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현대화기는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하지만 그것이 탄환의 관통력을 증대시키는 방향만은 아니다.
오백 년 전 만들어진 화승총이건, 최신형 돌격소총이건.
평범한 인간의 육체를 꿰뚫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위력이었으니까.
탄환의 관통력을 과도하게 늘리는 대신 화기 개발자들은 두 가지 방향을 선택했다.
더 정확하고 더 빠르게 총탄을 뿌려대거나.
탄환에 강력한 폭약을 집어넣어 한 번에 넓은 범위의 적을 제압하거나.
그리고.
투투투투투퉁
두 갈림길 모두에서 정점에 도달한 악마의 병기.
K4 고속유탄기관총이 분당 390발의 속도로 죽음을 토해냈다.
쏘아진 40mm 유탄들이 밀집대형을 이룬 보병들과 맞닿은 순간.
콰콰콰쾅
유탄들이 폭발하면서 수천 개의 파편이 방진을 덮쳤다.
“끄아아악!”
“내, 내 팔!”
“살려줘….”
중상을 입고 비명을 내지를 수 있는 병사는 제법 운이 좋은 축에 속했다.
유탄을 뒤집어쓴 대부분의 병사들은 채 비명 한 마디 내지르기도 전, 폭발에 휘말려 육편이 되었으니까.
더욱 끔찍한 것은.
투투투퉁
쏘아낼 때마다 새로이 주문을 영창해야 하는 마법과 달리, 저 저주받을 병기는 절대로 멈추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저건, 도대체….”
몽쉐르 변경백은 심혈을 기울여 길러낸 정병들이 갈려 나가는 참상을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봐야만 했다.
“마법사들은 무엇 하는 게냐! 어서 저 공격을 막으란 말이다!”
변경백이 피를 토하듯 소리 질렀다.
‘도대체, 저 병기는 어느 전설에 나오는 것이란 말인가….’
페르소나로 쓰일만한 전설들을 공부해온 것은 변경백 역시 마찬가지였다.
잠재적 적국인 연합공국의 주 병기인 페르소나의 약점은 결국 그 모티브가 된 전설로부터 찾아야 했으니까.
하지만.
‘마르코의 불과 제리오르의 번개를 합한 것 같은 병기라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상대가 쉴 새 없이 쏘아내는 것은 그가 본 어떤 전설에도 나오지 않는 병기였다.
“각하, 현재 각 제대에 소속된 마법사들이 방어마법을 영창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조금만? 지금 저 꼴을 보고도 조금만이란 말이 나오나?”
변경백을 진정시키고자 마법병단장 파시르가 입을 열었지만, 돌아온 것은 변경백의 분노였다.
“도대체 무슨 마법이기에, 어느 고대신의 힘이기에 저토록 쉴 새 없이 쏟아지는지 좀 말해주게. 아니, 설명할 필요도 없네. 자네도 마법사라면 여기 있지 말고 나가서 저 공격을 막건 어쩌건 하란 말일세!”
변경백의 분노에 마법병단장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속내는 아니었다.
‘젠장, 아예 접근도 하지 못할 상황이란 말이다.’
아무리 전능한 마법이라 한들 한계는 있다.
전쟁에서 지구의 포병과 유사한 역할을 맡은 마법사들.
하지만, 미리 마법진을 준비해놓지 않는 이상 마법사가 부리는 마법은 시전자와의 거리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마법을 구성하는 마력이 흩어져버렸으니까.
하지만.
콰과과광
저 범죄자와 반역도들이 쏘아내는 마법은 일 킬로미터도 넘는 거리에서 아군을 도살하고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저 마법을 쏘아대는 자를 잡아서 고문이라도 하고 싶다만….’
5급 마법을 부리는 고위마법사의 경지에 도달한 그조차도 저 폭발의 비를 뚫고 적 마법사를 생포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면.
“각하, 군사를 물리십시오. 신병기를 가동하겠습니다.”
마법병단장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자신은 있나?”
“자체시험 결과, 제국이 보유한 페르소나들을 상회하는 위력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변경백이 묻자 마법병단장이 자신 있게 답했다.
그는 황실 마탑이 주관하는 시험에서 보인 신병기의 위용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봐왔으니까.
“녀석의 방어력은 능히 병기급 페르소나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으니, 적의 공격을 막기에도 충분할 것입니다.”
“크흠.”
하지만 단장의 말에 변경백은 영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병사와 기사들의 피와 땀, 마력으로 움직이는 전장에서 저런 쇳덩이 따위를 믿고 움직여야 한다는 것 자체가 오랜 세월 전장에서 살아온 그의 마음에는 들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알겠네. 뭐든 좋으니 해보게.”
병사들이 전멸하는 것보단 낫지 않은가.
“예, 각하.”
변경백을 향해 고개 숙인 마법병단장이 재빨리 지휘 천막을 나섰다.
슈우우우
천막을 나서자마자 비행마법을 발동해 허공에 떠오른 그는 곧장 후방을 향해 날아갔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한 그가, 하얀 천막에 가려진 신병기를 보며 흥분한 표정을 지었다.
‘신화? 전설? 웃기는 소리.’
연합공국의 수많은 페르소나를 떠올린 그가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공국의 마법 병기가 이미 죽어버린 전설을 되살리는 것이라면.
그의 눈앞에 존재하는 병기는 전설 그 자체였으니까.
“일어나라.”
파시르의 입에서 시동어가 흘러나옴과 동시에, 그의 손이 복잡한 형태의 수인을 맺기 시작했다.
우웅
그와 함께 특정한 패턴의 마력이 거대병기를 향해 흘러 들어갔다.
그러자.
키이이잉-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병기를 덮고 있던 하얀 천이 벗겨져 나갔다.
동시에.
기이이잉
기계음과 함께 깨어난 병기가 제 육중한 몸을 일으켰다.
마수 중에서도 거대하기로 이름난, 오우거보다 머리 두 개는 커 보이는 강철의 거인(巨人).
“기가스.”
파시르의 입에서, 이제는 멸망한 거신족의 이름이 나온 순간.
피잉
순수한 마정석으로 만들어진 거신의 눈에서 푸른빛이 뿜어져 나왔다.
***
[이건, 대체….]
“말도 안 돼….”
수백 발의 유탄이 만들어낸 참상 앞에서, 미미르와 파이톤은 제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강한 한 발이 아니라, 수백, 수천 발의 폭발하는 무언가를 쉬지 않고 쏟아낸다.
그 발상 자체도 놀라운 것은 분명했지만, 개인이 발동하는 마법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영창 하나 없이 이만한 위력의 마법을 쉴 새 없이 쏟아 내다니, 그건 도대체 무슨 병기냐?]
지난번 오우거를 상대했을 때처럼, 하나의 강력한 마법을 날리는 것이라면 이해할 수 있었다.
마법이 5급 이상의 경지에 오르게 되면 어지간한 하급 마족쯤은 일격에 소멸시킬 수 있었으니까.
‘그에 반해, 약한 위력의 마법 수 백발을 쏘아내기 위해선 미리 수 백발의 마법을 스크롤 따위에 저장해야 한다.’
이미 존재하는 강력한 한 발의 마법으로도 모든 것을 초토화시킬 수 있는데, 굳이 그런 낭비와 귀찮음을 감당할 마법사가 있을 리 없지 않은가.
하지만.
투투투퉁
그 귀찮음과 낭비를 감수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이안의 곁에 선 미미르와 파이톤은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콰과과광
일천.
누군가는 적다 말할 수도 있는 숫자지만, 하나의 마법사가 상대할 수 있다기엔 너무나 많은 숫자.
그 수많은 병사들의 생명이 끊임없이 쏟아지는 이안의 유탄 앞에서 스러지고 있었으니까.
‘이 정도의 살상력을 가진 마법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으려면, 최소한 4급의 마법사여야 한다.’
물론 이안이 쏘아내는 것의 위력은 5급, 아니 6급 마법에도 미치지 못할 수준.
하지만 6급이건 3급이건, 마력을 다루지 못하는 병사들을 찢어발길 수 있는 것은 마찬가지.
‘이안, 도대체 너는 어디서 이런 전설을….’
파이톤이 이안을 의미심장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
뿌우우-
적진에서 나팔 소리와 함께 깃발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후, 후퇴 신호다!”
“도망쳐!”
“나, 나도 데려가 줘! 다리가 움직이지 않아!”
나팔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진 순간.
이제 몇 남지 않은 제국 병사들이 이때다 싶어 본영을 향해 도주하기 시작했다.
개중 멀쩡히 두 발로 걸어가는 자는 열의 한둘에 불과했지만, 죽음의 포화 속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그들은 신에게 감사해야 하리라.
“우선은 막았어.”
페르소나를 해제한 이안은 눈앞의 참상을 보며 눈을 찌푸렸다.
‘완전히 전멸 수준이군.’
단순히 전투능력을 상실했다는 전술적 의미의 전멸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의 전멸.
그가 유탄기관총의 방아쇠를 당긴 것은 고작 삼 분 정도.
하지만 엄폐물을 끼고 산개했다면 모를까, 한데 뭉쳐 방진을 형성한 채 돌격하는 제국군은 쏘기 편한 표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글쎄, 제국 놈들이 이대로 쉽게 물러나진 않을 것 같은데. 너도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놈들, 보기보단 끈질기다고. 연방 놈들만큼은 아니겠다만.”
“저 꼴을 당하고도?”
파이톤의 말에 이안은 손가락으로 성벽 바깥을 가리켰다.
“음.”
마경에 존재한다는 마왕의 성이 이런 광경일까.
성벽 아래에 펼쳐진,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끔찍한 광경에 파이톤은 입을 다물었다.
“돌아간 녀석들이 반란이라도 일으키지 않으면 다행이겠지. 당분간은 이 성에 얼씬도 하지 못할 거야.”
이안은 확신했다.
애초에 남은 병사들도 몇 없지만, 옆 전우가 죽어 나가는 생지옥에서 살아남은 병사들의 정신이 멀쩡할 리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제국군이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은 훈련받은 몇몇 기사와 마법사뿐일 터.
“제국군은 더 이상 공격할 수 없을 거야. 군의 근간이 되어야 할 병사 대부분을 잃었으니까.”
이안은 확신했다.
아무리 알자스의 전력이 부족하다지만, 한 줌의 전력만으로 공성을 펼치는 것은 어렵다는 사실을 제국군도 잘 알고 있으리라.
하지만.
기이이잉
일은 이안의 생각처럼 쉽게 진행되지 않았다.
“저, 저건 또 뭐야?”
저 멀리.
적들의 군영에서 몸을 일으킨 거인을 발견한 파이톤의 눈이 왕방울처럼 커졌다.
거신.
그 말 말고는 달리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없었다.
쿵 쿵
양손으로 장검을 쥔, 성벽만 한 키의 강철거인이 알자스 성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심상찮은 수준의 마력이군. 저 정도면 병기급 페르소나의 출력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새롭게 등장한 강철의 거인을 경계하는 것은 미미르 역시 마찬가지였다.
[제국 놈들, 결국 저런 괴물을 만들어냈단 말인가.]
집채만 한 검을 손에 든 강철 거인.
그야말로 신화에서나 나올법한 녀석의 크기와 마력은, 그 자체로 페르소나와 비견될만한 경이였다.
하지만.
“뭐야, 저건?”
이안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놀랍다거나 경이롭다기보다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
“저런 걸 병기라고 만들었다고?”
거대 이족보행 병기라니.
당연히, 이안과 지구의 상식선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무기였으니까.
[이안, 저 출력이 느껴지지 않는 것인가? 장담하건대, 녀석이 저 검을 휘두르기만 해도 이 도시의 성벽은 반 토막 날게다.]
이안의 말에 미미르가 반박했다.
서서히 다가오는 강철의 거인에게서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마력량에 그의 갈기는 이미 바짝 곤두서있었다.
“정말 모르겠다고?”
미미르의 말에 이안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모를 수가 있단 말인가.
약점이 저토록 훤히 드러나 있는데.
“기다려 봐, 직접 보여줄 테니까.”
휙
말을 마친 이안은 곧장 성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이, 이안!”
파이톤의 비명을 뒤로하고.
“오라.”
이안은 작게 속삭였다.
“미미르.”
지혜의 샘을 지키는 신화 속 거인의 이름을.
파앗
이안의 발이 채 바닥에 닿기도 전, 이안의 몸을 감싼 거대한 마력이 전차의 형태를 이루었다.
곧.
키이이잉
이계에서 깨어난 강철의 기사.
M1A2 에이브람스가 거신을 향해 울부짖으며 내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