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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54화 (55/224)

#54화

[이안, 상대는 환수급과 엇비슷한 출력이다! 섣불리 다가섰다간 위험해!]

문제의 강철 거인과 점점 가까워지자 미미르가 경고했다.

같은 출력이라면 당연히 더 무거운 질량을 가진 자가 우세를 점할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상대의 질량은 대강 보기에도 이안이 몰고 있는 전차의 두 배 이상.

분명 저 거인이 휘두르는 검에 당한다면 전설의 금속이건 신의 갑주건 찌그러진 고철로 화하리라.

하지만.

“그 말대로면, 성안에 있는 게 오히려 위험한 것 아냐?”

[뭐?]

이안은 미미르의 말에 반박했다.

“저 마법도 새겨져 있지 않은 돌벽이 그런 공격을 버텨낼 리가 없잖아. 피해 없이 놈을 상대하려면 성 밖으로 나서야 해.”

직접 성벽을 뚫고 들어와 본 이안은, 알자스의 성벽이 생각만큼 두텁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굳이 저 강철의 거인이 검 따위를 휘두르지 않더라도, 발구름 한 번이면 성벽이 무너지기엔 충분하리라.

‘나는 살 수 있지만, 영지의 다른 사람들은 아냐.’

어쨌든 이제부터 이안은 알자스의 주인이다.

이안 없이도 알자스가 제국의 공세를 방어한다는 제 역할을 다하게 만들기 위해선, 지금 남아있는 것들이라도 보호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놈은 허점투성이야. 최소한 지금은.”

[허점, 이라고? 저 강철의 거인을 무슨 수로 뚫어낸다는 말이냐?]

이안의 말에 미미르는 알 수 없다는 듯 되물었지만.

기이잉

이안은 대답 대신 달리던 전차의 포탑을 회전시켰다.

느릿하게 돌아간 M1 에이브람스의 포구가 강철의 거인을 향했다. 이안이 바라보고 있는 조준기의 십자선이 강철의 거인과 겹쳐졌다.

끼이익

전차를 멈춰 세운 이안은 천천히 조준기를 움직였다.

꽤나 먼 거리임에도 거인은 조준경 안에 꽉 들어차 있었다. 이안의 정체를 알고 있는 것인지, 놈이 이안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오만하군.’

놈의 느릿한 걸음걸이를 본 이안은 상대가 방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병기가 가진 방어력을 굳게 믿고 있던가.

“그렇다면 깨줘야겠지.”

하지만 상대가 좋지 않았다.

‘우선은 무릎.’

이안은 가볍게 120mm 활강포의 방아쇠를 당겼다.

쿠웅

귀가 멀어버릴 것 같은 굉음.

동시에, 어른 주먹만 한 굵기의 강철 화살이 화약의 힘으로 쏘아져 나갔다.

초음속으로 쏘아진 날개안정철갑탄이 거인에게 도달하는 것은 그야말로 찰나.

‘뚫는다.’

이안은 확신했다.

포탄의 관통력은 RHA, 균일하게 제련된 철판을 얼마나 깊게 뚫었는가를 기준으로 측정한다.

이안이 쏘아낸 날개안정철갑탄의 재질은 열화우라늄.

적의 장갑과 접촉하면 마치 살아있는 것 마냥 스스로 날카로워지는 놈의 관통력은.

최소 RHA 800mm.

콰앙

귀를 찢는 폭음과 함께 화살과 거인의 무릎이 맞닿았다.

적과 맞닿으면 무뎌지는 대신 스스로 날카로워지는 강철 화살은.

파지직

곧 녀석의 무릎에 자리 잡은 두터운 철갑을 뚫고 내부의 마력 신경을 끊어냈다.

그러자.

두 다리로 세상을 오시하던 거인은.

흙먼지와 함께 한쪽 무릎을 꿇었다.

“어우, 다음엔 귀마개라도 사야겠어.”

마력으로 보호했음에도 고막으로 전해지는 얼얼함에 이안은 귀를 만지작거리며 투덜댔다.

하지만 결과 자체는 만족스러웠다.

이 대륙에서 거인이 왜 멸종했던가.

무릎, 뒤꿈치, 눈.

그 거대함만큼이나 약점 또한 거대했기 때문이 아닌가.

아무리 마법으로 거인의 움직임을 재현해냈다지만, 그 약점을 가리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키이이잉

한쪽 다리를 잃은 거인이 애써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헛수고다.

네발짐승도 한 다리를 잃으면 걷기 어려운 법인데, 두 다리 중 하나를 잃은 자가 어떻게 걸을 수 있단 말인가.

[차탄 장전.]

그리고 기동력을 상실한 거대병기는.

“잘 맞는 표적이지.”

쿠웅 쿠웅

미미르와 그림자가 수 초 만에 장전한 포탄이 다시금 거인에게로 날아갔다.

콰앙

팔, 다리.

포탄은 곧 거인의 운동능력을 하나씩 부숴나갔다.

어린아이 키만한 두께의 철판도 뚫어낼 수 있는 열화우라늄 재질의 날개안정철갑탄 앞에서, 거인의 몸뚱이가 강철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곧.

쿠웅

공격능력을 모두 상실한 거인은 바닥에 볼썽사납게 쓰러졌다.

[…도대체.]

이제 더 놀랄 기력도 없었던 미미르는 지친 표정으로 눈앞의 광경을 바라봤다.

근 1미터 두께의 강철을 두부처럼 끊어내는 병기라니.

[이 정도의 위력이라면….]

오러 블레이드와 다를 게 없지 않은가. 라는 말은 차마 내뱉을 수 없었다.

물론 고강한 깨달음을 얻은 오러 마스터와 이 병기를 비교하기엔 느려 터졌고, 쓸데없이 거대하다.

‘하지만, 위력만은.‘

이 정체불명의 병기가 내쏘아내는 포탄의 위력은 마스터의 오러 블레이드와 별반 다를 것이 없지 않은가.

[이안, 도대체 네 정체가 뭐냐.]

단순히 전설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았다.

미미르의 물음에.

“비밀이야.”

끼리리릭

이안은 짤막하게 답하며 전차를 몰았다.

전리품을 수거할 시간이다.

***

“졌군.”

패배를 인정한 알레시온 변경백은 미묘한 눈으로 쓰러진 거인을 바라봤다.

마법병단장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극찬하던 강철의 거인, 기가스는 적의 공격 앞에 무너졌다.

아마도, 저와 같은 강철 거인들이 전장에 서는 일은 당분간 없으리라.

“도대체 저 녀석은 뭘까.”

그의 시선은 곧 거인을 쓰러트린 정체불명의 괴물을 향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말 없는 마차의 모양이었지만, 마차와 달리 녀석은 바퀴가 달려있지 않았다.

하지만 바퀴가 없음에도 온통 철갑으로 둘러싸인 강철 괴물은 굉음을 내며 말보다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강철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분명 난쟁이들의 것일 텐데….”

하지만 저런 괴물을 제국의 난쟁이들이 만들 수 있었다면, 오늘처럼 무참한 패배를 당하진 않았을 것 아닌가.

“저런 물건을 이용할 수 있다면….”

변경백은 생각에 잠겼다.

저런 무식한 위력의 마력포가 달려있지 않아도 좋다.

비용은 어마어마하게 들겠지만, 온통 강철로 둘러싸인 마차에 병사들을 태운 채 빠르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물건이 있다면.

“나쁘지 않겠군.”

아니, 전장을 지배하는 규칙이 송두리째 바뀔 것이다.

마력으로 제 몸조차 가누기 힘든 비행함과는 달리, 강철 마차는 좀 더 빠르고 민첩할 테니까.

변경백이 깊은 생각에 잠길 때 즈음.

“변경백.”

뒤에서 들려온 앙칼진 목소리에 그의 집중이 깨졌다.

짜증을 애써 숨긴 그가 몸을 돌리자, 1황녀 루미너스가 거친 숨을 몰아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쓸데없이 화만 많아서는.’

아무리 1황녀의 권세가 1황자와 다툴 만 하다지만, 마흔 줄을 넘어 쉰에 가까운 그의 눈에 황녀는 아직 철부지 어린애에 불과했다.

지금도 제 손에 들어와야 할 신기를 놓친 분노에 사로잡혀 씩씩대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미안해요.”

‘음?’

분노를 참지 못하고 씩씩대는 겉모습과는 달리, 의외로 황녀는 순순히 사과했다.

“본녀의 판단이 조금 어긋난 것 같아요. 이런 변방까지 내려온 상대가 설마, 제국의 신병기를 무너뜨릴 줄이야….”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은 듯 깨문 아랫입술에서 피가 흘러내렸지만, 그녀의 사과는 진짜였다.

‘호오, 과연 황도의 중앙귀족들을 쥐락펴락한다는 말이 사실이었군.’

하긴, 저 정도의 자기절제도 없다면 어떻게 살얼음판 같은 황도에서 살아남은 것으로도 모자라 자신의 세력을 구축했겠는가.

변경백은 자신의 판단을 조금 수정하곤, 조금 너그러운 눈빛으로 황녀를 바라봤다.

“결국, 패전의 책임은 장수가 져야 하는 법이 아니겠습니까. 곧 전장을 수습하고 회군할 터이니 전하께서는 이만 마음의 짐을 거두시지요.”

기실, 이번 패배의 원인은 상대를 너무 만만하게 본 자신의 오판도 존재했으니까.

너무나 뼈아픈 손실이었지만, 변경백에겐 아직 기회가 많이 있었다.

이번의 교훈으로 제국군, 그리고 자신의 병단은 더욱 강해지리라.

그러나.

“변경백, 본녀를 좀 도와줘야겠어요.”

황녀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도와달라니.

설마 아직도 신기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했단 말인가.

하지만 황녀가 필요한 것은 다른 것이었다.

“저 기가스를 회수하고 부마탑주를 구출해야 해요. 아군의 신병기를 이렇게 적에게 넘겨줄 수는 없어요.”

상대가 이토록 강할 것이라 예상했다면, 그녀는 절대 황제에게 제국 기술의 정수가 담긴 기가스를 달라 청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일은 벌어졌고, 그녀가 황제의 분노를 막을 방법은 기가스를 회수하는 것뿐.

“그것은 곤란한 말씀이군요, 황녀 전하. 보셨다시피, 지금의 저희에겐 저들을 막을 힘이 없습니다. 후작 각하께서 직접 오시지 않는 이상….”

변경백은 말끝을 흐렸다.

아군이 패배한 순간, 기가스는 저들의 전리품이 되었다.

무력으로 뺏을 수도 없었지만, 패배자인 그들이 말로 구슬려본들 저들이 듣는 척이나 하겠는가.

하지만.

“저들과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세요. 아니, 본녀가 직접 가도록 하지요.”

“직접, 말씀이십니까?”

황녀의 말을 들은 변경백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장차 황제가 될지도 모르는 1황녀가, 어떤 위험이 도사릴지 모르는 적진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겠다니.

하지만 황녀의 의지는 굳건했다.

“저들이 진실로 전쟁을 꾀하는 것이 아니라면, 설마 황실의 깃발 앞에서 검을 들이밀지는 않겠지요.”

얼굴을 굳힌 그녀의 눈에, 기가스를 향해 달려드는 적들이 보였다.

***

[그야말로 희극이로군.]

“그러게 말이야. 하.”

미미르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인 이안이 전차 지붕에 올라타서 눈앞에 쓰러진 강철 거인을 바라봤다.

팔다리에 구멍이 숭숭 뚫린 데다 내부의 기절한 파일럿까지 끌어냈으니, 저 신병기가 다시 움직일 확률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저 강철 거인을 끌어낼 방법이 없는 것은 이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안, 네 페르소나의 힘으로 저 녀석을 끌어낼 수는 없는 게냐?]

“지금은.”

이안은 쩝쩝 소리를 냈다.

페르소나에 좀 더 많은 마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면 공병 전차나 크레인 따위를 구현해서 끌어낼 수 있을지도 몰랐지만, 전차를 운용하느라 마력이 거의 바닥난 지금으로서는 꿈과도 같은 이야기다.

그렇다 해서 마력을 사용하기엔, 파이톤을 제외하곤 고만고만한 수준.

다시 말해서.

“이게 바로 그림의 떡이군.”

이안은 전리품을 눈앞에 두고도 가져갈 수 없었다.

이안은 비식비식 웃어대는 사자머리를 바라봤다.

“미미르, 혹시 네 능력으로 이 녀석의 기능을 복구할 수 있겠어?”

혹시, 레온하르트의 지식을 가진 미미르라면 복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이안은 작은 기대감을 갖고 미미르에게 물었다.

하지만.

[마력의 흐름이 내가 알던 것과는 달라. 제국 놈들이 새롭게 개발한 형식인 것 같다.]

결국, 안 된다는 말이었다.

“설마하니 이걸 끌어낼 방법이 없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아쉬움에 이안은 머리를 긁적였다.

물론 조금씩 조각내서 가져가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가능하면 온전한 상태로 가져가는 것이 더욱 연구할 가치가 있지 않겠는가.

아쉬움에 이안이 입맛만 다시고 있을 때.

[이안, 접근이다. 7시 방향 310M. 한 명.]

미미르의 경고를 들은 이안은 곧장 전차 지붕에 설치된 기관총을 잡았다.

그가 시선을 돌리자, 한 마리 말과 기수, 그리고 깃발이 눈에 들어왔다.

“제국 황실의 문장이라.”

깃발에 새겨진 것은 눈에 익은 문장.

아슈타르의 사자와 마찬가지로, 마르센 제국의 황족만이 사용할 수 있는 용의 문장이 황금빛으로 수놓아져 있었다.

‘뭐지? 항복은 아닌 것 같은데.’

항복할 것이라면 문장기가 아니라 백기를 내걸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저 깃발의 의미는.

‘협상을 하자는 건가.’

그것 말고는 설명이 어려웠다.

분명, 황족이 위험과 불명예를 무릅쓰고라도 직접 나서서 챙겨야 할 무언가가 있음에 틀림없었다.

가령.

‘이 고철 덩어리라던가.’

고철의 쓸모를 떠올려낸 이안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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