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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52화 (53/224)

#52화

두두두두

열 마리 말이 평야를 달리고 있었다.

두터운 마갑을 씌운 말들 위로, 역시나 두꺼운 철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검을 빼어든 채 살기를 뿜었다.

그 중.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알레시온 기사단의 평기사, 몰튼은 검을 뻗은 채 혼잣말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1황녀의 제안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 일이 끝나고 나면, 너희 모두를 황궁으로 부르겠다.’

좋은 일은 아니었다.

아니, 조금만 일이 잘못되더라도 역도로 몰려 목이 달아날 일이었다.

황녀는 공식적으로 부인했다지만, 그들이 죽이러 가는 전령이 제국의 5황자라는 사실은 이미 모두가 아는 사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이 일만 잘되면, 우리 가문도 귀족이 될 수 있다.’

성공을 위해선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그 역시 잘 알고 있었으니까.

물론, 설사 일이 잘못될지라도 신분을 보장해주겠다는 황녀의 확언이 있었으니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우우웅

선두에 선 그의 검신에서 오러가 타오르듯 뿜어져 나왔다.

그의 오러에 영향을 받은 말이 마치 번개처럼 눈앞의 황자, 아니 전령을 향해 달려들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그의 머릿속에, 일말의 죄책감 따위는 이미 지워진 지 오래.

스릉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는지 상대가 검을 뽑아 들었지만 이미 늦었다.

아무리 익스퍼트 상급의 경지에 이르렀다 한들, 익스퍼트 중급에 이른 그와 다른 기사들의 힘을 합친다면 죽이지 못할 것도 없었다.

타앙

‘어…?’

그의 몸뚱이가 말과 함께 바닥에 나뒹굴지 않았다면 말이다.

‘이게, 무슨….’

굉음이 들려온 순간.

기사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말이 생명을 잃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심장이 멈추고도 달릴 수 있는 말은 없다.

몰튼은 급히 쓰러지는 말에서 몸을 빼려 했지만.

타앙

두 번째 굉음과 함께 그의 의식이 끊어졌다.

“저, 저게 무엇이냐!”

후방에서 황녀와 함께 따라나선 기사들을 지켜보던 변경백은 하마터면 말에서 떨어질 뻔했다.

어딘가에서 들려온 굉음과 함께, 돌진하던 말과 기사가 난데없이 흙바닥에 쓰러진 것이 아닌가.

히히히힝-

선두에서 달리던 동료가 바닥에 쓰러져 거대한 장애물이 되어버린 순간, 기병의 대열은 이미 무너져 내렸다.

“워, 워!”

“진정해, 이 자식아!”

어디선가 들려온 굉음에 안 그래도 놀란 말들이 제멋대로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기사들은 말에 오러를 불어넣어 진정시키려 했지만, 말들은 쉽사리 진정되지 않고 제멋대로 흩어져나갔다.

그 와중에도.

타앙 타앙

정체를 알 수 없는 굉음이 들려올 때마다, 흩어진 기사와 군마들이 하나둘 차가운 바닥에 쓰러져 꿈틀댔다.

“아, 안 된다!”

변경백은 더 이상 그 꼴을 봐줄 수 없었다.

최정예는 아니라지만, 고작 범죄자 소굴 따위를 진압하는데 귀중한 기사들을 잃을 수는 없지 않은가.

‘빌어먹을 황녀 같으니.’

“마법사들은 저 굉음의 위치를 파악해!”

이를 갈던 변경백은 급히 명령을 내렸다.

곧. 원정군에 배치된 제국의 종군마법사들이 급히 소리의 근원을 찾기 시작했다.

이윽고.

“뭐?”

마법병단장의 설명을 들은 변경백은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적들의 성에서 강한 마력 반응이 일어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아마도 적들의 마법….”

“그걸, 지금 나보고 믿으라는 겐가?”

종군마법사의 설명을 듣다 못한 변경백이 버럭 소리쳤다.

“여기서 일 킬로미터도 넘게 떨어진 성에서, 사람과 말만을 정확히 노리는 마법이 존재한다면 어디 대보게!”

그런 마법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풍문으로, 저 범죄자들의 소굴에 그랜드 마스터가 등장했다 합니다. 혹 그자가….”

“말도 안 되는 소리! 그건 상상일 뿐이야!”

기사 하나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지만 변경백은 단칼에 부정했다.

그랜드 마스터와 심살이 설사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라 한들.

타앙

심살을 묘사하는 그 어떤 전승에서도 권능이 굉음과 함께 발현된다는 말은 없었으니까.

변경백이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은 하나였다.

‘설마… 페르소나를 쓸 수 있는 자가 아직 알자스에 남아있었다니.’

페르소나.

반역도들의 저주받을 병기.

‘알자스에 손을 쓸 것이 놈들이었을 줄이야.’

전설을 불러오는 그 저주받을 무기야말로, 제국이 서부의 반역도들을 토벌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였으니까.

“빌어먹을….”

변경백은 입술을 짓씹었다.

출병할 때만 하더라도, 그는 이 일을 고작해야 머리 잃은 산적들을 소탕하는 것쯤으로 가볍게 생각했으니까.

설마,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지기 전부터 이만한 손실을 낼 것이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녀석들에게 이 정도의 힘이 있을 줄 알았다면….’

아무리 1황녀가 상대하기 어렵다 한들, 제멋대로 행동하도록 놔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모든 기사단과 기마대는 전방의 아군을 구출하라.”

지금이라도 이 실책을 수습하고, 살아있는 기사들을 구출해야 했다.

두두두두

변경백의 명령에 따라 수백의 기사와 마법사들이 말을 타고 달려나갔다.

***

“저쪽도 멍청이는 아닌 모양이야.”

말을 타고 달려온 적 마법사들이 방어마법을 펼치는 것을 확인한 이안은 스코프에서 눈을 뗐다.

수 명의 마법사가 펼친 방어마법을 모조리 뚫어내는 것은 이안의 능력으로도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이것으로 끝났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이안. 제국 놈들은 생각보다 끈질기니까.]

미미르가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우선 알론소를 위험에서 구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수천의 적병이 사라진 것은 아니니까.

[아군은 병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오러를 다룰 수 있는 자는 우리가 더 많다지만 숫자에서 너무 불리해.]

미미르의 말대로, 이안이 가진 병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아무리 이안이 알자스에 존재하는 모든 조직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었다지만, 제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범죄자와 조직의 승리를 위해 움직이는 군인은 엄연히 다르다.

‘시간이 조금 더 있었더라면 모르겠지만.’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이안은 제 동료들을 말 등에 싣고 돌아가는 적 기병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안이 알자스를 차지한 것은 고작 사흘 전.

그 짧은 기간 동안 병사를 길러낼 수는 없으니, 이안이 부릴 수 있는 병사라곤 과거 트로이카 아래에서 복무하던 한 줌의 경비병뿐이다.

당연히 그들만으로 수천의 훈련받은 병사들을 상대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생각할 가치도 없는 일이다.

이안은 파이톤을 잠시 돌아봤다.

“왜, 이제 생각이 좀 바뀌었어?”

하지만 녀석이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신을 도와줄 리 없었다.

싱글싱글 웃는 반마족을 향해 이안은 고개를 저었다.

[결국, 믿을 건 너 하나뿐이로군. 안배를 받은 녀석이 주변에 믿을만한 부하 하나 없다니, 쯧쯧.]

“사람은 제각기 쓸모가 다른 법이야.”

미미르가 혀를 차자 이안이 고개를 저었다.

이안이 자신의 사람을 키우고자 마음먹은 지 이제 일 년도 지나지 않았으니까.

평범한 일반인이 숙련된 병사로 거듭나는 것조차도 족히 일 년은 필요하다.

그 반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무언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는 것 자체가 도둑놈 심보였다.

‘실제로 꽤 도움이 됐고.’

그들이 아니었다면 이안이 여기까지 살아남기도 어려웠을 상황이 여럿 있었을 것도 사실이다.

그때.

“공자님, 5황자가 귀환했습니다!”

도노반이 반가운 소식을 들고 왔다.

“상태는?”

“무사합니다. 얼이 좀 빠진 것 같긴 합니다만….”

“그나마 다행이군.”

이안의 굳은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제법 가치 있는 인물을 허무하게 잃는 것은 그도 바라지 않는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어떻게 할 거냐, 이안.]

“시간을 벌어야겠지.”

미미르가 묻자 이안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사흘만 시간을 벌 수 있다면, 그 사이 아슈타르에 연락해 증원을 요청할 수 있었다.

[오늘 당장은 공격해오지 않을 것 같다만, 당장 내일이라도 저들이 쳐들어온다면 이 도시는 끝이다. 이안 네가 대단한 것은 알고 있다만 혼자서는 어려워.]

미미르의 생각은 회의적이었다.

고작 백의 경비병으로는 도시의 성벽 위에 세워놓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니까.

그저 저들이 다가와서 사다리를 올리는 것만으로, 이 성은 간단히 적의 손아귀에 넘어갈 것이다.

“아니.”

하지만 이안은 고개를 저었다.

“나 혼자로도 충분해.”

적들 군영 사이사이에 푸른색으로 펼쳐진 방어 마법진을 바라보며 이안이 총을 꾸욱 잡았다.

***

타앙

끄아아아악

“빌어먹을 놈들.”

천막 바깥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변경백 옆에 있던 기사단장이 이를 갈았다.

“비겁한 자식들입니다. 성에 숨어서 초소의 병사들만 노리다니….”

어떻게 가능한지는 굳이 알 필요도 없었다.

중요한 것은, 적의 공격이 방어마법의 사각지대에서 경계를 서는 초병들에게만 날아온다는 사실이었다.

“각하, 이대론 어렵습니다. 아직은 아닙니다만 곧 병사들의 전의가 꺾이기 시작할 겁니다.”

기사단장의 옆에서 보고를 마친 참모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만큼 군영 전체의 분위기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대단해.”

“예?”

둘은 난데없이 터진 변경백의 감탄을 듣곤 당황했다.

하지만 변경백의 말은 멈추지 않았다.

“일부러 죽이지 않고 부상을 입혀서 병사들의 전의를 상실시키려는 목적이 뻔히 보이지 않는가. 정말 영악하고 악랄한 놈이야.”

죽은 병사는 시체지만, 다친 병사는 짐이다.

다친 병사 하나를 부축하기 위해선 두 명의 병사가 필요하다.

병사를 치료하기 위해서도 인력이 필요하다.

상처 입은 병사에게 들어가는 식량과 약 역시 군영의 보급품에서 나온다.

거기다, 중상을 입은 병사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고 들은 다른 병사들의 전의를 꺾는 효과까지.

“과연, 제국의 귀족들이라면 상상도 못 할 악마적인 방법이야.”

변경백은 상대의 수에 순수하게 감탄했다.

자신이야 온갖 전투에서 볼꼴 못 볼 꼴을 다 봤으니 무던한 것이지, 꼬장꼬장한 다른 귀족이나 기사들은 자신의 체면 때문에라도 쉽사리 이런 방법을 택하지 못하리라.

“지금 감탄할 때에요, 변경백? 이대로 가면 사흘 뒤엔 병력이 반으로 줄어있을 거라고요.”

옆에서 가만히 변경백의 말을 듣고 있던 루미러스가 핀잔을 놓았다.

그녀 역시 익스퍼트 중급의 기사.

황녀가 보기에도 이대로 가면 병사들의 전의가 완전히 무너질 것은 불을 보듯 뻔했으니까.

‘감히 신기를 가져가는 것을 방해해?’

이대로 신기를 포기할 수는 없었던 그녀가 주먹을 꽉 쥐었다.

“전하께서는 걱정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변경백은 안심하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이 아무리 얕은수를 써본들, 병력의 숫자는 극복할 수 없을 테니까요.”

적의 수에 잠시 감탄하기는 했지만, 병사들의 전의가 하루아침에 꺾이지는 않는다.

“날이 밝으면, 저 성과 신기는 제국의 품에 들어올 겁니다.”

결국, 힘 대 힘으로 붙는다면, 승리는 제국의 것이 분명했으니까.

변경백은 자신만만했다.

그리고 다음 날.

“진군하라!”

변경백의 명에 따라 알자스 성을 향해 진군한 병사들은.

투투투투투퉁

생전 처음 보는 공격에 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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