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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60화 (61/224)

#60화

[이건 그야말로 횡재로군. 이렇게 쉬운 방법으로 신기를 얻을 줄이야.]

“그래도 영 찝찝한데.”

은근히 흥분해있는 미미르의 말을 들은 이안이 인상을 찌푸렸다.

“토한 거잖아.”

아무리 신기가 귀한 것이라지만, 그 겉면에 용의 침이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어 있으니 영 만질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무슨 소리냐. 용의 체액은 예로부터 불로장생의 명약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괜히 용의 육체가 금덩이보다 비싸다고 하는 게 아니지.]

“금덩이고 자시고, 내 나이에 불로장생은 해서 뭐 하려고.”

어차피 덤으로 사는 인생.

거기다 서른도 되지 않은 나이에 불로장생이란 말은 뜬구름 잡는 소리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러자.

“그럼, 필요 없으면 내가 쓴다?”

아직까지 입에 검은 피가 묻어 있는 파이톤이 옆에서 이안의 말을 듣고는 성큼 신기를 향해 다가갔다.

“으, 이 더러운 기분.”

투명한 구슬 모양의 신기에 가까이 다가간 반마족이, 느껴지는 신력에 눈을 찌푸리곤 손을 내뻗었다.

곧, 구슬에 덕지덕지 묻어 있던 침들이 그의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꿀꺽꿀꺽

파이톤은 단숨에 손에 모인 용의 침을 삼켰다.

그러자 피를 너무 흘려 파리해진 혈색이 점차 제 색깔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크으, 이제 좀 살겠네. 이제 저것 좀 치워줘. 어우, 소름 끼쳐.”

순식간에 깨끗해진 구슬을 보고 몸서리를 치는 파이톤을 바라보던 이안은 말없이 구술을 주워들었다. 신력 특유의 따뜻함이 이안의 손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처음 보는 신기로군. 형태 자체는 흔한 편이다만.]

“그래? 어느 신의 것인지도 모르겠어?”

이안이 묻자 미미르가 고개를 저었다.

[나라고 해서 모든 신기를 아는 것은 아니다. 거기다 저 신기는 네가 흡수한 쉐도우베인에 비하면 신기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수준이니까. 기억에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럼 별 쓸모는 없다는 소리네.”

미미르의 말을 들은 이안은 손에 들린 구슬을 바라봤다.

‘확실히 대단한 신성력이 담겨있지는 않아.’

물론 그림자신의 신성이 담겨있던 쉐도우베인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이기는 했지만, 신기보다는 저급의 마법기에 가까울 수준.

하지만 다른 녀석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스으윽

[놈이다.]

권총에서 그림자의 기운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꿀꺽

녀석은 곧 이안의 손에 들려있던 구슬을 삼켜버리곤 다시 제가 있던 권총으로 돌아갔다.

“미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마치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자취를 감춘 구슬에, 어이가 없어진 이안이 작게 중얼거렸다.

신기가 나타나기만 하면 귀신같이 제 뱃속에 밀어 넣는 꼴이 무슨 애완동물이라도 키우는 느낌이었다.

[다시 봐도 놀라운 일이야. 신력이 제 스스로 힘을 키우려 하다니…이대로라면 무언가 형태를 이룰 수도 있겠군.]

“형태?”

미미르의 말에 이안이 신기한 표정으로 미미르를 바라봤다. 사자머리는 재빨리 뒷말을 덧붙였다.

[확실한 것은 아니다. 이런 사례는 여태껏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뭐가 어떻게 된다는 거야?”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

이안이 재차 물어봤지만, 미미르는 대답을 피했다.

“차라리 말을 말든지….”

괜스레 머리만 복잡해진 이안은 한쪽을 바라봤다.

“괜찮아, 우리 동생? 아니 여기 가슴팍 해진 것 좀 봐. 이 누나가….”

어느새 인간의 형태로 변한 두 마리의 용.

개중 금발 머리의 소녀가 쓰러진 사내를 치료하려 하고 있었다.

“저리 가십쇼, 누님. 누님이 치료하면 나을 것도 아프니까. 아니, 그보다 그 신기는 도대체 왜 넘겨준 겁니까? 전룡회 놈들에게 무슨 소리를 들으려고….”

하지만 검은 머리의 사내, 미케론은 소녀의 태도에 질색하며 일어났다. 사내가 화낼 때마다 가슴팍에 나 있던 큼직한 상처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렸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머, 하나뿐인 동생을 살려야 하는데 그깟 신기가 문제겠니? 우리 일족에 몇 되지도 않는 엘더 드래곤인데 말이야.”

말을 마친 소녀가 작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내가 신기 한 두 개쯤 넘긴다고 해서 그 조그만 용들이 감히 내게 대적이나 할 수 있겠니?”

“전룡회를 그렇게 말하는 용은 모든 일족 중에 엘리시온 누님밖에 없을 겁니다. 어휴.”

그 말을 들은 미케론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안은 둘의 대화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저쪽은 그래도 말이 통할 것 같은데.”

둘을 유심히 살핀 이안은 결론을 내렸다.

방금 전까지 피 터지게 싸우던 동생에 비하면, 누나라고 말하는 골드 드래곤은 그래도 생각이란 것이 있어 보였으니까.

“알론소.”

“왜, 왜 그러나.”

이안은 옆에서 계속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알론소를 불렀다. 자신의 잘못을 잘 알고 있는 알론소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이안은 손가락으로 알론소를 가리킨 다음, 다시 두 용을 가리켰다.

“네가 처리해. 난 더 이상 명분이 없으니까.”

그래도, 동족 살해자의 동료보다는 피가 섞인 쪽이 더 말이 잘 통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알론소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젠장, 내가 여길 왜 왔지?’

방금 전, 흑룡이 뿜어낸 죽음의 브레스가 천지를 뒤덮는 것이 아직도 그의 머릿속에 생생히 남아있었으니까.

혹시라도 용에게 공격당할 거란 생각이 있었다면, 그는 절대로 여기까지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뭐해, 안 가고?”

하지만 이안은 싸늘한 눈으로 재촉할 뿐이었다. 알론소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네. 여기서까지 용이랑 붙어먹을 생각이야?”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마냥 천천히 용들에게 다가가는 알론소의 모습을 지켜보던 파이톤이 이안에게 쏘아붙였다.

“도대체 저 용들에게 뭘 받아내려고 그래? 엘더드래곤 이래 봐야 환수급 페르소나를 가진 자격자 둘, 셋이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전 일족을 모아봐야 공작령 하나에도 미치지 못하는 전력을 가진 용 따위의 힘을 얻을 필요가 무에 있단 말인가.

“차라리 그 노력으로 네 평판이나 좀 바꾸지그래? 아직도 우리 고향에선 네 이름이 욕으로 쓰인다고.”

성심성의껏 빈정대는 파이톤을 잠시 바라본 이안은 어깨를 으쓱했다.

“싫으면 가도 돼. 굳이 불편한 자리에 있을 필요는 없지. 몸도 안 좋아 보이고 말이야.”

용들에게 확인할 것이 있었던 이안은 파이톤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

애당초, 파이톤에게 따라와 달라 부탁한 것도 아니고 말이다.

“뭐, 나 혼자 간단 소리는 아니고. 말이 그렇단 거지.”

이안의 말에 파이톤은 피식 웃었다.

그의 영혼을 연구하기 위해 계약까지 맺은 그가 연구대상인 이안의 곁에서 떨어질 리 없지 않은가.

그때.

“뭐어? 메이의 피를 이었다고? 네가?”

갑작스레 터진 감탄사에 이안과 파이톤이 고개를 돌렸다.

“아니, 이 조그만 인간의 몸에 고 녀석의 피가 섞여있단 말이야?”

그곳에선, 금발 머리 소녀가 신기한 눈으로 알론소의 몸을 연신 살피고 있었다.

“맞습니다, 용이시여. 저희 선조께서는 레드 드래곤 메이라우스의 피를 이어받으셨지요. 혹시 괜찮다면 용족의 거처에서 제 용혈을 깨울 방법을….”

“물론이지! 다른 용도 아니고 메이의 후손인데!”

조금 전, 흑룡과의 전투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

[얼추 해결된 모양이야. 진작 이러지 그랬나, 이안.]

“그러게, 빌어먹을 알론소 같으니.”

갑자기 화기애애해진 분위기에 이안이 닭살이라도 돋는지 몸을 떨었다.

***

한 번 허락을 받고 나자, 용들의 은신처로 들어서는 것은 생각보다 쉬웠다.

처음 그녀의 말을 들었을 때, 미케론은 강하게 반대했지만.

‘너, 설마 동족을 못 믿는 거야? 내가 그렇게 가르쳤어? 메이가 어떤 심정으로 여길 나갔는데….’

라는 말에 미케론은 딱히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고, 이안 일행은 아무런 방해 없이 용들의 은신처에 들어섰다.

“은신처라더니, 생각보다 괜찮은데?”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은신처의 광경을 눈으로 훑은 이안이 휘파람을 불었다.

한 종족의 모든 인원이 모여 사는 곳이기 때문일까.

이미 몰락해버린 용족이라지만, 그들이 사는 도시의 규모만큼은 아슈타르와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개중 압권은 지하도시의 천장을 밝히는 거대한 광구(光球)였다.

‘성역에서 봤던 태양 같군.’

눈이 부실 정도로 밝지는 않았지만,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태양으로부터 배어 나오는 따뜻한 신성력이 이안의 몸속을 파고드는 것이 느껴졌다.

“선조의 빛이라고 불러.”

이안이 천장의 광구를 유심히 살피자, 그의 옆에 선 골드 드래곤 소녀가 자랑스럽다는 투로 말했다.

“에인션트 드래곤께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유산이야. 저게 없었으면 드래고니아는 암흑 그 자체였겠지. 저 자체로 무궁한 에너지원이기도 하고.”

그러자 그녀의 옆에 선 흑룡이 이죽거렸다.

“누님께서 그렇게 자랑스러워하시는 만큼 그 힘을 유지시켜 줄 신기도 잘 아껴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동생아, 어차피 그 정도 수준의 신기들은 널리고 널렸단다. 아까도 말했지만, 그딴 물건과 우리 동생을 바꾸기엔….”

[그래서 용들이 그토록 신기를 찾아다녔던 거였어.]

옆에서 이야기를 주워듣던 미미르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절대로 저 태양에 가까이 가면 안 되겠는걸.’

이안은 그 말을 조금 다른 의미로 이해했지만.

혹여나 그림자신의 신성이 저 태양을 집어삼키기라도 한다면, 이곳에 살고 있는 수천 용족을 적으로 삼을 게 뻔하지 않은가.

“자, 따라와. 용혈과 관련된 부분은 난 잘 모르지만, 알만한 분이 계시니까.”

곧 엘리시온이 자신만만한 태도로 이안 일행을 이끌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행의 발걸음은 곧 멈출 수밖에 없었다.

“엘리시온님.”

몇몇의 인간 형태를 한 용들이 진지한 얼굴로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전룡회 꼬마들이 여긴 어쩐 일이야? 지금은 바쁘니까 나중에 와.”

그녀가 대놓고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손을 휘저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을 듣고도 용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개중 가운데의, 리더로 보이는 은발 머리의 사내가 손가락으로 등 뒤를 가리켰다.

“저 뒤의 필멸자들은 누굽니까?”

“내 손님. 너희가 누군지까지 알아야 돼, 말레이우스?”

말레이우스의 질문에 엘리시온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사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엘리시온님, 이곳이 어떤 곳인지 잊으신 겁니까? 필멸자를 드래고니아에 들이시다니,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

“단순한 필멸자가 아니야. 메이의 피를 이은 아이라고. 너희는 언제까지 필멸자들을 배척할 셈이야?”

“피를 이었다고 다른 줄 아십니까? 지금까지 변절자에게 흘린 일족의 피를 생각해 보십시오. 아니면.”

말을 멈춘 말레이우스가 눈을 빛냈다.

“혹, 엘리시온님도 변절자들의 편에 서기로 한 것입니까?”

그 말을 들은 순간, 엘리시온의 눈에서 노기가 피어올랐다. 주변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야, 지금 나랑 한판 해보겠다는 거지?”

“그럼 해명하십시오. 엘더 드래곤이라 해서 드래고니아에 마음대로 필멸자를 들일 권한은 없습니다.”

하지만 상대 역시 엘리시온의 기세에 밀리지 않았다. 둘의 기세가 맞부딪치며 주변의 온도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안, 전투를 준비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미미르의 말처럼, 심상찮은 분위기를 감지한 이안은 이미 권총을 뽑아 든 상태였다.

‘여차하면 쏜다.’

아무리 상대가 용이라지만, 급소에 두 탄창쯤 갈기면 빈틈 정도는 만들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동족의 미래를 짊어진 놈들끼리 이게 무슨 짓이냐.”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은발의 노인이 신경전을 벌이던 둘 사이를 가로막았으니까.

“할아버지?”

“벨라크론님?”

갑작스런 등장에 두 용은 깜짝 놀랐다.

하지만 노인의 관심 대상은 두 용이 아니었다.

노인의 손가락이 그 뒤의 이안을 가리켰다.

“자네, 잠시 시간을 좀 내줄 수 있겠나?”

“저 말입니까?”

“그래, 자네 말일세.”

이안이 자신을 가리키며 묻자,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관리자의 이름을 가진 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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