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49화 (50/224)

#49화

전차는 기사의 후예다.

말 대신 엔진을 타고 창칼 대신 직사포를 쥐었지만, 압도적인 방어력과 공격력, 기동력으로 적을 분쇄해버린다는 점에서 모든 전차는 기사의 후예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콰앙

지구 최강의 기사는 괴수를 향해 주포를 쏘아냈다.

화염과 함께 뿜어져나간 120mm 고폭탄의 목표는 괴수의 하나 남은 머리.

녀석이 뱃속에 화약을 가득 실은 채 소리보다 빠른 속도로 쏘아져나갔다.

조준이 빗나가지 않는다면, 녀석은 틀림없이 목표를 성취할 수 있으리라.

“앱솔루트 실드.”

하지만.

녀석은 그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우웅

채 괴수의 머리에 닿기도 전에, 허공에 나타난 보라색 벽이 녀석의 진로를 방해했으니까.

콰아앙

보라색 벽에 부딪힌 120mm 고폭탄이 굉음과 함께 폭발했다.

“오호라…”

간신히 3급의 방어마법을 펼쳐 공격을 막아낸 괴수.

그르르

한 때는 신드라 메이런트였던 오우거가 포탄이 날아온 곳을 노려봤다.

혹시 몰라 미리 영창에 들어간 방어마법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두 머리를 모두 잃어야 했을 것이 분명했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공격을?’

하지만 오우거는 당황스러웠다.

상대의 공격은, 환수급 페르소나 둘을 합쳐낸 그녀의 힘과 맞먹었으니까.

쩌적

그 정도의 출력이 아니라면, 일정 수준 이하의 공격은 모두 흡수해버리는 그녀의 방어마법에 금이 갈 리 없었다.

더욱 끔찍한 것은.

쐐애액

상대의 공격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쿵 쿵

신드라는 공격을 피하기 위해 몸을 옆으로 날렸다.

꽤나 볼썽사나운 모습이었지만 그걸 따질 여유는 없었다.

콰아앙

내리 날아온 두 번의 공격이 결국 그녀의 방어마법을 깨부쉈으니까.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지!”

하지만 신드라는 이윽고 마음을 다잡았다.

고작 이런 것을 위기라 칭하기에는, 그녀의 힘이 너무나 강력했으니까.

“자, 이번엔 네 차례다.”

몸을 숨긴 그녀의 손 위에서, 거대한 마력이 넘실대기 시작했다.

[적의 강력한 마력반응이다. 최소 3급 마법이야.]

미미르의 말을 들은 이안은 주포를 다시 조준했다. 포탄은 어느새 미미르의 힘에 의해 장전된 상태.

적은 어딘가에 숨어 보이지 않았지만, 이안이 노릴 곳은 적이 아니었다.

‘첨탑.’

콰앙

M1에이브람스의 주포가 쉬지 않고 불을 뿜어댔다.

마치 자동장전기처럼 쉴 새 없이 포탄을 던져 넣는 미미르와 그림자팔의 힘 덕에, 이안은 십 초도 안 되는 사이 세 발의 포탄을 더 쏘아낼 수 있었다.

이윽고.

콰아앙

세 발의 고폭탄이 첨탑의 중간부분을 강타했다.

적을 직접적으로 막아내는 성벽을 무너뜨리기엔 작은 크기였지만, 첨탑의 한쪽 벽면을 무너뜨리기에는 충분했다.

콰지지직

지탱해줄 벽을 잃은 첨탑이 마치 도끼질당한 나무처럼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이미 내부의 힘에 반쯤 무너진 상태였던 첨탑의 벽돌들이 마치 눈처럼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좋아.’

이안은 쌍안경으로 그 광경을 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이 거리에서 이런 마법을 뿜어낼 수 있다고?”

옆에서 귀를 막은 채 그 광경을 지켜보던 파이톤은 입을 떠억 벌렸다.

철갑을 둘렀다곤 하지만, 고작해야 수레 따위에서.

못해도 4급, 아마도 3급 마법 수준은 될법한 공격을 수 킬로미터 거리에서 연달아 날려대고 있었으니까.

“아무리 페르소나의 힘이라지만, 마력포를 이 정도까지 소형화시킬 줄이야.”

소년은 입에서 연기를 내뿜는 수레를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고대의 전설을 빌려 강력한 무기로 삼는 것이 페르소나지만, 고대의 전설에 최신의 마도학으로 만들어진 마력포는 포함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굳이 전설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작은 오해였지만, 이안이 불러낸 전차는 파이톤의 머릿속에 남아있던 페르소나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부수고 있었다.

‘이제 좀 해볼 만하겠어.’

그러거나 말거나.

이안의 시선은 이미 성벽 아래로 굴러 떨어진 괴수에게 향해있었다.

첨탑의 높이는 못해도 40미터.

저 정도 높이에서 떨어진다면, 아무리 오우거의 육신을 가졌다하더라도 성하기는 힘들 것이다.

‘성내로 들어간 다음, 반쯤 죽어가는 녀석의 숨통을 끊어놓는다.’

위험부담은 존재했지만, 마력에 한계가 있는 이안이 적을 확실히 끝장내기 위해선 이만한 방법이 없었다.

철갑도 종잇장처럼 찢어버리는 철갑탄을 근거리에서 맞고도 멀쩡한 생물이 존재할 리 만무했으니까.

“미미르.”

이안은 도시로 진격하기 위해 미미르를 불렀다.

파이톤과 도시 내에 남아있을 이안의 세력을 이용한다면 어느 정도는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으리라.

하지만.

[마법이다. 정면 1.7KM.]

미미르의 경고에 이안은 쌍안경을 돌렸다.

슈우우

암회색으로 물든 불꽃의 구체가 허공에서 이안을 향해 느릿하게 날아들고 있었다.

“미미르, 이동해.”

제법 먼 거리임에도 느껴지는 구체의 열기에 이안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무리 전차의 장갑이 두텁다 한들, 저런 걸 맞아버린다면 막아낼 새도 없이 녹아버릴 게 분명했으니까.

[알았다.]

키이이잉

위협을 느낀 건 미미르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안의 명령을 들은 사자머리가 인상을 한 번 찌푸리자 전차에 탑재된 가스터빈이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끼릭 끼리릭

엔진의 움직임에 맞춰 마력으로 구성된 전차의 무한궤도가 천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곧, M1전차는 굼떠 보이지만 빠른 속도로 본래 있었던 자리를 이탈했다.

슈우우

하지만 구체는 직선으로 날아가는 대신, 방향을 틀어 이안을 향해 정면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이안, 녀석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 방법을 찾아야 해.]

“알고 있어.”

미미르의 말에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미미르가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벌써부터 피부에 전해지는 따끔따끔한 열기가 녀석의 위력을 가늠할 수 있게 해주었다.

“3급 마법, 헬파이어야.”

마법의 정체를 알고 있던 파이톤이 손가락으로 회색 구체를 가리켰다.

“녀석이 어떻게 유도기능을 가지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녀석이 가진 불의 힘은 마력까지 태워버려. 막아내는 것보단 깨부수는 게 나아.”

“그러면, 네 마법으론?”

“네 생각만큼 이동마법이 만만한 게 아니거든? 나도 마력을 다 써버렸다고.”

“그렇다면.”

파이톤의 말을 들은 이안은 결정을 내렸다.

“부숴버려야지.”

다행히도, 이안에겐 부술 방법이 존재했으니까.

“미미르, 저 언덕 뒤로.”

이안은 진격방향 옆의 구릉을 가리켰다. 사자머리가 고개를 저었다.

[언덕 뒤에 숨을 생각이라면 접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런 방식으로 피하기엔 상대가 너무 높은 곳에 있는 것 같다만.]

“잔말 말고, 빨리.”

[망할 녀석.]

하지만 이안은 미미르를 재촉했다. 미미르는 툴툴대면서도 엔진에 힘을 불어넣었다.

구구구궁

60톤이 넘는 철갑괴물이 빠르게 얕은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언덕을 오르는 동안에도 구체는 전차를 향해 천천히 접근하기 시작했다.

[녀석이 느려터진 게 다행인 줄 알아라. 안 그랬다면 진작 통구이가 됐을 테니까.]

“시끄러. 녀석의 거리, 속도.”

[…초속 15미터, 앞으로 280m 남았다.]

미미르가 빈정댔지만 이안은 흐르는 땀도 닦지 않은 채 티거가 언덕을 오르기만을 기다렸다.

‘그 때도 딱 이런 기분이었는데.’

이안은 이라크에서 테러조직의 추격을 따돌리던 때를 떠올렸다.

테러리스트의 본거지에서 전리품인지, 전투용인지도 모를 에이브람스를 탈취한 이안과 부하들은 전차의 방어력과 기동성을 방패삼아 테러조직의 공세를 쉽게 돌파했으니까.

‘녀석이 뭐라더라.’

이안은 전차가 사용 가능한 상태라는 것을 한눈에 파악한 부하가 지껄였던 말을 떠올렸다.

[이안, 이제 언덕 뒤다.]

“조준 준비해.”

[뭘?]

언덕 뒤쪽까지 전차를 끌고 온 미미르가 반문했다.

이안은 대답 대신, 이마의 땀을 한 번 닦아내곤 공중에서 서서히 하강하는 구체를 가리켰다.

[이봐, 이 녀석은 그렇게 높은 곳을 조준할 수 없어! 그건 네가 가장 잘 아는… 어라?]

어처구니없어하는 미미르의 말을 무시한 채, 이안은 전차 내부로 들어간 다음 포수석에 앉았다.

기이잉

이안의 조작에 따라 전차의 120mm 포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상황었다면 정면의 적을 상대해야 하는 전차포가 하늘을 겨냥할 수는 없었겠지만, 지금은 언덕에 비스듬히 선 상태.

기이이잉

곧 적이 쏘아낸 암회색의 구체, 헬파이어가 조준경 안에 가득 들어왔다.

녀석의 진행경로와 일치된 순간.

‘중위님, 혹시 FPS게임 해보셨습니까? 게임하는 놈들 완전 미친놈들이에요. 무슨 전차포로 비행기를 격추하질 않나…’

말 많던 옛 부하의 말을 떠올리며.

철컥

이안은 방아쇠를 잡아당겼다.

***

퍼엉

거대한 진동이 천지를 울려댔다.

“빌어먹을 녀석, 네놈도 이제 끝이로군.”

마력으로 머리가 날아간 왼쪽 어깨를 지혈하던 신드라가 엄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헬파이어는 마치 마기를 태우는 페르소나와 같아서, 마력으로 세운 방어막 따위는 녀석에게 힘을 불어넣어주는 장작에 불과하다.

‘녀석에게 피해낼 수 있는 방법 따위는 없을 터.’

한쪽 머리만 남은 그녀가 가진 유일한 전승.

불칸의 뒤따르는 마법화살을 마법에 불어넣었으니 녀석은 지옥의 불꽃을 피하지도, 막아내지도 못했을 게 분명하다.

‘제법 하긴 했지만, 무궁한 힘을 가진 이 신드라님께는 어림도 없는 소리지.’

높은 곳에서 떨어진 충격은 오우거의 육체를 가진 그녀를 제대로 움직이기 힘든 상태로 만들어놓았지만, 시간이 좀 걸릴 뿐 회복될 문제였다.

어쨌거나 그녀가 가진 페르소나 중 하나는 재생력을 가진 트롤의 것이었으니까.

“좋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겠어.”

부러진 다리가 어느 정도 붙은 것을 느낀 신드라는 쓰러져있던 몸을 일으켜 세웠다.

3급 마법 따위에 죽은 것을 보면 별 대단한 녀석은 아니겠지만, 자신의 목숨을 위협했던 녀석임에는 틀림없었다.

놈이 확실하게 끝장났다는 것을 두 눈으로 보기 전까지, 그녀는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쿠르릉

신드라가 몸을 일으키자, 그녀의 육체에 간신히 지탱되던 첨탑의 남은 돌벽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이제 이 반쯤 무너진 성은 그녀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가는 김에 걸리적거리는 놈들도 치워버려야겠어.”

몸속에서 다시 서서히 차오르는 생명력과 마력에 취한 그녀가 주먹을 꾸욱 쥐었다.

끼리리릭

“뭐지?”

무언가가 철판을 긁는 것 같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상한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기 전까진.

쿠르르릉

철판 긁는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굉음에 그녀가 마력을 끌어올렸다.

‘설마, 벌써 손을 쓴 건가?’

그녀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일곱 용들. 하지만 그렇다기엔 너무 빠르다.

하지만 굳이 상대의 정체를 추측할 필요는 없었다.

콰드드득

목재로 만들어진 내성의 성문이 쪼개지면서, 굉음의 정체가 드러났으니까.

“놈…!”

그 형체를 본 순간, 그녀는 상대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기이이잉

강철로 뒤덮인 몸뚱이와 바퀴 대신 달려있는 쇳조각들. 마치 중장기병들이 쥔 장창마냥 기다랗게 뻗은 주포.

“잘도 여길….”

성문을 부수고 나타난 강철 괴물이 조금 전 자신의 한쪽 머리를 부순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그녀가 깨달은 순간.

콰앙

폭음과 함께 그녀의 남은 머리가 박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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