓은 이안이 궁금했던 부분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봤다.

“녀석 말로는 백 년 정도 쌓았다고 하던데.”

그러자 벨라크론이 해맑게 웃었다.

“그럼 백 년은 걸리겠군. 운이 좋다면 죽기 전엔 풀릴 걸세.”

순간.

이안은 이 도마뱀의 목을 비틀어버릴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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