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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59화 (60/224)

#59화

용들이 칠영웅과 연합공국을 싫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칠영웅 중 하나인 참룡공의 후손들은 그 이명대로, 용들과는 800년 전부터 피로 얼룩진 악연을 쌓아왔으니까.

하지만.

“우리가 칠영웅의 후손이란 건 어떻게 안 거지?”

저 흑룡은 어떻게 우리의 정체를 알고 있는 것일까.

의아해진 이안의 물음에 흑룡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네놈들의 몸에서 갈리우스가 만들어낸 저주받을 병기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데 어찌 모르겠느냐.

말을 마친 흑룡이 움츠린 네 다리를 일으켰다. 가뜩이나 거대한 놈의 몸뚱이가 더 거대하게 보였다.

‘페르소나의 기운을 느낀다고?’

생각지도 못한 흑룡의 말에 이안은 조금 당황했다. 이안이 조심스럽게 마력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족의 어린 용이나 노리는 도적 떼들아, 지금까지는 네놈들 뜻대로 됐을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어림도 없을 줄 알아라.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면.

파지지직

흑룡의 말과 동시에, 놈의 몸에서 강렬한 스파크가 터져 나왔다. 그와 함께 흉폭한 기세가 주변의 공기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아니, 어떻게 용 따위가 이런 힘을….”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압력에 파이톤이 인상을 찌푸리며 경악했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오며 마주친 용들은 고작해야 병기급 페르소나에도 미치지 못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이런 힘을 가진 용이 남아있었다고? 설마….]

경악한 것은, 용들이 멸망한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미미르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이 시대의 용들이 이토록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그 해답은 흑룡의 입에서 나왔다.

-용족의 수호자 중 하나, 나 엘더 드래곤(Elder Dragon) 미케론이 네놈들을 찢어발겨 버릴 테니까.

“엘더급의 용족이라고?”

엘더급.

그 단어의 뜻을 알고 있는 파이톤은 경악했다.

이안도 들어본 적이 있는 호칭이었다.

신에 비견될만한 힘을 가진 에인션트 드래곤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그 숫자를 바탕으로 용족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는 고룡들.

‘그리고, 지금은 모두 사멸한 용들.’

에인션트 드래곤과 함께 사라졌다고 전해지는 고룡 중 하나가.

이안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당황하지 마라, 이안. 800년의 세월이 지났으니 에인션트급은 아니어도 엘더급의 드래곤은 나타날 수도 있을 거다. 용족도 멍청한 놈들은 아니었으니 후일을 안배했을 테니까.]

“당황한 적은 없어.”

미미르의 말에 이안은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상대가 엘더급이건, 에인션트 급이건 그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으니까.

문제는.

‘알론소 저 자식, 말이 다르잖아. 신기만 들고 가면 절이라도 할 것처럼 말하더니.’

이안이 알론소를 노려보자 알론소가 자신도 몰랐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두고 보자.’

하지만 딱히 방법은 없었다.

알론소 때문이 아니더라도, 이안에겐 용을 만나야만 할 이유가 있었으니까.

그러니.

“이봐, 용.”

일단은 뭐라도 해볼 수밖에.

“우린 너희와 싸울 생각이 없다. 단지 너희들과 대화를 하고 싶을 뿐이야.”

-하. 대화?

화륵

하지만 흑룡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이안을 바라봤다. 석탄처럼 꺼먼 코에서 검은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일족의 아이들을 무참하게 죽여 놓은 놈들이, 감히 내 앞에서 대화를 논해? 낯짝도 두껍구나.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다는 듯, 분노한 흑룡이 고개를 들었다.

우우웅

쩌억 벌어진 흑룡의 입에서 묵빛의 기운이 이글거렸다. 놈의 붉은 눈은 심장이 멎을 듯한 살기로 번들거렸다.

-마음이 바뀌었다. 그냥 죽어라.

“이안, 뒤로!”

흑룡이 서슬 퍼런 말을 내뱉는 순간.

“오라, 기아스!”

파이톤이 자신의 페르소나인 구슬을 가동한 채 앞으로 나섰다.

재빨리 뒤로 빠진 이안은 권총을 쥔 오른손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그와 동시에.

콰아아아

애시드 브레스(Acid Breath).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녹여버리는 강력한 산이 흑룡의 입에서 석유처럼 뿜어져 나왔다.

치이이익

흑수(黑水)에 닿은 암석들이 부식돼 잘게 으스러졌다. 그 독기를 마신 풀과 나무들이 브레스의 독성을 견디지 못하고 누렇게 말라비틀어지거나 타들어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푸스스

언제 이곳에 푸르른 생명들이 있었냐는 듯, 검은 브레스가 지나간 곳에 남은 것은 검게 물든 흙과 회색 재뿐.

-감히 일족의 미래를 노린 자들에게 돌아갈 것은 죽음뿐이다.

인세의 지옥이 만들어내는 검은 안개를 보며 흑룡, 미케론이 이빨을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그가 엘더급에 오른 지 얼마 안 되긴 했지만, 엘더급의 용족이 쏘아내는 브레스는 중급 이상의 마족이라도 견디기 힘든 공격이다.

칠영웅의 피를 이었다 해도 고작해야 필멸자에 불과한 녀석들이 감히 자신의 브레스를 견디고 살아남았을 리 없지 않은가.

-이 땅은 보존해둬야겠군. 침입자에 대한 경고로 말이지.

안개를 대충 훑어본 흑룡은 다시 자신의 영역인 지하로 돌아가려 했다.

“뭐라는 거야, 도마뱀 새끼가.”

-아니?

서서히 걷혀가는 검은 안개 속에서, 빌어먹을 필멸자들이 나타나기 전까진.

“하, 빌어먹을 도마뱀새끼…”

인세의 지옥 한가운데, 반구형으로 펼쳐진 푸른빛의 장막.

그 중심에서 검게 빛나는 구슬을 들어 올린 파이톤의 입에서 한 줄기 검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파이톤, 몸 상태는?”

“괜찮아. 상대가 엘더급이라 좀 무리하게 힘을 쓰긴 했지만…우욱.”

이안이 다급히 묻자 파이톤이 애써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안은 한눈에 그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싸우긴 무리겠어.’

아마, 이 장막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한계 이상의 힘을 쓰고 있으리라.

-필멸자 놈들, 한 가닥 재주는 있는 모양이로구나.

생각보다 너무 멀쩡하게 살아있는 이안 일행의 모습에 미케론은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론 상당히 당황해있었다.

‘아무리 내가 엘더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았다지만, 내 브레스를 막아내?’

자신의 숨결을 공격수단으로 사용하는 존재는 널리고 널렸지만.

그중에서도 용의 숨결이라 불리는 드래곤 브레스는 대륙의 수호자인 용족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권능.

하물며 엘더급에 오른 용족의 브레스는 어중간한 방어수단으론 막아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미케론은 결심했다.

-브레스를 막아낸 것은 칭찬해 줄만 하다만, 그것이 너희가 살아남을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건방진 필멸자들에게, 자신의 전력을 쏟아내기로.

우웅

지룡족, 드레이크의 장기는 본디 거대한 육체를 사용한 육박전.

마치 인간이 오러를 부리듯, 흑룡이 전신에 순도 높은 마력을 쏟아 넣자 검은 비늘이 요사한 검푸른 빛을 띠었다.

그저 앞으로 달려나가기만 해도 어지간한 성 따위는 모래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공성병기.

-단숨에 짓이겨주마.

전신에 마력을 끌어올린 미케론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오라.”

이안은 싸늘한 눈으로 용을 바라볼 뿐이었다.

“미미르.”

우웅

이안은 앞으로 걸어 나서며 시동어를 외쳤다. 순식간에 페르소나의 마력이 이안의 전신을 감싸 안았다.

철컥 철커덕

곧 이안의 몸을 익숙한 장비들이 감싸기 시작했다. 방탄복과 헬멧으로 몸을 감싼 이안의 앞에 찬란한 푸른빛이 뿜어져 나왔다.

‘전차는 안 돼.’

전차를 소환하기엔 너무나 좁은 지형이다.

이 자리에서 불러낸다면 알론소와 파이톤은 그대로 압사당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안이 원하는 것은 단지 놈의 돌진을 봉쇄할 수 있는 확실한 저지력.

그것만이라면 굳이 전차를 불러낼 필요도 없었다.

파앗

푸른빛이 이내 기하학적 모양의 강철 덩어리로 변했다.

이윽고 나타난 것은, 길쭉한 포신을 드러낸 야포.

이안은 재빨리 장전을 시작했다.

-잔재주를…!

생전 처음 보는 기괴하게 생긴 쇳덩이.

전신에 마력을 끌어올린 미케론은 녀석의 생김새에 코웃음을 쳤다.

자신의 거대한 육체에 비하면 나뭇가지나 다름없는 철 꼬챙이 따위로는 감히 엘더 드레이크를 해할 수 없으리라.

“파이톤.”

하지만 그는 알 수 없었다.

“장막 해제해.”

이안이 지금 방아끈을 당기는 것이.

105mm 견인곡사포라는 사실을.

콰아아아앙

파이톤이 마법 장막을 해제한 순간.

귀청을 찢는 폭음과 함께 거대한 포탄이 지룡(地龍)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조준은 하지 않았다.

바로 앞에서 거대한 빌딩처럼 서 있는 흑룡을 대상으로 그런 요식행위 따위는 굳이 필요치 않았다.

-이건?

갑작스런 굉음에 흑룡이 채 당황하기도 전.

105mm 고폭탄이 도마뱀의 가슴에 난 비늘과 맞닿았다.

꽈아아아아앙

천둥소리의 수십 배는 될법한 굉음과 함께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의 충격파로 일어난 맹독성의 검은 먼지가 시야를 자욱하게 가렸다.

일행이 미리 마력을 끌어올려 신체를 보호하지 않았다면 이미 한 줌의 혈수가 되었을 것이 분명했다.

철컥

하지만 이안은 멈추지 않았다.

채 포신이 식기도 전에 재장전을 마친 이안은 재차 방아끈을 잡아당겼다.

꽈아아아앙

“크윽.”

“쿨럭, 귀 막으란 소리는 해야 할 거 아냐.”

다시금, 자욱한 먼지 안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천지가 진동하는 굉음에 알론소와 파이톤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귀를 막았다.

콰앙 콰앙 콰앙

그 후로 세 발의 고폭탄을 더 쏘아내고 나서야 이안은 발사를 멈췄다.

마력으로 구현된 가상의 포신임에도 불구하고 포신은 금방이라도 녹아버릴 듯 벌겋게 달아올랐다. 뜨겁게 달궈진 포구 끝의 머즐브레이크에서 새하얀 수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마력을 거의 소진한 이안은 긴장한 얼굴로 반대편을 바라봤다.

그리고.

슈우우우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 먼지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곧 걷힌 먼지 사이로 거대한 흑룡의 모습이 드러났다.

-커헉…필멸자…놈들….

참혹했다.

바닥에 쓰러진 놈의 가슴팍을 장식하던 검은 비늘들은 그야말로 박살이 나 버렸다.

부서지고 깨진 칠흑의 비늘 사이를 타고 붉은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어떻게…

미케론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칠영웅의 피를 이은 놈들이 강력하다지만, 감히 삼천 년을 살아온 엘더 드래곤인 자신에게 위해를 끼칠 존재는 몇 되지 않는다.

-네놈, 도대체 무슨 힘을 다루는 거냐….

생전 처음 보는 상대의 공격.

미케론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곧 죽을 녀석이 그건 알아서 뭐하게?”

하지만, 자신을 죽이려 한 녀석에게 정보를 흘릴 만큼 이안은 어리석지 않았다.

기이이잉

이안은 마지막 남은 마력을 모아 야포의 포신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곧 포신의 끝이 도마뱀의 목 부위에 달린 거대한 보석을 겨눴다.

드래곤 하트.

용이 가진 권능과 힘의 원천이자, 생명을 포함한 용의 모든 것.

저 부분만 날려버린다면 눈앞의 흑룡은 그대로 수천 년의 삶을 마감할 것이다.

“다음 생엔 용 말고 다른 거로 태어나라고.”

이안은 짐짓 무서운 표정으로 방아끈을 슬쩍 잡아당겼다.

단순한 협박일 뿐 실제로 당길 생각은 없었지만.

-살려다오.

그 끈에 말 그대로 목숨이 걸려있는 흑룡에게는 아니었다.

흑요석 같은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미케론이 힘겹게 입을 열었지만, 이안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잠깐! 기다려!

“응?”

난데없이 하늘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오기 전까진.

생전 처음 듣는 음성에 방아끈을 쥔 이안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골드 드래곤이로군. 크기를 봐선 놈 역시 엘더급인 것 같다만.]

놈의 생김새를 살펴본 미미르가 결론을 내렸다.

은색 피막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날개를 파닥거리는 황금의 용.

녀석이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앉고 있었다.

곧 이안과 쓰러진 흑룡 사이에 앉은 금색의 용이 이안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

-부디 실수를 용서해다오. 이 녀석이 원래 좀 멍청한 편이라 상대를 가리지 못한다.

“용서? 이쪽은 죽을 뻔했는데 용서라고?”

하지만 이안은 코웃음 쳤다.

“꺼져. 같이 죽여 버리기 전에.”

이안이 방아끈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물론, 맨입으로 미케론을 살려달라 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금색 용은 자리를 비키는 대신.

-우욱.

입에서 무언가를 토해냈다.

“무슨 짓이야? 더럽게.”

갑작스런 용의 구토에 이안은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곧, 그의 눈이 놀라 번쩍 떠졌다.

“…신기?”

-이 정도면 보상이 되겠는가?

금색 용이 토해낸 투명한 구슬에서.

제법 강력한 신력이 느껴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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