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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47화 (48/224)

#47화

“정말이지, 무슨 냄새가 이렇게 역겨워? 주교 놈이 풍기는 냄새랑 비슷한데?”

킁킁

이안의 주변에서 코를 벌름거리던 파이톤의 이맛살이 세로로 파였다.

[그림자신의 힘 때문인가 보군.]

‘아니면 너 때문일 수도 있고.’

이안과 미미르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마족의 피를 몸에 섞은 파이톤이 신성력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마족의 피가 덜 섞였으니 저 정도지, 순수한 마족이었다면 분명 이안이 가진 신성력에 불쾌함이 아니라 통증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예전이랑은 분위기가 다른데?’

강아지처럼 킁킁대는 파이톤을 훑어본 이안은 조금 놀랐다.

아직 어린 나이여서인지, 고작 반년의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도, 그 사이에 키가 조금 자라났다.

성격 역시 우물쭈물하던 그 때와는 많이 달라진 느낌.

[원래 마족의 피를 이은 자들은 성장이 빠른 편이지. 그만큼 마족의 피에 먹혀버릴 확률도 높지만.]

말을 마친 미미르의 사자머리가 뒤로 빠지는 시늉을 하자 이안은 작게 실소를 흘렸다.

“뭔데 기분 나쁘게 웃는 거야?”

파이톤이 이상한 눈으로 이안을 바라봤지만 이안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하여간 이상하다니깐. 우선은 계약서나 쓰자고. 조건은 기억하고 있지?”

고개를 갸웃한 파이톤이 급히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이미 잉크 대신 마력으로 계약사항을 적어 넣은 계약서.

“자, 여기 서명만 하면 돼. 나도 오래 들고 있기 싫으니까 빨리.”

몸이 잔뜩 달아오른 파이톤이 이안을 향해 재촉했다.

‘지난번에 얻은 자료만으로도 어마어마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어. 좀 더 오래 연구할 수 있다면…’

정말로 도달할 수 있을지 몰랐다.

그가 원하는 ‘영웅’에.

“잠깐.”

하지만 이안은 고개를 저었다.

“왜, 왜? 계약하려고 부른 거 아니었어?”

거절당할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한 파이톤의 눈이 크게 떠졌다.

“조건을 바꾸자고.”

이안은 말을 이어나갔다.

그가 파이톤을 부른 이유는 따로 있었으니까.

“조건을?”

“날 리아나로 데려다 주는 것. 그거면 돼.”

“리아나? 거기는 왜?”

이안의 말을 들은 파이톤이 반문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구현의 방이 열리려면 반 년도 넘게 남았단 거 몰라?”

구현의 방이 열리지 않은 리아나는, 그저 들어가기 어렵기만 한 작은 돌섬이었으니까.

이안이 구현의 방을 임의로 여닫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파이톤에겐 당연한 생각이었다.

“굳이 그것까지 네가 알 필요는 없잖아?”

“그거야 그렇지만. 그래도….”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 못하는 파이톤의 태도를 보곤 이안이 피식 웃었다.

분명 이 정보가 파이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는 것이리라.

“알고 싶어?”

“응!”

“안 돼.”

파이톤이 눈을 반짝였지만 이안은 장난스레 고개를 가로저었다.

[허, 저게 그 탈마공의 자식이라고? 저렇게 유약한 성격으로 지금껏 어떻게 살아온 건지 모르겠군.]

마치 장난감을 잃은 아이마냥 시무룩해진 파이톤을 본 미미르가 혀를 끌끌 차댔다. 이안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꺼냈다.

“맨 입으로는 말이지.”

“어차피 가면 알게 될 거 아냐?”

“뭐, 네가 느끼는 게 내가 말해주는 것과 같다고 할 순 없겠지.”

“나쁜 자식. 이제 보니 계약을 하려고 부른 게 아니었잖아?”

이안이 미적지근하게 굴자 골이 난 파이톤의 눈썹이 휘어졌다.

“아니, 계약은 할 거야. 날 도와준다는 전제조건을 계약조건에 넣는다면.”

“언제까지?”

이안의 말에 파이톤의 눈이 반짝였다.

하지만.

“삼 년.”

“사, 삼년….”

이안의 조건을 듣고 당황한 파이톤이 근처에 놓인 의자에 주저앉았다.

“연구는…하지만…삼 년….”

잠시 녀석의 입에서 무어라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안은 팔짱을 낀 채 소년을 바라봤다.

[네 말이 먹힌 모양이군.]

‘생각보다 더.’

미미르의 말에 이안은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영성의 홀에서 파이톤을 처음 만났을 때, 녀석이 보인 태도를 생각해본다면 이안이 제시한 조건은 먹힐 가능성이 충분했다.

말이 삼 년이지, 사실 파이톤의 입장에선 삼 년 동안 이안 옆에 붙어 다니며 연구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뭘 연구하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만.’

굳이 알 필요는 없겠지.

이안은 팔짱을 낀 채 파이톤의 답을 기다렸다.

“이봐, 저 꼬맹이는 누구야? 보기엔 에반하고 비슷해 보이는데?”

슬쩍 이안의 곁에 다가온 베티가 이안의 귓가에 속삭였다.

이안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탈마공의 자식.”

“뭐?”

이안의 답을 들은 베티가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곧 그녀는 이안과 자리에 앉아 외롭게 웅얼거리는 소년을 번갈아 바라봤다.

“허, 허허, 칠공가 중 둘이나 이런 쓰레기장에 왔다고? 무슨 대륙정벌이라도 할 셈이야?”

당연히, 아슈타르의 요원이었던 그녀는 연합공국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가진 어마어마한 힘에 대해서도.

그녀가 대륙정벌을 입에 담은 것은 반쯤 농담이었지만, 반은 진담이었다.

“무슨 개소리야?”

당연히 그런 일은 생각해본 적도 없는 이안은 그녀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봤다.

“뭐, 아님 말고.”

이안의 말에 베티는 한 발 물러났다.

하지만 아슈타르의 공자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이안.”

파이톤이 자리에서 일어난 것은 그 때였다.

순간, 이안의 눈이 파이톤과 마주쳤다.

‘됐어.’

그의 굳은 표정을 본 이안은 확신했다.

“승낙하겠어.”

우웅

이안의 제안을 수락한 파이톤이 손에 쥔 마력계약서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마치 파란 잉크를 부어놓은 것 마냥 제 멋대로 움직이던 마력들이 새로운 계약사항을 적어내리기 시작했다.

“자, 확인하고 사인해.”

이안은 새롭게 작성한 마력계약서를 받아들었다.

“깔끔하네.”

속일래야 속일 수 없을 만큼 깔끔한 내용.

혹시 몰라 계약조항을 꼼꼼히 확인했지만, 이안의 눈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미미르?’

[문제는 없는 것 같다.]

미미르의 확인까지 받고서야 이안은 계약서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좋아, 이제 우리는 한 몸이라고. 삼 년짜리지만 말야.”

계약서의 반 쪽을 받아든 파이톤이 그제 서야 입꼬리를 올리며 몇 개의 작은 구슬을 꺼내들었다.

“잠깐. 우선 내 조건부터.”

그 모습을 본 이안은 손을 내밀어 파이톤을 제지시켰다.

그제야 계약의 조건을 떠올린 파이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리아나로 가야 한다고 했지? 언제 가려고?”

“지금.”

파이톤의 물음에 이안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

우웅

환한 빛과 함께 나타난 이안이 주변을 둘러봤다.

차가운 바람과 끝없이 펼쳐진 바다, 희미하게 느껴지는 소금냄새가 이곳이 섬이란 사실을 새삼 일깨워줬다.

“마법이 편하긴 하군. 우욱.”

이동마법의 놀라움을 몸으로 직접 경험한 이안은 속에서 올라오는 신물을 꾸욱 밀어넣었다.

꽤 단련된 이안의 육체로도 초장거리의 공간이동을 아무렇지 않게 버텨내기엔 무리가 있었다.

“이 정도 먼 거리까지 이동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 일족 중에서도 몇 되지 않아. 영광으로 알라고.”

이안의 약한 모습을 보고 슬쩍 자신감이 붙은 파이톤이 가슴을 폈다.

‘이 자식, 언제 이렇게 달라졌지?’

하지만 이안의 달라진 모습에 놀란 것은 파이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안의 몸에 덕지덕지 달라붙어있던 지방은 이미 오밀조밀하게 짜여진 근육으로 변해있었다.

마력을 움직이는 법조차 몰랐지만 어느새 익스퍼트 중급의 경지에 올라 페르소나를 제 몸처럼 다루고 있었다.

이것이 고작 육 개월 만의 변화라는 사실을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아무리 같은 칠영웅의 피를 이었다고 해도, 이건 너무한 거 아냐?’

4급의 경지에 오르는데 십 년을 넘게 바쳐온 파이톤의 눈에, 이안이 거둔 성취는 말도 안 되는 것이었으니까.

‘저런 놈이 왜 예전엔 돼지처럼 살았는지, 원.’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파이톤은 고개를 젓고는 이안에게 물었다.

“자, 이제 말해줘도 되지 않아? 여길 왜 왔는지?”

“굳이 물어볼 이유도 없는 질문인 것 같은데.”

속을 얼추 진정시킨 이안은 손가락으로 한 쪽을 가리켰다.

그의 손가락 끝에 걸린 것은, 삼 미터는 되어 보이는 높이의 거대한 석문.

“진짜, 진짜 저 것 때문이라고?”

이안의 말을 깨달은 파이톤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럼, 내가 여길 놀러 왔겠어?”

당황한 파이톤을 향해 피식 웃고는, 이안은 아무렇지 않게 앞으로 나섰다.

“아니, 아니, 너 상식이란 게 있는 건 맞지?”

“맞는 것 같은데.”

“그런데 구현의 방을 들어갈 생각을 했다고? 어디 아공간이라도 다녀오셨어요?”

설마 설마 했지만, 정말로 구현의 방이라니.

개방되기까지 앞으로 반 년은 남은 곳에 굳이 찾아올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하지만 파이톤의 눈이 이안과 마주친 순간.

‘진심이라고? 정말?’

그는 이안이 진심으로 저 석문을 열어젖히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 가문에서도 지난 오백 년간 연구해 온 걸, 너 따위가 할 수 있다고?’

마법의 신과 가장 가깝게 지낸 탈마공의 힘으로도 끝내 저 석문을 열어젖힐 수는 없었다.

그런데, 반 년 전만해도 평범한 돼지였던 녀석이 저 문을 열어젖히겠다고?

‘그게 말이 돼?’

파이톤은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프레이야.”

이안의 입에서 누군가의 이름이 불린 순간.

구구궁

“마, 마, 말도….”

활짝 열린 구현의 방 앞에 선 파이톤은 믿기 싫어도 믿을 수밖에 없었다.

***

“오랜만이야, 프레이야.”

[저도 만나서 반갑습니다, 관리자님.]

구현의 방에 들어온 이안이 손을 흔들자 프레이야가 고개를 숙였다. 이안은 고개를 끄덕인 다음 바로 본론으로 넘어갔다.

“내가 왜 왔는지는 알겠지?”

[물론이죠. 바로 제작시스템을 가동하겠습니다.]

이안의 말에 기쁘게 웃은 프레이야가 손을 내뻗었다.

그러자, 어둠속에서 지금까지 봐 왔던 익숙한 광경이 이안의 눈앞에 펼쳐졌다.

[체내의 마력량이 많이 높아지셨군요. 거기에 신성력까지….]

제작시스템을 가동한 프레이야가 이안의 몸 상태를 체크하고는 눈이 동그래졌다.

[단 6개월 만에 이 정도 성취라니, 역시 관리자님이세요.]

진심이었다.

처음 이안이 이 방에 들어왔을 때.

그녀가 속으로 이안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그때와 비교하는 것이 민망할 정도로 이안의 성장은 너무나 급작스러웠다.

“고맙지만 칭찬은 나중에.”

이안은 손을 내저었다.

곧, 그의 시선이 눈앞에 펼쳐진 페르소나의 데이터로 향했다.

데이터를 확인한 이안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준비는 얼추 되어 있고.’

한 번의 교정을 거친 탓에, 처음 만들었을 때와 비교하면 페르소나의 상태는 제법 안정적이었다.

이안이 투사할 수 있는 마력의 양만 충분하다면, 그 이상을 노려볼 수 있을 정도로.

‘그럼, 시작해볼까?’

목표는 환수급의 페르소나.

이안의 눈과 손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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