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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57화 (58/224)

#57화

[나는 아니다.]

이안이 사자머리를 뚫어져라 쳐다보자, 미미르가 당황한 표정으로 변명하기 시작했다.

“하, 그러셔?”

하지만 이안이 그 말을 믿을 리 없었다.

신드라를 쓰러트렸을 때부터 페르소나에 눈독을 들이던 미미르가 아닌가.

저 탐욕스러운 사자에게 페르소나를 맡기느니, 차라리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이 더 믿음직스러우리라.

[아무리 내가 강해질 수 있다지만, 그 정도 사리분간도 못 할 것 같나?]

이안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심상찮은 기운을 느낀 미미르가 속사포처럼 말을 쏘아냈다.

하지만.

“그럼, 저건 어떻게 설명할 건데?”

이안은 텅 비어버린,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페르소나가 있던 집무실의 책상을 가리켰다.

[그, 그건.]

할 말이 없어진 미미르는 입을 다물었다.

그가 아무리 변명을 해본들, 사라진 페르소나가 다시 나타나는 건 아니었으니까.

[하, 하지만 난 정말로 아니다. 원한다면 내 마력을 걸고 맹세라도 하지.]

고개를 저은 사자머리가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마력이 날아가면 손해 보는 게 누군데 개소리는.”

이안은 미미르의 말을 듣자마자 콧방귀를 뀌었다.

페르소나의 마력이 통째로 사라지면 곤란한 건 이안 자신이지 않은가.

하지만 미미르가 저토록 완강히 부인할 이유도 딱히 없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럼 짐작 가는 거라도 있어?”

그렇다면.

도대체 페르소나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그림자가 제멋대로 움직였다면, 그림자신의 파편이 제멋대로 움직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확률로는 표현할 수 없다만….]

“아니, 내가 흡수한 건 그냥 찌꺼기라며?”

[그저 추측일 뿐이다. 신성은 결국 신의 의지. 네가 가진 것이 비록 파편이기는 하지만, 결국 신의 일부를 담은 것이니까.]

“그럼, 녀석이 다시 살아날 수도 있다는 말이야?”

최악의 사태를 떠올린 이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림자신이 이안의 페르소나 안에서 다시 부활한다면.

이안과 미미르의 안전 또한 장담할 수 없게 되니까.

하지만 미미르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다. 만약 그림자신의 신력이 다시금 의식을 구축하더라도 제 신명을 영원히 잃어버렸으니 예전의 기억과 모습을 찾는 것은 불가능할 터. 최소한 네게 복수심을 가질 일은 없을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안은 페르소나도 없이 신과 맞서야 했을지도 몰랐으니까.

하지만 의문점은 아직 남아있었다.

“그럼, 페르소나는 어디로 간 건데?”

흡수했다면 페르소나가 가지고 있던 막대한 마력이 어딘가에 남아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안은 미미르를 바라봤지만.

[뭐라 말하기 어렵군. 이런 일은 레온하르트가 가진 기억 속에도….]

쓸모없는 사자머리는 모른다는 말을 장황하게 늘려 말할 뿐이었다.

미미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이안은 다른 방법을 찾았다.

“정보.”

[이안 아슈타르]

[페르소나명: 미미르]

[등급: 환수]

[마력: 2,100(+4,600)]

[개방 필요마력: 2,000]

[증폭률: 2000%]

[특성]

[장비교체][장전][과부하][보조인격][파편화][그림자의 씨앗][통신]

지난번에 확인했을 때와는 다른 부분들이 눈에 띄었다.

마력 부분에 쓰인 알 수 없는 괄호도 괄호였지만.

“씨앗?”

특성 부분을 훑은 이안의 눈이 가늘어졌다.

분명 [그림자]라고 되어있어야 할 특성의 이름 뒤쪽에 새로운 단어가 추가되어 있었으니까.

이안은 집무실 구석을 향해 손을 뻗었다.

쑤욱

“능력엔 별 이상이 없는데.”

기둥 그림자에서 뻗어 나온 그림자 팔을 보며 이안은 턱을 쓰다듬었다.

아니, 이상이 있기는커녕 이전보다 더 그림자의 힘을 뽑아내기 수월해졌다.

조금 더 집중하고 연습하면 팔만이 아니라 전신을 뽑아낼 수도 있을 것 같은 느낌.

“이걸 어쩐다.”

하지만 이안의 걱정은 가시지 않았다.

능력에 별문제가 없단 것을 확인하긴 했지만, 애당초 통제할 수 없는 힘은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을 동반한다.

그것이 하루 24시간 몸에 붙이고 살아야 할 페르소나라면 더더욱.

“프레이야에게 연락해야겠어.”

페르소나의 구성 원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녀라면,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해줄지도 모른다.

판단을 끝낸 이안은 프레이야에게서 그 답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이건…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관리자님?]

“뭐?”

허공에 만들어진 통신용 게이트 너머로 그녀가 난처한 표정을 짓자 이안은 당황했다.

설마하니,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페르소나를 접한 그녀조차 모르는 것이 있을 줄이야.

놀란 이안의 물음에 그녀가 배시시 웃으며 재차 입을 열었다.

[사실 제가 봐온 페르소나들은 모두 갈리우스님께서 내려주신 힘으로 구동되는 형식이라서요. 다른 신의 힘이 깃든 페르소나는 저도 처음 보는 거라….]

페르소나의 모든 것을 관리하는 자신조차 모르는 것이 있다는 사실에 부끄러워진 그녀가 말하다 말고 고개를 푹 숙였다. 이안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냐, 모르면 어쩔 수 없지. 페르소나를 버릴 것도 아니고.”

알 수 없는 위험 때문에 페르소나와 그림자신의 힘을 포기하기에는 이안의 상황이 썩 여유롭지 않았다.

능력이 약해졌다면 모를까, 페르소나를 흡수하기 전보다 더 좋아진 것 역시 사실이었으니까.

“그럼 조만간 또 보자고.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을 테니까.”

[물론이죠. 그때를 기다리겠습니다, 관리자님.]

삐익

그녀의 인사와 함께 허공에 떠 있던 게이트가 언제 있었냐는 듯 사라져버렸다.

[이안, 어찌할 테냐? 저 정령 녀석도 아는 게 없는 것 같은데.]

정령이 사라지자 미미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이안은 어깨를 으쓱했다.

“뭐, 어쩌겠어.”

그래, 어쩌겠는가.

무책임하지만, 이안이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해결책이 있다면 모를까, 페르소나의 제어 정령인 프레이야조차도 그 해결책을 모르는 상황에서 붙잡고 있어 봐야 시간 낭비다.

“일단 능력이 더 강해진 건 좋은 거잖아? 문제는 나중에 생각하자고.”

혹시 아는가.

이안이 더욱 강해 진다면 저 특성을 제어할 방법이 생겨날지도.

그때까지는 강해진 능력을 사용할 방법이나 생각하는 것이 나으리라.

“일단 연습이나 하러 가야겠어.”

생각을 마친 이안은 집무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그때.

“이안.”

문을 열자마자 마주친 붉은 머리의 사내.

마르센 제국의 5황자, 알론소 폰 마르세니아였다.

이안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은 심상치 않았다.

“이제 언약을 지켜라.”

“언약?”

처음 보자마자 하는 말이 약속을 지켜라, 라니.

뜬금없는 알론소의 말에 이안은 짐짓 모르는 체했다.

“분명, 과인이 그대의 영지를 되찾는 것을 돕는다면 그대 역시 과인이 황위를 잇는 것을 돕는다고 하지 않았나.”

이안이 시치미를 떼자 알론소가 날카로운 눈으로 노려봤다.

“그대 역시 귀족이라면 신의를 지켜라. 고귀함은 피가 아니라 행동에서 나오는 법이니.”

“퍽이나.”

하지만 이안은 코웃음 쳤다.

어느 정도 이 세계의 신분제에 적응은 되었지만, 이안이 본래 살던 세상은 공식적으로 신분제가 폐지된 세상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고귀한 핏줄이라 누나가 동생 등에 칼이나 꽂는 모양이지?”

그 고귀한 핏줄들이 하는 짓이란 것이, 그렇게 고귀하지만은 않지 않은가.

“그건 오해다. 누님께서는 분명 다른 생각이 있어서….”

“글쎄, 성에서 널 만났을 때의 눈빛은 그게 아니던데?”

이안이 피식하고 비웃자 얼굴이 벌게진 알론소가 애써 부인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엔 슬쩍 힘이 빠져있었다.

황좌와 가장 가까운 존재 중 하나인 누님이라면, 황위를 위해 동생의 목숨 정도는 얼마든지 취할 수 있을 터.

“그보다, 나는 너랑 약속할 때 기간을 명시한 적이 없거든? 지금 당장은 나도 여유가 없다고.”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알론소를 향해 이안은 고개를 저었다.

엄살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비록 이안이 영지 관리에 직접 관여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안은 이안 나름대로 영지의 규모를 키우기 위해 계획한 일들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하나만, 단 하나만 도와주면 된다. 이건 신기의 힘을 가진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신기?”

알론소의 입에서 나온 신기라는 단어가, 안 그래도 그림자신의 힘에 대해 고민하던 이안의 호기심을 끌었다.

“뭔데?”

궁금증을 참지 못한 이안의 물음.

그리고.

“용을 찾아다오.”

“…뭐?”

용이라니.

뜬금없는 말에 이안이 멍청한 표정을 지었지만, 알론소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과인의 몸에 잠들어있는 용혈을 깨우기 위해선 용족을 찾아야 한다.”

“용혈?”

들어본 적이 있는 단어다.

용이 선천적으로 가진 권능의 일부를 이어받아 발휘하는 힘.

하지만.

“그게 왜 참룡공이 아니라 네 몸에 있는데?”

이안은 이해할 수 없었다.

용혈은 다름 아닌 참룡공, 구스타프 공작가의 일족들이 사용하는 특별한 힘.

그것이 왜 제국의 황자에게 잠들어있단 말인가.

“황실의 정통성은 본디 인계의 수호자인 용의 피를 이어받아 생겨난 것이다. 그 황가의 배신자 놈들과는 애당초 근본이 다르지.”

말을 마친 알론소의 표정은 비장했다.

그가 목숨을 걸고 신기를 찾으려 한 이유는, 모습을 감춘 용족들을 만나기 위해서였으니까.

하지만.

이안에겐 그 말이 들리지 않았다.

털썩

“용혈을 깨울 수만 있다면…이안?”

이안을 어떻게든 설득해보려던 알론소의 앞에서.

“이안? 이안!”

이안은 차가운 바닥에 쓰러졌다.

***

“여긴….”

익숙한 천장이다.

옛날 판타지 소설에서나 나올법한 헛소리지만, 사실이 그랬다.

이안 아슈타르에겐, 아니 지구의 강민혁에겐 집보다 더 익숙한 곳이었으니까.

하지만.

“말도 안 돼.”

그래.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차가운 돌바닥에서 일어선 이안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한쪽 벽면을 바라봤다.

대리석 위에 새겨진 수십 개의 새하얀 별들.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죽어간 자들의 마지막 흔적.

이름 없는 요원을 기리는 별들이 새겨진 곳은 한국에 오직 두 곳뿐이다.

하나는 국가정보원 옆에 소재한 안보전시관.

그리고 다른 하나는.

“원(院)에…돌아왔다고?”

이안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지구의 강민혁은 이미 죽었다. 그것만은 확실했다.

설사 운 좋게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그가 있어야 할 곳은 감옥이나 병원이지 원의 로비가 아니었다.

결정적으로.

‘저건 내 얼굴이 아니야.’

그와 마주한 대리석에 반사된 얼굴은, 한국의 요원 강민혁이 아니라 신검공의 셋째 아들 이안 아슈타르의 것이었으니까.

‘꿈? 환각?’

애당초 다른 사람으로 되살아난 것 자체가 꿈같은 이야기였지만, 이안의 촉은 이 모든 것이 현실이 아니라 말하고 있었다.

이안은 그와 가장 가까운 동료를 찾았다. 미미르라면 이 상황에 관해 설명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였다.

하지만.

“미미르?”

그의 목소리가 텅 빈 건물 안을 메아리쳤다.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언제나 이안의 주변을 맴돌던 사자머리 미미르였지만,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뭐지?’

혹시나 싶어 허리춤을 더듬자 딱딱한 권총이 손에 잡혔다. 페르소나는 여전히 이안의 옆에 있었다.

이건….

“여기가 네 세상이구나.”

철컥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몸을 돌린 이안은 권총을 상대에게 겨누었다. 방아쇠울에 손가락을 건 채, 이안은 상대를 바라봤다.

그리고.

“넌?”

이안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여어.”

가볍게 손을 흔드는 금발 머리의 건장한 사내.

이안의 앞에 선 것은.

다름 아닌 이안 아슈타르 자신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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